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표류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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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가끔씩 가격에 휘둘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정된 시간과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당연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럴수록 가격보다는 책 자체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책을 읽을 때 가끔씩 권수에 휘둘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작년부터 한달에 다섯권을 읽자는 목표를 세우고 지켜나가고 있는데....

바쁘다보면 금방 읽히는 내용의 책, 혹은 얇은 책에 먼저 손이 간다.

한달에 다섯 권 이라는 형식이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궁극의 목적을 앞서면 문제가 생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청춘표류'는 위의 두가지 잘못된 습관의 교집합이다.

많이 팔린 책들은 싸다. 많이 팔린 책들은 읽기 쉽다.

우리나라 출판계와 독자들의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읽기에 동참해 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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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틀만에 후딱 읽은 '청춘표류'는 결과적으로 그렇게 나쁜 기획은 아니었다.

(대반전 작렬! ㅋㅋ 그러나 저자라는 안전핀은 고려했다.)

대기업에 다닌지 만 8년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나의 인생행로에 경종을 울려주는 11명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표류하던 청춘기를 보냈으나,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세계 최고가 된 장인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 겪었던 방황과 노력의 시간들은 정말 대단하다.

(다치바나 다카시 역시 지식의 축적과 처리, 지적 결과물의 도출 분야에 있어서는 매우 집요한 사람이기에 이 고수들에게 동질감을 느꼈을 것 같다.)

혹자는 이들이 가진 직업의 영역(원숭이 조련사와 나이프 제작가, 칠기장인 등)에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기에

세계 최고가 되기가 경쟁이 치열한 다른 분야보다 어렵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 최고라는 것은 역시 보통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며, 이들의 집요한 노력은 절대 폄하할 수 없다.

 

노동(직업)은 세상과 소통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프로이트도 "일과 사랑"이라는 사람이 살아갈 때 신경써야 할 가장 중요한 두가지 영역을 확실히 정해 주었다.

이 책의 주인공 중 한명이 네오 프로이디언인 마르쿠제가 노동에 대해 쓴 이야기를 감명깊었다며 인용했다.

 

" 노동 이외의 것에서 유토피아를 찾지 마라. 노동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아라. " - 청춘표류, 33페이지

 

전적으로 동감한다.

즐겁지 않으면 그것이 유토피아 이겠는가?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 또 다시 반전을 도모! )

- "청춘 표류"는 그 유토피아를 찾는 전환점이 표류에도 불구하고, 재기할 수 있는 청춘 시점으로 한정시켜 놓은 잔인한 제목은 아닐까?

- 아무리 혈기 왕성한 청춘이라도 배곯을 것을 걱정하면서 하는 노동은 즐거울 수 있을까?

- 엄청난 고생을 뻔히 보면서 표류를 격려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 그 사회의 기본적인 시스템이나 프로세스가 잘못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에서 이 책이 나온 것은 1988년이다.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실제적으로 주도해 나가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신자유주의가 확장되면서 사회적 안전망은 점점 사라지고, 경쟁은 심해지고, 부의 편중도 확대되기 시작한다.

안전망 없는 사회에서 부가 집중되어 있지 않은 영역에서 노동을 통해 유토피아를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며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개인적인 도전의식의 결여 만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치바나 상~!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찬란한 청춘에 표류하다 경쟁의 파도에 익사한 사람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싶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잘못된 사회구조도 예리하게 파헤쳐 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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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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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음악, 오디오.

이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들다는 것들에 동시에 빠져버린 사람이 있다.

문화평론가 김갑수씨.

그는 어느 건물 지하실에 자신만의 둥지를 틀고 커피, 음악, 오디오에 빠져 있다.

그것도 발만 담그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머릿속까지 푸욱 담그는 수준이다.

줄리아 홀.

그만의 작업실.

지구 위의 작업실.

그 작은 공간과 맞물려 있는 이야기들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 지구 위에 던져졌다.

기막힌 열정과 커피내음이 물씬 풍긴다.

대뜸 부러운가? 묻더니..

부러워 하란다.

부럽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코 하나 눈 둘

입 하나 귀 둘

얼굴을 구성하는 요소가 몇 개나 된다고.

생긴 것은 다들 제각각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가?

더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얼굴의 개성보다도 더 획일적이다.

그런데.

김갑수씨는 다르게 산다.

그의 삶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 지라도, 그와 같이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이야기거리가 되어 책으로 나오는 것이 오히려 획일적인 삶의 반증이다.

 

나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을 참을 수가 없다.

경제경영이 학문의 제왕 노릇을하고

시장이 권력의 자리를 점령하고

베스트셀러 대다수는 자기계발 지침서이고

재테크 요령이 일상적 관심사가 되고

연예인 사생활이 국민적 화제로 들먹여지고

교회에서는 헌금액이 적은 사람을 조롱하는 '천 원 송' 이 불리고

이라크, 이란, 북한 등의 나라를 '악'으로 규정한 미국 대통령의 주장을 별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 164페이지 중에서.

