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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 마르크스에서 카스트로까지,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 교양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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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혁명 이후, November를 꿈꾸는

『코뮤니스트』 로버트 서비스 지음, 김남섭 옮김, 교양인, 2012. 8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은 “백해무익한 감독”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평가에 대하여 “감사한다. 그렇게 평하기 위해서 적어도 내 영화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코뮤니스트가 아니면서, 거의 백과사전 수준으로 공산주의 세계사를 인물 중심 연대기로 저술한 로버트 서비스를 떠올리게 하는 발화다. 『코뮤니스트』의 저자 로버트 서비스의 위대함이 거기에 있다. 비판하기 위해서 한평생 내내 가열 차게 공산주의 역사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나만이 비판할 수 있다는 ‘독선’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증명하는 기쁨의 상위에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소견은 일단 여기서 접기로 한다. 서비스가 ‘객관’이라는 기준으로 공산주의를 관통한 것처럼, 나 또한 ‘판단 중지’하고 서비스의 위대한 업적을 관람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서비스는 생로병사의 생애를 간직한 유기체를 바라보듯 공산주의 역사를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따라 가면서, 20세기 지정학에 맞추어 이데올로기로서의 공산주의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즉 ‘공산주의 세계사’를 통찰할 수 있도록 구성하여 저술하였다. 저자는 서문에 “백과사전은 아니다.”라고 명확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서술과 분석은 백과사전으로 분류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마르크스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공산주의 이념,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에서 체현 과정을 겪으며 확산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주의의 변형과 확산, 1980년대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에서 발화한 공산주의의 종언까지를 촘촘하게 기록한다.

 

냉엄한 분석- 객관성의 한계

 

혁명사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학자 서비스는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철저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냉정하게 분석한다.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공산주의를 서술한 책을 완독한 경험이 없다 싶을 정도로 도제 방식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책을 끌어안고 보낸 한 달의 시간이 아깝지 않을 만큼 배움이 클 수밖에 없는 책이다. 문제는 ‘일관성’이라는 미명 아래 객관성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는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동일시하는 시선으로 코뮤니스트를 평가한다. 선악의 구도로 이분화 하여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대립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미덕일 수 있지만, 그만큼 세련된 방식으로 공산주의를 비판을 피하기도 어려운 방식이다.

 

관점을 넘어 서서 ‘객관적’이라는 메스를 가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사학자의 ‘주관’은 또 하나의 편향성으로 작동할 수 있다.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철의 장막’은 정당성을 선취한 반면, 소련의 영향력은 강권을 행사한 소비에트 독재로 그려진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국가였던 독일, 영국, 프랑스의 좌파 성향을 고려할 때, 미국이 느꼈을 고립감이 얼마나 위협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서구와 차단된 입장에서 소련이 남아메리카의 자본화를 막기 위해서 원조와 문화 산업에 전폭적 지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힘겨루기 상황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분화 된 세계의 지정학적인 힘의 역동성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입장만을 다룰 때 객관은 편향과 동일시될 수 있다. 미국의 메카시즘 정책과 근대화론에 따른 신식민주의 전략 또한 심각한 세계사의 한 부분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실패한 혁명, 그러나 세상의 변화들

 

공산주의가 근대의 ‘과학’이 된 것은 - 저자가 상식을 결여한 것으로 평한 - K. Marx 이후라고 할 수 있지만, 인류가 ‘평등’을 미덕으로 알았던 순간부터 공산주의는 우리의 삶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마르크스가 “철학자를 위한 철학자”이고, “엄밀함이 부족한” 난해한 코뮤니스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마르크스 이전과 이후 인류는 전혀 다른 두 세계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소련이 연합 국가를 해체하고, 중국이 천안문 사태 이후 자본주의를 도입했으며, 유일하게 사회주의 국가로 자존심을 지키던 쿠바와 북한이 와해된다 할지라도 코뮤니스트들이 꿈꾸었던 이데올로기는 세계의 가치를 세우는 토양이 되었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수용했던 ‘평등’ 개념은 공산주의의 수혈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자본주의를 지킨 유일한 ‘열쇠’가 공산주의였음은 역사가 증명한다. 공산주의가 사라졌다면, 전형으로써의 ‘자본주의’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지표면에서 종적을 감추었다.

 

치명적인 ‘내부 모순’은 매 순간 자본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아직 공산주의 종언을 서두르기에 인류의 밤은 새벽을 맞이할 만큼 깊지 않았다. 새벽은 가장 깊은 어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리를 찾아온다. 경쟁과 양극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평가 국가로 전환한 신자유주의의 어둠이 극에 달하는 순간, 역사는 자본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모색을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접히지 않는 희망 하나

 

『코뮤니스트』를 펼칠 때, 작은 희망 하나가 있었다. (생물학적 나이를 뛰어 넘어) 공동체 속에서 희망을 꿈꾸던 과거의 ‘나’와 만나고 싶었다. 한 달 내내 붙잡고 살았던 책을 덮는 순간, 희망은 싹을 틔우지 못하고 시들었다. 역사 속에서 공산주의가 사라졌다는 마지막 챕터를 덮을 때, 조로(早老)하게 만드는 링거 주사를 팔에 꽂은 느낌이 들었다. 세속적인 지위를 아직 성취하지 못한 청년의 곧고 반듯한 양심을 가지게 만드는 ‘영혼을 깨트리는 도끼 같은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시 움트는 새로운 희망, 이 책이 - 역자의 바램처럼 - 길을 잃은 이 시대 진보 좌파에게 미로를 빠져나오기 위한 단서를 제공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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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2-09-27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의 입장만을 다룰 때 객관은 편향과 동일시될 수 있다 는 말에 동의합니다..
역시 오랜 시간 끌어안고 읽은 숲님의 리뷰는 다르군요...저는 겉만 살짝거리고 있을 때
속살까지 건드렸군요...^^
저는 정말 재미가 없었어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