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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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정도는 되어야 진짜 복수! [고백]

 

이토록 선명한 해바라기 표지를 왜 기억해내지 못했을까.

강렬하고도 짧은 "고백"이라는 제목을 왜 잊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많은 갈채를 받고 완벽하다는 찬사가 쏟아졌던 소설인데 왜 안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했더니..

도서관에서 표지가 벗겨진 채 커버에 싸여 있던 책을 빌려봐서 그런 거였다.

세월이 너무 지나 버려서 그 강렬함이 흐려져 있었던가보다.

칭찬이 자자한 미나토 가나에의 첫 장편 [고백]을 아끼고 아끼다가 책 속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새벽을 택해 읽어나갔다.

어디서 본 듯한 전개인데...고개를 갸웃거리며 읽다가, 첫부분, 여교사의 "고백" 부분에서 기억이 서서히 깨어났다. 그리고 다시 불붙은 듯한 속도로 글자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흐릿한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면, 끝까지 읽는 수밖에 없었다.

눈의 피로감이 더해졌지만 진상을 알아야겠다. 몽롱한 사건의 윤곽을 또렷이 되살려야겠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책장을 넘겼고, 마지막에 가서야 "그래, 이거였어~"하는 말과 함께 개운한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새벽녘에 나 홀로 손에 땀을 쥐고 꼬부랑 열 두 고갯길을 오르락내리락 한 셈이다. ^^

 

S중학교의 여교사가 자신의 반 아이들 앞에 섰다.

그녀는 이제 막 학교를 사직하고 나가려는 참이다.

아이들을 앞에 두고 "고백"을 하겠다고 말하고 잔잔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가는데, 그 "고백"이란 것이 실로 엄청나다.

미혼모인 자신의 4살짜리 딸 마나미가 학교 수영장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건으로 인해 충격에 빠져 있어야 할 그녀는 서릿발같이 차가운 어조로 범인에게 복수를 고한다.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던 우유 가운데 범인 두 명의 우유에는 HIV에 걸린 아이 아버지의 혈액을 섞어 놓았노라고.

 

경찰에 진상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A와 B의 처벌을 법에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살의는 있었지만 직접 죽이지는 않은 A, 살의는 없었지만 직접 죽이게 된 B. 경찰에 출두시켜도 둘 다 시설에 들어가기는커녕 보호관찰 처분, 사실상의 무죄방면이 될 게 뻔합니다. (...)

저는 두 사람이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것을 안 후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그 죄를 지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54

 

이제 이야기는 범인인 13살, 두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여교사로부터 갑작스런 '살인예고'를 받은 두 아이는 HIV감염자가 되리라는 걱정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게 되면서 마음에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두 아이의 대응은 천차만별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잠재적인 살인자로 두 아이를 보고 있었는데 한 명은 학교에 계속 다니고 있었고, 나머지는 집에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고 있었다.

 

결국 B는 양심의 가책, 경찰서에 붙잡혀 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만다.

A는 어떤 쪽인가 하면, 실제로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A에 비해 좀 더 자신있게 행동하는 듯 보인다. 여교사의 처분이 A에게는 좀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 갈 즈음, 보통의 아이들과 다른 가정환경에서 빚어진 이상 성격의 부분이 툭 튀어나온다.

A도 정상은 아니었던 거야...범행을 저지르던 날, 어린 아이에게 충격을 주어 쓰러지게 하고도 태연하게 돌아서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B에게 던진 말 한 마디로 A의 어두운 내면이 바깥으로 얼굴을 내민 것이 포착된 것이다. 완벽하고도 뛰어난 어머니로부터 일찍 버려진 아이였던 A는 살인을 악이라 보지 않았다. 그리고 생명 또한 귀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한다. 어머니보다 뛰어난 인간은 없다. 즉, 자신의 주변에는 죽어도 아쉬운 인간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A의 목적은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어 어려서 헤어진 어머니를 만나고 어머니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HIV에 감염되지 않은 사실이 일찍 밝혀지면서 그렇다면 A는 도대체 어떤 죄값을 치르게 된다는 말인가?에 의문을 품을 즈음...엄청난 반전이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경찰에 두 아이를 고발하는 것이 차라리 "인간적인 선택"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여교사의 복수는 치밀하고도 완벽하다.

