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록 - 꿈속 이야기로 되살아난 기억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김정녀 지음, 이수진 그림 / 현암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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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시름 꿈 속에서나 잊을까...[몽유록]

 

 

 

어른이 되어서 고전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일부러 찾아 읽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위대한 개츠비]나 [안나 카레니나] 등의 인기에 힘입어 서양고전은 간혹 집어든 기억이 있으나 특히나 우리 고전에 대하여서는 등한시 한 게 사실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은 우리 고전인데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나 얻어들은 고전들의 제목은 기억이 나지만 정작 그 자세한 이야기들을 찾아 읽지는 않았다.

[춘향전], [사씨남정기] 등의 소설도 재미있지만 간혹 읽은 단편적인 작품들 중에 [국순전], [죽부인전] 등의 가전체 소설도 독특한 '의인화'로 지루한 국어 시간을 견디게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몽유록은 말 그대로 꿈 속에서 있었던 일을 서술한 것인데 '탁몽서사'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비교적 자유롭게 서술자가 하고자 하는 바를 말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고단하고 시름 많은 세상 일들을 꿈 속에서나마 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구운몽]이나 [조신전] 처럼  정말 "꿈 같은 이야기였다." 로  끝나는 이야기에서 몽유록은 점점 발전하는 양상을 보인다.

조선 전기 붕당의 정치적 갈등에서부터 조선 중기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국난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역사 현실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발현된 작품들이 등장한다.

현암사에서 펴낸 [몽유록]에는 각기 다른 4편의 개성 있는 몽유록들이 등장한다.

 

 

이들 소설을 읽기에 가장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바로 한문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몽유록]에서는 현대인이 읽기에 편하게 고쳐 썼으며 낯선 한자어가 등장할 때마다 주를 달아 읽는 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였다.

더불어 곁들여진 그림도 민화풍으로 다가가기 쉽게 되어 있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각 작품의 전공 학자들이 참여하여 판본 선정과 내용 고증에 정성을 쏟았다 하니 더욱 믿을만 하다.

 원전의 내용과 언어 감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글맛을 살리기 위해 여러 차례 윤문을 거친 결과,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어렵게 달리다가 시원하게 잘 닦인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오신화] 이후 이를 계승하여 본격적인 몽유록으로 손꼽히는 임제의 <원생몽유록> 은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몽유에서 벗어나 사회비판적인 사실적 세계를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실존 인물이지만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새로운 개성을 입고 태어났다.

세상시름을 잊으려고 꿈에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아닌 말로 작정하고 꿈 속에서 크게 한 번 "질러 보리라"의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대관재기몽>은 조선 중종 때 심의가 쓴 것으로 몽유하여 들어간 세계는 최치원이 천자가 되고 역대 문인들이 신하가 되어 있는 문장왕국이다. 규벽부에서 고금의 문장을 평론하고 문인들의 시를 비평하여 품계를 정하기도 한다. 작가는 천자의 시풍에 반기를 든 김시습의 난을 진압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문장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내고 또한 현실 세계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탄식하는 것이다.

 

 

 

<달천몽유록>은 탄금대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과 신립 장군을 만나 전쟁 패배 원인을 성찰하고 정유재란 때 전사한 장수들의 충절을 기리는 시를 지어 바친다는 내용이다. 전후 피폐해진 현실을 고발하고 전반적인 사회 모순을 비판하는 내용이 두드러진다.

 

 

<강도몽유록>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여인들을 기억하는 내용이다. 강도함락의 순간 오랑캐에게 죽음을 당한 여인들이 조정 대신, 관리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절의를 지킨 자신들과 척화파의 의리를 찬양하는 것이다.

 

비록 꿈 속 이야기지만 그 속에서 다양한 처지의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엿볼 수 있고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잠시 동안이나마 꿈 속 이야기를 읽는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갔다 온 느낌이 든다.

"꿈"이기 때문에 실존인물이라도 "꿈"이라는 형식을 빌어 '디스' 할 수 있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할 말을 속시원히 해치우는 장을 열 수 있다는 점은 오늘이나 옛날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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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간 - 인문학자 한귀은이 들여다본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그림
한귀은 지음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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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여자 인문학 [그녀의 시간]

 

 

 

온통 공감 투성이이다.

이 책 속에는...

