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었다. [토우의 집]

 

사랑하는 애니 로리~내맘 속에 살겠네.

 

 

 

 

 

 

[토우의 집]을 읽고서 예전에 흥얼거리곤 했던 그 아름다운 선율의 스코틀랜드 민요였던가, <애니 로리>가 떠올랐다. 책에 나오는 가사가 아무리 해도 입에 붙지 않고 가사가 내가 불렀던 것과 다른 것 같아서 찾아봤다. 달랐다.

 

옛날 거닐던 강가에 이슬 젖은 풀잎

사랑하네 아니 오리 언제나 오려나-238

 

동영상 속의 이미자 씨는 애니로리를 아니로리로 발음한다.

그러고 보니, 책 속의 사랑하네 아니 오리 라는 가사와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더는 부를 수 없었다. 양손을 깍지 끼고 리듬에 맞춰 몸을 천천히 흔들며 부를 수 없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었다. -238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 아이 원이는 새댁이라 불리는 어머니가 부르곤 하던 노래 가사를 듣고 따라부르기만 하다가 애니 로리를  "아니 오리"로 부르지만 어느 샌가 그마저도 더는 부를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아이가 지켜 왔던 동심의 세계는 자신의 단점 뿐만 아니라 남의 단점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아비가 자신을 집 밖에 세워놓고 훈육을 하던 그 날, 미래에 다가올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복선인 듯 진저리를 치며 아비를 저주하는 말을 하면서 깨졌다.

 

그렇게 필체가 좋고 그렇게 옷매무새가 단정하고 그렇게 음성이 똑부러지고 그렇게 동작이 노루처럼 경쾌하던 사람. 원이의 어머니,새댁은 그런 사람이었다.

위로 위로 오를수록 층층이 나뉜 사람들의 삶은 각박해져 가는 동네, 삼벌레 고개.

그 고개의 딱 중간이지 싶은 지점에 있는 우물집에는 네 가구가 살았다. 비어 있던 우물집 바깥채에 이사 오게 된 새식구는 새댁과 남편, 큰 딸 영과 작은 딸 원이었다.

아니, 언젠가부터 막내딸이 된 원이의 인형 희까지도 식구에 넣어주어야 하나.

영, 원, 희.

무엇이 영원하기를 빌며 이름지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이 이름자조차도 아름다운 것 하나가 영원히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기는 힘들 것 같은 음울함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중간에 위치한 우물집 아이들은 스파이 놀이를 하면서 어른들의 비밀을 하나씩 엿들으면서 점점 세상 물정을 헤아려 간다.

어른들은 마을의 소문을 다 끌어모았다 퍼뜨리는 진원지의 역할을 하는 계주에서부터 사우디에 돈 벌러 나간 남편을 둔 사우디집, 아이들의 눈에 상의 비밀을 다 아는 것 같은 난쟁이 식모, 보험여자 등등 이미 짧은 수식으로도 다 짐작할 수 있을만큼 뻔하디 뻔한 업들을 짊어지고 사는 삶들을 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삼벌레 고개에 빳빳하게 풀먹인 새 옷감처럼 영 그네들의 삶에 섞여들지 못할 것 같던 새댁네 집에 일이 생기고야 만다.

"안바바와 다섯 명의 도둑"처럼 비밀 얘기를 쑥덕, 심상찮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사람들의 쑥덕공론에 오르곤 했던 원이의 아비, 안덕규는 어느날 검은 양복쟁이들의 검은 세단에 밀어넣어진 채로 사라졌다.

동시에 아이들의 세상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어른들의 세계를 스파이질 하며 자신들의 세계와 저울질해가며 얼만큼 왔나, 살금살금 뒤를 밟아가던 아이들도 은철이가 개울을 건너 하늘을 날 뻔 하다 툭 떨어져 다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하던 날 이후 아이들만의 세계는 울타리가 무너지고 어른들의 그것에 섞여들기 시작한다.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었다. 일 년도 안 된 지난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울었다. -275  

 

층층이 오를수록 다른 삶의 경계를 만나게 되는 삼벌레 고개에는 다양한 삶이 녹아들어 있었다.

