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가노 리포트 -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
수전 조지 지음, 이대훈 옮김 / 당대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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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조지라는 이름을 장 지글러의 책에서 언뜻 보았었다. 이 책이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이유도 그 "언뜻" 때문이었다.

때때로 이런 우연이나 언뜻, 힐끔, 어쩌다 읽게되는 책이 굉장히 훌륭한 경우가 있다. 루가노 리포트라는 이 책이 바로 그렇다.

 

루가노는 스위스의 작고 한적한 마을 이름이다. 아주 조용하고 호수로 둘러쌓여 있어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그런 마을.

이곳에서 '21세기 자본주의의 유지 방안'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리포트를 만들어 낸다.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수선화, 우엉, 양지꽃, 아니스, 에델바이스 등등의 식물이름을 필명으로 가지고 있다.

굉장한 보수를 받고 만드는 이 리포트에는 실명을 거론할 수 없는 내용이 들어있다.

위기를 맞고 있는 20세기 자본주의를 어떻게 21세기까지 아니 영구하게 이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아주 실제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픽션이다. 사실 이 리포트는 루가노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쓴 것도 아니다.

저자는 수전 조지라는 미국 출신의 여성이다. 그녀는 이제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한 프랑스 사람이다.

정치학을 전공했고, 그린피스에서도 오래 일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위의 상황설정은 천재적이다. 물론 이 리포트의 내용 자체도 균형과 깊이가 뛰어나다.(리포트의 내용은 픽션이 아니다.)

 

수전 조지가 설정한 천재적인 상황설정을 한번 살펴보자.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체제가 힘을 얻으면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 체제가 영원히 지속되길 바란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책이 읽힐 확률은 상당히 낮다.

(한국 사회 기득권층의 독서량으로 따진다면 그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마치 증권사의 리포트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지속시키는 내용이 들어있다면? 이 책을 집어들 확률은 엄청나게 높아진다.

 

그렇다면 이 책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가? 제목만 그런 것이라면 일종의 속임수가 아닌가? 독자들은 실망하며 책을 내려놓지 않을까?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은 정말 신자유주의가 영원토록 지속될만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20세기 자본주의(신자유주의)가 지금처럼 지속되면 조만간 망하게 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으므로,

이 체제가 영원하려면 바뀌어야 되는 항목들이 조목조목 언급되어 있다. 들어가는 비용과 이익을 명확하게 비교해 주면서...

 

신자유주의, 시장원리주의의 특징은 그 속도 때문에 멀게 생각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취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이윤은 "지금 당장" 취해야 한다는 진리는 자본주의를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자본주의의 존립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면, 장기적으로 얻을 훨씬 큰 이익을 놓치게 될 뿐 아니라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

수전 조지에 의하면, 환경오염과 양극화에 의한 사회불안, 인구문제 등이 그러한 예다.

 

환경 오염을 방치하거나 온난화를 방치하면서 얻는 이익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면 나중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클 뿐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무너져 버린다.

(호켄과 로빈스가 지은 책 Natural Capitalism이 그러한 내용이다.)

양극화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당장은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방치할수록 이익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들의 불안과 불만을 제어하는데 드는 비용이 훨씬 크게 될 뿐아니라 역시 체제의 존립까지 위협을 받게 된다.

 

1999년에 출간된 이 책에는 10년 후를 훤히 내다 본 것과 같은 내용이 꽉꽉 들어차 있다.

루가노 리포트를 읽지 않은 신자유주의의 적자들은 10년 후 거대한 회사와 은행들이 국유화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예전보다 많아진 거대한 태풍이나 이상 기후들에 시달리고 있다. 내전과 기아도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그들의 손에 모두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이나 다윈, 홉스, 맬서스, 니체, 하이에크, 노지크와 같은 사람들이 예찬하는 소위 "엘리트"들 말이다.

(수전 조지에 의하면 길게 보는 혜안을 갖지는 못한...)

자본이 최소한의 양심과 공공선마저 삼켜 버리는 그리고 끝내 "엘리트"들을 포함한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이 당연했던 광포한 신자유주의의 시대.

이 시대가 저물 때, 한번 일깨워진 탐욕과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도 같이 저물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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