4살짜리 어린 아이를 13살 아이 둘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부터가 경악할 노릇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고발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의 자격으로 어린 소년들을 벌하겠노라 마음 먹은 여교사의 마음 또한 쉽사리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이 둘을 그대로 고발했더라면 보호관찰 처분이나마 둘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으로 본다면 가장 지독한 복수를 계획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 책의 소제목으로 쓰이고 있는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 가 풍기는 뉘앙스에 비해 여교사의 복수는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다.

자신의 제자였던 아이들을 샅샅이 파악해 그에 맞는 복수를 전개한 것이 된 셈이니 말이다.

똑같이 되갚아 주겠어, 아니 그 이상으로 처절하게 짓밟아 주겠어!

어금니 꽉 깨물고 속으로 피울음을 삼키며 복수의 시나리오를 쓰는 여교사의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몸이 떨려온다. 오싹하다.

소설 속 이야기이니만큼 그럴 수도 있으려나~하고 넘어가지만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복수를 하는 여교사의 마음 또한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해야만 이런 복수도 가능하지 않을까.

피튀기고 뼈가 꺾이는 잔혹한 장면만 없다 뿐이지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계획할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복수가 펼쳐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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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 - 숨어 있던 예술적 재능을 찾아주는
퀜틴 블레이크 지음, 최다인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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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숨어있던 예술적 재능을 찾아주는 [그림그리기]

 

 

 

까만 색과 빨간 색의 수채 색연필이 동봉되어 있다.

표지만 봐도 알 수 있겠지만 이 책의 모든 그림은 단 두가지 색깔의 색연필로 그릴 수 있다.

일단 그리기에 대한 부담이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선들과 자유분방한 그림체 때문에 누구라도 책을 보는 사람은

살짝 미소를 짓게 된다.

 

'이걸 따라 그리라는 거지?

쉬운데... '

하고 안심을 하면서 연필을 스스럼 없이 잡게 된다.

그리고 연필을 잡는 순간 마법과도 같이 그림을 스스슥 그려보게 된다.

 

 

오늘같이 날이 흐리고 곧 비가 떨어질 것만 같은 날에 어울리는 그림이다.

<비와 우산>을 그려 보라는 주문을 하고 있는 페이지에는

부부와 빼빼 마른 여인만 그려져 있었다.

손잡이로부터 시작된 우산을 먼저 자신감 있게 그려 보고

구름과 빗방울을 재미나게 그려넣었다.

그러고 보니 우산에 무늬도 넣어보고 싶고 좀 더 창의적인 구름과 빗방울과 우산을 그려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두 번째 우산은 '카라 꽃' 형상을 한 우산이다.

빨간 색 포인트를 주어서  비오는 날에도 우울함을 떨쳐보고 싶어 그린 것이다.

색연필이 생각보다 되게 잘 번진다.

책에서 말하는 대로 침을 뭍여서 번지게 해도 될 것 같다.

나는 입과 혓바닥이 시커매질까봐 물에 적신 휴지로 살살 문질러보았더니

금세 확~ 번짐 효과가 나타났다.

 

이 책은 그림그리기를 가르쳐 주는 책이다.

선생님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삽화가 중의 한 명인 퀜틴 블레이크다.

로알드 달의 작품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의 그림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일단 지르고 보자, 일단 그리고 보자. 는 마음이 머너 자연스레 생기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곳곳에 깔려 있다.

세상에 망친 그림이란 없다며 용기를 심어주기도 한다.

주제에 직접 다가가 알맹이를 붙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한다.

선 몇 개만 가지고도 순식간에 그리더라도 종이에 토끼다움을 완벽히 담아내는 것, 그것이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 그리려는 마음 때문에 부분을 세세하게 그리려는 마음이 튀어나오기 전에

말의 몸통을 확~ 얼굴을 대충~ 그려버렸더니

그림이 쉬워졌다.

울타리를 작게 그린 아들 덕분에 울타리를 뛰어넘고 싶어하는 말을 그려 버렸다.

날개는 덤~

 

 

빨간 동그라미와 지평선 위의 그림자 소년 하나.