하지만 빨갱이니 간첩이니 하는 말들이 내리누르는 중압감이 너무나 커서, 서로의 삶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이제 그만 손을 잡고 정을 나누어도 될 만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질 만할 때쯤, 자신만은 철퇴를 맞아서는 안된다는 이기심이 발동하고 만다.

무슨 운동이든 운동을 하는 당신들은 당신들의 삶을, 그저 하루하루 살기도 버거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 테니, 제발 우리를 끌어들이지 마시오. 하는 듯.

아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남편, 그리고 그런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였던 까닭에 새댁이라는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던 새댁이 삼벌레고개의 은행집에서 사라지던 날...

마을 사람들은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얼굴 보며 배웅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양심 하나를 무언가가 꾹 누른 채 밟고 서서, 그 존재가치조차 의아해지는 양심이란 것이 터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고 떠올리면 아프기 그지없는 우리 현대사의  과거는 그렇게 과거로만 묻어도 될 것인가.

흙으로 빚어진 인형들처럼 입이 막히고 몸이 굳어진 채로 우리의 기억에서만 살아 있어서 될 것인가.

아비의 참담함을 안고서 새 보금자리로 떠나지만, 끝내 토우처럼 , 꼬옥 끌어안고 다니던 인형 희 처럼,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린 원이는 무엇으로부터 자신의 온몸을 회피하려 하는 것일까.

역사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한 조각 한 조각 토우들을 빚어내렸을 작가의 문장이 아프다.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기라도 하지만 우리는...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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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읽는 셰익스피어 걸작 동화 영어적인 사고력을 길러주는 영어동화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정경옥 옮김 / 베이직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영어로 읽는 셰익스피어 걸작동화]

 

영어로 읽는 셰익스피어라...

어렵지 않을까? 망설였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라 문장이 그렇게 길거나 까다롭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읽는다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영어적인 사고력을 길러주기 위해 읽는 동화책이라 생각하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이미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밤의 꿈 같은 작품들은 한글책을 통해서 두어번 접한 적이 있는 우리 아이도 일단 책의 목차를 훑어보더니 반가운 제목을 확인하고 기뻐하는 기색이다.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이 책은 글만으로 빼곡한 책이 아니고 일러스트가 각 작품마다 분위기를 달리 하여 들어 있기 때문에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아이들이 읽기에 크게 거부감이 없으면서, 꼭 알아두어야 할 6작품이 실려있다.

열두 번째 밤, 로미오와 줄리엣, 폭풍우, 한여름 밤의 꿈, 맥베스, 햄릿.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셰익스피어의 생애가 수록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는 책이라 더욱 의미가 깊고 아이들에게 위대한 문호의 작품을 맛만이라도 보여주고픈 엄마의 욕심에도 딱 맞아떨어진다.

 

물론, 우리 딸아이는 자기 취향에 맞는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에 먼저 관심을 보였지만 서서히 다른 작품도 읽을 날이 올 것을 믿는다.

원래 희곡으로 되어 있는 작품들이라 인물 소개가 나와 있다. 대사와 지문 등 희곡의 형식으로 처리되어 있기를 기대했지만 거기까지는 무리이고, 동화 형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등장인물  밑에 간단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작품을 처음 대하는 아이들도 그림과 함께 인물을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이 바뀌면 일러스트도 달라진다.

좀 더 사랑스러운 느낌이 강한 일러스트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분위기를 알려준다.

 

 

한여름 밤의 꿈 일러스트의 경우, 그림이 좀 더 귀여워서 페어리들의 세계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문장이 길지 않고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려운 단어가 몇 개 나오더라도 그림을 보며 문맥을 파악할 수 있고, 문장을 쉽게 읽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림 동화책의 장점이다.

