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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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은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p259)

  '존속 살해'라는 충격적인 소재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살인자의 손에 쥐어진 면도날만 섬뜩하게 번들일 뿐 뇌리 속에 남는 것은 없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사이코패스의 강렬함이 모두 가져가 버린 듯하다. 책을 덮은 지 하루가 지났지만 잔혹함과 매스꺼움이 가시질 않는다. 내 귀라도 잘라버려야 끝이 날는지...


  표지에 그려진 수영장이 검붉은 핏물을 채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섬뜩하고 잔인했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책을 놓지는 않았다. 피 튀기는 광기는 제3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상당히 자극적인데다 끊기 힘든 구경거리였다. 남의 집 불구경이 제일 재밌다는 이야기처럼 자기와 상관없음을 확인한 타인의 눈에는 그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흥밋거리일 뿐이었다.

  혹시 내 안에 숨어있는 광기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얌전하고 온순한 척 내숭을 떨고 있지만 속으로 상대방의 허점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겨버린 상대방의 약점을 마음 속 깊이 세기며 유용하게 써먹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지 반문해본다.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은 소설 속 사이코패스의 시작이 아닐까.


  책은 읽자마자 인터넷 중고서점을 통해 저렴하게 팔아버렸다. 더 이상 우리 집에, 내 방에 놓아두기가 싫었다. 나의 머리 속에 남은 핏자국을 어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나의 책이 누구의 손에서 읽혀질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살인 속에 감춰진 이면을 간파할 수 있는 독자가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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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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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을 중심으로 우리 근대사를 되돌아보는 흑백 다큐멘터리 영화 같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의 우리 한반도의 모습은 물론 2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웠던 국제정세가 고뇌 섞인 윤동주의 행보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그래서 별다른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우리 역사와 이를 둘러싼 전체적인 상황까지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

  특히, 윤동주 시인에 대한 많은 연구와 자료가 있었겠지만 이를 매끄럽게 연결해놓은 저자의 솜씨가 돋보인다. 동주의 시를 중심으로 가족이나 친구는 물론 그가 머물렀던 장소까지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어가며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물론 윤동주의 행보를 통해 지나치리만큼 세세하게 그 시대상황을 설명하려다보니 조금 산만해지는 경향도 없진 않지만 이는 그의 푸른 시구를 만나면서 다 잊혀 버렸다.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한 윤동주의 삶은 별을 노래했던 그의 서정성과 대비되면서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최근 영화 <동주>로도 개봉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책을 다 읽고 영화를 보려고 아껴두었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벌써 '동주'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각인되어 버렸다. 화왕산이었던가? 별이 되어버린 친구를 기린다는 비석의 문구처럼...

  자라나는 우리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세상 모든 이들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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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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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름진 얼굴에 삐딱하게 치켜든 노인의 얼굴이 심상찮게 그려진 책 표지를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오베라는 남자>는 연노랑 표지에 아담한 서양식 집 앞이 그려져 있고 그 앞에 꼬장꼬장하게 생긴 노친네와 고양이 한마리가 조그맣게 그려진 책이다. 도서관이라는 특성상 겉표지를 벗긴 것인지, 아니면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오베라는 노인의 클로즈업한 표지의 책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베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갔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구두쇠에다가 모든 것이 정해진 시간에 제자리에 위치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불통의 오베를 보니 오래 전에 봤던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외골수 할머니(데이지)가 생각난다.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살아가는 투덜이 할머니와 이런 괴팍함을 다 받아주며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운전기사의 이야기인데 그런 풍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책 초반부 몇 페이지만 읽고서 전체 내용을 어림한다는 것이라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왠지 휴먼드라마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강했다. 어쩌면 세상과 연결해주는 그 핵심 고리 역할을 오배와 함께 표지에 등장한 그 고양이가 담당해 줄 것이 아닌지도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정직하지만 무뚝뚝한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오베는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배운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하게 된다. 하지만 한 동료의 모함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화마에 휩싸인 옆집의 이웃은 구했지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집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생활하고, 새 것 보다는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았던 오베의 이야기가 인상 깊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이웃과 친구를 밟고 올라서는, 새로 구입한 신제품에도 금방 싫증내 버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련스럽도록 묵묵한 아날로그형 인간, 오베라는 남자가 새삼 돋보인다. 한마디로  "마치 보석을 둘러싸고 있던 회반죽이 갈라지는 것 같은"(p207) 남자였다.


