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동시에 서너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물론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간은 아니고, 동일한 기간 내에 여러 책을 본다는 것이다.)

정신 사납기도 하고, 비슷한 유형의 책을 읽을 때면 다소 헷갈리기도 하지만 이 독서 방법이 맞는 것 같다는 결론이다.

이런 책읽기의 가장 큰 장점은 독서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다른 책을 읽는 방식은 그 책이 잘 읽히지 않으면, 독서 행위 자체가 중단된다는 단점이 있다.

(사람들은 의외로 관성의 지배를 많이 받는다.)

 

이렇게 같은 기간 내에 여러 책을 읽다보면 그 책들 간의 레이스가 펼쳐진다.

어떤 책은 늦게 시작했지만 먼저 골인 지점에 도착해 있고, 다른 책은 지지부진이다. (우사인 볼트와 마이클 펠프스가 대결하는 것과 같이...)

물론, 읽히는 속도가 더딘 책이라고 나쁜 책은 아니고, 빨리 읽힌다고 좋은 책은 아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읽기 시작한 지 한참 만에야 골인 지점에 들어온 책이고, 더디 읽었지만 나쁘지 않은 대표적인 책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굉장한 서재를 운영하고 계시는 이현우씨가 이 책의 저자이다.  http://blog.aladin.co.kr/mramor/  ← 서재 주소

로쟈는 흔히 생각하는 로쟈 룩셈부르크의 로쟈가 아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에서 비롯된 필명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짝 암시하듯 이 분은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신 문학도(문학박사)이시다.

나도 한 때 소설을 즐겨 읽던 문학청년이었는데, 이제는 명확한 개념들과 개념들 간의 관계성이 확실한 글들만 좋아한다.

언젠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를 사서 앞부분을 읽다가 수많은 상징과 비유, 복잡함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책을 덮었다.

소설가 박상륭의 '잡설품'이라는 책도 사놓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서 책장을 덮었다. (이를 악물고 '죽음의 한 연구'를 읽던 시절도 있었는데...)

문학하시는 분들이 펼쳐내는 그 화려한 사변의 잔치에 끼어들 에너지가 없다고나 할까?

 

로쟈의 인문학 서재도 이런 문학평론들이 모인 책이다. 블로그의 글들을 모아 놓은 이른 바 블룩(Blook).

이 책을 읽고 감탄한 것은 이 서재의 주인장이 읽어내는 놀라운 책들의 양이 아니다. (다독하시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다.)

정말 감탄한 것은 일종의 집요함(?)이다. 굉장히 비판적으로 책을 읽으며, 요목조목 따지는 깊이가 대단하다.

김규항의 텍스트에 대해서 이리저리 분석해 놓은 글이 있는데,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갈 법한데도 문장과 태도, 논리에 대한 비판이 서릿발 같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들은 또 어떤가? 그저 "젠장, 번역이 왜이래? " 욕한번 하고 마는 것이 보통인데....

이 분은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세가지를 텍스트를 사다가 그 번역이 가진 잘못의 뿌리까지 캐내고야 만다.

 

자연과학하시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과학도 그 과학적 엄밀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문학하는 분들에게 알듯말듯한 우위를 주장한다.

흔히 논리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을 두고 구사하는 "소설쓰고 있네...." 라는 관용구가 내포한 생각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과연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것들이 문학(평론)가들의 집요한 태도에 비해 얼마나 당당히 그 엄밀함을 주장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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