책이 생각보다 꽤 두꺼워 아이가 싫어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다행히 아름다운 그림 덕분에 눈길을 쉬이 거두지 않았다.

한꺼번에 한 권을 다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작품 별로 떼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부담도 덜할 것이다.

 

맥베스의 경우, 그림으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살려내었다.

이 작품은 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읽는다면 독서 실력이 깊어질 것이라 믿는다.

 

한글책으로 먼저 대강의 내용을 읽을 수 있도록 한글판도 같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영어책이라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생각보다 아이가 좋아하고 읽어내려는 열의를 보였기에 괜히 뿌듯하다.

아이가 영어책을 잘 읽어낼 수 있게 하려면 수준에 맞는 영어책을 잘 골라주는 엄마의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베이직북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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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의 두근두근 크리스마스 올리비아 시리즈 (주니어김영사)
이언 포크너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올리비아의 두근두근 크리스마스]

 

 

올리비아 캐릭터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어른인 제 마음도 두근두근하게 합니다.

거기에 더해 크리스마스라니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첫 눈을 기다리고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왜일까요?

종교적 행사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나눔의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날이라는 의미로 즐긴다면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볼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마음놓고 선물을 바랄 수 있는 날은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으로 꼽을 수 있겠죠.

거리마다 트리가 환히 빛나고 구세군이 딸랑거리며 자선냄비로 시선을 유도하고 왠지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게 되는 크리스마스.

눈이 오지 않기로 유명한 부산에 며칠 전에 함박눈이 쏟아진 탓에 괜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일찍 느끼게 되었다고 할까요.

사랑스러운 올리비아가 두근두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내용을 담은 그림책을 보니 마음이 들뜨기 시작합니다.

어른인 제가 이런데 아이들은 오죽할까요.

 

아직 산타의 존재를 찰떡같이 믿고 있는 우리 아들~

순진한 표정으로 산타 할아버지에게 어떤 선물을 주문할까 고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착한 일을 해야 선물을 주시지." 하고 조건 아닌 조건을 들이미는 제 모습에 왜 그렇게 혼자 피식 웃음을 흘리게 되는지요.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되도록이면 그 순수한 세계를 무너뜨리는 포악한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엄마는 되기 싫어서 입을 꾹 다물고 웃음만 실실 흘리고 있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아이는 눈치를 챈 듯하지만 동생을 위해서 동참하기로 마음을 정했나봐요.

아님 큰 아이는 산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선물을 받을 욕심에 분위기에 묻혀 가기로 한 걸까요?

엄마와 아이의 마음 숨바꼭질 놀이도 나름 재미있습니다.

이 놀이가 언제 끝나게 될지 모르지만, 두근두근 서로 잡히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 상황이 좀 더 오래 이어지길 바랍니다.

 

 

올리비아 책의 장점은 아낌없이 책장을 써서 펼쳐 볼 수 있는 그림이 많다는 것입니다.

책이 그저 책이 아니라 장난감이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글을 많이 쓰지 않아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올리비아의 마음이 얼마나 잘 드러나는지... 

 

산타를 기다리며 전전반측.

몸을 뒤척이는 올리비아의 모습이 꼭 우리 아이들 같습니다.

 

 

 

트리 아래 저렇게 수북하게 선물을 쌓아주지는 못하겠지만 한 두 개쯤의 선물이라도 아이들은 선물을 뜯어볼 때쯤이면, 이 그림속의 올리비아와 동생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만끽하겠죠.

 

 

 크리스마스 하면 생각나는 산타, 트리, 선물, 그리고 눈에 대한 기대감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담은 이 그림책.

완벽하게 멋진 크리스마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 나게 크리스마스 시즌을 보낸 올리비아는 꿈 속에서 멋진 왕자님을 만났네요.

