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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비밀 ㅣ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악보 속에 숨겨진 홀로코스트의 기억[한여름밤의 비밀]
얀 제거스라는 작가의 책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작년 출간된 [너무 예쁜 소녀]가 작가의 첫 스릴러였다.
작가는 추리스릴러를 쓰기 전부터 에세이와 문학비평으로 많은 팬을 확보한 인기작가였다고 한다.
그러니 문장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냐마는, 작품을 집필할 때 작가의 좌우명은 '절대로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하니 재미 또한
보장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그는 결국, 자정께에 잡은 책을 새벽 3시까지 독파하게 만든...대단한 작가다!! 라는 평을 한 마디 하고 시작하련다.
[너무 예쁜 소녀]에 이은 2번째 시리즈이기에 마탈러 형사가 주인공임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지만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한참
후에야 마탈러 형사가 주축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아주 오랜 옛날의 한 장면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1941년 10월 19일. 한 소년이 부모의 말에 따라 이웃집에 맡겨지지만 부모는 제복을 입고 총을 든 누군가에게 잡혀간다. 소리죽여 그
장면을 지켜보던 소년은 이웃에 이끌려 안전한 곳, 프랑스로 건너가게 되고 그날 이후 64년간 독일 땅을 밟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낸다.
그러나...
방송국 기자 발레리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은 호프만 씨(소년)는 TV에 출연해 자신의 과거사를 잠깐 언급한 것 뿐이었는데, 그 일 이후
몽마르트에서 작은 레뷔(극장)을 운영하며 평화롭게 살아오던 그의 생은 크게 출렁이게 되었다.
한 노부인이 연락을 해 왔고 호프만 씨의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받아서 간직해왔다며 봉투를 건넨다.
그 봉투 속에는 <한여름밤의 비밀>이라는 오페레타 악보가 들어 있었다. 호프만 씨는 그것이 오펜바흐의 친필 악보라 장담했고
계속해서 기자들과 공연 관계자들이 연락을 해왔다.
발레리는 호프만 씨 대신 친필 악보를 가지고 독일 음악 출판사와 접촉을 하러 떠나는데...
마인 강변의 술탄 레스토랑이라는 선상 레스토랑에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유력한 용의자는 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는
검은 옷의 남자.
사건을 맡게 된 마탈러 형사는 사망자 5명과 레스토랑 주인 외에 한 명의 프랑스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여자의 행방을 알기
위해 수배를 내린다. 그 여자는 바로 프랑스에서 온 기자 발레리라는 사실~이로써 사건의 실마리는 속속 발견되기 시작한다.
잔인한 수법으로 사람들을 살해하고 도망친 용의자가 제2, 제 3의 피해자를 내는 동안 사건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던 마탈러 형사는 새로
부임한 샤를로테 국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사건에서 한발짝 떨어져 사건 전체를 조망해 보기로 한다.
"살인 사건은 반드시 우리에게 뭔가를 이야기해준다!"-400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악보에 뭔가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직감 하에 발레리가 숙소에 숨겨둔 봉투를 찾아 친필 악보를 마주한 마탈러 형사.
암호문을 해독하자 거기에는 홀로코스트의 끔찍한 기억이 새겨져 있었다.
암호문이 세상에 드러나면 자신의 처지가 위태로워지는 단 한 사람이 이 모든 사건의 배후다.
히틀러가 전세계를 광란상태에 몰아넣고 잔혹한 행위를 일삼으며 홀로코스트를 진두지휘하고 있을 때, 그의 휘하에 숨어들어 또다른 홀로코스트를
만들어가던 미치광이들이 있었으니...
의학의 발전을 위하여 혹은 개인적 연구의 끝을 보기 위하여...명목을 만들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악의 업적'을 쌓아가던 한 사람의
은밀한 기록이 아름다운 악보 속에 들어 있었다.
양심을 저버린 인간의 최후는 덤덤했지만 그 들끓는 악을 지켜보고, 그 악의 행위에 놀아나고, 돈 때문에 조력했던 많은 이들의 삶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악보의 뒷면에 추악한 진실이 새겨진 것만큼이나.
정말이지 작가의 말처럼 한 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사건이 전개된다.
마탈러 형사를 비롯한 팀원이며 국장까지 개개인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있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더해져 그들의 활동을 더욱 빛나게 한다.
마탈러 형사의 개인사마저도 숨죽이며 그 추이를 지켜보게 만들 만큼 작가의 필력은 독자를 끌어들인다.
마지막 반전, 혹은 결말에 이르는 부분이 사건 전개에 비해 짧아서 이 부분 안에 어떻게 결말을 다 담으려고...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나의 걱정은 모두 기우~
깔끔하고 딱 떨어지게.
결말은 지어진다.
2차 세계대전과 동떨어질 수 없는 우리나라의 처지이기에 어쭙잖게 결론지어진 위안부 문제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고 731부대의 만행도
<마루타>라는 책을 읽으면서 격분했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되지만, 이 책 속에 기록된 홀로코스트의 기억 또한 흡~ 하고 숨을
멈추게 만든다.
독일인이면서 독일의 과거를 진솔하게 드러낼 줄 아는 성숙한 의식을 가진 작가에게 새삼 찬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