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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타인의 어휘를 배우면서, 삶은 예술이 된다.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2016. 2.
신간 『멀고도 가까운』은 잊고 지내던 유년의 뜰을 다시 찾는 감흥에 젖게 한다. 과거로 향하는 ‘마법의 문’을 열어젖힌다.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활동가인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평생 동안 ‘어머니’를 이해하고, 화해하려고 노력한다. “어머니가 극지방으로의 여정” 이라면 그 끝까지 가보려는 자세로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그 과정이 이 책 한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새로운 지식을 주는 책도 좋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공감하며 성찰과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도 좋다.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이 바로 그러하다. 저자는 평생을 질투와 비관으로 살았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로 돌아가는 과정을 회고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화해 속에서 가족이 되어 간다.
솔닛은 “침묵하는 자아에게 목소리를 찾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자청한다. 누구나 간직하고 살아가는 예술이 될 순간을 건드려주는 것이 바로 『멀고도 가까운』이다. 인생의 어떤 한 장면은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을 내면에 세기며 평생을 나와 함께 간다. 지금 여기에 있는 존재는 과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먼 신화와 같은 과거도 현재와 연결되어 있고, 미래로 이어질 것이다. 솔닛의 엄마가 남긴 살구가 프랑케슈타인, 체 게바라, 아이슬란드의 늑대, 에스키모 여인으로 이어지듯.
이 책을 읽는 내내 산드라 시스네로스의 『망고스트리트』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내게도 망고스트리트에 있던 허물어질 듯했던 부실한 집 한 채가, 100파운드를 수확할 만큼의 살구나무가 유년의 뜰에 우뚝 서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턱이 높던 단칸방, 여름이면 가지를 휘청거리게 열렸던 앵두나무가 기억 밖으로 튀어 나와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 집에 사는 내내 떠날 것을 꿈꾸었으나, 오래 전 집을 떠난 이후부터 – 이십 여 년 전 집은 허물어졌음에도 – 나는 그 곳을 그리워했다. 엄밀하게 말해서 그곳의 시간을 그리워했다. 그 곳에서 내적 · 외적으로 아픈 날이 많았지만, 나는 고통으로 조금 더 단단해졌다.
우리 집에서 5km 떨어진 할아버지 댁 뒷마당의 삼분지 일을 덮듯 퍼져있던 앵두나무는 어린 시절, 나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문간방에 사는 내게도 여름마다 나를 기다리며 휘청거리게 열리는 앵두가 있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 향기>처럼 아직은 세상을 더 살아야 할 것으로 느끼도록 만들어줬다. 툇마루에 앉아서 앵두를 따먹는 나를 바라보던 우리 할아버지가 그립다. 내 기억 속에서 이십년을 더 살고 계시는 분이다. 솔닛의 글이 세상에 없는 나의 할아버지를 불러낸다.
솔닛은 풍부한 문학과 지식을 활용하여 엄마와의 관계를 서사로 엮어 낸다. 실패한 (인생이라고 믿는) 인생은 회한으로 남지만, 실패한 말은 글이 된다. 자신과, 타자와의 화해를 위한 글쓰기가 시작된다. 글의 강력한 힘과 실천력이 여기에 있다. 경험과 문학이 촘촘하게 연결된다. 솔닛은 오롯한 사적 경험으로 천착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로 열어젖힌다. 인생은 경험이 아니라, (경험에 대한) 해석임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인생은 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윤회하듯 복기하는 것이라고 조근 조근 이야기한다. 이 책의 목차만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살구에서 시작하여 다시 살구로 끝을 맺는다.
살구-거울-얼음-비행-숨-감다-매듭-풀다-숨-비행-얼음-거울-살구
불행은 불치병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주변을 불행으로 빠트리는 전염병이기도 하다. 가족과 모성에 대한 신화를 벗겨내고 보면, 보편성 안으로 포섭되지 않은 다양한 성향의 부모와 자식이 존재한다. 딸의 행복이 엄마의 불운한 삶의 고통을 증폭하기도 한다. 자식의 존재 자체가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모성 신화에 갇혀있는 여성들은 엄마라는 정체성에 자신을 고정한다.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불행했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엄마와 함께 한 딸이 어떻게 내면으로 파고드는지를 솔닛은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책으로 숨어 들어가 고독을 키우고, 인간 없는 세상에서 평화를 누리기도 한다. 막대나 돌에 맞은 것보다 말(言)에 더 크게 다친다. 공격할 힘을 갖지 못한 약자는 글을 통해서 자기를 지킨다. 고통스러운 이 세계와 거리두기를 하는 동안 솔닛은 작가가 되어 간다. 무심한 시간에 대한 회한으로 역사가가 되어 간다.
- 앓은 만큼 깊어지는 앎
고통은 배움을 낳는다. 시인 존 키츠가 말했듯 “응급 상황과 어려움을 통해 영혼이 만들어진다(364쪽)”. 감당할 것은 감당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최근 나는 주변인들과 소통에 실패하여 회의에 빠졌다. 원래 말은 온전한 전달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 온전히 가 닿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우울하기만 하지 않은 것은 내 관계가 새롭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완전하거나 영원한 관계는 없다. 서로의 반응에서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이 잦아지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단칼에 관계를 끝낼 만큼 철없던 청춘의 날들도 다 지나갔다. 시절 인연이 다하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관계의 싹이 튼다. 이러한 사태가 내 마음 키를 조금 키워놓는다.
- 노인 없는 나라
우리는 누구나 사는 만큼 늙는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낭만적 사랑이나 아이를 낳는 일 같은 다른 종류의 헌신에 비해, 조언이나 독려가 될 만한 분량의 글이 없다(20쪽).” 솔닛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를 보면서, 중요한 것은 망각하고, 잊어도 좋을 것은 기억하는 ‘우리’를 이야기한다. 솔닛의 어머니를 보며, 나의 엄마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녀의 삶에서 ‘나’란 딸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가늠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사유의 언어와 삶을 살아오는 우리 모녀에게도 몇 가지 함께 해결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인생의 끝자락에 와 있는 내 엄마의 삶을 해석해주고, 이름 붙여주는 지혜로운 딸이 되고 싶다.
낯선 나라, 낯선 공간에서 이 책을 발견하여 들떠했을 역자 김현우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 좋은 책을 선점했을 때의 기쁨으로 열정이 샘솟았을 것이다. 지성과 통찰이 넘쳐나는 리베타 솔닛의 위로가 그대로 전해진다. 나 또한 솔닛의 책을 가지고 다니는 시간 동안 퇴화와 생성을 반복하는 내 삶을 껴안을 수 있는 에너지를 얻었다. 언제가 샌프란시스코 해이트애시베리에 가면, 이 책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내 어머니와 어린 날의 앵두 나무, 오래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호명할 것이다.<끝>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