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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수밭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65
모옌 지음, 심혜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9월
평점 :
『붉은 수수밭』 (문학과 지성사 간)이 다시 번역되기를 바랍니다.
중국의 노벨문학상 작가 모옌의 작품 『붉은 수수밭』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더욱 더 그 원작자의 작품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모옌 작가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을 안긴 대표 작품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 소설-박명애 번역도 그렇고 심혜영 번역도 그렇고-을 읽으면서 번역이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미 출판된, 다른 번역자들-임홍빈,심규호 유소영-이 번역한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는 재미가 높아지면서 더욱 더 <홍까오량가족>이나 <붉은 수수밭>의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는 번역자와 번역자를 고른 출판사가 책임이 있다고 본다. 꼭 나중에 다시 번역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자 한다.
『붉은 수수밭』 (문학과 지성사 간)은 처음에 『홍까오량 가족』으로 출판되었다. 번역자는 박명애 씨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모옌의 번역자로 일한 분이라서 저자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우리말버릇과 달라서 억지스럽게 읽게 되었다. 이는 직역이니 의역이니 문제가 아니라 글맛을 버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령 일본왜군 ‘전차’라 할 부분이 ‘일본 자동차’로 반복해서 나오는데, 적어도 군사 전투적인 장면 묘사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번역자가 생동감 있는 용어를 고르지 못한 문제라고 보았다. 특히 대화체 문이 너무 생뚱맞은 느낌이 들었다. 당연히 우리 말글 맛이 안 난다. 모옌이 너무 말을 못하는 재미없는 자로 여겨질 정도였다. <붉은 수수밭>의 번역이 아쉬워서 다른 번역자(예를 들면 심규호, 유소영, 임홍빈)가 번역한 작품들도 그러나 보았더니 모옌은 말을 글로 풀어놓는 능력이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 수수밭』 (문학과 지성사, 심혜영 옮김)은 제1편 붉은 수수와 제2편 고량주가 다른 번역자이지 않은지 의심이 든다. 152쪽 하단에 ‘하마갱’을 ‘개구리 웅덩이 길’이라고 친절하게 주석을 달았다. 1편에서는 이것을 ‘개구리 지대’라고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웬 말인가 싶어진다. 이 소설에서 이 공간은 매우 상징적인 중요 장소이다. 당연히 1편에서 먼저 밝히고 이후 전 편에 일치시켜 번역해야 맞다. 1편관 2편이 번역자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의심은 이 것 하나만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2편은 글맛이 아주 매끄럽게 이어지는 잘 된 번역이다. 읽으면서 어색하다고 연필로 그어놓은 부분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반면에 다른 편들에서는 어색하고 생뚱맞아서 술술 읽혀지지 않는 부분들은 숱하게 나온다. 잡초를 뽑아내다 그냥 밭을 갈아엎고 말 일이지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진다. 하나하나 보도록 하자.
18(쪽 표시 숫자, 앞으로 생략) “일본 개들아! 개자식 일본 놈들아!” 이렇게 욕을 하는 사람이 있나? “일본 개자식들아!” 정도로 하면 좋을 것 같다.
19 (밑에서 5째줄) 애들 엄마! 그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고...→ 조금 얼띠게 행동하는 왕원이가 훈련을 받으면서 부관이 엉덩이를 차자 입을 떡 벌리면서 외마디 지르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한 바탕 웃는 장면인데, 갑자기 웬 ‘애들 엄마!’라니? ‘아이구 엄마야!’ 정도가 낫지 않을까? '맙소사!' 로 의역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20(위에서 넷째줄) “목구멍이 부었어도 기침은 안 돼! 목표물을 폭로하면 네 대가리를 날려버릴테다!” → 이것도 어색하다. 왕원이가 기침을 하면 적이 알아보고 총탄이 날아올 긴박한 상황이고 전투에 참여한 이들이나 위잔아오 사령관이나 숙련된 군대와는 다른 무지렁이들인데, 그에 어울리는 말을 뱉어야 맛이 난다. “목구멍이 부었어도 참아! 안 돼! 발각되면 그냥 대가리를 날려버릴 거야!” ; '목표물을 폭로하면'을 '발각되면'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20(중간)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왕원이의 짙푸른 눈 속으로 감사와 위축의 빛이 엇갈리며 스쳐갔다. → 안도하며 주눅든 정도가 어울린다. 농투성이가 양복 입고 곡괭이 든 모양으로 말버릇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21(둘째 줄) 우리 할머니가 이 흙길 위에서 얼마나 많은 연애의 희비극을 연출했었는지, → '진한'이 어울린다. 할머니가 무슨 연애를 양적으로 많이 했다는 난삽한 의미가 아니다. 앞 뒤 글의 흐름을 따라서 많다기보다는 사연이 깊은 연애의 복선을 표현한 대목으로 읽힌다.
23(두 번째 문단) “서두르지 마라! 마음이 조급하면 뜨거운 죽 못 마시는 법이란다!” → “서두르지 마라! 성질이 급하면 뜨거운 죽 얻어먹는 법이야!” 이렇게 고치는 게 좋다. 대화체는 대화체 맛이 나야 한다. 또 뜨거운 죽을 어떻게 마시겠는가? 모옌은 이런 속담을 다른 데서도 쓰는 게 나온다. 『모옌 중단편선』(민음사, 심규호, 유소영 옮김)에 나오는 <한밤의 게잡이> 123쪽에 보면, 이렇다. ‘삼촌은 조급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성질 급한 사람이 뜨거운 죽을 얻어먹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24(중간 바로 아래) 모수이 강의 특산물인 하얀 장어는 살 몽둥이처럼 살졌고 머리에서 꼬리까지 굵은 뼈 하나 말고는 가시라곤 없었다. → 뼈만 골라내면 가시라곤 없었다.
이렇게 한 문장씩만 떼놓고 고치다보면, 그리 큰 차이가 없어 보이고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번역자의 개성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리듬감이 속으로 배어든 독서 중에는 물 흐르듯 구담이 이어지는 글이 아니라 자꾸 걸려 넘어지듯이 읽어야 하는 부분이 연거푸 생기면 독서 흐름을 방해한다. 한 마디로 맛이 안 난다. 그래서 전체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앞뒤로 ‘호응’하여 읽을 수 있도록 ‘톤’과 ‘스타일’이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쓰다가 그만 지친다. 글을 시작하여 지적하려고 드니 너무 지적할 부분이 많다. 뽑아내고 솎아내도 줄지 않은 잡초 같다. 그래서 이만 줄이고 그저 바라는 마음만 밝히고자 한다. 박명애, 심혜영 이 분들이 한 번역으로는 모옌이 너무 아깝다. 다른 책은 몰라도 <붉은 수수밭> 만큼은 재번역되기를 바란다. 심규호 유소영 님이 번역했으면 하는 바람은, 혹시 무슨 개인적 연을 따지는 오해나 받기 십상이겠지만, 전혀 그런 것 없다는 것 밝히면서, 꼭 이뤄지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