그리고 눈과 코가 보이는 소년의 얼굴만 덩그러니 있던 화면을 좀 더 풍성하게 그려보려 했지만 왠지 쓸쓸한 그림이 되고 말았다.

길에서 원근감을 주어 가로수를 늘어지게 그린 것만이 포인트 역할을 해 줄 수 있으려나.

상상력의 빈곤이 ....그저 부끄럽다.

 

 

이제는 내가 그리던 책을 쓱 빼어가버린 아들의 그림 그리기 시간~

 

 

얼굴을 가리랴, 그림 그리랴 바쁘지만

얼굴엔 미소가 한가득이다.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는 아들이지만

이 책의 자유분방함에 마음이 활짝 열린 것 같다.

먼저 책을 가져가고 연필을 가져간다.

학교 도서관에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재미있게 그림을 쓱쓱 그려나간다.

 

 

기이한 것들의 행렬을 그리는 것이 꽤 재미있었나 보다.

거대 민들레와 귀가 기다란 옥토끼, 털북숭이 개까지

자유롭게 그려내는 아들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인 것 같다.

그 외에는 조언을 얻어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이를테면,

눈앞에 있는 것을 그리세요.  

큰 테두리를 먼저 잡으세요

가나다 순으로 생각하세요. 등등...

 

그 다음에는 색연필의 번짐을 활용해 부피를 표현한다든지

음영을 표현하고

그림자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다.

빛과 그림자를 활용해 납작한 동그라미를 구로 만드는 것을

한 번만 연습해 보면 커다란 자신감이 확 솟구친다.

인체를 그리는 연습도 눈, 표정, 비례 순서로 차근차근

연습하다 보면

금세 멋진 사람 하나를 완성할 수 있다.

 

그림 그리기는 어려운 것이다는 생각에서 탈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완전 자유로운 그림그리기 책.

여러분도 한 번 동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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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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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하나에도 숙연해지며...[라면을 끓이며]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제 맛!

후루룩 쩝쩝, 후루룩 쩝쩝, 맛좋은 라면~

 

둘리에서 라면 면발처럼 머리를 꼬불꼬불 지진 마이콜이 기타를 잡고 우스꽝스럽게 불렀던 노래지만 어느샌가 라면하면 떠오르는 ' 라면 주제가' 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쌀보다 싼 밀가루로 '주식'을 만들어 먹던 시절, 일본에서 바다 건너 전달된 라면은 온국민의 환호를 받게 되었다.

오죽하면 누군가는 영혼의 음식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기름 둥둥 뜬 그 모양새마저도 찬양하게 되었을까.

라면을 먹을 때, 나는 파 송송, 계란 탁, 정도의 짧고도 간단한 레시피를 활용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물을  적게 잡고  스프를 아주 탈탈 털어넣어서 짜고 맵게 먹는 걸 즐기기도 한다.

라면 한 봉지는 대체로 가라앉아 있는 내 기분을 업시켜주는 존재가 되었으며 라면은 어느새 일주일에 한 끼 이상은 꼭 챙겨먹게 되는 나의 '절친'이 되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면 집에 라면이 남아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없으면 꼭 채워넣어야 할 목록 일순위에 올려 놓는 걸 보면, 알게모르게 라면은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라면에 대한 단상은 말 그대로 여기서 그치게 마련인데, 이 '라면' 하나를 두고도 괜히 숙연해지게시리, 김훈은 꼿꼿하게 정좌하고 앉아서야 책장을 넘기기를 허락하는 날카로움을 곳곳에 숨겨놓았다.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17

 

라면에 대한 이야기  뿐이랴, 오랜 세월에 걸쳐 적은 산문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김훈 산문의 삼엄함을 짜르르 떨치고 있다.

하나의 사물을 보더라도 사물들이 숨기고 있었던 역사와 비밀들을 끈질기게 뽑아내고서야 그 자리를 뜨는 것인가.

