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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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소설책의 날개지에 적힌 작가의 말로 이 한 문장으로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표현되리라.

현실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두 나라(초(草)와 단(旦))와 두 말(야백(夜白)과 토하(吐夏))의 이야기는

대결과 상생, 비유와 반어를 통해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어떤 일에 몰두하다 보면 왜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지 모호해질 때가 있다.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지, 이쪽이 맞는 것인지 자신도 혼란스럽지만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다.

지나간 시간은 먼지처럼 흩어지고, 다가올 시간은 기약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김훈(1948년생)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달 너머로 달리고 싶으나 현실과 이상, 시간과 공간이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우리의 역사, 인간의 삶이 아니던가.

최근 건강이 나빴다는 작가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그리고 초와 단의 지형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나뉜 서울을 생각나게도 한다.

소설 속 이야기를 쫓아가기보다 그 위에 비친 '달리는 글'을 따라가야 하겠다.

소설은 새로움이고,

김훈은 후퇴할 수 없다.

초(草)는 야생과 같고,

단(旦)은 지킬 수밖에 없다.

술은 채워야하고

잔은 비울 수밖에 없다.

독자는 읽어야 하고,

독서는 기다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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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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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의식중에 행해지는 차별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한마디로 "기울어진 세상에서 익숙한 생각이 상대방에게 모욕이 될 수 있음"(p37)을 지적한다.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평등하고 차별을 싫어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차별을 다양한 연구결과와 구체적인 사건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관습이나 습관, 고정관념이나 편견, 혹은 무지와 부주의로 악의적 의도는 없었지만 차별을 행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특성화고로 옛날에는 실업계, 전문계로 불렸 직업교육 중심의 고등학교다. 그래서 대학진학보다는 자신만의 전문기술을 배워 졸업과 함께 기업에 취업해 사회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 하지만 여전히 학벌 중심의 사회가 견고하고, 학부모 대부분이 자녀들의 대학진학을 원하고 있어, 특성화고를 일반계고(인문계고)에 갈 수 없거나 탈락한 학생들이 가는 학교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공부에 관심이 없고 놀기 좋아하는, 심지어는 문제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이 특성화고라는 편견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래서인지 특성화고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책을 읽는 동안 따라다녔다. 특성화고에 대한  이런 편견은 졸업 후에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사회적인 차별을 낳았고 이는 특성화고의 원래 취지였던 취업과 사회생활을 더욱 어렵게 했다. 기업은 특성화고 출신을 꺼리게 되고, 학부모는 자녀들의 특성화 진학을 말렸다. 물론 공부에 기초가 부족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친구와 다투는 등의 문제도 있지만, 이는 일반계고에 진학한 학생도 마찬가지 겪는 문제다.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것으로 일반화시키지는 말아야겠다.

  특성화고의 직업교육은 우리 사회를 근대화하는데 많은 밑거름이 되었다. 국·영·수 성적은 조금 낮을지 몰라도 전자, 컴퓨터, 기계, 관광, 조리, 보건, 행정, 미용 등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고, 이런 작은 기술과 노동이 우리 사회를 윤택하게 만들었으니 이보다 큰 보람과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는 더 큰 벽에 가로막혀 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도움을 필요한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해 보살피고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해왔다. 장애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서 부족과 결핍, 모자람의 대명사로 웃어넘겼다. 이런 인식들은 부지불식 간에 우리들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만들었고.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누군가를 상처 입게 했다. 특별한 의도 없이 호수 위로 던진 자갈은 몇 번의 물수제비를 거쳐 아득한 곳의 상대를 다치게 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차별을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우리들의 무지와 편협, 이기심을 꼬집는다. 아무리 공정하고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는 없다. 오히려 민주적이고 정의롭다고 자만하는 사람일수록 더 좁은 시각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착각하지 말자. 우리는 민주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그래서 조직과 절차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에 대한 지나친 자만을 버리고 저 멀리, 사회 전체를 내다봄으로써 기울어진 세상을 자각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30페이지에 달하는 빼곡히 적힌 주석과 참고문헌은 이 책을 쓰기 위한 노력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치 무의식중에 뱉어버리게 되는 일상 속의 차별을 꼼꼼히 걸러내겠다는 김지혜 작가님의 의지를 보는 듯 했다. 지금은 이런 꼼꼼함과 세세함으로 세상에 만연된 차별과 싸워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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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세트 - 전4권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김홍모 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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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주 월요일이 5·18민주화운동기념일(40주년)이라 한국사 선생님과 함께 5·18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신군부와 맞섰던 5·18민주화운동 : https://youtu.be/xTW9PBcCixM)