 

어린 여자 아이의 이야기도 있고, 청춘의 나무 아래를 지나오는 여자도 있었으며 지금 딱 내 나이의 여자, 앞으로 내가 맞이하게 될 나이의 여자도 있었다.

 

 

모딜리아니, <블라우스를 입은 소녀>

 

위의 그림과 함께 소개되는 이야기는 20대에 자아가 고갈된 '도박 중독자'의 이야기였다.

기간제 국어 교사였기 때문에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다 도박으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20대 여성.

그녀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단기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요즘의 젊은이들보다는 벌이가 일정하지만 정규직 교사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해지곤 한다.

지금 그녀에게 절박한 것은 눈을 뜨고 세상의 화려함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고요히 자신에게 침잠하는 일이라고...저자는 조용히 충고해준다.

 

지나치게 단정하게 입고 화장을 짙게 했다면, 어딘가 불균형한 모습이라면 분명 겁먹었다는 뜻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자아고갈이 오기 쉽다. -15

 

비정규직의 임금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뉴스 기사에 한숨이 푹 쉬어진다.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 아침 식사>

 

우아한 차림이긴 하지만 저 옷 대신 트레이닝을 입혀 놓으면 영락없이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

그것도 싸우고 난 직후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볼까.

 

아내는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이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걸 안다.

이 상태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말하는 것이다. -119

 

복잡한 여자의 마음을 간단명료하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주니 속시원하다.

이렇게 짚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어딘가에 맺혀 있던 울분이 이런 다독거림 하나로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여자 인문학이라는 것이 어디, 어려운 말만 죽 늘어놓는다고 머리에 들어올까보냐.

그림 한 장 보면서 이렇게 차분하게 응시하게 하고

마음을 읽어주면서

살살 달래주는 것만으로도

쓸쓸함이 훨씬 덜어지는 것을...

 

<빌헬름 메이어, 용서>

 

이 그림을 볼 때는 좀 어두워서 다시 한 번 그들의 표정을 살피려 자세히 보게 되었는데

밑의 설명이 울컥하게 만들었다.

 

모녀의 애착관계가 강한 이유는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다. -285

 

그렇고 말고...

백 마디 말보다 내 어머니, 내 딸 생각 한 번만 해 보면 온 마음으로 이해되는 말이다.

엄마 때문에, 딸 때문에

숨죽여 흐느껴본 사람들은 안다.

눈빛만으로도 아픔과 슬픔이 읽히는 관계에서의 끈끈함을.

 

 

<조르주 메이어 쇠라, 파라솔 아래 앉은 여자>

 

여자의 실루엣은 그저 아름답다. 때로는 의미를 유보해야 할 때가 있다.

의미가 없어도, 불안해도, 균형을 잡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 성숙이다.

-311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그림이다.

 

아스라한 배경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여자는

바로 나일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보며

무언가 의미를 잡아내려 하고 있는 듯하다.

 

알고보면 남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생을 보내고 있는 중일 텐데도

그 수많은 굽이 속에서

혼자만 아파하고 절망하며 괴로워하고 외로워지는 것이 여자다.

 

지금 이 순간, 이 책 속의 "여자"를 읽으며

보통의 여자 중 하나인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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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와의 대화 - 하버드 의대교수 앨런 로퍼의
앨런 로퍼 & 브라이언 버렐 지음, 이유경 옮김 / 처음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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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픈 뇌를 이해하는 생생한 현장 보고[두뇌와의 대화]

 

로봇 청소기가 사람이 없는 집안에서 혼자 돌아다니며 집안을 청소하고 인공지능 세탁기가 알아서 빨래를 마쳐 주며 집 밖에서도 개인 휴대폰으로 보일러와 연결하여 집의 온도를 맞춰놓는 게 가능한 세상이다.

약한 인공지능들이 인간 대신 활동하면서 인간은 편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과학자들의 전망에 따르면 30년 내에 사물인터넷이 보급되면 인간은 점점 할 일이 없어지고 여가 시간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인간이 똑같이 그런 환경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디스토피아적 세계에 대한 우려 또한 몇몇 SF소설이나 영화에서 이미 피력된 바 있다.)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해주면 미래에는 인간의 직업 중 대부분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결코 기계 또는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흥미로운 조사를 통하여 얻은 결론에 의하면 예술가, 작가, 심리치료사 등 의 직업은 여전히 남게 될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 인간의 뇌와 관련된 영역은 로봇이나 기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로봇이나 기계가 절대 따라오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상상력" 부분이다.