  혼자 살아가던 오베는 퇴근길에 우연히 만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고 곧 그녀와 함께 생활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섰던 스페인 여행에서 뱃속의 아기는 유산되고 사랑하는 아내마저도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된다. 음주운전을 한 버스 운전사와 물론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던 오베를 진정시킨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소냐. 그들을 다시금 일어서는데...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오베의 이야기에는 그의 굴곡진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의 괴팍한 성격은 힘든 세월을 버텨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삐딱하게 주름 속에 감춰진 사연을 보니 그의 날 선 까칠함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도 해고된 오베는 죽기로 결심한다. 아내 이외에는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없는데다 고정적인 직장마저 사라진 마당에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 천정에 목을 매달아보기도 하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셔보기도 했지만 절묘한 타이밍의 우연과 이웃과의 소소한 사건으로 인해 번번이 실패한다. 이렇게 이웃들에 의해 오베의 자살은 연기되어지고 점점 그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몇 가지 일도 도와주게 된다.
   앞집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제는 텔레비전의 미담코너에 나올 만큼 진귀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고 도와주는 오베의 투박함이 아름답게 보인다. 어려운 이웃을 도움으로써 오베는 사회에 동화될 수 있었고 개인적인 아픔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오베라는 남자> 초반부터 나왔던 길고양이는 책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사랑하는 아내의 분신이 되었다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 되기도 했다. 또한 오베를 괴롭히는 '하얀 셔츠'의 인간으로 대변되기도 하면서 늘 오베 곁을 지켰다.

  어쩌면 이 고양이는 우리 삶에 스며있는 희로애락이었는지 모르겠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행복과 불행이지만, 언젠가는 시간과 함께 모두 아름답게 지나가리란 것을...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www.freeis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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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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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틀즈의 <Norwegian wood>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소개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 신드룸의 첫 신호탄이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때부터 시작된 하루키의 유명세를 꾹 참고 기다리다 1999년에야 읽었던 기억난다. 뭐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고 그 어렴풋한 느낌, 마치 안개 속을 걷고 있는듯한 모호함만이 '상실'이라는 단어와 함께 남아 있었다. 이렇게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혼란스러움은 언젠가는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들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노르웨이의 안개는 여전히 짙게 깔려 한치 앞을 가늠키 어려웠다. 다만 비틀즈의 노래 속에 남겨진 여운이 책의 이미지와 많이 오버랩 되면서 그 혼란의 정체에 조금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설의 전체 구성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나(와타나베)에게는 기즈키라는 오랜 친구가 있는데 그는 나오코와 연인 사이로 우리 셋은 늘 함께 만났다. 그러나 가즈키가 갑자기 자살하자 나오코는 큰 충격을 받게 되고 그녀와의 연락도 자연스레 끊겼다. 얼마 후 나는 시내에서 우연히 나오코와 마주친 후 그녀에게 가끔 만나게 되었고 점점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켰던 나오코는 요양원으로 떠나게 되고 함께 수업을 듣던 미도리를 알게 된다.  

  와타나베가 알고 있거나 만나는, 혹은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 둘씩 들려주면서 이야기는 점점 깊어진다. 꼭 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심리적 갈등이나 사회에 대한 혼란스러운 인식, 남녀 간의 불확실한 사랑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성장'이라는 화두를 통해 하나씩 풀어놓는다. 그렇다고 명확한 해답이나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모든 것들이 뒤엉켜 더 깊은 혼란과 갈등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나오코가 기즈키를 생각하며 와타나베 한 말 속에는 안개 가득한 <노르웨이 숲>이 그대로 함축된 것 같다. 

