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정도는 되어야 진짜 복수! [고백]

 

이토록 선명한 해바라기 표지를 왜 기억해내지 못했을까.

강렬하고도 짧은 "고백"이라는 제목을 왜 잊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많은 갈채를 받고 완벽하다는 찬사가 쏟아졌던 소설인데 왜 안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했더니..

도서관에서 표지가 벗겨진 채 커버에 싸여 있던 책을 빌려봐서 그런 거였다.

세월이 너무 지나 버려서 그 강렬함이 흐려져 있었던가보다.

칭찬이 자자한 미나토 가나에의 첫 장편 [고백]을 아끼고 아끼다가 책 속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새벽을 택해 읽어나갔다.

어디서 본 듯한 전개인데...고개를 갸웃거리며 읽다가, 첫부분, 여교사의 "고백" 부분에서 기억이 서서히 깨어났다. 그리고 다시 불붙은 듯한 속도로 글자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흐릿한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면, 끝까지 읽는 수밖에 없었다.

눈의 피로감이 더해졌지만 진상을 알아야겠다. 몽롱한 사건의 윤곽을 또렷이 되살려야겠다는 생각에 허겁지겁 책장을 넘겼고, 마지막에 가서야 "그래, 이거였어~"하는 말과 함께 개운한 마음으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새벽녘에 나 홀로 손에 땀을 쥐고 꼬부랑 열 두 고갯길을 오르락내리락 한 셈이다. ^^

 

S중학교의 여교사가 자신의 반 아이들 앞에 섰다.

그녀는 이제 막 학교를 사직하고 나가려는 참이다.

아이들을 앞에 두고 "고백"을 하겠다고 말하고 잔잔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가는데, 그 "고백"이란 것이 실로 엄청나다.

미혼모인 자신의 4살짜리 딸 마나미가 학교 수영장에서 물에 빠져 죽은 사건으로 인해 충격에 빠져 있어야 할 그녀는 서릿발같이 차가운 어조로 범인에게 복수를 고한다.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던 우유 가운데 범인 두 명의 우유에는 HIV에 걸린 아이 아버지의 혈액을 섞어 놓았노라고.

 

경찰에 진상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A와 B의 처벌을 법에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살의는 있었지만 직접 죽이지는 않은 A, 살의는 없었지만 직접 죽이게 된 B. 경찰에 출두시켜도 둘 다 시설에 들어가기는커녕 보호관찰 처분, 사실상의 무죄방면이 될 게 뻔합니다. (...)

저는 두 사람이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것을 안 후에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그 죄를 지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54

 

이제 이야기는 범인인 13살, 두 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여교사로부터 갑작스런 '살인예고'를 받은 두 아이는 HIV감염자가 되리라는 걱정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게 되면서 마음에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두 아이의 대응은 천차만별이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잠재적인 살인자로 두 아이를 보고 있었는데 한 명은 학교에 계속 다니고 있었고, 나머지는 집에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고 있었다.

 

결국 B는 양심의 가책, 경찰서에 붙잡혀 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만다.

A는 어떤 쪽인가 하면, 실제로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A에 비해 좀 더 자신있게 행동하는 듯 보인다. 여교사의 처분이 A에게는 좀 가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어 갈 즈음, 보통의 아이들과 다른 가정환경에서 빚어진 이상 성격의 부분이 툭 튀어나온다.

A도 정상은 아니었던 거야...범행을 저지르던 날, 어린 아이에게 충격을 주어 쓰러지게 하고도 태연하게 돌아서던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B에게 던진 말 한 마디로 A의 어두운 내면이 바깥으로 얼굴을 내민 것이 포착된 것이다. 완벽하고도 뛰어난 어머니로부터 일찍 버려진 아이였던 A는 살인을 악이라 보지 않았다. 그리고 생명 또한 귀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한다. 어머니보다 뛰어난 인간은 없다. 즉, 자신의 주변에는 죽어도 아쉬운 인간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A의 목적은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어 어려서 헤어진 어머니를 만나고 어머니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HIV에 감염되지 않은 사실이 일찍 밝혀지면서 그렇다면 A는 도대체 어떤 죄값을 치르게 된다는 말인가?에 의문을 품을 즈음...엄청난 반전이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경찰에 두 아이를 고발하는 것이 차라리 "인간적인 선택"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여교사의 복수는 치밀하고도 완벽하다.

4살짜리 어린 아이를 13살 아이 둘이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부터가 경악할 노릇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고발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의 자격으로 어린 소년들을 벌하겠노라 마음 먹은 여교사의 마음 또한 쉽사리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이 둘을 그대로 고발했더라면 보호관찰 처분이나마 둘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평생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으로 본다면 가장 지독한 복수를 계획할 수밖에 없겠지만, 이 책의 소제목으로 쓰이고 있는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 가 풍기는 뉘앙스에 비해 여교사의 복수는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다.

자신의 제자였던 아이들을 샅샅이 파악해 그에 맞는 복수를 전개한 것이 된 셈이니 말이다.

똑같이 되갚아 주겠어, 아니 그 이상으로 처절하게 짓밟아 주겠어!

어금니 꽉 깨물고 속으로 피울음을 삼키며 복수의 시나리오를 쓰는 여교사의 모습을 상상하면 절로 몸이 떨려온다. 오싹하다.

소설 속 이야기이니만큼 그럴 수도 있으려나~하고 넘어가지만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복수를 하는 여교사의 마음 또한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해야만 이런 복수도 가능하지 않을까.

피튀기고 뼈가 꺾이는 잔혹한 장면만 없다 뿐이지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계획할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복수가 펼쳐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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