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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 이진우 교수의 철학적 기행문
이진우 지음 / 책세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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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드리히 니체, 그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는 니체를 겪어보지 못한 내 무지에서 비롯된 막막함일 뿐 한 번도 '니체'를 진지하게 읽어본 적은 없었다. 아니, 대학시절에 딱 한번 읽은 적이 있었다. 한때 즐겨 읽던 명상서의 저자, 오쇼 라즈니쉬가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자신이 읽은 책 중에 최고였다는 글을 보고, 호기심 반 의무감 반으로 집어든 책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였다. 학교를 오가는 버스 속에서 그 책을 몇 번이나 덮고 폈는지 모르겠다. 덜컹거리는 버스만큼이나 답답하게 가슴을 죄어왔던, 내용에 대한 별다른 이해 없이 오기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다시 니체를 만나려 한다. 그가 쓴 글로서가 아니라 그를 연구하고 소개한 이진우 교수님을 통해 다가가고자 한다. 과연 이번에는 니체의 글과 사상의 끄트머리라도 이해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이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겠는가. 두렵고 조심스런 마음에 니체의 방문을 노크한다.

 책은 니체 전집 등 우리나라에서 니체에 대해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책세상 출판사와 그의 연구와 번역에 조예가 있는(니체에 문외한인 내가 뭘 알겠는가. 속지에 삽입된 저자 소개를 통해 짐작해 보면) 이진우 교수님의 합작품으로 니체의 흔적이 묻어있는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쓴 일종의 ‘철학적 기행문’이다.
 그래서 니체의 철학과 사상에서부터 각 도시에 흐르는 철학적, 문화적 분위기까지 함께 느낄 수 있다. 건축을 문화의 한 영역으로 끌어올리며 대중화에 기여한 서현 교수님의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처럼, 유럽 곳곳에 깃든 니체의 흔적을 따라 사람과 자연, 문화, 나아가 철학적 사유를 끄집어낸다. 니체가 글의 중심에 있기에 조금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책을 뒤덮은 유려한 문체와 생각의 깊이에 매혹된 체 교수님의 발걸음을 묵묵히 뒤따른다.

 니체가 되어 생각하고, 니체가 되어 걸어본다. 니체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나로서도 니체에 대한, 저자의 박식함과 애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니체를 통해 저자 자신과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는 이진우님의 회고록인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공적인 책속에 숨어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책의 깊이를 더했다. 니체의 벽을 넘어 자신에게로 이른 길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니체에 대한 나의 무지도 여전했다. 이 때문에 니체와 유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힘들었다. 니체에 대해, 차라투스트라에 대해 더 많이 알았더라면 그만큼의 깊이로 다가왔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차라투스트라도 다시 읽어보고 싶고 니체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다. 비록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니체를 몇 발짝 더 가까이서 보고 싶다.

 “기행문이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넓게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사유하는 여행, 촉박한 일정에 끌려다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의 문화에 녹아 흘러가는 것, 화려한 겉모습 속에 감추어진 일상의 투박함을 찾아내는 것, 수만리 이국땅에서 어린 날의 고향 길을 떠올리는 것, 비워진 마음으로 세상 속을 흘러가는 것, 이것이 바로 진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언제쯤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먼 길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을까.

 이삼일 정도를 니체를 따라 걷다보니 그의 사상의 따라갈 수 없는 내 머리는 더욱 몽롱해지는 것 같다. 인류를 뒤흔든 위대한 사상 앞에 내 앞의 현실은 너무 초라해 보인다. 뭔가 중요한 것이 있을 것 같지만, 아니 있다고 했지만 내 능력으로는 그것을 실감할 수도 부여잡을 수도 없다. 이런 공허함이 일상을 건조하게 마비시킨다. 갑갑한 마음은 깊은 한숨이 되어 현실을 자학한다. 왜 이럴까. 사고의 시작인가 아니면 이성의 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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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 이진우 교수의 철학적 기행문
이진우 지음 / 책세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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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출장을 비교적 많이 다닌 내게 언제부턴가 이상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우연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르면 가능한 한 많이 보려고 욕심내지 않고 '하나'만 챙기려 한다. 유명한 성당을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 보면 그 성당이 그 성당 같아 보이는 것처럼, 아무리 유명한 예술 작품이라도 너무 많이 보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유명하지 않으며 어떤가. 가슴에 와 닿는 그림 하나, 조각 하나면 되지. 고대 그리스 신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도 어려운데 이름과 석상을 맞추는 일은 오죽할까. 많이 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마음으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34쪽

