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신현림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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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 신현림, 흐름출판, 2011.

 

이십 년 전, 임시직 첫 직장에서 낯도 익히지 못했던 사수가 내게 물었다.

 

좋아해?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좋아할 것 같은데

 

이십대 중반이었던 나는 김광석의 음악을 듣고, 최영미의 시를 읽는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가늠하지 못했다. 김광석은 이미 천 번째 공연을 향해 가고 있었고, 최영미의 시는 몇 십 만부가 팔렸을 터. 그들의 음악과 시를 나만의 고유한 취향이라고 믿었다. 나의 내면을 들킨 것처럼 깜짝 놀라며, 사수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이 정도로 나를 아는 직관이라면, 믿고 따르겠다는 충성심이 저절로 생겼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직장에서 이런 선배를 만나게 된 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나는 -  순수했다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 어처구니없는 청춘이었다.

 

최영미의 시만큼, 신현림의 <세기말 블루스>가 좋았다. 경계 없이 거침없이 넘나드는 세기말의 증후가 느껴지는 그녀의 시를 -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 읽고 또 읽고, 일기장에 필사했다. 이후 출판된 빵은 유쾌하다, 시간 창고로 가는 길도 좋았다. 하지만 <신현림의 싱글맘 스토리>부터 우리는 이제 저자와 열혈 독자에서 결별해야 할 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이번에 엄마 살아계실 때 함께 할 것들을 읽으며,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사진작가, 시인, 에세이스트. 세상의 규범에 포섭되지 않을 것 같았던 신현림은 착한 딸, 좋은 엄마,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을 찾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 그 자체로 느껴졌다. 그녀의 생각에 딴지 걸 생각은 없다. 다만 젊은 미혼의 여성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엄마들은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는 일에 최고의 의미를 둔다. 이것은 부모의 본능이다. 자식이 제아무리 괜찮다 해도, 제아무리 잘 나가도 짝을 찾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 된다. 좋은 짝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그것만 잘해도 당신은 이미 효녀다.(173)”

 

보건복지부의 건강사회 캠페인 문구 같다. 마치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이기적이라는 논리가 느껴진다. 저자는 결혼이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원하면,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인생의 과업이 결혼이었던가? 자녀의 결혼이 부모 행복의 필요조건임은 인정한다.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부모의 사랑이다. 둘은 상보적 관계에 있다. 부모든, 자녀든 서로가 어떤 상태로 살게 되더라도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 윤리를 실천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시절 인연이 다하면, 헤어져야 하는 모든 연인처럼, 독자도 떠나야 할 때가 오게 마련이니. “지루한 세상에 구두를던졌던 세기말 블루스의 저돌적인 신현림이 그립다. 나의 추억은 이만 접고, 하루하루 가족을 더 많이 사랑하고자 노력하며 결 고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신현림의 행복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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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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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씀, 양철북, 2015.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이오덕 · 권정생 선생님께서 1973년부터 2002년까지 30년 동안 주고받으신 편지 모음입니다.

두 분께서 문우(文友)로 지내셨던 반평생의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었습니다.

병든 육신, 지독한 가난이 어린이와 세상을 품어 내는 동력이 되었던 권정생 선생님.

스물 이후 평생 교사로 사시면서, ‘우리 글 바로쓰기를 위해 애쓰셨던 이오덕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귀히 여겨주었던 이오덕 선생님.

2003년 이오덕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권정생 선생님은 세상에서 사이좋다가 토라지기도 하면서살아가겠다고 하시더니, 몇 년 후 2007,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평생 몸 편할 날이 없으셨던 두 분은 저 세상에서도 바쁘실 듯합니다.

두 분의 글을 읽고 재잘거릴 아이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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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예술 -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삶의 불길 속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심보선 지음 / 민음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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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속물, 그 속에서 가까스로 인간-되기

그을린 예술, 심보선, 민음사, 2013.

 

텅 빈 우정에 대하여

 

심보선의 텅 빈 우정에 대한 분석을 보면서, 얼마 전 내가 목격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퇴근길이었다. 교외의 한적한 길,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다. 강아지 한 마리가 다리를 다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 두 마리의 강아지가 상처로 웅크린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다가 빨간 불이 켜져서 차가 정지하면, 쪼르르 달려와 다친 강아지 옆에서 깽깽 거린다. 다시 파란불로 바뀌고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다시 길가로 나가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본다. (뒤차가 빵빵거려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챙겨서) 나는 뻔뻔스럽게 제 갈 길을 향했다. 그 순간 나는 동물이 되었고, 그 강아지들은 텅 빈 우정으로 끝까지 함께하는 가까스로 인간되기를 실천했다.

 

예술가의 ()파업에 대하여

 

남보다 조금 일찍 명예(스러운) 퇴직을 하신 선생님이 부러웠다. 그의 보스(인 아내)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한 나의 안부 전화에 선생님은 담백하지만,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웬만한 직장인 월급 벌려면 우리 아내가 하루에 커피 500잔을 팔아야 한다. 직장 생활이 힘들겠지만, 커피 오백 잔 판다는 맘으로 일해라.”

 

조금 야속하지만, 말씀하신 뜻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이어 하시는 말씀.

 

직장에 다닐 때는 근무 시간에 시간을 훔칠 수 있었는데, 퇴직하니 이제 훔칠 시간이 없다.”

