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만의, 온전히 자기만의 서재를 꿈꿉니다.
  게다, 알라딘의 '서재'를 서성이는 모든 분들이
  서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작은 꿈,이 서로 일치하기 때문이겠죠.

  이벤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한
  책장정리는, 사실, 아직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말끔하고, 곱고, 나름대로의 운치와 정갈한,
  혹은 독특한 자신만의 서재를 꾸리시는
  다른 분들의 공간을 보면서
  저도 얼른 정리를 마치고 싶은 마음에 늘 동동거리던
  여름 초입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제 책장은 아직 미완입니다.
  페이퍼를 통해 하나하나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 여름이 다 끝날 때에나
  제 자리를 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문득, 비어있는 책장 구석구석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비어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빈 공간에 어떻게든 다시 채우고 싶은 욕심.
그건 욕심이면서도 또한 소박한 꿈이고, 소박하지만 무척 사치스러운 희망은 아닌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릴 줄 알아야 다시 채울 수도 있을텐데, 늘 책은 예외였으니, 좁은 책장에 늘 아둥바둥 꽂혀 있는 책들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사실, 더 안타까운 것은 행동으로 나아갈 수 없는 앎으로, 혹은 그저 잊혀질 앎이나 정보로, 때로는 읽었다는 사실마저도 까마득히 잊혀진채 그저 부피로만 존재하게끔 두었던 제 스스로의 모습은 아닌가, 하는 생각. 마치 입을 벌린 듯 중간중간 비어 있는 저 빈 칸들이 제 알량한 마음을 닮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책,이어야 하고 그 책을 읽은 제 자신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니, 문득 책장 정리를 하고 있다고 떠벌린 스스로가 조금 머쓱해 지기도 했지만.
그래서 부러,
책장 정리,의 복판에서 빈 공간만을 추릴 수 있었습니다.

작은 방 하나. 크기 모양 다 제각각인 책장 다섯개 반. 열아홉 겨울부터 서른살 여름까지 제 손을 거쳐간 흔적들, 그리고 그 시간의 흔적들입니다.
그리고, 다시,
공허한 채움,이 아니라 텅빈 충만을 꿈꾸며 오늘도 책장 정리를 조금 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늘 그런 저녁시간을 보낼 것 같습니다.
손이 새까맣게 변하도록 먼지 속에서 오래된 책을 뒤적이고, 그 책에 적혀 있는 메모들을 읽어가며, 혹은 그 책에 적혀 있는 지인의 편지를 발견하기도 하고, 뒷전의 어떤 책은 다시 앞으로 옆으로 옮기고,
한 칸 모두 채웠다가, 다시 모두 다시 빼고 꽂고, 그러다가 아무리 봐도 변한 것이 없다는 엄마의 잔소리도 들으면서, 그러다 지치면 오래된 친구와 심야통화를 하면서 잠시 숨도 돌리는, 
일상처럼, 한동안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 듯 싶습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책장이 아니라, 온전히 내 것의 책장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빈 공간은 행복합니다.
  다시 채울 수 있는 공간으로,
  제 의미를 찾아가는 그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질 수 있을테니 말이지요.

  서재 이벤트를 통해 썩 괜찮은
  여름을 보냈습니다.
  이 여름이 오래 기억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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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04-07-12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기대를 제일 많이 한 서재는 바로 님의 서재였습니다...
허나....사진이 모든걸 다 말해주는것은 아니지만...무언가?? 좀 부족한듯한 느낌??
그래도 일단 약속한 추천은 했습니다..^^
님이 오래전부터 책장정리를 하는것을 지켜보았고...그래서 님으로 인해 전 따로 페이퍼도 만들었고....님이 소장하고 계신 책들도 마음에 들고.....님도 마음에 들고...ㅎㅎㅎ
지금 저이미지사진이 제일 보기 좋아요...ㅎㅎ

아~~ 이거 이러다 조작된 김지님의 극성팬으로 오인받겠습니다..ㅎㅎㅎ

브리즈 2004-07-1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완의 서재에 담긴 kimji 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그 마음만 같다면, 제 서재를 비롯한 세상의 어떤 서재도 아름다울 텐데요.
kimji 님의 서재 정리를 내내 보면서 부지런함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책에 대한 애정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렇다고 일상의 사소함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도 또렷한 파문을 느꼈었답니다.
좋은 결과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