 

 

크리스마스의 모든 것을 담은,  그림마저 멋진 동화책.

빨간 장정의 올리비아, 이것 자체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느낌이에요.

 

 

주니어김영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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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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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2-6. 미증유의 스토리텔링으로 공자의 지혜를 꿰뚫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이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죠, 선생님?

 

“어머, 손이 예쁘시네요.”

맥*** 매장에서 커피 한 잔을 받아들었을 때, 직원이 내게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잊고 있었던 선생님의 얼굴과 함께 선생님께서 해주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이 밥을 남기면 밥버러지로 태어난다.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예쁜 손을 얻게 되지.”

아직 몸과 마음이 성장 중이던 사춘기 중학생의 순진한 마음 속에 이상하게도 그 말씀이 또렷이 새겨졌었다.

밥상머리에서 인상을 구기며 “밥알 떨어뜨리지 마라.”하고 훈계하시던 아버지의 백 마디 말보다, 유난히 상냥하고 친근한 어조로 나의 정신적 허기짐을 채워주셨던 p선생님의 자연스러운 말 한 마디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그 때만 해도 나이가 꽤 있는 싱글이셨던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를 항상 머금은 얼굴에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나붓나붓 걸어다니시면서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강의를 해주셨다. 하얗다 못해 핏줄까지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손을 갖고 계셔서 얼마나 그 예쁜 손을 닮고 싶었었는지 모른다. 달리 말하면 선생님의 손마저 닮고 싶을 정도로 그 선생님을 존경했다는 것이 되겠다. 향을 감싼 종이에선 향내가 나듯이 선생님의 말씀 하나하나에서 수녀와도 같은 맑고 투명한 영혼을 감지했다면 너무 과한 것인가. 언젠가 누군가 나를 모르는 이에게서 듣고 싶었던 '손이 예쁘다'는 말을 오늘 들었다.

새삼 내 손을 내려다보며, 이제 나이 40을 바라보는 나는 밥 안 남기고 감사하며 먹고 사는가, 다른 이들을 돌아보며 배려할 줄 아는 착한 삶을 살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내 손은 그리 예쁘지 않다. 자세히 보면 손톱 옆에 거스러미도 일어나 있고 손등도 거칠지만 직원이 나의 손을 예쁘다고 해 준 건, 가끔 보는 얼굴에 대한 친근함의 표현으로 건넨 말일 수도 있고 그날따라 기분이 유난히 좋아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남이나 다름 없는 직원이 내게 좋은 의도로 말을 건넸다는 사실 자체에서 40 가까이 살아온 내 인생이 묻어난 얼굴이나 표정 등의 인상이 거부감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의 가르침, 이만하면 저 나름대로 잘 따르고 있었던 건가요? 작은 목소리를 공기 중에 띄워 본다.

 

# 멘토의 소중함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흔히 던질 수 있지만 쉽게 받아낼 수 없는 질문 중의 하나다.

삶의 근원을 관통하는 진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세 가지는 인문학이 던지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질문이 아니었던가.

길든 길지 않든, 이 세상을 살면서 이 질문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떤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자, 일순, 답은 툭 튀어나오지 않고 입은 탁 닫혀버린다.

 

인생의 멘토가 되어 주었던 훌륭한 선생님의 존재가 있었기에 크게 일탈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남에게서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나쁜 사람이 되지도 않았다, 면 너무 큰 비약인가.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서정주의 시구에서처럼 나를 키운 건...뒤에 쓸 말을 채운다면 주저 없이 “스승”이라는 단어 하나를 넣겠다.

스승이라고 해서 꼭 학창 시절의 은사님들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내 부모님, 내 형제, 내 친구들 모두에게서 조금씩 배울 점들을 꼭꼭 찍어 내 옷에다 무늬를 내면 어느새 제법 번듯한 옷 한 벌이 완성될 정도다. 지금은 수많은 내 인생의 스승들 중에서 “공자”를 모실 시간이다. 삼인행에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이라 했던 것도 공자님 말씀이렷다!

