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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
유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고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 옛 이야기의 표피 속에 깊게 박혀 있는 숨은 의도 해독하기

 『가족 기담 -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유광수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2. 7.

 

가족은 “신(神)이 주신 선물”이라는 축복의 말이 있다면, “남들이 보지 않으면 버리고 싶은 것”(기타노 다케시)이라는 반대의 표현도 있다. 고립무원 같은 세상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가족이지만, 서로에 대해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것도 가족이다. 인연으로 엉킨 실타래는 풀기도 어렵지만, 최악의 사태에서 가위로 잘라낸다 해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전인자와 환경 조건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무수한 감정과 행동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이끈다. 존재론적 고민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 바로 인생은 우아한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고결한 관념의 총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근대 이성에 반기를 들고, 무의식의 엄청난 힘을 인식하게 했던 프로이드(Freud)의 정신분석학은 가족 관계, 특히 부모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한다. 3자 관계 속에서 성(性) 충동을 일으키는 에너지가 히스테리와 강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푸코(M. Foucault) 역시 가시적인 권력만큼이나 우리 일상 도처에 퍼져있는 미시권력을 분석하기 위해서 정신분석학의 메스를 가족 안으로 가져간다. 자율은 감시와 처벌 과정에서 훈련된 타율의 다른 이름이다.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권력은 침실에서 시작하여 사소한 양치질까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가족은 우리 각자 형성하고 있는 정체성의 출발이자, 끝이다. 그 안에서 세계와 나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지고, 아름다움과 올바름에 대한 가치가 형성된다.

 

언어 이면의 상징을 듣고 보기 위해서 철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무의식의 분석에 매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의식 저편에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는 비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무렵 만났던 브루노 베텔하임의 『옛 이야기의 매력』은 정신 분석을 활용하여 익숙한 옛 이야기를 전복시킨다.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는 사회적으로 금기되어 있는 감정이 옛 이야기를 통해서 건강하게 해결되었다는 것이 베텔하임의 견해다.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옛 이야기를 활용하고 있는지 촘촘하게 분석하여 에피소드와 전형이 된 등장인물의 해체한다.

 

개인적으로 우리의 옛이야기도 『옛 이야기의 매력』처럼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오랜 바람이 있었다. 그 기대 속에서 읽게 된 책이 바로 『가족 기담』이다. 익숙한 이야기들은 앉은 자리에서 통독이 가능 할 만큼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다. 가족 잔혹사(殘酷史)를 통하여 근대 이전 사회의 시스템과 사회 담론에 대한 인문학적 분석이라는 보는 것이 타당한 책이다. 때문에 부제인 “고전이 감춰둔 은밀하고 오싹한 가족의 진실”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은 무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국문학자인 유광수는 우리 조상들이 담론으로 유통했던 미담의 아름다운 포장지를 벗기고 이야기와 겹치는 사회시스템을 해부하여 현미경 위에 올려놓고 세포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옛 이야기는 시대와 무관하게 오늘날 세태를 읽어내는 단서를 제공한다. 새어머니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장화와 홍련>의 숨겨진 사연은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차마 말해질 수 없는 근친상간의 혐의를 함의한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어머니와 <여우 누이> 설화는 맹목적으로 자녀 교육에 헌신하는 한국형 어머니의 모태로 볼 수 있다. 자식을 위해서 간, 쓸개까지 모두 내어주는 어머니, 과잉된 사랑으로 사람 새끼를 여우 새끼로 만드는 부모들에게 준엄한 메시지를 전한다. 명문대 진학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생각하는 부모는 세상이 자기 자식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실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실용지(實用知)는 무용한 것으로 취급하면서, 지혜는 고사하고 정보 수준의 지식에 연연해하는 이 시대 부모의 모습이 그대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반면, 시대가 달라지면서 이야기에 담긴 가치가 전복되어 정반대 좌표에 놓이는 경우도 많이 있다. 효도가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지배적인 담론이었던 조선에서는 부모를 위해서 자식의 목숨까지 내놓는 것을 최고의 효(孝)라고 칭송했다. 반면 보험료를 타기 위해서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게 한 현대의 아버지는 “짐승만도 못하다." 는 사회적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자식의 생사여탈권을 부모가 소유하였던 폭력 사회를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학생 인권 조례 통과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디게 권리를 인식하고 인정해 가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가족기담』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할애하고 있는 분석은 ‘성(性) 차별’의 시대 윤리다. <홍길동전>은 적서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급진적인 소설이었지만, 처첩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극에 달한 상황은 기녀에게 요구되었던 순결이다.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지조 높은 기녀’는 <춘향전>에서 잘 볼 수 있다. “19세기에 창작된 한 소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남자들은 이젠 기녀들에게 절개가 아니라 순결을 요구한다. 그녀들의 처녀성을 요구한다. 기녀와 처녀성.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이야기의 중요한 핵심으로 사용한다. 남자들의 꿈과 환상은 이제 로망을 넘어 ‘노망’ 수준으로 치닫는다(94쪽). 정절과 포로노그피를 동시에 꿈꾸는 남성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인 여성의 삶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 두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는 통찰을 얻는 것이 ‘나’를 제대로 아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통찰의 과정에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국문학자인 저자는 가족 이야기를 정신분석학에만 국한하여 분석하지 않는다. 담론을 생산하여 사회시스템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제로 작동하였음을 밝히는 동시에,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족 안에서 겪고 있는 상황을 빗대어 위무한다. 무능한 가장으로서 가족 안에서 타자화 된 이시대 아버지의 무기력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두 이야기가 <흥부전>과 <효녀 심청>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새끼 내지르는 일 뿐”인 흥부 이야기는 우애(友愛)를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무능한 남편, 동생, 아버지가 어떤 모습인지를 절절히 보여준다. ‘사람은 좋다.’ 는 말이 있듯이 무능한 사람의 인간성 좋음 만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도 없다. 무능한 아버지의 대명사는 역시나 심청이의 아버지 심봉사일 것이다. 눈 뜨겠다고 자신의 딸이 바다 한가운데 던져지는 상황을 만든 아버지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효의 대표적인 이야기로 미화되기에는 허술한 측면이 있다.

 

국문학자가 분석한 “옛 이야기”를 읽었으니, 다음은 심리학자가 분석하는 ‘옛 이야기”의 해설서를 읽어보고 싶다. 옛 이야기의 표피 속에 깊게 박혀 있는 숨은 의도는 맥락과 맥락 사이의 빈 공간까지 촘촘히 읽어야만 해독 가능한 암호들이다. 『가족 기담』은 무의식을 찾아내기 위한 과도한 비약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이야기의 숨겨진 주제를 탐색하기에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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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2-09-2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님 리뷰를 읽으면서,내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정말 잘 쓰고자 했다면 이렇게 썼을 거야....하고 생각하게 하는 리뷰에요.. ^^ 딱 내스탈이야~~~ㅎㅎ
그리고 늦었지만 '이달의 당선작'에 당선된 거 축하드려욤,..^^


2012-09-25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9-25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더불어숲 2012-09-25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힘을 주는 나의 서재 친구, 꽃도둑님!
같은 '스탈'이라는... 기쁜 말씀, 선물로 받습니다.
감사해요~!! 힘나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