 

   그리고 조금 전에는, 얼마 전 아들과 함께 보려고 사 뒀던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을 꺼내 들었다.

   총 네 권으로 이루어진 역사 만화 시리즈로 <빗창>(김홍모, 제주 4·3), <사일구>(윤태호, 4·19), <아무리 얘기해도>(마영신, 5·18민주화운동), <1987 그날>(유승하, 6·10민주항쟁)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세트, 4)

 

   오후에 5·18 관련 영상을 편집하며 영상의 내용을 들었던 터라 <아무리 얘기해도>(마영신, 5·18민주화운동)부터 먼저 집어 들었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맞서 민주화를 끌어냈던 광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니고 많은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 사건이라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그 의미와 가치를 잊거나 혼동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한번 되세겨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특히 신·구세대가 느끼는 5·18의 차이가 만화에 잘 녹아 있는 것 같다. 군사독재와 학살, 조작과 은폐, 위선과 같은 거대한 소용돌이로 각인된 기성세대와는 달리, 신세대는 스마트폰에 넘쳐나는 짤방처럼 단순한 호기심과 이야깃거리로만 인식하고 있는 넘사벽의 현실을 안타깝게 보여준다.

 

   <빗창>(김홍모, 제주 4·3)은 해방 직후 제주도에 일어난 일들을 주목한다. 4·3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 해녀의 빗창(전복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도구)을 소재로 푸른 바다와 함께 그려놓았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제주의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특히 수묵화처럼 붓으로 그린듯한 거친 느낌이 아주 신선했다. 거칠면서 섬세하고, 투박하면서 부드러운 붓 맛이 일품이다.

 

<빗창>(김홍모, 제주 4·3)의 한장면

   <사일구>(윤태호, 4·19)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과 독재에 맞선 항쟁으로 1960년 일어났다. 5·18과 마찬가지로 드라마와 영화로 많이 소개되었는데 <유지광>, <장군의 아들>, <야인시대> 등과 같이 이승만 정권 막바지의 혼란기를 다룬다.

   <사일구><이끼>, <미생>을 그린 윤태호 작가의 작품이라 그림에 눈에 익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시간상으로 가장 최근인 <1987 그날>(유승하, 6·10민주항쟁)이다. 특히 최근에 광주에서의 비극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공판이 있어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다. 물론 여기 출두한 전두환은 꾸벅꾸벅 졸며 모르쇠를 일관해 다시 한번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6·10민주항쟁은 전두환이 물러나게 했지만, 그의 후계자격인 노태우가 등장함으로써 6월의 봄은 짧게 끝나버렸다.

      

   역사는 계속 반복된다. 4·3, 4·19, 5·18, 6·10으로 이어진 민주화운동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다. 최루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니지는 않지만,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부조리와 맞선 사람들이 있다. 공권력이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기업과 단체, 개인이 각종 폭력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것이다.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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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클래식 클라우드 6
백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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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전달하는 기법(참고 : 두산백과)

 

  헤밍웨이의 굴곡진 삶을 따라 독자를 안내한다. 예술가들의 고향이던 파리를 시작으로 그가 살았던 도시와 그가 썼던 글을 따라간다. 글쓰기의 밑바탕이 된 기자생활과 죽음과 인생의 무게를 경험하게 된 전쟁, 네 번의 결혼과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여러 문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남성적이고 거친 그의 하드보일드한 삶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런 삶이 그의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고,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는지 살펴본다.

