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미증유의 스토리텔링으로 공자의 지혜를 꿰뚫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죠, 선생님?
“어머,
손이 예쁘시네요.”
맥***
매장에서 커피 한 잔을 받아들었을 때, 직원이 내게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잊고 있었던 선생님의 얼굴과 함께 선생님께서 해주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이
밥을 남기면 밥버러지로 태어난다.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예쁜 손을 얻게 되지.”
아직
몸과 마음이 성장 중이던 사춘기 중학생의 순진한 마음 속에 이상하게도 그 말씀이 또렷이 새겨졌었다.
밥상머리에서
인상을 구기며 “밥알 떨어뜨리지 마라.”하고 훈계하시던 아버지의 백 마디 말보다, 유난히 상냥하고 친근한 어조로 나의 정신적 허기짐을 채워주셨던
p선생님의 자연스러운 말 한 마디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때만 해도 나이가 꽤 있는 싱글이셨던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를 항상 머금은 얼굴에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나붓나붓 걸어다니시면서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를 해주셨다. 하얗다 못해 핏줄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손을 갖고
계셔서 얼마나 그 예쁜 손을 닮고 싶었었는지 모른다. 달리 말하면 선생님의 손마저 닮고 싶을 정도로 그 선생님을 존경했다는 것이 되겠다. 향을
감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듯이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에서 수녀와도 같은 맑고 투명한 영혼을 감지했다면 너무 과한 것인가. 언젠가 누군가 나를
모르는 이에게서 듣고 싶었던 '손이 예쁘다'는 말을 오늘 들었다.
새삼
내 손을 내려다보며, 이제 나이 40을 바라보는 나는 밥 안 남기고 감사하며 먹고 사는가,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삶을
살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내
손은 그리 예쁘지 않다. 자세히 보면 손톱 옆에 거스러미도 일어나 있고 손등도 거칠지만 직원이 나의 손을 예쁘다고 해 준 건, 가끔 보는 얼굴에
대한 친근함의 표현으로 건넨 말일 수도 있고 그날따라 기분이 유난히 좋아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남이나 다름 없는
직원이 내게 좋은 의도로 말을 건넸다는 사실 자체에서 40 가까이 살아온 내 인생이 묻어난 얼굴이나 표정 등의 인상이 거부감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의
가르침, 이만하면 저 나름대로 잘 따르고 있었던 건가요? 작은 목소리를 공기 중에 띄워 본다.
# 멘토의 소중함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흔히 던질 수 있지만 쉽게 받아낼 수 없는 질문 중의 하나다.
삶의
근원을 관통하는 진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세 가지는 인문학이 던지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질문이 아니었던가.
길든
길지 않든, 이 세상을 살면서 이 질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떤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자,
일순, 답은 툭 튀어나오지 않고 입은 탁 닫혀버린다.
인생의
멘토가 되어 주었던 훌륭한 선생님의 존재가 있었기에 크게 일탈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남에게서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나쁜 사람이 되지도
않았다, 면 너무 큰 비약인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서정주의 시구에서처럼 나를 키운 건...뒤에 쓸 말을 채운다면 주저 없이 “스승”이라는 단어 하나를 넣겠다.
스승이라고
해서 꼭 학창 시절의 은사님들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내 부모님, 내 형제, 내 친구들 모두에게서 조금씩 배울 점들을 꼭꼭 찍어 내 옷에다
무늬를 내면 어느새 제법 번듯한 옷 한 벌이 완성될 정도다. 지금은 수많은 내 인생의 스승들 중에서 “공자”를 모실 시간이다. 삼인행에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라
했던 것도 공자님 말씀이렷다!
#공자를 만나다
아주
오래 전, 노나라에서 태어나 툭 튀어나온 짱구머리를 하고서 수레바퀴를 끌고 온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 예전에는 너무나 엄숙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어서 공자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스승이었다.
십
대 때에는 한문 교과서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 혹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등등의 구절로 만나볼 수 있었다. (지금의 십 대들은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같은 책을 통해 이웃집 아저씨같은 친근함으로 그를 대할지도 모르겠다.) 그 때의 철없음이란...율곡과 퇴계가 평생을 이와
기 (理氣) 두 글자에만 매달려 살았다, 는 말을 듣고 이해를 못 해 이와 기, 그게 뭐 어려운 글자라고...하며 피식 웃었던 피라미 시절이었던
것이다. ^^

이십
대 때에는 남들 다 읽는다는 교양서적으로서의 <논어>를 만나면서 뭐니뭐니 해도 논어의 기본은 강(講)과 암송(暗誦)이지 하며, 원문을
강독하기도 했다. 덕택에 논어의 체계를 대충 꿰고 웬만한 구절은 들으면 이해할 정도는 되었다. 공자를 우러르며 따르던 자공, 자로, 자고, 안회
등의 제자들의 존재 정도는 파악했다고 할까. [논어] 자체가 스승 공자를 따르던 제자들이 남긴 기록을 취합한 것이니만큼 제자들의 목소리와 성격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데, 그 속에서 나는 무슨 커다란 산 하나를 찾겠다고 한 것인지, 공자와 제자들의 어우러짐은 무시해버렸다. 공자의 정치와
사상에만 집중했을 때의 [논어]는 어렵고 딱딱했지만 지식인이라면 이 정도는 논할 수 있어야지, 라는 그릇된 고정관념에 천착한 것이 패착의
원인이었다. 당최 자기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는 열국의 제후들에게 인과 충, 서를 부르짖었던 공자,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공자...내게는 왜 공자의
정치와 현실을 결부시킬 만한 능력이 없는 거야, 하며 좌절했더랬지.
