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었다. [토우의 집]

 

사랑하는 애니 로리~내맘 속에 살겠네.

 

 

 

 

 

 

[토우의 집]을 읽고서 예전에 흥얼거리곤 했던 그 아름다운 선율의 스코틀랜드 민요였던가, <애니 로리>가 떠올랐다. 책에 나오는 가사가 아무리 해도 입에 붙지 않고 가사가 내가 불렀던 것과 다른 것 같아서 찾아봤다. 달랐다.

 

옛날 거닐던 강가에 이슬 젖은 풀잎

사랑하네 아니 오리 언제나 오려나-238

 

동영상 속의 이미자 씨는 애니로리를 아니로리로 발음한다.

그러고 보니, 책 속의 사랑하네 아니 오리 라는 가사와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더는 부를 수 없었다. 양손을 깍지 끼고 리듬에 맞춰 몸을 천천히 흔들며 부를 수 없는 노래는 노래가 아니었다. -238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 아이 원이는 새댁이라 불리는 어머니가 부르곤 하던 노래 가사를 듣고 따라부르기만 하다가 애니 로리를  "아니 오리"로 부르지만 어느 샌가 그마저도 더는 부를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아이가 지켜 왔던 동심의 세계는 자신의 단점 뿐만 아니라 남의 단점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아비가 자신을 집 밖에 세워놓고 훈육을 하던 그 날, 미래에 다가올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복선인 듯 진저리를 치며 아비를 저주하는 말을 하면서 깨졌다.

 

그렇게 필체가 좋고 그렇게 옷매무새가 단정하고 그렇게 음성이 똑부러지고 그렇게 동작이 노루처럼 경쾌하던 사람. 원이의 어머니,새댁은 그런 사람이었다.

위로 위로 오를수록 층층이 나뉜 사람들의 삶은 각박해져 가는 동네, 삼벌레 고개.

그 고개의 딱 중간이지 싶은 지점에 있는 우물집에는 네 가구가 살았다. 비어 있던 우물집 바깥채에 이사 오게 된 새식구는 새댁과 남편, 큰 딸 영과 작은 딸 원이었다.

아니, 언젠가부터 막내딸이 된 원이의 인형 희까지도 식구에 넣어주어야 하나.

영, 원, 희.

무엇이 영원하기를 빌며 이름지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이 이름자조차도 아름다운 것 하나가 영원히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기는 힘들 것 같은 음울함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중간에 위치한 우물집 아이들은 스파이 놀이를 하면서 어른들의 비밀을 하나씩 엿들으면서 점점 세상 물정을 헤아려 간다.

어른들은 마을의 소문을 다 끌어모았다 퍼뜨리는 진원지의 역할을 하는 계주에서부터 사우디에 돈 벌러 나간 남편을 둔 사우디집, 아이들의 눈에 상의 비밀을 다 아는 것 같은 난쟁이 식모, 보험여자 등등 이미 짧은 수식으로도 다 짐작할 수 있을만큼 뻔하디 뻔한 업들을 짊어지고 사는 삶들을 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삼벌레 고개에 빳빳하게 풀먹인 새 옷감처럼 영 그네들의 삶에 섞여들지 못할 것 같던 새댁네 집에 일이 생기고야 만다.

"안바바와 다섯 명의 도둑"처럼 비밀 얘기를 쑥덕, 심상찮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사람들의 쑥덕공론에 오르곤 했던 원이의 아비, 안덕규는 어느날 검은 양복쟁이들의 검은 세단에 밀어넣어진 채로 사라졌다.

동시에 아이들의 세상에도 균열이 일어났다. 어른들의 세계를 스파이질 하며 자신들의 세계와 저울질해가며 얼만큼 왔나, 살금살금 뒤를 밟아가던 아이들도 은철이가 개울을 건너 하늘을 날 뻔 하다 툭 떨어져 다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하던 날 이후 아이들만의 세계는 울타리가 무너지고 어른들의 그것에 섞여들기 시작한다.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었다. 일 년도 안 된 지난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울었다. -275  

 

층층이 오를수록 다른 삶의 경계를 만나게 되는 삼벌레 고개에는 다양한 삶이 녹아들어 있었다.

하지만 빨갱이니 간첩이니 하는 말들이 내리누르는 중압감이 너무나 커서, 서로의 삶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이제 그만 손을 잡고 정을 나누어도 될 만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질 만할 때쯤, 자신만은 철퇴를 맞아서는 안된다는 이기심이 발동하고 만다.

무슨 운동이든 운동을 하는 당신들은 당신들의 삶을, 그저 하루하루 살기도 버거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 테니, 제발 우리를 끌어들이지 마시오. 하는 듯.

아내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남편, 그리고 그런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였던 까닭에 새댁이라는 말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던 새댁이 삼벌레고개의 은행집에서 사라지던 날...

마을 사람들은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얼굴 보며 배웅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양심 하나를 무언가가 꾹 누른 채 밟고 서서, 그 존재가치조차 의아해지는 양심이란 것이 터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 같아서.

 

안타깝고 떠올리면 아프기 그지없는 우리 현대사의  과거는 그렇게 과거로만 묻어도 될 것인가.

흙으로 빚어진 인형들처럼 입이 막히고 몸이 굳어진 채로 우리의 기억에서만 살아 있어서 될 것인가.

아비의 참담함을 안고서 새 보금자리로 떠나지만, 끝내 토우처럼 , 꼬옥 끌어안고 다니던 인형 희 처럼,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린 원이는 무엇으로부터 자신의 온몸을 회피하려 하는 것일까.

역사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한 조각 한 조각 토우들을 빚어내렸을 작가의 문장이 아프다.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기라도 하지만 우리는...어떠한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