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1월편을 느지막히 올리는 통에 일찍 닥쳐온 마감일로 편집팀은 분주했습니다. 구정 연휴가 참 길지요. 간만의 휴식에 몸과 마음을 맡겨버리고, 따뜻하고 평온한 2월이 되시기 바랍니다. (안 보이는 분들이 몇 분 있지요. 곧 추가될 예정입니다. 커피사기 내기를 했는데, 과연 누가 내게 될 지! :) )

"역시 대단해"

 언젠가는 읽어야겠지, 라고 생각하고 따로 보관해 둔 책들. 그 중의 한 권을 꺼내들었다. 출간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소개도 하고 많이 팔기도 했지만 정작 나는 자세히 읽지 못했던 책이다. 좋은 책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아마도 '주제가 너무 진부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생각과 달리 그의 이야기는 진부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혁신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쉽게 풀어낼 수 있다니. 그가 가진 통찰력 그리고 쉽게 표현해내는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책을 읽다 볼펜을 찾아들고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밑줄 긋는 부분이 점점 많아진다. 책을 읽다 잠시 멈추어 선다. 생각한다. 그리고 밑줄을 긋고 또 생각한다. 멈추어 서는 시간이 길어지고 나의 생각은 점점 혁신이라는 주제를 파고들며 생각을 확장해간다. 내 업무,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사회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 바꿔볼만한 것은 없을까.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없을까...
 
가끔씩 가진 능력에 비해서 과대평가 받는 사람들이 있지만 피터 드러커만은 아니다. 대가라는 말이 전혀 부족함이 없다.



 


"Why do I keep counting?"


아직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은 새해건만 문득 불안감이 엄습,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대충 이런 이미지로- 촛불이 켜진 방, 홀로 무릎 꿇은 나는 단독자로서(어쩐지 나는 ‘로써’가 어울릴 듯한 기분이 들면서) 신 앞에 기도한다. “쎄뇨르, 헤수스(Senor, Jesus)...”로 시작하는 그 기도는, 온갖 참회와 고해의 뜨거운 눈물을 지나 블루지한 기타 솔로(대략 23분)로 마무리 되는데… 그런 장면을 그릴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 당장이라도 스페인어 학원과 기타 학원을 등록하고, 동네교회라도 기웃거리고 싶은 마음을 참기 힘들어지지 말입니다(겨울바람이 매서워 다행이지요). 그것이 바로 내가 살면서 깨닫게 된 이미지 트레이닝의 힘이라고 하면 너무 싱거운 농이겠지만.

 

 

 

 

기타는 백날 쳐봐야 A-C-Em-G 겨우 하는 수준이고, 스페인어라고는 은지원의 ‘미 까사’ 가사를 흥얼거리는 것이 전부이지만, 기도만은 종종 하고 있다. 한 번도 신자인적은 없지만 그렇게 되었다. 완벽한 절대자에 대한 관념이 완벽하지 않은 나에게서 나올 수 없으므로…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은 것은 물론 아니고. 그것이 카뮈적인 반항이든지, 오에적인- ‘신 없는 인간의 구원’ 같은 문제이든지간에, 결국 앞서 존재하는 것은 신이었으니까. 문제는 존재증명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조건으로 (그로부터!)던져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하지만 도무지 모르겠어서 이제는 조금 대화를 시도하고 싶다는 정도? 한마디로 돌아온 탕아 되겠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건 분명하다)

 

 

 


그 계기는 사실 아주 사소했다. 전직 종교담당MD 김*욱 씨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조지 뮬러의 기도 응답수첩]이란 것을 던져 주었고, 깍두기 여덟 칸에 우선순위를 긴급/작정/신유/일반으로 나누어 기도를 적고, 옆에 하나님의 응답을 적는 조금 우스운 모양새(*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주로 긴급에)의 그것을 들여다본 것이 시작이었으니까. 비웃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지난 연말, 남들보다 100년 늦게 읽었던 <파이 이야기>의 파이가 나와 같은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고, 퇴근해서 틀었던 TV에서는 [하우스 vs 신] 에피소드가 하고 있었다면? 나는 이 모든 것을 우연이라 생각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고, 그렇다고 무슨 뜻인지 알아낼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융 선생이라면 비웃지 않았을 터. 하여 기도를 시작했다는 말이다.

