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진흙 창비청소년문학 71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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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단서들- 진흙, 13살, 실종[수상한 진흙]

 

 

 

창비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눈가리고 책읽는당을 만든 것이다.

책이 나오기 전, 가제본의 형태로 먼저 독자들에게 읽을 기회를 주는 형태와는 비슷한 듯, 다르다.

보통 책을 사면 띠지며 앞면, 뒷면에 책의 내용 중에서 임팩트 있는 것을 골라 도배를 한다.

표지에서부터 작가 이름 제목으로 시선을 끌고

뒷면의 가운뎃 부분에 눈에 띄는 책내용, 구절, 추천사 등이 주루룩 나오게 마련이다.

그것도 모자라 색색깔의 띠지에 수상작 같은 경우에는 수상 이력, 주요 인사들의 추천사, 강렬한 문구 등으로 책을 광고한다.

그런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한 번 두번 읽다 보면 책의 내용, 절반 이상은 이미 머리 속에 입력된다.

읽지 않아도 줄거리가 빠삭하게 들어차고 추리소설의 경우 기껏해야 반전에 가서야 약간 놀라게 되는, 말하자면 책을 읽는 즐거움이 반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의 눈가리고 책읽는당의 컨셉은

표지가 하얗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단서라고는 진흙, 13살, 그리고 실종이라는 세 단어밖에는 없다.

제목도 작가도 없는 것이다.

 

아, 이런 형식의 책읽기에 도전 받기는 처음이라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책내용에 대해 거의 무지한 상태에서 출발하는 책읽기는 생각보다 흥미진진했다.

어느 부분쯤 가야 줄거리가 잡힐까,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었고

주인공과 사건의 관계를 파악해나가는 것도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청소년용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른들에게도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환경'과 '아이들의 세계'를 큰 축으로 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나 우리나라 메르스 전염 사태같은 위기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서의 위기 대처는 갑갑하기 그지없지만 소설 속 이야기는 말하자면, 참변이나 비극의 감이 다소 있긴 하지만 "이상적"인 상황에 가깝다.

펜실베이니아 주 히스클리프에 있는 우드리지 사립 학교. 5학년 타마야, 7학년 마셜, 채드가 비극적인 상황을 앞서 체험한 아이들이다.

우드리지 학교에서 북서쪽으로 약 53킬로미터 떨어진 외딴 계곡에 있는 선레이 계곡. 그 곳의 선레이 농장에는 모종의 연구실이 자리잡고 있었고 아마도 그 곳에서 만들어지는 무엇 때문에 숲에는 타르 색을 띤 진흙 위에 솜털 진흙이 잔뜩 덮여 있게 된다.

학교에서 다툼을 빚은 마셜과 채드. 타마야와 마셜은 숲을 통해 집으로 가다가 채드와 맞닥뜨리게 되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마야는 급한 김에 바닥에 있던 진흙 솜털로 채드의 얼굴을 뭉개버린다.

하지만 다음날 타마야의 손바닥에 발진이 생기고, 학교에 가자 채드는 결석이라고 한다.

무언가 큰 일이 난 것이 틀림없다. ...

아이들의 입에서 숲으로 들어가게 된 경위를 듣게 되는 것은 나중 일이고 곧바로 이 발진이 전염되는 사태가 일어난다. 빨개진 피부, 작은 종기, 따끔거리는 느낌.

이 전염병은 히스클리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치료약은 없었다.

이 상황에서도 타마야는 불평을 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배운 열 가지 덕목을 반복해서 암송한다.

관용, 청결, 용기, 공감, 품위, 겸손, 정직, 안내, 신중, 절제.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덕목은 하나도 없다.

스펙타클하고 가슴 졸이는 모험은 없는 가운데 치료약이 개발되고 사람들은 구원받는다.

나중에, 히스클리프 참사 청문회 기록 내용에 따르면-

 

라이트 상원 의원  음, 타마야. 위원회를 대표해 우리는 네가 마셜을 따라 숲에 가는 선택을 해서 무척 기쁘게 생각해. 어쩌면 너희 둘이 세상을 구한 것일 수도 있어.

타마야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저 때문에 발진이 났잖아요.

라이트 상원 의원  아니야.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말한 것들을 모두 고려해 보면, 그 일은 어떤 식으로든 일어나게 되어 있었어. 어쩌면 일주일이나 이 주일 뒤에 일어났겠지. 그리고 그때가 되면 그것의 확산을 억제하기에는 너무 늦었을 거야. -209

 

이상적이다.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스펙타클은 없을지라도 어른-아이 사이에 흐르는 기류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할리우드식 마무리작업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후 처리에 대한 방식은 이성적이고 어른스럽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우리나라 행정처리에 길들여진 눈으로 보기에 꽤 감동스럽다.

지금 이 세상의 어느 구석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발전을 위한답시고 알게모르게 훼손되는 것이 많을 것이다.

연료비 절감을 위해 새로 만들었다는 '바이올렌' 때문에 생긴 돌연변이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했지만 개발이 먼저냐, 안전이 먼저냐를 계산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아름답게 포장된 결말로 잠시 씁쓸함이 가려졌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참사에 그저 "희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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