단순함은 경건함을 낳는다. 사랑과 증오, 기쁨과 고통,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우리의 삶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는 게 왜 이리 복작해!" 우리의 삶이 겉돌 때 삶은 복잡해진다. 복잡성을 뛰어넘는 단순함은 없는 것일까. 복잡한 삶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으면서 ‘단순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니체의 디오니소스처럼 삶을 춤추듯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의 삶의 목적은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언젠가 산책을 하면서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단순함을 뜻하는 영어 단어 ‘심플simple'은 ’심心full‘이다. 마음이 충만해야 사람은 단순해질 수 있는 법이다.-47쪽

생각이 막힐 때면 산으로 간다.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산을 올라간다. 발바닥에 땅의 맨살과 돌부리가 느껴지고 종아리가 뻐근해지면 어느새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진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걷는 데 몰두하다 보면 눈과 귀가 열리고,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진다. 산에 오를 때마다 의식을 버려야 마음이 열린다. 진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生覺)은 생생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저절로 나를 찾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저절로 나를 찾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산에서 내려온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땐 숲을 걷지만 생각이 나지 않을 땐 높은 산을 오른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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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0분에 세번 거짓말 한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 - 속고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로버트 펠드먼 지음, 이재경 옮김 / 예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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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라는 믿을 수 없는 제목으로 거짓말에 대한 분석을 시작한다. 책은 일단 거짓말의 일상성을 예로 들면서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는지 주지시킨다. 일상적인 인사치례나 상대방에게 무안을 주지 않기 위한 표현들은 부당한 이익을 원하거나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하는 반사회적 거짓말은 아니라 하더라도 10분에 한번 꼴로 일어날 만큼 빈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이런 일상의 거짓말도 쌓이면 거짓된 사회를 만드는 시발점이 된다고 조심스럽게 경고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는 거짓말의 원인과 유형에서부터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되짚어본다.
 한마디로 세상의 거짓말을 집대성한 백과사전 같다. 얼마 후면 진실이 탄로 날게 뻔 한 어린아이의 거짓말에서부터 사람들의 일상에서 사소하게 오고가는 거짓말, 연인들이나 부부 사이에서 은밀하게 주고받는 거짓말이나 자신의 행적이라며 그럴듯하게 포장되는 정치인들의 거짓말, 상대방의 허점을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악의적 거짓말 등 세상의 모든 거짓말을 풀어놓고 설명한다. 왜 인간이 거짓말을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타인과 자신과 속이는지 다양한 심리학적 실험을 통해 분석한다.