 또한 쉽게 파헤쳐지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몸의 어떤 부분처럼 절개하여 열어보아도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는 바로 그 부분의 미스터리 때문에 인간은 계속해서 만물의 영장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바로 그 인간의 뇌가 아플 경우, 우리는 어디에 의존하는가?

신경과 전문의 즉 뇌신경과학자들을 찾아가야 한다.

이미 올리버 삭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이 분야를 다루는 의사의 애환과 고충, 다양한 증상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두뇌와의 대화] 저자들은 좀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명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에서는 까칠하지만 진단에 있어서만큼은 천재적인 의사가 나온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하우스만큼 까칠하지는 않으며 더할나위 없는 센스를 가진 사람들이다.

더불어 차분한 관찰을 통해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히스테리', '심신증', '가성발작'은 유행이 지난 용어다. (...)사람들은 이들 단어를 '미쳤다'는 뜻으로 받아들여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히스테리 대신 '전환장애', '심신증' 대신 '기능적인, '가성발작' 대신 'P-NES(피네스, 남성의 생식기를 뜻하는 '페니스'와 발음이 비슷하다)'라고 쓰인다. 이것이 이제 기술 용어다. 이것은 매우 짓궂은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 또는 전혀 센스가 없는 사람이 만들었다. -135

 

의학분야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우아하다는 신경학. 신경학은 의학 중에서도 개개의 환자 사례에 따라 살피고 진단을 내리는 노력이 가치를 더하는 유일한 곳이라는 신념을 가진 이들은 증상과 신호를 환자와 신경계 구조라는 더 넓은 틀 안에서 결합하고자 한다. 손목 터널 증후군에서부터 뇌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우에서 테스트는 단지 확인하려는 것일 뿐, 이들은 환자 사례와 함께 한 번에 하나씩 기술이 발전해 나간다고 애기한다.

 

혼란에 빠진 볼링장 관리인, 횡설수설하기 시작한 우익수, 갑자기 정신병 환자가 된 대학생, 빙글빙글 돌며 로터리를 빠져 나오지 못하는 판매원, 똑같은 플레이만 계속하는 대학 풋볼팀 쿼터백, 정신 장애자를 돕다가 새끼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한 사회복지사, 새로 태어난 딸의 기저귀에서 벨크로 부분을 잡지 못하는 전직 운동 선수, 얼음에 미끄러져 머리를 다친 아일랜드 사람...-22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말하듯이, 아침 식사 전 여섯 가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다고 각오하면 도움이 되는 곳에서 환자들을 대하며 구멍에 빠진 그들을 다시 꺼내주는 일을 해내는 그들의 현장 보고는 읽으면 읽을수록 놀랍다.

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뇌 자체에 귀 기울이는 것이 스스로의 동기 부여가 되어 주었다는 이들의 말에서 진짜 의사의 마음가짐을 얻어 들은 기분이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뇌에 한발짝 다가가는 연구를 하는 동시에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 준  이 이야기들은 대체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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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디아스포라 북한이탈주민 AKS 사회총서 5
김복수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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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탈주민의 현실과 마주하다 [21세기 디아스포라 북한이탈주민]

 

 

 

자고 일어나면 매일같이 들여다 보는 거울.

내 모습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보여주어서 들여다 보기 싫어질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머리도 빗어야 하고 뾰루지도 짜야 하고 눈곱도 떼야 하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면 나 자신의 외모 뿐 아니라 내 마음 상태도 알 수 있다.

무심히 스윽 쳐다보았을 뿐인데도 나 자신을 고스란히 비추어내는 거울은 그래서 '자아탐구'의 용도로 많이 쓰인다.

 

나 자신을 알고 싶을 때는 거울을 보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를 알고 싶을 때에는 '미디어'를 이용한다.

뉴스만 틀어도 지난밤 있었던 사건 사고가 촤르륵 정리되어 브리핑 되고 중요이슈들은 혹시나 못 들은 사람이 없게 아침, 점심, 저녁 떠들어 대는 통에 당일 아니면 하루 이틀 뒤에라도 내 귀에 들어온다.