설을 앞둔 월요일 새벽, 아직 응답을 받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코헨 아저씨가 야한 목소리로 ‘할렐루야’를 불러주시는 지금, 나 역시, “낙관하고 있습니다!” 라고 씩씩하게 말해 볼까 생각중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내 기도의 내용은 언제나, 브랜든 플라워스의 노래마냥, "Help me get down / I can make it / Help me get down / Help me get down / I can make it / Help me get down / If I only knew the answer / I wouldn't be bothering you" 딱 그 만큼이다. 나 역시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 저 위의 누군가를 귀찮게 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조금 울며 떼써보고도 싶다고 한다면, 너무 엄살일까? 엉크, 엉크.  

 

 

 

 



"Do what you wanna do"

'단순화를 넘어 모 아니면 도로. 1월 내맘대로 존책, 에서 천명한 'simplify'는 적정선을 넘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째서 손에 잡히는 것이 잡히지 않는 것보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두냐, 버리느냐'의 기로에서 기준은 매분 매초 바뀌었습니다.

당신도 그렇겠죠? 마늘은 절대로 먹지 않지만 닭과 함께 고아 삶아진 마늘은 괜찮고, 윗사람에게는 존댓말을 해야겠지만 이 사람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니까 반말을 반 섞어도 괜찮고. 마늘이 아니고 파라도 괜찮아요. 윗사람이 아니고 아랫사람이라도 상관없구요. 자꾸 완벽하라고만 이야기하는 이 세상에서라면, 조금쯤은 자신에게 관대해야 위안을 얻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너무 관대했었나봐요. 정신을 차리고보니 주위에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네 귀퉁이가 비어버린 방 가운데 앉아 전화를 하면, 제 목소리가 모서리와 천장에 부딪히고 다시 전화기로 돌아와요. 바닥에 엎드려  '이 자식 너무 잘난 척하잖아'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문득 꺼내드는 <풀하우스>를, 사랑하는 M언니가 공역하신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를 읽고 있습니다. 온기를 품은 고양이 세 마리가 어느덧 가슴팍 밑으로 모여듭니다.

...연말도, 정초도 나와는 무관해. 두어 사람은 전화를 할 것도 같은데 오지 않고. TV는 괜히 없앴나, 뭘 해보겠다고. 생각만 하던 그 일 언제쯤 할 수 있을까. 부재중전화 2건이 신경쓰이지만 모르는 번호라 다시 걸고 싶지 않아. 하지만, 혹시...

그런 당신과 나를 위한 노래예요. <Mocca>의 'Do what you wanna do'. 부디, 모두 행복했으면 싶어요.

모두가 행복하다면, 모두 기분이 좋다면
하고 싶은 걸 하세요. 하고 싶은 말을 해요.
마음 편하게 먹어요. 폭풍우는 잦아들테니까요.
자신에게 진실하세요. 그럼 모든 게 잘 될 거예요.

 

 

 

 



"당신이 무서워하는 것을 말하라"

친구가 꾼 어젯밤 악몽 이야기를 시작으로, 나와 그는 자신이 아는 무서운 이야기 보따리를 주섬주섬 풀어헤친다. 그런데 서로가 느끼는 공포의 간극이 너무 크다. 내가 한 무서운 이야기를 그는 우습다고 했고, 그가 한 무서운 이야기를 나는 짜증스럽다고 했다.

