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962년 마블 코믹스의 스탠 리와 잭 커비는 브루스 배너-헐크라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창조한다. 주인공 부르스 배너 박사는 실험 중 감마선에 노출되고, 그 부작용으로 인해 분노를 조절 할 수 없게 되면 난폭한 녹색의 근육질 괴물, ‘헐크’로 변신한다. 부르스 배너가 인간의 아폴로적인 이성의 표상이라면 한다면 헐크는 디오니소스적 비이성의 표상이다.
물론 '헐크'의 모티브는 1886년 간행된 R.L.B.스티븐슨의 괴기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일 것이나 이 이야기는 단순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재생산에 그치지 않고 보다 모던한 지점까지 촉수를 뻗는다. 지킬 박사의 하이드씨가 심리적 이면에 악을 내재한 인간의 이중성을 폭로하는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헐크의 헐크는 선악 구분이 없는 혼란 상태로, 현대 사회에서 인간 소외를 겪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을 은유한다는 것.
헐크가 등장하는 최근작은 영화 어밴져스다. 영화의 절정부,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배너 박사는 아직 헐크로 변신하지 않는다. 별 달리 분노를 이끌어 낼 기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일촉즉발의 상황, 혼자말로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배너 박사. “사실 나는 늘 화가 나 있었지.” 적들에게 뛰어가는 배너의 하얀 셔츠는 이미 갈기갈기 찢어지고 이내 거대한 녹색 등판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 2
최근에 일을 관뒀다.
내 일은 오왕(吳王)의 새침한 연인 같아서 나는 그것을 사랑하였으나 그것은 나를 늘 파국으로 몰아갔다.
매달 받는 월급과 그 대가로 내가 포기한 것들이 늘 의식속에서 대립했고, 내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과 역할행동이 나의 정치적 정체성과 마찰을 일으켰다. 기대는 과도했고, 시간은 촉박했다. 일에 대한 상반된 감정이 가져오는 스트레스와, 스트레스로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업무적 긴장은 매일 밤 나를 잠들 수 없게 만들었다. 멜랑콜리라는 진단명은 내 상황을 수사하기에는 지나치게 낭만적인데가 있었다.
나는 단지, 나는 그 모든 것에 화가 나 있었을 뿐이니까.
할 수만 있다면 초록색의 근육 괴물로 변해 주변의 모든 것을 두들겨 부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일을 그만둔다는 정보를 입수한 ‘추’가 따로 조촐하게 마련한 술자리에서 나는 추에게 고백했다, 실은 이 모든 것을 다 두들겨 부숴버리고 싶다고. 침착한 베테랑인 추는 한참 내 얘기를 듣다 차분하게 말 했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로 헐크의 은유는 옳아서, 우리는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헐크를 하나씩 품고 있는걸까?
#. 3
헐크의 이야기는 1962년 마블 코믹스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여러 지면과 TV애니메이션을 거쳐 TV시리즈로 방영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바, 영화로도 최근작 어밴져스를 제외하고 두 번이나 제작되었다.[2003년 이안 감독, 헐크(Hulk), 2006년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둘 다 평작이다.]
열심히 찾아본 편은 아니지만 위에 나열한 시리즈 중 대부분을 일람하였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TV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다. 오래되어 단편적인 것 밖에 기억나지 않으나 드라마 속 헐크는 어쩐지 어밴져스의 헐크보다 외롭고 쓸쓸한 캐릭터였다. 그는 하나의 소동이 정리되면 석양을 등지고 어디론가 떠나곤 했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그 장면을 늘 인상적으로 감상했다.
새로운 삶에 대한 갈망? 혹은 단지 자신을 분노하게 하는 세상과 멀어지려는 것이었을까?
#. 4
내게도 하나의 소동이 끝났다.
떠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