삼십
대, 그것도 끄트머리에 와서야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사십이
되기 전 이 책을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불혹(不惑)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나이에 안착하기 전에 어려운 문자나 딱딱한 해설체가 아닌
이야기로 공자의 지혜에 흠뻑 젖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 미증유의 스토리텔링으로 공자의 지혜를 꿰뚫다!
거짓말처럼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2천 년 전 살았던 공자가 어느새 높은 단 위에서 내려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공자의
주변에는 그를 모시는 제자들이 많았지만 특히 공자를 가장 오래 모셨던 자공이 이 책에서 스토리텔링을 맡으며 공자의 지혜를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개성과 노력을 갖추었던 인물로 평해진다. 선비 출신의 상인이자 언변이 좋은 웅변가이며, 또한
유명한 외교가였다. 외교가로서 일찍이 다섯 나라의 운명을 뒤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현대의 수많은 문제에 맞닥뜨리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자공에
대입시켜 보면 2천 년 시간의 간극을 넘어 공통적으로 부딪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발견할 수 있다. 일과 삶 속에서 만나는 문제들에 대해 공자는
구체적인 가르침과 해결방식을 제시한다.

가장 오래 공자를 모신 제자 중의 한 명인 증점과 그의 아들인 증삼에 관한 이야기로 살아 있는 학문이란 어떠한 것인지를
깨우쳐준다.
증점은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다가 외싹을 자른 증삼에게 버럭 화를 낸다. 목석 같고 우직하지만 효심 깊은 증삼은 아버지
증점이 몽둥이로 자신이 혼절할 때까지 내리쳤어도 그저 효성스러운 아들이라면 아버지를 화나게 하지 않았어야 했다며 다친 것을 참고 웃는 얼굴로
일어섰다. 공자의 제자들은 증점이 효도를 실천한 것이라며 증점의 행동을 문제시삼지 않았지만 공자는 "만약 네가 아버지에게 맞아 죽었다면 어찌할
뻔 했느냐?"며 아둔한 효자를 어루만진 다음 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버지 증점을 따끔하게 혼낸다. 수신제가의 도리를 이 에피소드에 적용시키고
상황에 따라 효도도 달라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려서
제기를 벌여놓고 예를 행하는 태도를 짓던 공자는 관직에 올랐다. 주나라에 가서 예를 노자에게 물었고, 돌아와서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기에 때로는 정사를 펴기도 하고 때로는 제자들을 돌보기도 하니 그를 따른 제자가 대개 3천인데 6예에 통한 자가
72인이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P 선생님은 투명한 손 하나의 기억만을 남기고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지만, 공자는 제자들이 되살려낸 [논어]외에 그의
흔적이 담긴 많은 책을 통해 여전히 우리 곁에 우뚝 서 있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나는 10대 때 공자를 만난 이래로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있건만, 공자는 내가 그를 만날 때마다 점점 더 젊어지는 것만 같다.
세월에 시달리며 노련해지는 나와 달리 항상 그 자리에 서 있기에 내가 그를 향해 달려갈수록 공자와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어린
시절에는 무엇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지도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읽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려니...
건성건성
눈으로 읽은 문자들이 머리에서 스르르 사라져 가는 것을 움켜쥘 방도는 없었다. 삶의 무수한 장면들에서 외로움, 쓸쓸함, 불공평함 등 수많은
문제에 부딪칠 때 문자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직 내가 체험한 것들만이 오래오래 남는 교훈이 되기에 현실적 아픔을 겪어내지 않고 얻은 무수한
말들은 그저 가뭇없이 사라져만 갈 뿐이었다. 이 책 속에서 만나는 공자는 해답을 직접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해답에 이르는 생각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준다. 우스꽝스러운 짱구의 모습이기도 하고 근엄한 스승의 모습이기도 하며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한 공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자들을
교육시킨 것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낸다.
때로는
정면돌파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피했으며, 때로는 우물쭈물 주저했다.
그렇기에
더욱 인간적인 공자를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으며 공자에게 질문을 던졌다가 결국에는 깊은 깨달음을 얻는 제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았다면 곧바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까?"
공자는 같은
질문을 하는 자로와 염구에게 각기 다른 해답을 내렸다.
충동적이고
담이 큰 자로에게는 절제를 요하는 답을 내렸고, 일을 만나면 위축되거나 뒤로 물러서는 성격의 염구에게는 곧바로 행동에 옮기라
했다.
비록
정해진 모범 답안은 아닐지라도 상황에 맞는 번뜩이는 답안을 내놓을 줄 알았던 공자의 지혜는 2천 년을 거슬러 오늘날의 고민거리들까지도 멋지게
하나로 관통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인류
상당수에게 공자보다 더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실상부 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지혜를 전해주는 "등대"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의 아버지라면 공자는 순수한 경험적 모럴리스트라고 한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하다면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묵직한
원문 강독의 맛과는 또다른 신선함으로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공자의 지혜를 두 손 가득 퍼담아 올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