우리의 접점 없는 무서운 이야기 배틀 후, 나는 오랫동안 공포의 정체에 대해 생각했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소꿉친구에게 살해당한 아홉살짜리 여자아이가 자신을 살해한 친구와 그 오빠가 자신의 시체를 숨기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죽은 소녀의 시점, 반전의 반전 그런 요소들 말고 이 소설의 공포를 지탱하는 가장 커다란 줄기는 이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서 일어난 일이란 사실이다.

<태평양 특급>
그로테스크한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스퀘어 댄스'. 외계 생명체의 공간에서 사지가 뒤틀린 채 내 멋대로 움직이는 인간의 몸.

<어리석은 농부와 귀신들의 합창>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불러오는 파멸의 변주곡. 귀신들이 하는 말에 대답하면 안 된다는 할머니 말씀이 떠오르는 동화다.

그림 형제의 '두려움을 배우러 간 사나이'라는 동화를 보면 온갖 기괴한 상황에서도 공포를 느끼지 못하던 사나이가 가장 무서워한 것은 잠결에 뒤집어쓴 물세례였다.

당신이 무서워하는 것을 말하라. 그러면 당신을 조금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번만 읽어도 상위 1%로 간다"

3-4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친한 후배에게서 자기 직장 상사 중에 점심시간이면 ‘수학의 정석’을 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뇌 구조가 독특한 사람이거나 얼마나 심심했으면.. 네가 세상사는 이야기 좀 해주고 그러렴. 하고는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 기억이 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다는 ‘어딘가 수상한 사람’ 이야기를 몇 명이 더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30대가 넘어서 수학책을 보다니.. 그것도 휴일에.. 일주일 동안 수고한 자기 몸을 일으켜 머리에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다니...  다행히 나와 직접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중에는 그런 적잖이 수상한 자가 지금까지는 없었고, 계속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연하게 손에 들어온 수학책 하나. 부제가 ‘한번만 읽어도 상위 1%로 간다’이다. 남들 일주일 일할 분량을 하루에 다하고 간다고 착각하면서 복잡한 머리를 지하철에 싣고 퇴근 하는 길에 손에 있었던 책이 왜 이 책이었을까.  한번만 읽고 대한민국 1%로 가서 렉써썬을 타고 싶다는 독특한 생각을 하면서 펼쳐 들었다.

얼마 후, 난 수학공식을 읽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그렇게 집으로 가고 있었다. 수학을 취미로 하기는 쉽지 않겠고, 수험생은 더더욱 아니지만, 가끔은 단행본보다 지하철퇴근길에 ‘수학의 발견’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  30대 넘어서 수학책을 읽어보자! 그리고, <수학의 비결>은 고등학교 참고서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의 리듬.."

삶이란 게 원래가 하루하루 선택의 연속이고,  결국에 인생은 혼자 살아내는 것이라고.. 철없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이미 달관이나 한 듯 떠들어대던 기억이 난다. 살다보면 많은 부분 그러하기도 하고, 버겁다 느껴지는 날엔 더욱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다. 어디서부터 어긋나 있는지 모르게 점점 균형을 잃어간다거나, 고민에 휩싸이게 되는 날에,
 
모리 에토의'리듬'은 쉽고 경쾌하게, 존 러벅의 '성찰'은 경건하고 깊이있게,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언제인가 두껍고 약간은 지루한 책을 읽다 슬슬 지겨워지던 찰나에 머리나 식힐 겸 집어들었던 이 책. 어느 새인가 박자를 놓쳐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조바심이 나던 때에 본연의 내 '리듬'을 되새기게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의 눈엔 문제아일 뿐이지만, 사유키의 작은 우상 신지오빠는 신주쿠로 가기 전, 사유키에게 '나만의 리듬'을 잃지 말라고 얘기한다.
 
'이제부터 주위의 잡음이 신경쓰이고...네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거나 웃지 못할 때, 이 스틱으로 리듬을 맞춰봐. 너에게는 너만의 리듬이 있으니까.'
 
