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웨슬리님의 "요즘 분위기 그려 놓기!"

2009년의 6월을 돌아 보는 지금 시각은 2012 02 21 오후 4:23. '무임목사'란 '임지 없는 목사'이니, 결코 자랑할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무조건 달려가면서 하나님과 무관한 일들을 하나님의 일이라며 착각할 수도 있는 일들에 대한 자기 돌아보기로 시간을 낚고 말씀을 엮을 수 있는 자기성찰의 시간이 가능하더란 것입니다. 너무 오래면 아니 된다는 적지 않은 부담도 없지 않으나,오늘의 교회와 교회들이 뭇 몰매를 던지려는 성난 군중들에게 더는 네거티브 한 존재가 아니되도록 간구하고 또 간구합니다. 2012년 오늘의 분위기는, 2009년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교회에의 애정이 넘치는 필자의 심정을 알아 주는 분위기인지 전혀 그럴 관심조차도 없는 분위기인지 우리 독자들에게 듣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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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9 “하나님께 맞춘 초점!” (행16:25-34) 318/86장

 

 

오늘은 2012년도의 8번째 주일입니다. 교회적으로는 ‘산상변화주일’로 기념하며, 국가적으로는 ‘2012 서울 핵 안보정상회의(2012 Seoul Nuclear Security Summit)’ D-36일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1개월 여 앞으로 다가 온 국가적이고도 세계적인 행사를 위해 노심초사 하실 모든 유관련자들과 행사 당일의 제반 사항 안전 및 좋은 결과를 위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금번 행사를 통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우리에게 주어진 평화는 우리 자신이 지켜야’ 함을 철저히 깨닫고 모든 국가, 전 인류가 삼가는 삶을 잘 경주해 가도록 또한 노력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곳에 모인 우리 모두도 주변 이웃과 지인들과 서로 화목하고 경건한 삶을 잘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화목함과 거룩함을 좇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와 은총으로 함께 해 주실 줄 믿습니다!

 

Rick Warren 목사께서는 “영적 성장은 거짓을 진리로 바꾸는 과정(spiritual growth is the process of replacing lie with truth)”으로 정의 하였고, “진정한 교제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삶에 일어난 일에 대해 ‘솔직할 때’ 생겨난다(Real fellowship happens when people get honest about who they are and what is happening in their lives)”하였습니다. 과연 우리 자신의 삶이 ‘거짓 없는 진실한 삶’을 경주 할 때 비로소 진정한 교제는 이루어지며, 이러한 상호간 교통 속에서의 성장이야말로 더욱 더 성숙하고도 아름다운 성장으로 그 quality가 높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진실한 삶의 경주자’가 되십시다. 할렐루야!

 

금일 본문을 보십시오. 보통은 바울과 실라의 ‘빌립보 감옥에서의 탈옥기’와 놀라운 ‘기적의 역사’ 혹은 ‘찬양의 능력’ 등에 대해 일반적으로 설교 되는 본문입니다만, 또 다른 각도에서는 이 두 전도자의 ‘거짓 없는 진실한 행동’이 ‘한 영혼과의 온전한 교통’과 ‘영혼 구원’이라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실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앞서 16:16-24절에서 발견 되는 거짓과 술수, 탐욕과 부정함과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넣은 자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였고(16절) 거짓으로 상황을 꾸며 갔으며(20-21) 패역을 일삼았을 뿐 아니라(19절) 폭행과 불법을 자행(22-24절)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가두었지요.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였고 ‘찬송’하였으며, 타자에게도 ‘감동’을 주었습니다(25절). 무엇보다도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도 ‘침착’ 하였고(26-28절) 상황을 반전시키는 ‘원숙함(28절)’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당시 죽을 처지에 놓인 간수(27절)에게는 ‘희망’과 ‘진실’이 되었으므로 급기야는 간수가 부복하여 말씀을 ‘경청’할 상황에로의 ‘반전’이 가능했던 것입니다(26-32).