 

#공자를 만나다

 

아주 오래 전, 노나라에서 태어나 툭 튀어나온 짱구머리를 하고서 수레바퀴를 끌고 온 천하를 주유했던 공자. 예전에는 너무나 엄숙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어서 공자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스승이었다.

십 대 때에는 한문 교과서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 혹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등등의 구절로 만나볼 수 있었다. (지금의 십 대들은 <공자 아저씨네 빵가게”>같은 책을 통해 이웃집 아저씨같은 친근함으로 그를 대할지도 모르겠다.) 그 때의 철없음이란...율곡과 퇴계가 평생을 이와 기 (理氣) 두 글자에만 매달려 살았다, 는 말을 듣고 이해를 못 해 이와 기, 그게 뭐 어려운 글자라고...하며 피식 웃었던 피라미 시절이었던 것이다. ^^

 

 

이십 대 때에는 남들 다 읽는다는 교양서적으로서의 <논어>를 만나면서 뭐니뭐니 해도 논어의 기본은 강(講)과 암송(暗誦)이지 하며, 원문을 강독하기도 했다. 덕택에 논어의 체계를 대충 꿰고 웬만한 구절은 들으면 이해할 정도는 되었다. 공자를 우러르며 따르던 자공, 자로, 자고, 안회 등의 제자들의 존재 정도는 파악했다고 할까. [논어] 자체가 스승 공자를 따르던 제자들이 남긴 기록을 취합한 것이니만큼 제자들의 목소리와 성격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데, 그 속에서 나는 무슨 커다란 산 하나를 찾겠다고 한 것인지, 공자와 제자들의 어우러짐은 무시해버렸다. 공자의 정치와 사상에만 집중했을 때의 [논어]는 어렵고 딱딱했지만 지식인이라면 이 정도는 논할 수 있어야지, 라는 그릇된 고정관념에 천착한 것이 패착의 원인이었다. 당최 자기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는 열국의 제후들에게 인과 충, 서를 부르짖었던 공자, 위대한 사상가로서의 공자...내게는 왜 공자의 정치와 현실을 결부시킬 만한 능력이 없는 거야, 하며 좌절했더랬지.

 

삼십 대, 그것도 끄트머리에 와서야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사십이 되기 전 이 책을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불혹(不惑)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나이에 안착하기 전에 어려운 문자나 딱딱한 해설체가 아닌 이야기로 공자의 지혜에 흠뻑 젖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 미증유의 스토리텔링으로 공자의 지혜를 꿰뚫다!

 

거짓말처럼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2천 년 전 살았던 공자가 어느새 높은 단 위에서 내려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공자의 주변에는 그를 모시는 제자들이 많았지만 특히 공자를 가장 오래 모셨던 자공이 이 책에서 스토리텔링을 맡으며 공자의 지혜를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가장 현대적인 개성과 노력을 갖추었던 인물로 평해진다. 선비 출신의 상인이자 언변이 좋은 웅변가이며, 또한 유명한 외교가였다. 외교가로서 일찍이 다섯 나라의 운명을 뒤바꾸기도 했다고 한다. 현대의 수많은 문제에 맞닥뜨리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자공에 대입시켜 보면 2천 년 시간의 간극을 넘어 공통적으로 부딪치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발견할 수 있다. 일과 삶 속에서 만나는 문제들에 대해 공자는 구체적인 가르침과 해결방식을 제시한다.

 

 

 

가장 오래 공자를 모신 제자 중의 한 명인 증점과 그의 아들인 증삼에 관한 이야기로 살아 있는 학문이란 어떠한 것인지를 깨우쳐준다.