  "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우리는 지불해야 할 때 대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청구서가 이제 돌아온 거야. 그래서 기즈키는 그런 선택을 했고 지금 나는 이렇게 되었어. 우리는 무인도에서 자란 벌거벗은 어린아이 같은 존재였어. 배가 고프면  바나나를 먹고 외로우면 둘이서 끌어 안은 채 잠들었지. 그런 사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잖아. 우리는 점점 커 갈 거고 사회 속으로 나가야만 했어." (p224)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 개개인은 결국 시간과 함께 성장해간다. 남들보다 돋보이거나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화려한 외형을 갖고 있든, 심오한 깊이가 있든, 설사 깨어지고 어긋난 모양일지언정 결국 성장해가는 것이다. <노르웨이 숲>은 그 성장통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어딘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목표를 향해 날아가고 있을 안개 속을 화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랑하고 슬퍼하며, 만나고 헤어지며, 기억하고 잊혀지며... 와타나베는 이렇게, 그렇게 성장한다.

  "나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할 거야.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야만 하니까. 지금까지 나는 가능하다면 열일곱, 열여덟에 머물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이제 십 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봐, 기즈키, 난 이제 너랑 같이 지냈던 그 때의 내가 아냐. 난 이제 스무 살이야. 그리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만 해." (p415)

 

  소설책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인상적이다. 클래식부터 비틀즈의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이 등장하는데 특히 와타나베의 갈등을 현실의 문제로 끌어다놓으며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레이코의 기타선율이 잔잔하게 들려온다. 책을 읽으면서 비틀즈의 <Norwegian wood>(노르웨이의 숲)을 몇 번씩이나 찾아 듣게 만들었다. 바람이 흘러가는 듯한 그 기타소리가 무심코 지나쳐왔던 내 젊은날의 시간들처럼 아쉽게 느껴졌다.

 

She showed me her room, Isn't it good? Norwegian wood
그녀는 내게 자신의 방을 내게 보여주었어. 근사하지 않아? 노르웨이산 가구(목재)야

She asked me to stay and she told me to sit anywhere.
그녀는 내게 머물다 가라며 아무데나 우선 앉으라고 그랬어.

So I looked around and I noticed there wasn't a chair.
그래서 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의자 하나 없다는 걸 알았어.

I sat on a rug. Biding my time, Drinking her wine.
난 그냥 방석 위에 앉았어. 그리고 시간을 보냈지. 그녀가 주는 와인을 마시며 말이야.

We talked until two. And then she said, "It's time for bed."
우리는 2시까지 이야기 했어. 그 때 그녀가 말했지, "잘 시간이야"

She told me she worked in the morning and started to laugh.
그녀는 아침에 일하러 가야 한다고 그랬어. 그리고는 깔깔거리기 시작했어.

I told her I didn't and crawled off to sleep in the bath.
"난 일이 없어" 라고 그녀에게 말하고는 잠을 자려고 욕조로 기어갔지.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s flown.
그리고 깨어났을 때 나는 혼자였어. 그 새는 날아가 버린거야.

So I lit a fire. Isn't it good? Norwegian wood.
그래서 난 불을 붙였어. 근사하지 않아? 노르웨이산 가구(목재)야

 

 

성장의 고통 같은 것을. 우리는 지불해야 할 때 대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청구서가 이제 돌아온 거야. 그래서 기즈키는 그런 선택을 했고 지금 나는 이렇게 되었어. 우리는 무인도에서 자란 벌거벗은 어린아이 같은 존재였어. 배가 고프면 바나나를 먹고 외로우면 둘이서 끌어 안은 채 잠들었지. 그런 사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잖아. 우리는 점점 커 갈 거고 사회 속으로 나가야만 했어.

나는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야. 그리고 성숙할 거야.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야만 하니까. 지금까지 나는 가능하다면 열일곱, 열여덟에 머물고 싶었어.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난 이제 십 대 소년이 아니야. 난 책임이란 것을 느껴. 봐, 기즈키, 난 이제 너랑 같이 지냈던 그 때의 내가 아냐. 난 이제 스무 살이야. 그리고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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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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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님은 글은 언제나 라면같이 찾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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