 

 

죽변항의 낡은 어선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수천 년 전 이 항구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신석기 사내들과 그들의 고기잡이 도구를 생각했다. 그들의 돌도끼와 돌칼도 내 마음에 떠올랐다. 박물관에서 본 신석기의 돌도끼는 그 손잡이 부분이 인간의 손바닥에 닳아서 반질반질했다. 그 돌도끼를 쥐고 사냥을 해서 처자식을 빌어먹이던 사내들의 고난과 희망, 사냥에 실패해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저녁의 슬픔, 비 오는 날 그 신석기 사내들의 몸의 비린내도 내 마음에 떠올랐다. (...)

몸을 먹여살리기 위해 몸을 고단하게 하는 것이다. 삶을 지속하려는 자만이 연장을 만든다. -54

 

숨막히는 경외감에 가슴 한 쪽을 꼭 누르며 글 하나하나를 씹고 또 씹어넘긴다.

그래도 쉬이 소화되지 않고 씹는 행위 또한 느리기만 하다.

김훈의 글을 하루만에 다 읽기란 요원한 일이다.

그가 느리게 글을 써내려 간 만큼이나 읽는 이도 길고 긴 시간을 들여 꼼꼼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왜 이렇게 힘겹게 읽어야 하나, 하고 나를 몰아세워보지만

그래도, 먼 길을 돌아서라도 김훈의 글은 다시 또 읽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글을 쓰는 그의 자세에서 진지함을 배우고

자신을 강하게 채찍질하는 태도에서 나태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어찌해도 그의 글 한쪽 끝에 물이 들어버리면 나도 모르게 흐트러진 매무새를 고치게 된다.

라면 하나에 괜시리 숙연해진다고 투정 부려보고 싶지만

이런 시간도 필요하다고, 또 다른 내가 이미 답을 내려 놓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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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진흙 창비청소년문학 71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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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단서들- 진흙, 13살, 실종[수상한 진흙]

 

 

 

창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눈가리고 책읽는당을 만든 것이다.

책이 나오기 전, 가제본의 형태로 먼저 독자들에게 읽을 기회를 주는 형태와는 비슷한 듯, 다르다.

보통 책을 사면 띠지며 앞면, 뒷면에 책의 내용 중에서 임팩트 있는 것을 골라 도배를 한다.

표지에서부터 작가 이름 제목으로 시선을 끌고

뒷면의 가운뎃 부분에 눈에 띄는 책내용, 구절, 추천사 등이 주루룩 나오게 마련이다.

그것도 모자라 색색깔의 띠지에 수상작 같은 경우에는 수상 이력, 주요 인사들의 추천사, 강렬한 문구 등으로 책을 광고한다.

그런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한 번 두번 읽다 보면 책의 내용, 절반 이상은 이미 머리 속에 입력된다.

읽지 않아도 줄거리가 빠삭하게 들어차고 추리소설의 경우 기껏해야 반전에 가서야 약간 놀라게 되는, 말하자면 책을 읽는 즐거움이 반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의 눈가리고 책읽는당의 컨셉은

표지가 하얗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단서라고는 진흙, 13살, 그리고 실종이라는 세 단어밖에는 없다.

제목도 작가도 없는 것이다.

 

아, 이런 형식의 책읽기에 도전 받기는 처음이라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책내용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책읽기는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어느 부분쯤 가야 줄거리가 잡힐까,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었고

주인공과 사건의 관계를 파악해나가는 것도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청소년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른들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환경'과 '아이들의 세계'를 큰 축으로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나 우리나라 메르스 전염 사태같은 위기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서의 위기 대처는 갑갑하기 그지없지만 소설 속 이야기는 말하자면, 참변이나 비극의 감이 다소 있긴 하지만 "이상적"인 상황에 가깝다.

펜실베이니아 주 히스클리프에 있는 우드리지 사립 학교. 5학년 타마야, 7학년 마셜, 채드가 비극적인 상황을 앞서 체험한 아이들이다.

우드리지 학교에서 북서쪽으로 약 53킬로미터 떨어진 외딴 계곡에 있는 선레이 계곡. 그 곳의 선레이 농장에는 모종의 연구실이 자리잡고 있었고 아마도 그 곳에서 만들어지는 무엇 때문에 숲에는 타르 색을 띤 진흙 위에 솜털 진흙이 잔뜩 덮여 있게 된다.