   마치 헤밍웨이를 안내를 받아 그의 소설과 내면으로 여행한 것 같다. 고집 세고 무뚝뚝한 노친네의 불성실한 가이드로 많은 발품을 팔았지만, 저녁 즈음에 들른 선술집에서 발그레한 취기로 열정적으로 쏟아놓은 그의 무용담으로 인해 가장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되었다.

 

  최근 <무기여 잘 있어라>, <노인과 바다>를 읽었고, <헤밍웨이 단편선>을 같이 읽고 있어서인지 지면 속의 텍스트가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배경이나 주인공이 나눈 대화, 그리고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의미까지 다시 한번 되새김하게 된다. <무기여 잘 있어라>의 프레더릭이 전쟁에서 봤던 것과 떨쳐버리고 싶었던 것이나,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가 잡았던 청새치가 어떤 존재였는지 되짚어보게 된다.

   그래서 한 작가의 글이나 이와 관련된 것을 몰아서 보는, '전작주의자'의 느낌도 덤으로 얻게 된다. 한 작가가 평생에 걸쳐 낳은, 자식과도 같은 글들을 읽으면서 그와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물론이고,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착각마저 들게 된다. 어쩌면 나도 이미 헤밍웨이의 전작주의자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최고의 대문호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내 지인이라니...

 

  헤밍웨이는 행복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결혼생활을 네 번이나 바꿨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전쟁에 끊임없이 참전했으며 술과 투우, 낚시에 탐닉했다.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포함한 각종 사고를 당했고 알코올중독과 우울증, 정신병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극한의 상황까지 끊임없이 몰아붙였지만, 그 틈새는 쉽게 좁혀지지 않은 것 같다. 가족과 친구, 이웃까지 몰아세우며 자신을 방어해 봤지만, 그 무게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겉으로는 무소불위의 초인이 되어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사랑에 못 말라 했던 여린 헤밍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세계 명작을 남긴 전설적인 소설가라는 타이틀 뒤에 숨겨진 한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나온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얼굴을 표지로 삼았다. 거친 수염을 기른 체 정면을 바라보는 고집 쎈 얼굴이다. 하지만 먼 곳을 응시한 그의 깊은 눈을 바라보면 웬지모를 슬픔이 느껴진다.

  대문호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험난했던 삶과 충격적인 결말은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빼버린 채 간략하게 써 내려간 하드보일드, 그 자체라고 생각된다. '헤밍웨이'라는 단어는 이미 우리 시대의 마초가 되었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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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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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는 84일째 아무런 고기도 잡지 못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엄청나게 큰 청새치가 그의 낚싯바늘을 물었고 이틀간의 사투 끝에 작살로 겨우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배에 매달고 오는 도중에 피 냄새를 맞은 상어 때의 공격으로 대부분의 살점이 뜯겨버렸고, 앙상한 뼈만 매단 채 겨우 되돌아올 수 있었다.


  노인은 오직 고기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허기와 부상을 견딘다. 살이 갈라지고 목이 타들어 간다. 잠은 고사하고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다. 낚싯줄 하나로 연결된 적은 심연에 웅크린 채 완강히 버텼다. 적은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자신이 되어버렸다. 바다는 현실과 이상을 가르는 경계가 되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노인이 잡으려고 했던 청새치는 단순한 물고기가 아니라 84일간의 불운을 돌파해줄 행운의 열쇠였고, 자신을 따랐던 소년과 재회할 수 있는 허가증이었다. 또한 노년의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말 상대였다. 비록 힘들게 성취한 결과물이 타인의 몫으로 돌아가 버렸지만 이것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청새치의 상징과도 같은 긴 뿔(주둥이)을 소년에게 선물함으로써 노인이 찾은 희망은 새로운 세대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정작 헤밍웨이 자신은 청새치를 잡고도, 그 희망의 끈은 놓쳐버렸다. 탕! 엽총 소리와 함께 노인의 무기는 사라졌다. 다음 책에선 헤밍웨이를 따라가 봐야겠다.

난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참고 견뎌 낼 수 있는지 보여 줘야겠어. - P67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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