 

결국 그 밤 그 시각에(33절),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그 상처를 씻어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음식을 차리고 하나님을 믿으며 기뻐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33-34절). 바울과 실라의 진실한 행동, 거짓 없는 행위가 지금 한 간수의 생명을 구했을 뿐 아니라 그와 그의 가족이 아름다운 교제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는 모든 보는 자들 혹은 성서의 독자들로 하여금 전도자 바울과 실라를 통한 ‘성숙한 신앙의 모습’을 귀감으로 보여 주는 아름다운 사례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과 실라는 이런 성숙한 모습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저들에게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애초 바울의 관심사와 선교지에 대한 계획이 행 16:6-7에는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전에 15:40을 보시면 바울과 실라가 한 팀을 이룬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로 다녀가 무시아, 비두니아로의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으므로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갔습니다(16:6-8). 그런데 밤에 환상을 통해 바울은 마게도냐 선교에 대한 소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비두니아는 육로를 이용한 선교지이며 지중해 북동향으로의 여행지입니다. 그것이 북서쪽 해안지인 드로아로 수정되었고 또 다시 마게도냐로 재조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마게도냐로 간다는 것은 해상을 거쳐야 한다는 것과 지중해 북서향이라는, 전혀 다른 route와 방향으로의 부르심이었습니다. 더욱이 바울은 환상을 보았으나 실라도 그 환상을 보았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 팀 사이에서의 의견일치도 필요한 형편이었지요.

 

여기서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됩니다. 그것은, 바울이 본 환상과 여행지 수정에 대해 실라와의 그 어떤 분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16:7에서처럼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을 때 예수께서 허락지 않으므로 드로아로 갔을 때, 적어도 실라가 異見을 말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모습을 말하고 있지 않아요. 다음으로 드로아에서 이 팀은 재정비 후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임한 것이었고 16:10에 의하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그들은 ‘곧’, ‘즉시로’ 'immediately(RSV)'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실라 사이에 그 어떤 갈등이나 논쟁도 없었을 것을 넉넉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참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어떤 계획을 급히 수정하고, 그 계획을 즉시 시행한다는 것은 많은 조율과 의견 교환이 요구되니까요. 그러나, 저들이 그런 갈등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저들 각자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초점 맞추기’가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세요. 바울이 본 환상에 즉시로 마게도냐라 하는 전혀 다른 방향, 전혀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 계획, 변경 가능의 핵심에는 “하나님께서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하였다는 공동 사명만 있었을 뿐입니다. 바울도 실라도, 그 각자에게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영혼 구원에의 소명’이라는 ‘하나님에의 초점 맞추기’가 중요한 것이었고, 그 외의 방법론이나 목표점 그리고 계획 수정과 같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었던 것입니다.

 

선교(Mission)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해 복음을 들고 문화의 경계를 넘는 것이요, 세상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은 예수를 전함으로써 그분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선교의 핵심에는 바로 하나님이 계시며, 선교의 수행자들은 바로 그 핵심인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의 과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이라 칭하지 않고 인자(son of man)라 하시면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증거함의 사역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믿는 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것은(히3:1), 그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점을 맞추고 사역하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의 아바 아버지이신 모든 인류의 대주재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복음의 영역 안에서 Mission의 핵심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귀하고 귀한 금번 세계적인 정상들의 모임인 [2012 서울 핵 안보정상회의]에서의 mission, 요구되는 핵심 중의 핵심,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보다 안정적인 핵 문제 해결 방안 강구’와 ‘전 지구적 평화 유지’라는 ‘샬롬의 수행’을 위한 ‘지혜 모으기’에 있다 할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무어라 하여도 각 국 정상 모두의 마음에 ‘人類愛’가 넘치고 타국 정상들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이 앞서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국에서는 최고의 위치에서 부족함 없고 불편을 모르고 지냈기에, 2일의 행사를 위해 원거리, 낯선 장소에서의 일정 속에도 분명 “너보다 내가 낫게 여김 받으려는 마음들”이 없지 않을 터이니, 이것이 불평과 원망과 원성이 된다면, 회의 주제는 고사하고 새로운 세계적 분쟁의 도화선만 될 것은 뻔합니다. 그러므로 각 국의 최고 정상 및 유관 수행자 각 인들의 마음에 ‘겸손함’과 “나보다 당신이 낫게 여김 받기 원합니다” 하는 ‘상호 존경의 마음’이 넘치기 위해 우리 성도는 기도하고, 나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를 잘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각 국 정상들만이 아니라, 저들을 사용하시는 각 나라 백성, 우리 수 많은 지구촌 인류가 이 지구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맞추는 초점, ‘서로 사랑’과 ‘평화 유지’를 기억하고 2012 서울 핵 안보정상회의를 통해 운명의 시계(Doomsday Clock)가 뒤로 이동하는 그 아름다운 역사를 위해 기도합시다. 아니, 사고 없이 12시를 지나 1시를 향하여 희망의 미래로 향하는 복된 기회가 되도록 기도 하십시다!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온 인류와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 모두와 함께 하옵시기를 우리 다 같이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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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자아를 내 비친다 함입니다. 자아를 내 비친다는 것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을 노출한다 는 것입니다. 자신의 노출이 긍정으로 반응되는가 부정으로 반응되는가는 곧 자신의 입지가 세워질 수도 무너질 수도 있는 '실존'의 문제이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말을 하는 것' 보다도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에 있어서도 몇 갑절의 소요가 요청되기에 그 가치나 재화로는 계산 할 수 없는 무게감은 실로 크다 하지 않을 수 없지요. 이에 세월을 낚고 시간을 소요하는 이 엄청난 '흐름'에도 불구하고 글 짓는 필자의 심정은 '독 짓는 늙은이'의 그 고뇌를 넉넉히 헤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계절에 서서 그 두 번째 연재에 대한다면서도 관리상 어쩌지 못하고 불필요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여름이 지나고 가을과 겨울을 지냅니다. 그러나 보면 "드디어 사계절의 봄은 오는가?"에 대한 항변에 가까운 '소리' 앞에서 "그러다네. 봄은 온다네. 아니, 봄은 이미 당신 앞에 왔다네" 하게 되지요.