학교에서 다툼을 빚은 마셜과 채드. 타마야와 마셜은 숲을 통해 집으로 가다가 채드와 맞닥뜨리게 되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마야는 급한 김에 바닥에 있던 진흙 솜털로 채드의 얼굴을 뭉개버린다.

하지만 다음날 타마야의 손바닥에 발진이 생기고, 학교에 가자 채드는 결석이라고 한다.

무언가 큰 일이 난 것이 틀림없다. ...

아이들의 입에서 숲으로 들어가게 된 경위를 듣게 되는 것은 나중 일이고 곧바로 이 발진이 전염되는 사태가 일어난다. 빨개진 피부, 작은 종기, 따끔거리는 느낌.

이 전염병은 히스클리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치료약은 없었다.

이 상황에서도 타마야는 불평을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배운 열 가지 덕목을 반복해서 암송한다.

관용, 청결, 용기, 공감, 품위, 겸손, 정직, 안내, 신중, 절제.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덕목은 하나도 없다.

스펙타클하고 가슴 졸이는 모험은 없는 가운데 치료약이 개발되고 사람들은 구원받는다.

나중에, 히스클리프 참사 청문회 기록 내용에 따르면-

 

라이트 상원 의원  음, 타마야. 위원회를 대표해 우리는 네가 마셜을 따라 숲에 가는 선택을 해서 무척 기쁘게 생각해. 어쩌면 너희 둘이 세상을 구한 것일 수도 있어.

타마야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저 때문에 발진이 났잖아요.

라이트 상원 의원  아니야.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말한 것들을 모두 고려해 보면, 그 일은 어떤 식으로든 일어나게 되어 있었어. 어쩌면 일주일이나 이 주일 뒤에 일어났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것의 확산을 억제하기에는 너무 늦었을 거야. -209

 

이상적이다.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스펙타클은 없을지라도 어른-아이 사이에 흐르는 기류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할리우드식 마무리작업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후 처리에 대한 방식은 이성적이고 어른스럽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우리나라 행정처리에 길들여진 눈으로 보기에 꽤 감동스럽다.

지금 이 세상의 어느 구석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발전을 위한답시고 알게모르게 훼손되는 것이 많을 것이다.

연료비 절감을 위해 새로 만들었다는 '바이올렌' 때문에 생긴 돌연변이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했지만 개발이 먼저냐, 안전이 먼저냐를 계산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아름답게 포장된 결말로 잠시 씁쓸함이 가려졌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참사에 그저 "희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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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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휑한 바람의 맛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밥장은 축제는 늘 길 위에서 펼쳐지므로 떠난다고 했다.

어딘가로 떠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길 위에서 펼쳐지는 축제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는 그 이유가 참 멋있어 보였다.

여행을 다녀온 뒤 그 경험을 기록한 작가들의 에세이를 가끔 보면 신기하게도 그들의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떠나는 이유에서부터, 길 위에서 느끼는 독특한 느낌이 그들만의 체화된 언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누구는 활력을 얻기 위해서, 누구는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 누구는 지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에서 배수아는 이것이 여행기가 아니라고 못박듯 말하고 있다.

여행기라고 불리기에는 어떤 요소가 너무 부족하거나 혹은 너무 넘치게 될 것이라고.

무엇보다도 이것은 여행과 함께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행을 떠났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였으며, 특별히 흥미진진하거나 남다른 사건이나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아주 낮은 어조로 목소리를 낮춰서 말하는 문장들은 길게도 이어진다.

어디서 쉬어 읽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에라 모르겠다,  뱀의 머리부터 꼬리까지지 한 번 훑어본다 생각하고 바라보니 문장이 보였다.

흔히들 말하는 만연체의 문장이어서 읽는 내내 호흡이 가빴지만 요가수련자처럼 일단 그 호흡에 몸을 맡기자 정신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그리고 알타이 유목민의 흔적을 따라 가며 세세하게 그 곳 풍경을 묘사하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소개하는 문장을 읽으면서 황량한 그 곳의 바람이 느껴졌다.

 

꽤 긴 한 문장을 함께 읽어보겠는가.