증점은 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다가 외싹을 자른 증삼에게 버럭 화를 낸다. 목석 같고 우직하지만 효심 깊은 증삼은 아버지 증점이 몽둥이로 자신이 혼절할 때까지 내리쳤어도 그저 효성스러운 아들이라면 아버지를 화나게 하지 않았어야 했다며 다친 것을 참고 웃는 얼굴로 일어섰다. 공자의 제자들은 증점이 효도를 실천한 것이라며 증점의 행동을 문제시삼지 않았지만 공자는 "만약 네가 아버지에게 맞아 죽었다면 어찌할 뻔 했느냐?"며 아둔한 효자를 어루만진 다음 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버지 증점을 따끔하게 혼낸다. 수신제가의 도리를 이 에피소드에 적용시키고 상황에 따라 효도도 달라져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려서 제기를 벌여놓고 예를 행하는 태도를 짓던 공자는 관직에 올랐다. 주나라에 가서 예를 노자에게 물었고, 돌아와서는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다.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기에 때로는 정사를 펴기도 하고 때로는 제자들을 돌보기도 하니 그를 따른 제자가 대개 3천인데 6예에 통한 자가 72인이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P 선생님은 투명한 손 하나의 기억만을 남기고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지만, 공자는 제자들이 되살려낸 [논어]외에 그의 흔적이 담긴 많은 책을 통해 여전히 우리 곁에 우뚝 서 있다.

이제 곧 마흔이 되는 나는 10대 때 공자를 만난 이래로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있건만, 공자는 내가 그를 만날 때마다 점점 더 젊어지는 것만 같다. 세월에 시달리며 노련해지는 나와 달리 항상 그 자리에 서 있기에 내가 그를 향해 달려갈수록 공자와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일지도. 어린 시절에는 무엇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지도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읽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려니...

건성건성 눈으로 읽은 문자들이 머리에서 스르르 사라져 가는 것을 움켜쥘 방도는 없었다. 삶의 무수한 장면들에서 외로움, 쓸쓸함, 불공평함 등 수많은 문제에 부딪칠 때 문자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직 내가 체험한 것들만이 오래오래 남는 교훈이 되기에 현실적 아픔을 겪어내지 않고 얻은 무수한 말들은 그저 가뭇없이 사라져만 갈 뿐이었다. 이 책 속에서 만나는 공자는 해답을 직접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해답에 이르는 생각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준다. 우스꽝스러운 짱구의 모습이기도 하고 근엄한 스승의 모습이기도 하며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한 공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자들을 교육시킨 것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낸다.

때로는 정면돌파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회피했으며, 때로는 우물쭈물 주저했다.

그렇기에 더욱 인간적인 공자를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 있으며 공자에게 질문을 던졌다가 결국에는 깊은 깨달음을 얻는 제자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았다면 곧바로 행동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까?"

공자는 같은 질문을 하는 자로와 염구에게 각기 다른 해답을 내렸다. 

충동적이고 담이 큰 자로에게는 절제를 요하는 답을 내렸고, 일을 만나면 위축되거나 뒤로 물러서는 성격의 염구에게는 곧바로 행동에 옮기라 했다. 

 

 비록 정해진 모범 답안은 아닐지라도 상황에 맞는 번뜩이는 답안을 내놓을 줄 알았던 공자의 지혜는 2천 년을 거슬러 오늘날의 고민거리들까지도 멋지게 하나로 관통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인류 상당수에게 공자보다 더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명실상부 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지혜를 전해주는 "등대"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의 아버지라면 공자는 순수한 경험적 모럴리스트라고 한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하다면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묵직한 원문 강독의 맛과는 또다른 신선함으로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공자의 지혜를 두 손 가득 퍼담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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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훈김 없이 삭막한 사랑 [샤오홍의 황금시대]

 

아름다운 여배우 탕웨이 주연의  영화 [황금시대]로 샤오홍이라는 작가의 일생이 재조명되었다.