 

주제도 내용도 그 어떤 장르에도 구애됨 없는 글쓰기란, 창작블로그가 소설만 써 보라는 것이 아니기에 자유로이 지을 수 있는 솥밥의 불떼기에 다름 없습니다. 밥 맛 좋은 것에의 요건은 한 둘이 아니지만, 밥짓기를 위한 불떼기에서 생기는 밥짓기 기술은, 아직 해 보지 않은 밥먹이 선남선녀들에겐 무슨 얘긴가 싶을 정도의 고난도 기술이지요!

 

사계절에 서서 적는 이번 포스팅은 이제 겨우 1회가 된다니, 글 짓는이나 볼 보는이가 2회를 만나려면 필자의 어지간한 뜀박질 아니면 그리 쉬이 될 일은 아니려니 생각할라치면 괜히 웃음이 나오니 이것도 오묘함이 있지요?

 

오늘은 2012 서울 핵 안전보장회의 D-34일 되는 날 입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기념도서관도 개관된 날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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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에 서다]는 다소 엉성한 테마로 시작한 창작블로깅!

 

지속적이고도 정기적인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그리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애초에 (  )일 단위로 글쓰기를 체크하여 본 카테고리를 형성하면서 '이거 아닌데......' 하였던 필자 자신의 고백이 있으니 자유하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은 그 약속에 매여 허둥지둥 글쓰기 그 자체로 코피 흘리는 중이리라 봅니다. 그러니, 비정기적이지만 꾸준히 글쓰기에 임한다는 것도 알고 보면 복 중의 복이려니 생각하면, 그런 필자는 복덩이에 다름 없다 할 노릇, 이에 본 포스트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혹은 반갑게 일으실 님이시라면, 분명 님도 복덩이입니다! 그것은, 복덩이는 복덩이를 만가는 법이 인지상정일테니까요! ^^

바라기는, 복된 삶을 살아 가시는 님 자신을 돌아 보시면서, 받은 복을 주변 지인들께도 아름답게 나누는 나눔이로서도 복된 삶 지속 경주 바랍니다!

본 테마의 물음은 "드디어 사계절의 봄은 오는가?" 입니다. 이에 대한 금일 포스팅은 "그렇다. 이미 봄은 왔다!" 입니다. 아직 경칩은 이르지 않아 조석간 추위가 장난이 아닙니다만, 우수가 지났으니 분명 봄은 온게죠. 입춘 지난지야 벌써 저만큼이구요!

 

문제는!

 

본 테마가 인문적 사고로 구성되는 가벼운 글짓기가 아닐진대, 당연히 오고 가는 사계절의 일기 흐름을 노래하는 정도의 블로깅이 아닌 것은 님 자신도 잘 알 터에, "우리네 삶에 있어서의 봄은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님은 어떠하신지요?

 

오늘은, 예까지만 적고 뒷 이야기는 님 자신의 몫으로 남기려 합니다! 아래 공간을 님께서 이어 가 주시겠는지요? 바로 글쓰기는 아니 될 터이니, 댓글에 담아 님 마음 남기신다면, 필자가 바로 잡아 드리려 합니다.

몇 분에게나, 어느 분께 봄이 왔는지 봄 철을 건강히 살아 가시는 블로거님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어 보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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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 마음이 외로운 당신을 위한 따뜻한 위로
A.G 로엠메르스 지음, 김경집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지금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읽어 가는 책! 님도 왕자일 수 있어요. 만일 님 자신이 왕자처럼 사유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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