 

사실 이 책의 내용은 그닥 환상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저 다르게 세상을 사는 사람을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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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인 서울 Agit in Seoul - 컬처·아트·트렌드·피플이 만드는 거리 컬렉션 in Seoul 시리즈
민은실 외 지음, 백경호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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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외여행은 일반적인 여가가 되었다.

해외여행을 가기 전 설레임과 여행 중의 낯선 경험을 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다.

특히 여행 중의 시간은 너무나 아까워서 한시라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게 해 주고,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것은 바로 미리 그 곳을 경험한 사람들이 주는 정보다.

(재미없는 볼거리, 맛없는 먹거리를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시행착오를 생각해 보자. 끔찍하다.)

여행이 보편화되면서 여행가이드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양의 책자가 나오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런 책들의 투자대비 성능은 정말 대단하다.

비교적 싼 값에 깔끔한 호텔에서 묶는다거나,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점에 들어가거나, 생각하지도 못한 볼거리를 안내 받는다거나...

어느 하나만 있어도 책값은 보상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여행지의 환경이라는 것은 항상 바뀌는 것이기에 새로운 수요가 생겨난다.

 

해외여행에서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정보를 추구하지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곳에 대해서는 별 다른 고민이 없다.

아마도 시간도 숙박도 별다르게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경험도 역시 한정되어 있다.

열심히 마음먹어야  일년에 한 두 번 갈 수 있는 해외여행에 투자하는 것 보다는 우리의 일상을 보다 좋은 경험으로 채워가는 것이 더 현명한 것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곳(나의 경우에는 서울)도 외국인들이 찾아오면 알차게 시간을 보내려 애쓰는 곳이지 않은가?

 

의미있다고 검증된 정보는 가치가 있다.

시행착오를 해보기 전에는 가치에 대한 평가를 할 수도 없다.

열심히 발품 팔 시간도 체력도 없다.

이럴 때 누군가 발품을 팔아 알찬 정보들만 모아 놓은 뭔가가 있다면?

내 삶, 나의 여가는 굉장히 풍성해 질 것이다.

 

아지트 인 서울.

이 책이 그렇다.

엄청나게 발품을 팔아 놓은 책이다.

 

정동 정동길.

청담동 압구정로.

서래마을 서래로. 몽마르뜨 길.

경복궁 옆 효자로.

이태원 동 이태원 2길.

신사동 가로수길.

홍대앞 다복길. 미래길. 송정래길.

이태원2동 회나무길.

삼청동 화개길. 삼청동길.

신사동 멋샘길.

서교동 솔내길. 상수동 독막길.

대학로 동숭길.

 

와.... 

내가 사는 서울에 이렇게 멋진, 많은 길들이 있었단 말인가?

이 책으로 서울은 어느덧 나의 친근한 아지트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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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2-20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저자중 한명이 친구한테 더럽게 욕들어먹던 후배 기자라서 ㅎㅎㅎ 나왔을 때 옴마야, 했던 책이라지요 ㅋㅋㅋㅋㅋㅋㅋ
 
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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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동시에 서너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간은 아니고, 동일한 기간 내에 여러 책을 본다는 것이다.)

정신 사납기도 하고, 비슷한 유형의 책을 읽을 때면 다소 헷갈리기도 하지만 이 독서 방법이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이다.

이런 책읽기의 가장 큰 장점은 독서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다른 책을 읽는 방식은 그 책이 잘 읽히지 않으면, 독서 행위 자체가 중단된다는 단점이 있다.

(사람들은 의외로 관성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

 

이렇게 같은 기간 내에 여러 책을 읽다보면 그 책들 간의 레이스가 펼쳐진다.

어떤 책은 늦게 시작했지만 먼저 골인 지점에 도착해 있고, 다른 책은 지지부진이다. (우사인 볼트와 마이클 펠프스가 대결하는 것과 같이...)

물론, 읽히는 속도가 더딘 책이라고 나쁜 책은 아니고, 빨리 읽힌다고 좋은 책은 아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읽기 시작한 지 한참 만에야 골인 지점에 들어온 책이고, 더디 읽었지만 나쁘지 않은 대표적인 책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굉장한 서재를 운영하고 계시는 이현우씨가 이 책의 저자이다.  http://blog.aladin.co.kr/mramor/  ← 서재 주소

로쟈는 흔히 생각하는 로쟈 룩셈부르크의 로쟈가 아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에서 비롯된 필명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짝 암시하듯 이 분은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신 문학도(문학박사)이시다.

나도 한 때 소설을 즐겨 읽던 문학청년이었는데, 이제는 명확한 개념들과 개념들 간의 관계성이 확실한 글들만 좋아한다.

언젠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를 사서 앞부분을 읽다가 수많은 상징과 비유, 복잡함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소설가 박상륭의 '잡설품'이라는 책도 사놓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책장을 덮었다. (이를 악물고 '죽음의 한 연구'를 읽던 시절도 있었는데...)

문학하시는 분들이 펼쳐내는 그 화려한 사변의 잔치에 끼어들 에너지가 없다고나 할까?

 

로쟈의 인문학 서재도 이런 문학평론들이 모인 책이다. 블로그의 글들을 모아 놓은 이른 바 블룩(Blook).