'그것을 소중히 여기면 주위가 아무리 변해도 너는 너인채로 있을 수 있어.'

 
나름의 기준과 소신으로 행하는 것들에 때때로 내가 지치고, 그저 남들이 지나가듯 내뱉는 말들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할 때면, '신지오빠'의 나지막한 얘기를 떠올리며,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 본다.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그 리듬을..다시 내가 원하는대로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존 러벅의 '성찰'은 여러 학자와 작가들의 언행을 담아 이루어진 책이라,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줄 긋고 기억하고 싶은, 또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문구들이 참으로 많다. 꼭지마다 인생의 중요 요소들을 고맙게도 잘 정리해 일러주고 있으니, 흔히 FAQ 항목에서 내가 원하는 유사 질문을 뒤져 보듯, 그날 그날 인생의 처방이 필요한 부분들에 집중해서 들춰보았더랬다.

서두르지 말라, 생각없는 행동이
정신의 속도를 망쳐 놓지 않도록 하라.
숙고하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라.
그러한 바탕 위에서 할 일을 결정하라.
서두르지 말라. 세월은 무모한 행동을
덮어주지 못한다.
쉬지 말라, 인생은 흘러간다.


순간순간 온전히 '나'인채로 살아가되, 주위에 귀기울일 줄 알고, 서두름 없이 의미없는 쉼도 없이, 한 번 뿐인 내 삶을 충만되게 채워갈 수 있길 빌어본다.
 


"2008년 1월 22일, 히스 레저가 죽었다."

2008년 1월 22일, 히스 레저가 죽었다. 에니스 델 마가 죽은 것이다. 며칠 뒤 새벽, 그가 사무치게 보고 싶어진 나는 가슴 떨리는 기차 소리와 기타 연주로 시작되던 [브로크백 마운틴]의 트레일러 동영상을 연신 돌려보고 있었으며, 문득 몇 개의 진실을 깨달아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나간다는 평범한 진리와, 마초 같은 인생 때문에 편견으로 시작된 한 배우와의 만남, 그리고 그처럼 편견으로 시작된 모든 관계들이 꼭 상상했던 방식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 등등을.
 
'내가 좋아하지만 곧 죽게 될' 사람들의 목록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오에 겐자부로는 <회복하는 인간>에서 시인 개리 스나이더의 글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적는다. '원한다면 구원은 온다 / 그러나 결코 네가 몰랐던 방식으로', 그러나 구원이 오기는 온답니까, 라고 되묻고 싶은 심정으로 살아가는 범인들에게 전도유망한 청년의 죽음은 그러한 구원의 가능성을 몰수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아쉽게도, 헐리웃 배우 하나 죽었다고 삶의 고삐는 늦춰지지 않는 법. 무던하게 지루한 일상을 헐떡이며 주파하던 나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선례처럼 소설과 영화의 완성도가 경이로운 균형을 이루는 예를 찾고 싶어진다. 가슴 벅찬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여 집어든 것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총기와 마약, 돈다발이 들어찬 서류가방, 국경과 보안관과 범죄자. 너무 빤한 건 아닌가. 그러나 사막을 건너는 낡은 트럭, 그 트럭에서 새어나오는 불길한 삐걱거림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한 비극의 한계를 한 단계 넘어선 장면을 보여준다. 차마 마주하기 힘들 정도로 안타까운 비극의 순간이 이 과장하지 않는, 현실같은 이야기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시거' 역을 맡은 배우가 왜 유수의 시상식에서 유력한 후보자로 지칭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우리의 에니스는 돌아오지 않겠지. 편견과 편애를 넘어 온갖 아름다움에 휩싸여 죽는 것. 다만 아름다웠을 (것이라 추측되는) 그의 넋에 평온이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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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5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8-02-0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o what do wanna do라는 말이 참 와닿네요. 요즘 그걸 위해 뭔가 벌이는 중인데... 커피 사실 분은 1명만 당첨되는 건가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