 인간은 원래 거짓말쟁이다?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 말은 어쩌면 사실인지 모르겠다. 인간 본성에 이미 거짓말이라는 코드가 각인되어 있다는 것은 동식물들이 갖고 있는 생존의 법칙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자신의 색을 주변과 일치시켜 천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먹잇감이 좋아할 무엇을 준비해 사냥을 하는 것처럼 인간의 인지능력도 거짓말을 통해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에 전적인 동의나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반감을 드러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왠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조금은 나약하게 느껴진다. 가족과 타인으로 부터 인정받기 위해, 혹은 남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왔던가. 아등바등 살아가는 현대인의 본모습을 보아버린 것처럼 씁쓸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거짓말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되었는가? 특히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진실편향’, 즉, 다른 사람의 말이 진실 될 것이라고 쉽게 믿어버리는 경향이 거짓말의 영향력을 증가시킨다고 했다.
 그럼 책은 어떨까. 보통 활자화된 책은 말이 갖는 '진실편향' 이상의 진실편향을 갖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미사여구를 동원한 말보다는 그럴싸하게 제본된 책을 더 쉽게 믿어버린다. 사회가 왜곡될수록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텍스트의 위력은 더 커질 것이고 이를 이용한 과학적 거짓말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거짓말'을 분석해 놓은 이 책은 어떨까? 과연 하나의 오점이나 거짓도 없을까? 혹시 거짓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니 "그럴 리야 없겠지만"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상대방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빌미를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거짓과 관련한 이런 딜레마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인 것 같다.
 어? 그럼 여기 블로그( http://blog.aladin.co.kr/freeism )는? 그럴싸한 문장으로 나의 거짓과 위선을 포장해 놓는 것은 아닐까. 거짓에 대한 자각과 분석 이전에 나 자신부터 되돌아보게 된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무심결에 행해지는 거짓말을 통해 거짓말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을 보게 된다. 또한 아이들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흔히 상상 놀이라고 하는 것, 그러니까 평범한 물 컵을 가지고 놀다가 전화소리가 들렸을 때 이 물 컵이 전화기인 듯 통화하는 흉내 내는 놀이 역시도 엄밀히 말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가르친다는 사실이다. 이런 일상의 과정들을 통해 아이들은 사회 속에서의 거짓말을 하나 둘 배워간다. 물론 거짓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결과를 초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위한다는 놀이를 통해서도 거짓말을 학습하게 된다는 사실은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 학습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정이라 한다. 거짓말이 없다는 것은 진실과 거짓의 여러 관점을 동시에 인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고 결국 타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자폐아동이라는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했듯 "정직이 좋고 거짓말은 나쁜 거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책에서도 언급했듯 인간은 거짓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인지하기는 싫지만 우리들 모두는 10분에 세 번꼴로 거짓말을 늘어놓는 허풍쟁이들이다. 그래서 거짓말을 완전히 끊는다는 것 보다는 진실하려고 노력하는 쪽(능동적 진실 탐색, AHA(Active, Honestry, Assessment))에 비중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텔레비전 광고가 생각난다. 은근슬쩍 넘어가는 편의주의에 물들지 말고 자신의 소신대로, 진실을 말하라는 것이다. 과연 나는 No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지, No라는 주변의 외침을 색안경을 끼고 관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세상에는 별의 별 것을 다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좀 더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인문학 분야도 일상의 사소한 모습을 연구함으로써 인간 의식의 깊은 부분까지 탐구해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인문학의 매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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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리즘 > 서평단, 나는 이런 점이 좋았다

 서평단(인문)을 하면서 좋았던 점이란 무엇보다 인문학에 대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전에는 두껍고 어렵고 난해한, 뭔가 꼬치꼬치 캐묻고 파헤치는 인문학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다. 내가 관심이 있는 특정부분에 대해 가볍게 써내려간 책, '세미 인문학' 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인문책만 가끔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서평단을 통해 인문학이 어렵고 난해한 이야기들을 줄기차게 적어 내려간 책이라는 선입견에서 조금은 자유로워 진 것 같다. 사실 전문적인 내용을 접했을 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인문학의 매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일단 인문학 책은 생각하는 맛을 느끼게 해줬다. 어떤 주제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이나 사회적 흐름을 느껴봄으로써 별 의미 없이 지나쳤던 일상의 여러 부분들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서 느꼈던 나의 무지함 마저도 나를 다그치는 교과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던 앎의 기쁨은 세상에 대한 열린 자세와 자신감으로 다가온 것 같다.
 또한 다양한 분야를 깊이 있게 접할 수 있었다. 반강제적으로 배송되는 랜덤한 책은 내가 읽고 싶은 분야만 골라보던 옛 습관에 변화를 줬다. 무지해서 모르고 있었던, 혹은 인문학이 갖는 포스에 주눅이 들어 감히 접해볼 수 없었던 분야를 억지로라도 접해보게 되었다. 과연 읽을 수 있을까하고 시작된 책 역시도 그 깊이와 맛에 흠뻑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숙제로 주어진 감상글(서평)이 갖는, 글쓰기에 대한 스트레스도 좋게 작용한 것 같다. 글로 남겨야 된다는 의무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뭔가를 남긴다는 희열 또한 컸다. 대단한 명문이나 냉철한 분석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글 역시 그 과정 속에 있으리라는 뿌듯함이 좋았다.
 그 외에도 평소보다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는 점이나 남들이 돈 주고 구입하는 책을 무료로 본다는 공짜책의 희열도 좋았다. 그리고 시간에 쫓기듯 읽고 쓰는 것 역시 연재를 하는 작가라도 된 듯 묘한 즐거움을 줬다.
 돌이켜보면 서평단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선을 넓힐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치열함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책과의 싸움은 계속하고 싶다. 서평단을 통해서건 아니건 인문학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살찌우고 싶다. 책이라는 아날로그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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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라스 가는 길 - 영혼의 성소 티베트
박범신 지음 / 문이당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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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일라스, 그보다는 '성산 카일라스'라는 이름으로 뇌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산.
몇 해 전 방송된 다큐멘터리(SBS스페셜(2006년), <신으로 가는 길, 카일라스>)를 통해 카일라스를 알게 됐을 때 두 눈과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강한 인상을 받았다. 황량한 고원 사이에 하얀 봉우리를 세우고 선 모습은 세상의 온갖 잡사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직한 수도승을 연상케 했다. 또한 그 둘레를 몇 년에 걸친 오체투지로 순례하는 티베트 사람들은 어떤가. 온 몸을 던져 신에게 다가가려는 그들의 진지함은 이미 티베트를 설명하는 최고의 상징이 되었다.
 이미 카일라스는 단순한 산이 아니었다. 히말라야의 신비함과 위엄 있는 풍모가 더해져 티베트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어느새 카일라스는 '성산'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책은 티베트 라싸에서 카일라스로 가는 길을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작가의 미려한 글 사이로 큼지막함 사진이 간간히 섞여 있다. 심플하게 넘어가는 책장은 TV를 통해 따라가던 여행과는 확연히 틀리다. 좀 더 감상적이 된다고나 할까. 문단과 문단 사이에 숨을 고르며 티베트와 라싸, 카일라스의 모습을 상상한다.
 몇 해 전에 다녀온 라싸가 떠오른다. 희뿌연 모래바람과 야크기름 냄새, 포탈라 궁의 화려함과 티베탄의 질척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니 곳. 70년대 부산의 변방을 거니는 듯 하다가도 대형슈퍼와 극장, 한식당을 만나면 이내 중국의 관광지라는 인식으로 되돌아오곤 했던 이국. 그 거친 땅의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부드럽게 써내려 간다.

