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출장을 비교적 많이 다닌 내게 언제부턴가 이상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우연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르면 가능한 한 많이 보려고 욕심내지 않고 '하나'만 챙기려 한다. 유명한 성당을 여러 군데 돌아다니다 보면 그 성당이 그 성당 같아 보이는 것처럼, 아무리 유명한 예술 작품이라도 너무 많이 보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유명하지 않으며 어떤가. 가슴에 와 닿는 그림 하나, 조각 하나면 되지. 고대 그리스 신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기도 어려운데 이름과 석상을 맞추는 일은 오죽할까. 많이 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마음으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34쪽
단순함은 경건함을 낳는다. 사랑과 증오, 기쁨과 고통,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우리의 삶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는 게 왜 이리 복작해!" 우리의 삶이 겉돌 때 삶은 복잡해진다. 복잡성을 뛰어넘는 단순함은 없는 것일까. 복잡한 삶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으면서 ‘단순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니체의 디오니소스처럼 삶을 춤추듯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의 삶의 목적은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언젠가 산책을 하면서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단순함을 뜻하는 영어 단어 ‘심플simple'은 ’심心full‘이다. 마음이 충만해야 사람은 단순해질 수 있는 법이다.-47쪽
생각이 막힐 때면 산으로 간다. 숨을 헐떡이며 가파른 산을 올라간다. 발바닥에 땅의 맨살과 돌부리가 느껴지고 종아리가 뻐근해지면 어느새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진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걷는 데 몰두하다 보면 눈과 귀가 열리고,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진다. 산에 오를 때마다 의식을 버려야 마음이 열린다. 진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生覺)은 생생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저절로 나를 찾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저절로 나를 찾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산에서 내려온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땐 숲을 걷지만 생각이 나지 않을 땐 높은 산을 오른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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