중국 문학에 심취하지 않은 터라 샤오홍이란 작가의 이름은 생소했으나 [만추]라는 영화에서 우리의 국민배우 현빈과 함께 짝을 이뤄 나왔던 탕웨이, 종종 CF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는 탕웨이가 주연을 했다고 하니 절로 관심이 쏠렸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고 하나 아직 보지 못한 1인으로서 화면을 가득 채울 탕웨이의 얼굴을 상상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제목과 달리 샤오홍의 일생은 슬픔과 외로움으로 얼룩진 채 이어지고 있었다.

말년의 노인들에게 "왜 사느냐?"라고 물으면 "죽지 못해 산다."라고 대답하는 노인들이 있다고 한다.

그 한 마디의 말에는 노인들의 신산하고 고단한 일생이 함축되어 있다.

샤오홍의 황금시대라는 제목은 인생의 황금기를 너무 빨리 잃어버리고 31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녀의 일생을 "죽지 못해 산다,"라는 회한 어린 말과 다른 표현이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되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몸부림, 자유에 대한 갈망, 내면으로부터 강렬하게 타오르는 불꽃과 싸워야 하는 힘겨운 노력.-10

 

어째서 그녀의 길지 않은 생애 동안 그녀가 맞닥뜨려야 했던 현실은 그토록  차갑고도 단단하기만 했단  말인가.

 

샤오홍은 후란 현의 부농에서 태어나 할아버지의 어여쁨을 한몸에 독차지하며 살았다. 교장을 지냈던 아버지와 봉건적이고 남어선호사상이 뿌리 깊은 어머니 밑에서 고독하고 쓸쓸하게만 자랐던 샤오홍은 친모의 죽음으로 새어머니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의 세상은 또 한 번 변했지만 그래도 전족을 하고 예절교육을 받는 양갓집 규수와 달리 천방지축 자유분방하게 자란 그녀를 후원해주는 할아버지가 있어 괜찮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흰색 옷을 입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영구차 뚜껑을 덮고 할아버지와 영원히 이별한 하늘을 영원히 기억 속에 담아두어야 할 날이 오고야 말았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 결핍의 그늘에서 허우적대던 그녀는 봉건적 집안 분위기에서 강압적으로 결혼을 강요하자 북경으로 가출해버린다.

이 결정이 그녀의 인생을 확 틀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자유를 찾아 집을 나온 그녀는 다시는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말았고 여성의 존엄을 지켜내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그녀가 선택한 사랑은 비극만을 남겼다.

힘겨운 생활 중에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던 남자들이 있었다. 그녀를 문학의 길로 인도했으나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아픔만을 남기고 떠난 샤오쥔, 배려와 존중으로 이어졌으며 영원을 꿈꾼 동반자 두안무홍량, 그리고 하늘이 준 마지막 인연 뤄빈지.

 

샤오홍은 사랑을 위해 살았고 일생 동안 자유를 갈구했지만 그녀의 삶에서는 왠일인지 훈김이 느껴지지 않고 그저 삭막하기만 하다.

태평양 전쟁의 혼란 속에서 자아찾기를 하고 글에 재능을 보이며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며 국민적인 사랑도 받았지만 31년간 그녀의 생애는 불행했다.

 

역사라는 유구한 강물을 떠돌다 끝내 피안에 돌아오지 못한 여자라면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화로 보았다면 끝내 눈물을 한 방울 떨구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많은 고생을 했지만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강인함을 가진 그녀는 섬세한 관찰력과 세심한 감정표현으로 작품 속에서 사회와 인간 본성의 가장 냉혹하고 잔인한 면을 당당하고 용감하게 파헤쳤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 [생사의 장] 서문에 루신이 적은 글,

"그녀는 독자들에게 강인한 의지와 열정의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왠지 모르게 강렬한 인생을 살다간 그녀가 끊임없이 써내려간 원고들을 손에 들고 읽고 싶어진다.

무기력에 빠진 이들을 일으켜세우는 강한 의지가 그 속에 들어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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