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주름진 얼굴에 삐딱하게 치켜든 노인의 얼굴이 심상찮게 그려진 책 표지를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도서관에서 빌린 <오베라는 남자>는 연노랑 표지에 아담한 서양식 집 앞이 그려져 있고 그 앞에 꼬장꼬장하게 생긴 노친네와 고양이 한마리가 조그맣게 그려진 책이다. 도서관이라는 특성상 겉표지를 벗긴 것인지, 아니면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오베라는 노인의 클로즈업한 표지의 책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베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갔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구두쇠에다가 모든 것이 정해진 시간에 제자리에 위치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불통의 오베를 보니 오래 전에 봤던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외골수 할머니(데이지)가 생각난다.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살아가는 투덜이 할머니와 이런 괴팍함을 다 받아주며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운전기사의 이야기인데 그런 풍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책 초반부 몇 페이지만 읽고서 전체 내용을 어림한다는 것이라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왠지 휴먼드라마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 강했다. 어쩌면 세상과 연결해주는 그 핵심 고리 역할을 오배와 함께 표지에 등장한 그 고양이가 담당해 줄 것이 아닌지도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정직하지만 무뚝뚝한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오베는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서 배운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하게 된다. 하지만 한 동료의 모함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화마에 휩싸인 옆집의 이웃은 구했지만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집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생활하고, 새 것 보다는 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았던 오베의 이야기가 인상 깊다.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이웃과 친구를 밟고 올라서는, 새로 구입한 신제품에도 금방 싫증내 버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련스럽도록 묵묵한 아날로그형 인간, 오베라는 남자가 새삼 돋보인다. 한마디로  "마치 보석을 둘러싸고 있던 회반죽이 갈라지는 것 같은"(p207) 남자였다.


  혼자 살아가던 오베는 퇴근길에 우연히 만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고 곧 그녀와 함께 생활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섰던 스페인 여행에서 뱃속의 아기는 유산되고 사랑하는 아내마저도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된다. 음주운전을 한 버스 운전사와 물론 세상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던 오베를 진정시킨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소냐. 그들을 다시금 일어서는데...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오베의 이야기에는 그의 굴곡진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의 괴팍한 성격은 힘든 세월을 버텨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삐딱하게 주름 속에 감춰진 사연을 보니 그의 날 선 까칠함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도 해고된 오베는 죽기로 결심한다. 아내 이외에는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없는데다 고정적인 직장마저 사라진 마당에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 천정에 목을 매달아보기도 하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셔보기도 했지만 절묘한 타이밍의 우연과 이웃과의 소소한 사건으로 인해 번번이 실패한다. 이렇게 이웃들에 의해 오베의 자살은 연기되어지고 점점 그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 몇 가지 일도 도와주게 된다.
   앞집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제는 텔레비전의 미담코너에 나올 만큼 진귀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못하고 도와주는 오베의 투박함이 아름답게 보인다. 어려운 이웃을 도움으로써 오베는 사회에 동화될 수 있었고 개인적인 아픔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자신을 사랑하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오베라는 남자> 초반부터 나왔던 길고양이는 책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사랑하는 아내의 분신이 되었다가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 되기도 했다. 또한 오베를 괴롭히는 '하얀 셔츠'의 인간으로 대변되기도 하면서 늘 오베 곁을 지켰다.

  어쩌면 이 고양이는 우리 삶에 스며있는 희로애락이었는지 모르겠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행복과 불행이지만, 언젠가는 시간과 함께 모두 아름답게 지나가리란 것을...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www.freeism.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