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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쉬 스토리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사카 코타로님.
님의 베스트소설집 [피쉬스토리]를 읽었습니다. 참 잘 쓰셨고,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네 편 합쳐서 300페이지쯤 되니 아주 얇은 책은 아닌데, 너무 금방 읽어버려서 아까웠을 정도랍니다.
저는 사실 이 책으로 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이미 유명한 작가이신 것도 이 책의 소개글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그런데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일본소설이 이렇게 와르르 쏟아져나온 것이 별로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본 책 한 권이 나올 때마다 그 작가의 오랜 팬이라면서 그 작가의 다른 작품 뭐, 뭐, 뭐를 읽어보았다며 열광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제가 소설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엄청난 독서량을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니 제가 모르는 작가와 작품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만, 그동안 이렇게나 인기있는 작가와 작품이 왜 한결같이 '지금', '동시에' 붐을 이루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님도 알고 계신가요? 요즘 우리나라 서점가에는 일본 소설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가히 일류라 할 만합니다. 뭐, 일본 작가와 작품이라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지만, 아무래도 요즘과 같은 일류 속에서는 저와 잘 맞는 작가와 작품을 선택하기가 어려운 점은 있습니다.
이런, [피쉬스토리]를 얘기하려고 했는데, 엉뚱한 얘기가 길었습니다.
저는 처음 두 작품 [동물원의 엔진]과 [새크리파이스]가 특히 좋았습니다.
[동물원의 엔진]은.. 어쩜 그렇게 저를 완벽하게 속아넘기셨는지요. 추리소설 읽는 것처럼 은근히 긴장하고 있다가 끝엔 크게 웃었습니다. 우리식 표현으로 유쾌하게 등짝을 탁 치면서 '내가 졌다'하는, 딱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새크리파이스]는 독특했고, 제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전 주인공이 자기도 모르게 그 마을의 비밀의 올가미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도 제가 졌지요. 하지만 동물원같은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뭐랄까.. 주인공은 독자 대신 상황을 파악, 전달하고 마무리를 져주는 역할이어서 충분히 그 몇 배는 더 자극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스토리인 것을 일부러 밋밋하게 가져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그것이 님의 스타일입니까? 두 단편을 읽고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피쉬스토리]는 표지그림이 워낙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작품입니다. 짧은 세 편의 단편이 하나로 묶인 단편. 이 형태도 특이하지만, 그것들이 시간을 오가며 작은 관계성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님의 아이디어가 참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포테이토칩]은 저와는 잘 맞지 않나봅니다. 등장인물이 몇 명 되지도 않는데, 누가 누구인지 자꾸 앞을 들춰보며 확인해야 했습니다. 낯선 일본 이름이 눈에 익지 않아서 그랬기도 했지만, 특히 초반부에선 잘 정리가 안 됩니다. 돌려 말하자면 흡입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내용은 차라리 주인공의 정체를 몰랐을 때가 더 재미있습니다. 누구인지가 밝혀지고 나니 김이 쭉 빠지면서 많이 본 듯한 흔한 이야기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네 편 중에 제일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책의 맨 뒤에 실린 님의 인터뷰를 보니, [포테이토칩]이 지금 님의 감각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마음에 든다고 하셨네요. 이런.. 저와는 비껴가는 인연일까요? 이 책에 실린 단편이 발표순서로 배열되어 있다고 하니, 저는 님의 초기 감각과 통하는가 봅니다. 그래도, 저와 통하느니 안통하느니와 상관없이 [피쉬스토리]로 님을 처음 만난 것 자체가 의미있는 만남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전혀 몰랐던 작가에게 매력을 느끼게 한 작품이라면 그럴 만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