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석유시장 쟁탈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4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주유소에 갈 때마다 '또 올랐어?'라고만 했지, 기름값이 왜 올랐는지, 왜 올라야 하는지는 고민하지 않았던 소시민이다. 그저 중동 산유국의 가격담합과, 중간유통기업의 주머니 채우기 욕심에, 우리나라 정유업체의 알 수 없는 가격정책과 정부의 애매한 입장표명을 잠시 탓했을 뿐, 나로서는 석유를 둘러싼 세계정세나 정책까지 두루 섭렵하여 비판할 어떤 정보도 의지(?!)도 없었기 때문인데. 때마침 만난 소설,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석유시장 쟁탈기]는 나와 같은 소시민의 몽매한 의식을 화들짝 깨울 만하다. 

그렇다고 난해하고 생소하여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세계정세를 논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재미있고 가볍다. 억지로 꾸며내지 않아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등장인물, 순순히 잘 나가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엉뚱하게 튀어버리는 상황전개, 말 한마디와 표현 한문장에도 반짝이는 유머와 풍자가 숨어있다. 물론 그 유머와 풍자는 세계정세와 주요 사건들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 독자라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올 테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책 중간중간에 주석을 달아놓은 것만 보아도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다.

유럽 한복판에 위치한 나라 '그랜드 펜윅'은 작은 땅덩이에, 농업을 주력산업으로 하고, 전화교환수를 통해야만 국제전화가 가능하며, 자동차는 국가를 통틀어 단 2대밖에 없는, 그 존재조차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약소국이다. 아마도 석유사용량에 있어서는 거의 세계 최저 수준일 이 나라에 매우 중대한 메시지가 담겨있는 편지 한 통이 잘못(!) 배달되고, 이 잘못된 우편배달사건으로 이 나라의 대표인 마운트조이 백작은 전세계가 석유공급 중단의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백작은 자신의 목욕물을 데우기 위해서도 반드시 석유를 확보하고 싶었지만, 전세계의 경제적 퇴보를 막기 위해, 전세계에 야기될 혼란과 빈곤과 기아를 막기 위해 이 절대절명의 위기탈출 작전을 수행하는데. 이름하여 전세계를 상대로하는 20억 배럴의 석유 사기극. 여차저차하여 사기극은 무사히(?)-사실 '무사히' 라는 표현은 어패가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만 말하는 것이 좋겠다.- 마무리되고, 백작의 뜻대로 세계의 석유시장은, 이 세상은 평온했다는 이야기.

자신의 안위는 물론 전세계의 안위를 꾀한다는 정의감과 사명감에 제 몸을 불사르는 백작조차 한 거대기업의 총수와 손을 잡아야 했던 것, 자국의 파워를 우위로 지키기 위해 중동 산유국과 은밀한 거래를 해야 했던 것, 그리고 문서상으로나 대외적인 발언에 있어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갖은 우회적 표현을 사용하고, 그 표현을 해석하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것 등, 소설적인 재미를 추구하기 위한 장치라고만 보기에는 뒷맛이 씁쓸하다. 우리가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입장인 것 같아서라기 보다는, 세계의 정치와 경제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이 소설처럼 정의감과 사명감에 제 몸 하나를 불사르는 이가 있기나 할까.

소설은 소설이다. 약소국이 세계의 석유시장을 쟁탈한다는, 기분좋은 상상 속으로 쏙 빨려들어갈만큼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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