 

그것은 스스로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여행이었으며 불확실성을 가득찬 출발이었고 나는 보이지 않는 칼과 쇳덩이,  맹수와 질병에 의해 쫓기는 사람처럼 떠났는데, 그곳에서 칼과 쇳덩이, 맹수와 질병을 보았고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바람, 그곳에 있음으로써만 가능했던 어떤 간절한 바람을 갖게 되었고 우연히 유르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는데, 놀랍게도 검은 몸체의 테두리가 코로나처럼 희게 반짝이는 이른 아침의 야크떼를 보면서 그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마음이 순간 알타이의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두 손을 가슴으로 모았으며 그러다 시간이 흐르자 그 충족의 사로잡힘은 알타이 환각의 연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것을 깨달은 이후에도 내 일부는 여전히 허공에 남아 있는 듯했으며 그리하여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13

 

무슨 선문답도 아니면서 혼자 중얼중얼하는 스님의 독경소리와도 비슷한 울림으로 읽어야만 어울릴 듯한 문장이 아닌가.

작가는 문장으로 알타이의 풍경을, 그 바람 속이 가르침을 전해주려는 듯하다.

 

예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작품 하나를 보았는데, 몽골인이 거친 황야에서 부르곤 하는 구슬픈 구음, '흐미'에 관한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몽골식 전통복장을 하고 투박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모자를 쓴 채 손에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그저 목소리로만 소리를 내었다.

그가 있는 곳은 현대식 건물의 내부였고 그나마 안은 어두침침했는데, 그가 '흐미'를 목에서부터 뽑아내는 순간부터 주위의 배경은, 내가 그토록 거대한 영화관의 스크린으로 그 한 사람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드넓은 몽골의 초원으로 바뀌었다.

너무도 넓고 거칠 것이 없어서 하늘을 바라보면 멀리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비구름이 보일 정도인 대평원에 나직하고도 힘있게, 때로는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흐미'는 대자연과 노래하는 자, 오직 둘만의 교감인 듯 느껴져서 잠시 아득해졌던 것이 기억난다.

예전에 읽었던 김동인의 <배따라기>였던가. 형수와 쥐잡이 때문에 온 방안을 돌아다니다 옷이 흘러내린 줄도 몰랐는데, 그 때 문을 벌컥 열었던 형이 그 상황을 오해하자 동생은 집을 나간다. 그길로 뱃사공이 되어 청승맞게 '배따라기'를 불렀다던가. 동생은 대동강을 오가며 고향에 가지 못하는 '한을 실어 배따라기를 불렀겠지.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옛이야기를 배따라기에 실어 들려줬겠지.

배따라기 한 곡조 속에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듯한 정서를 담아 부르는 그이의 심정과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어떤 정한을 담아 '흐미'를 꽉 다문 입새로 흘려보내는 사람의 마음은 서로 통하는 것이 있을까.

 

혹독한 바람이 부는 유르테에 머무는 동안 야크똥을 주워 태우며 온기를 더하면서 작가는 유목민의 심정이 되어 본다.

유목민 소년이었던 갈잔 치낙이 쓴 자전적 소설 [귀향]을 읽고 무작정 그를 만나러 독일의 낭독회 일정을 찾았고 그것은 알타이-투바 여행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보면 볼수록 놀라운 것의 연속인 재미있고 흥미로운 여행기를 생각한다면, 이 책은 아니올시다, 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봐도봐도 똑같이 솟아오른 산맥들과 드넓은 스탭평원을 보고도 색다른 표현을 해내는 작가의 문장구사능력은 가히 엄지를 척 치켜들 만 하다.

그보다는 내면으로, 좀 더 내면으로 깊숙이 파고들면서 생의 비밀을 한 켜 한 켜 벗겨내려는 듯한, 작가 배수아의 치열한 하루하루 견뎌냄의 과정이 더욱 볼 만하다.

 

선명하고 투명한 대기와 푸른 하늘, 여전히 비현실적인 눈덮인 산, 공중을 빙글빙글 선회하는 한 마리 독수리를 응시하면서, 내가 누구이며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멀리 허공으로 달아나고 있는 나의 낡고 허물어진 에고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이것은 세계의 전환이다, 하는 말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더이상 독수리를 지켜보는 내가 아니었고, 독수리가 지켜보는 나일 뿐이었다. -221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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