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초상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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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과 칼을 생각하다 [왕의 초상]

 

왕의 어진을 그리는 사람이란 도화서 화원이 아닌가.

지금껏 남아 있는 조선 왕의 어진이 몇 안 되기에 어진화사 이야기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홍도 같은 남자 화원이 아니라 이번에는 여성 화원이 주인공이다.

 

2013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최우수상 작품인 [왕의 초상]

명무라는 여성 화원과 나라의 지존인 왕, 태조 이방원이  얽힌 이야기다.

이방원이라 하면 형제의 난에 초점을 맞추었던 사극의 주인공 혹은

[관상]의 카리스마 넘치던 '이정재'로 각인되어 있는 인물이었는데...여인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니 사뭇 뜬금없기도 하고 전에 접해보지 못했던 이야기였기에 기대가 되었다.

아, 요즘은 [육룡이 나르샤]에서 혈기왕성하고도 파릇파릇하게 나오는 유아인으로 그 모습이 겹쳐지려 하고 있긴 한데...

 

둘의 이야기는 여느 드라마에서 보던 관계와 닮은 듯 다르다.

명무의 아비는 왕이 아끼던 화원이었지만 정치적으로 시기가 안 맞았던 탓인지

정쟁의 희생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왕은 명무의 아비 명현서를 아꼈지만 조선과 고려유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명현서를 불충의 죄목으로 희생시켰다.

고려 왕족과 내통하였다는 죄목을 씌워 반역자로 몬 것이다.

맑고 냉랭한 그림을 그리고 중용할 줄 알았던 명현서는 그림을 그리는 자였다.

 

명현서의 그림엔 방원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삶의 미학과 신비감이 출렁거렸다. 명현서는 방원의 가슴에 문신처럼 배어들었다. -20

 

아비를 잃은 명무는 명민하게 자라 노인의 그늘 아래에서 회화를 익혔다. 인문학과 궁중수양도 함께 익혔으나 명무는 붓을 쥔 손으로 칼까지 쥐려 했다.

 

"붓 하나만 너와 하나가 될 수 없느냐?"

 

날카로운 끝을 가진 붓과 칼의 속성을 명무는 계속해서 고민했으리라.

아비의 복수를 위해 둘 다를 날카롭게 벼리던 명무는 궁에 들어가게 된다.

왕의 어진을 그리는 화사로 궁에 든 명무는 시름에 잠긴 왕 앞에 그 단아한 모습을 드러내고

왕과 명무는 드디어 만난다.

둘의 만남 어디에도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은 없었지만 아비의 복수와 임금의 어진을 그리는 일 사이에서 명무는 고뇌한다.

옷섶에 칼자루를 숨겨 놓기는 하였으되 명무의 마음 속에서는 아마 칼보다는 붓끝이 더 강하였으리라.

 

왕을 죽이기 위해서는 왕을 먼저 그려야 한다!

 

아름다운 문장과 어진에 대한 섬세한 고찰이 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사랑, 복수, 명분 이전에 예술이 한 축을 드리우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단정한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청정하고 쨍한 그 마음들을 가슴 속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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