 단순히 여행과 감상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의 현재와 지금의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중국의 지배하에 있지만 티베트 고유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은 여느 나라보다 강했다. 자신의 것을 지키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그들의 모습에서 흥청망청 앞으로만 질주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척박한 땅이었지만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수한 눈망울을 통해 그들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다.
 박범신 작가의 눈을 통해 티베트의 이면을 계속 여행한다.

 어쩌면 작가가 찾는 곳은 카일라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카일라스로 가는 여정을 통해 자신만의 ‘성산’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대한 회한의 글을 통해 그가 이미 카일라스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카일라스를 통해 작가의 인생을, 세계관을 보여주는 명상서적을 닮아있다. 여행을 통해, 산을 통해 세상을 둘러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작가의 마음을 진지하게 접하게 된다.

 랜드크루져를 타고 히말라야를 넘을 때가 생각난다. 돌과 진흙이 뒤섞인 길을 지나 계곡을 건너며 길 아닌 길을 뚫고 달리던 히말라야 고원. 덜컹거리는 자동차는 고산증으로 인한 두통을 가중시켰고 매스꺼움과 어지러움은 끊이질 않았다. 거친 평원 너머로 보이는 만년설의 풍광도 아무런 위안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고통마저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렸다. 히말라야의 퍼런 하늘과 뜨거운 공기, 어개를 짓누르던 고산증마저도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아련함으로 남아버렸다. 언제고 다시 갈 수 있으려나... <카일라스 가는 길>을 통해 히말라야에 대한 동경이 새롭게 움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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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2010-05-3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즘님의 글도 카일라스처럼 신성한 느낌이 드는군요. 라싸..저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이어요. 티비에서 본 오체투지를 하는 그들의 모습이 한편으론 참 부러웠거든요..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프리즘 2010-06-01 10:10   좋아요 0 | URL
이상과 현실이 묘하게 조화된 곳이 바로 라싸였죠. 오체투지하는 사람 주변으로 몰려든 관광객과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중국 상인들과 공안...
꼭 가보세요. 야크 기름이 뼛속까지 사무칠겁니다. ^^

yjmiho 2020-11-14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다큐멘터리 정확한 이름을 알았네요~ ‘카일라스를 알게 됐을 때 두 눈과 온 몸이 얼어붙는 듯한 강한 인상을 받았다.‘라고 표현하신 그 느낌 그대로 저도 느꼈고 잊고 살다 문득문득 생각났었거든요~
다큐멘터리 찾아보려고 해도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었는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