일부러 산골에 들어가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얻어듣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단절된 북한의 소식은 어떻게 알까?

이것 또한 요즘 들어 다양해진 북한 관련 미디어의 홍수 속에 귀를 닫고 있어도 절로 흘러들어오긴 하지만 일부러 찾아 듣거나 보지 않으면 자세히 알기 어렵다.

특히나 남한과 북한의 경직된 분위기가 우세할 때에는 "진실"이란 것이 살짝 자취를 감출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 얼굴이 궁금할 때에는 거울을 보면 되지만 북한이 궁금할 때에는 너무나도 잘 발달된 인터넷이나 SNS도 완전 투명한 "거울"의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

이 책의 말미에 쓰인 것처럼

"북한의 급변사태와 대량탈북난민사태 등과 관련한 정부의 대비책에 대한 대다수의 자료들이 비밀문서로 분류되어 공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 문건에 대한 구체적인 실증자료를 확보할 수 없었다는 태생적 한계-398"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북한에서 내보내는 한껏 고양된 어조의 아나운서가 또박또박 읽어내는 뉴스는 들을 때마다 "웃긴다"는 생각에 그저 흘려듣기 마련이고, <이제 만나러 @@@> 같은 프로그램은 북한이탈주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북한의 실상을 알려주고는 있지만 연출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된다.

 

이 책에서는 북한 주민의 현실을 담는 대신, 북한이탈주민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관점에서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여전히 어린 시절의 "반공교육"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북한주민에 대한 거부감을 채우고 사는 나같은 일반인에게 꼭 필요한 책인 것 같다.

 

북한이탈주민을 대하는 남한사람들의 편견과 이중적 태도가 북한이탈주민이 남한교육에 적응하는 최대 난점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지적했을 때, 속으로 많이 뜨끔했었다.

거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과 같은 수준이 아닌가..

나와 같은 사람인데 "다름"을 인정하며 다가가려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홱 돌려버린 것이 아닌가...

 

이런 거부감과 편견 때문에 이제 북한이탈주민들은 한국이 아닌 중국, 혹은 데 3국으로 흩어져 나아가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탈북 현상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부터 시작되었으며, 처음에는 중국, 러시아 국경을 넘어 생필품을 구해 다시 귀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후 중국에 장기체류하면서 불법취업자 신분으로 살기도 하고, 몽골,태국, 베트남 등을 거쳐 남한이나 제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이 망명을 공식 허용한 이후 전세계 각국으로의 이주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49

 

21세기 글로벌 디아스포라의 문제로 북한이탈주민의 문제가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조명하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며 뿌옇던 "거울"의 한 쪽을 말끔히 닦아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와 하나의 핏줄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정세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분단되어 살아가던 사람들일 뿐인데, 그들을 제 3국의 낯선 사람 대하듯 해서야 되겠는가.

고국을 떠나 남한으로 발길을 향하는 이들에 대한 대처도 미비한 마당에 전 세계에 퍼져 살아가는 북한이탈주민까지 어떻게 끌어안느냐 하지만...

이제 이렇게 우리가 처한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통일을 논하기에 앞서 민족통합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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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다시 벚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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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정령처럼 아름다운 곁말, 벚꽃박죽 [벚꽃, 다시 벚꽃]

 

여럿이 마구 섞여 엉망이 된 상태를 일컬어 뒤죽박죽이라 한다.

미미 여사의 신간 [사쿠라 호사라]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벚꽃박죽" 정도 된다.

우리말 제목은 [벚꽃, 다시 벚꽃]으로 좀 더 운치있께 지어졌지만 원문 그대로의 뜻은 벚꽃박죽이다.

처음 이 단어를 봤을 때, 호박 대신 벚꽃을 넣어 쑨 죽 이름인가? 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내 습성이 이럴 때 유달리 빨리 나서준다^^

식도락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는 미미여사가 신간에서 새로운 메뉴를 소개하려나 보다~ 하고, 나 혼자 김칫국을 여러 사발 마셨을 즈음.

벚꽃박죽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벚꽃과 뒤죽박죽의 "박죽"이 합쳐진 말이란 것을.

자~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이 한바탕 어우러져 뒤죽박죽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것이렷다!!