 

나는 이 말씀을 심보선이 말하는 예술가의 파업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의 곳곳에서, 야근과 휴일근무와,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글을 쓰고, 사색에 잠기는 것. 적들이 모르는 은밀한 개인적 파업은 시시 때때로 일어난다. 첫 번째 말씀이 체념이라면, 두 번째 말씀은 게릴라적 전술이다. <쇼생크 탈출>의 맥주 한잔이 자유라면, 우리 직장인의 글쓰기는 사적 파업일 수 있다. 언제가 사색과 성찰에 불이 붙는다면 사회적 파업으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자신의 불행을 거부하는 자유롭고 행복한 신체의 자격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 신체의 이름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동일한 예속 상태에 처한 99퍼센트, 그 예속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소망하는 99퍼센트, 바로 프레카리아트(precarious proletariat)이다(132).

 

(‘천사-되기)에서 지게꾼-되기

 

심보선의 책을 읽던 중, 한 시인의 특강을 들었다. 맛깔스럽게 시를 쓰는 중견 시인의 강의를 듣는 내내 머릿속이 산란했다. 책을 팔러 온 건지, 자신의 인맥을 자랑하러 온 건지 맥을 잡지 못하는 강의 탓에 영혼이 육체를 이탈하여 떠도는 기분이 들었다. “신간 책을 많이 사주시면, 자신도 이제 그만 분필(선생) 놓고, 시만 쓰겠다.”고 하신다. 시인은 바람직한 교육을 의도하지 않아도, 이미 존재 자체로 좋은 선생이었으리라 믿는다. 우리 선생이 명망 있는 시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선생이 책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은 긍정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가 개인의 삶을 위무하고, 좋은 벗들과 원고지 값으로 나누는 삼겹살의 긍정 효과에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시의 무거움에 비하여 시인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다. 내 삶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독자로서 저자인 신보선의 빛을 나누는 친구가 된 느낌이다. 감당하기 벅차지만, 나의 위선적인 삶을 다시 성찰하며, 불투명과 딜레마의 안정된 상태’(!!!)로 나아간다.

 

조르주 아감벤은 우정이란 출생, , 장소, 취향이 아니라, “존재한다는 사실, 삶 자체의 나눔, 존재한다는 순수한 사실을 함께-지각함이라고 말했다. 독자가 창작자의 작품을 다시 알아본다는 것은 독자와 창작자가 함께 작품을 알아본다는 뜻이며 궁극적으로 작품을 통해 표현되고 구현된 삶을 함께 나누어 갖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행복의 빛은 작가와 독자를 동등하게 비추며 서로의 비빌을 알아챈 친구 사이처럼 서로를 연결시켜 준다.(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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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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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의 부정을 완화하는 다정함이라니.

 

다정한 편견, 손홍규 산문, 교육서가, 2015. 5.

 

  제목에 끌림이 있다. 다정한 편견,은 소설가 손홍규가 200811월부터 20125월까지 경향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하나로 묶었다.

 

손홍규의 글은 다정하다. 한 사람의 고귀한 인격을 만난다. 호기를 부리지도 않는다. 자신만의 반듯함은 있으나, 부러지기 쉬운 올곧음은 없다. 작은 이야기로 큰 울림을 만든다. 누구나 했을 법한 경험에서 작가만의 사유를 발견한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작가의 삶에는 농촌과 도시가, 근대와 현대가 공존한다. 실제 나이보다 오래 묵은 이야기를 오늘 이야기처럼 풀어간다.

 

  한동안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 부끄러운 일이 아닌 가난이 발목을 붙잡는 아픈 청춘을 생각하며 책 읽기를 멈추기 몇 번이다. 이것이 가스통이 이야기한 느린 독서일 것이다. 이는 독자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독서를 느리게, 그러나 끝까지 가게 하는 힘은 저자에게 있다.

읽다보니 읽는 것으로 멈추어지지 않아서 필사를 시작했다. 작가가 보냈을 숱한 밤 시간들이 내게 출산을 경험하게 한다. 참 의미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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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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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지지 않았다.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마음의숲, 2012.

 

소설가의 에세이는 한 편의 잘 다듬어진 자전 소설이다. 저자의 경험과 성찰이 모인 한편의 단편 소설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연작 소설을 이룬다. 소설가는 사소한 경험조차 망각하지 않는다. 그는 물리적 시간을 몇 겹의 층위로 바꿔 확장하는 인터스텔라다. (분명 독자가 할 수 있는 진심어린, 최고의 찬사다.)

 

김연수의 글은 나의 성장기를 반추하게 한다. 내게도 글밭을 일구고, 글 밥을 먹고 살고 싶은 청춘의 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싶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나를 스친 인연들을 가장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나를 위로하기 위함이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허락되는 글쓰기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삶은 시작되었다. 삶을 마감하는 것도 내 의지와 무관한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참 사는 일은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이번 생이 이 세계와 마지막 안녕이기를 늘 바랬다. 나이를 먹으면서 결정적인 사건 없이 나는 변하고 있다. 마흔 중반에 도착하자 나는 윤회에 대한 공포에서 자유로워졌다. 나의 다음 생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 사는 것이 그렇게 비관적이기만 하지 않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겪을 일은 겪게 되어 있다. 내가 그것을 극복할 능력이 있든 없든. 김연수의 글을 읽으면서 고정된 내 생각이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좋은 가을이다.

 

작가 스스로 잘 알겠지만, 그가 앞에 있다면 단정하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지만 소설이 별로이거나, 또는 성실하지만 소설이 형편없는 작가가 아니다. 사람도 좋고, 성실하고, 훌륭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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