이 책을 읽고 감탄한 것은 이 서재의 주인장이 읽어내는 놀라운 책들의 양이 아니다. (다독하시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다.)

정말 감탄한 것은 일종의 집요함(?)이다. 굉장히 비판적으로 책을 읽으며, 요목조목 따지는 깊이가 대단하다.

김규항의 텍스트에 대해서 이리저리 분석해 놓은 글이 있는데,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법한데도 문장과 태도, 논리에 대한 비판이 서릿발 같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들은 또 어떤가? 그저 "젠장, 번역이 왜이래? " 욕한번 하고 마는 것이 보통인데....

이 분은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세가지를 텍스트를 사다가 그 번역이 가진 잘못의 뿌리까지 캐내고야 만다.

 

자연과학하시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과학도 그 과학적 엄밀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문학하는 분들에게 알듯말듯한 우위를 주장한다.

흔히 논리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을 두고 구사하는 "소설쓰고 있네...." 라는 관용구가 내포한 생각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과연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것들이 문학(평론)가들의 집요한 태도에 비해 얼마나 당당히 그 엄밀함을 주장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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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노 리포트 -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
수전 조지 지음, 이대훈 옮김 / 당대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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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조지라는 이름을 장 지글러의 책에서 언뜻 보았었다. 이 책이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이유도 그 "언뜻" 때문이었다.

때때로 이런 우연이나 언뜻, 힐끔, 어쩌다 읽게되는 책이 굉장히 훌륭한 경우가 있다. 루가노 리포트라는 이 책이 바로 그렇다.

 

루가노는 스위스의 작고 한적한 마을 이름이다. 아주 조용하고 호수로 둘러쌓여 있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그런 마을.

이곳에서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리포트를 만들어 낸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수선화, 우엉, 양지꽃, 아니스, 에델바이스 등등의 식물이름을 필명으로 가지고 있다.

굉장한 보수를 받고 만드는 이 리포트에는 실명을 거론할 수 없는 내용이 들어있다.

위기를 맞고 있는 20세기 자본주의를 어떻게 21세기까지 아니 영구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아주 실제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픽션이다. 사실 이 리포트는 루가노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쓴 것도 아니다.

저자는 수전 조지라는 미국 출신의 여성이다. 그녀는 이제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한 프랑스 사람이다.

정치학을 전공했고, 그린피스에서도 오래 일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위의 상황설정은 천재적이다. 물론 이 리포트의 내용 자체도 균형과 깊이가 뛰어나다.(리포트의 내용은 픽션이 아니다.)

 

수전 조지가 설정한 천재적인 상황설정을 한번 살펴보자.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체제가 힘을 얻으면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 체제가 영원히 지속되길 바란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이 읽힐 확률은 상당히 낮다.

(한국 사회 기득권층의 독서량으로 따진다면 그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마치 증권사의 리포트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지속시키는 내용이 들어있다면? 이 책을 집어들 확률은 엄청나게 높아진다.

 

그렇다면 이 책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가? 제목만 그런 것이라면 일종의 속임수가 아닌가? 독자들은 실망하며 책을 내려놓지 않을까?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은 정말 신자유주의가 영원토록 지속될만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20세기 자본주의(신자유주의)가 지금처럼 지속되면 조만간 망하게 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이 체제가 영원하려면 바뀌어야 되는 항목들이 조목조목 언급되어 있다. 들어가는 비용과 이익을 명확하게 비교해 주면서...

 

신자유주의, 시장원리주의의 특징은 그 속도 때문에 멀게 생각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취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이윤은 "지금 당장" 취해야 한다는 진리는 자본주의를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자본주의의 존립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면, 장기적으로 얻을 훨씬 큰 이익을 놓치게 될 뿐 아니라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

수전 조지에 의하면, 환경오염과 양극화에 의한 사회불안, 인구문제 등이 그러한 예다.

 

환경 오염을 방치하거나 온난화를 방치하면서 얻는 이익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면 나중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클 뿐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무너져 버린다.

(호켄과 로빈스가 지은 책 Natural Capitalism이 그러한 내용이다.)

양극화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당장은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방치할수록 이익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들의 불안과 불만을 제어하는데 드는 비용이 훨씬 크게 될 뿐아니라 역시 체제의 존립까지 위협을 받게 된다.

 

1999년에 출간된 이 책에는 10년 후를 훤히 내다 본 것과 같은 내용이 꽉꽉 들어차 있다.

루가노 리포트를 읽지 않은 신자유주의의 적자들은 10년 후 거대한 회사와 은행들이 국유화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예전보다 많아진 거대한 태풍이나 이상 기후들에 시달리고 있다. 내전과 기아도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그들의 손에 모두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이나 다윈, 홉스, 맬서스, 니체, 하이에크, 노지크와 같은 사람들이 예찬하는 소위 "엘리트"들 말이다.

(수전 조지에 의하면 길게 보는 혜안을 갖지는 못한...)

자본이 최소한의 양심과 공공선마저 삼켜 버리는 그리고 끝내 "엘리트"들을 포함한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이 당연했던 광포한 신자유주의의 시대.

이 시대가 저물 때, 한번 일깨워진 탐욕과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도 같이 저물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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