 

에도 시대물이니만큼 순박한 시골 무사 하나쯤은 나와 주어야 미미 여사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사건의 구성이나 분위기는 무시무시하여도 주인공 정도 되는 이의 심성 하나만은 언제나 올곧은 인물을 창조해내는 것이 정석인 만큼...

주인공을 찾아내서 재빨리 그의 성정을 확인해 봐야 안심하고 뒷 얘기를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후루하시 쇼노스케.

인정이 많고 심약한 인물로 그려진다.

 

쇼노스케의 아버지는 뇌물을 받았다는 누명을 쓰고 할복자살을 했다. 아버지의 친필과 필적이 같은 증거 문서가 나왔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건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쇼노스케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숨은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35

 

쇼노스케는 어머니 사토에의 부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인 도가네 번 에도 대행 사카자키 시게히데에게 맡겨진다. 후루하시 가의 재건을 청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들기는 했지만 한통속으로 보이는 어머니와 형은 아버지의 오명을 벗기는 것과는 별개의 일을 꾸미는 것만 같았다.

뒤죽박죽인 마음을 가지고 에도로 올라온 쇼노스케는 일단, 에도 대행이 손써 준 덕분에 무라타야 지헤에의 가게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무라타야의 책방에서 필사 일을 하며 낚시를 드리워 놓는 것이었다.

아무런 수확 없이  입체 그림도 만들어 보고 지헤에로부터 소설에 가필하여 달라는 부탁도 받는 등의 나날을 보내던 중.

벚꽃 정령과도 같은 아가씨 '와카'를 만나 마음이 움직이고 만다.

검은 단발머리에 검은 눈, 갓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한 벚꽃처럼 붉은 기가 살짝 도는 하얀 뺨.

쇼노스케의 일상에 살랑 봄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후루하시 쇼노스케'라는 동명이인을 찾는 이와 만나 암호 풀이에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미카와야의 상속녀 기치의 가출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안타까운 과거 때문에 죽도로 할복한 사람의 시신을 수습해 주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쇼노스케는 점점 단단해 졌을 게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무사 출신 치고는 검술 실력이 영 형편없는 것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쇼노스케의 인간 됨됨이는 더더욱 진국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얼굴의 붉은 멍조차도 이제는 신경쓰지 않게 될 정도로 '와카'는 기지가 뛰어나고 총명함이 반짝이는 규수라 쇼노스케와 와카 둘 사이의 간질간질함이 내내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점점 커져간다.

 

가족이 소중하지만 가족만이 만능의 묘약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겠다던 미미여사의 장담처럼,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에도로 올라온 얼뜨기 무사는 이제 눈을 뜨게 되었다.

끝까지 아버지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끈질기게 파헤치던 그 사람, 아버지의 필적을 모방한 그 사람이 쇼토스케 앞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흑막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라도 무조건 자식에게 똑같은 애정을 나누어 주는 것은 아니고

형제간이라도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는 것만으로 단단한 결속이 생기는 것이 아니란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띵~ 하고 울리는 아찔한 현기증.

 

아.

순수한 한 청년이 평평한 대로를 걷는 데에는 참으로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그 청년이 나쁜 마음을 먹고 있었더라면 그의 주위에는 그를 도우려는 인물이 없었을 것이다.

후루하시 쇼노스케의 주위에는 참으로 선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많았다.

 

"쇼노스케, 그 자를 처단하고 싶으냐?"

아버지의 원수다.

어지러운 마음으로 똑바로 생각할 수도 없는 채 쇼노스케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

"왜지?"

"아버지가...그것을 바랄 것 같지 않습니다."

-594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용기 없는 겁쟁이라 스스로를 자조하지만 쇼노스케의 그 마음이야말로 바로 주변의 다른 인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거대한 힘이라 생각한다.

굴신하는 자라 작고 유약하다 여기면 안되는 것이다.

한바탕 뒤죽박죽 회오리가 지나갔지만 벚꽃 정령과 함께 그 시간을 지나왔기에 "벚꽃박죽"이란 아름다운 곁말로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다.

 

역시 미미 여사의 에도물은 아련한 분위기와 함께 죽은 듯 가라앉아 있던 마음 속의 선한 본성을 툭툭 건드리는 뭔가가 있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벚꽃이 흩날리며 벚꽃박죽을 만들어냈지만 뭔가 애잔한 뒷맛을 남기면서 내년을 다시 기약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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