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적 배신자 되기 진실을 추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잠재적인 배신자이다. (진리와 진실은 다르다고 하겠다. 진리가 좀더 궁극적이고 객관적인 것이라면, 진실은 보다 개인화된 진리라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진실이 있듯이...) 그런 의미에서 Noam Chomsky는 대단한 잠재적 배신자이다. 세계적인 명성의 언어학자이자 탁월한 식견을 가진 정치비평가인 놀라운 지식인인 Chomsky를 보고 배신자라고 하다니? 이런 의문이 들겠지만.... 그렇다! 확실히 그는 잠재적인 배신자이다. Chomsky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해 맞서는 반미주의자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반미주의자가 아니며, 그가 하는 일은 단지 그가 가진 진실의 잣대에 벗어나는 그의 조국 미국이 저지른 무자비한 힘의 행사 방식과 그 방식이 유지되는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다. 배신자는 신의를 저버리는 관계의 파괴자를 뜻한다. Chomsky는 관계보다는 진실의 기준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집단이나 개인이라도 그의 기준을 넘어선다면 그는 관계에 얽매이기보다는 진실의 편에 설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잠재적으로 배신자이다. Chomsky와 같은 인물은 어떤 막강한 이익집단에 속하여 공고한 관계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명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받았을 유혹을 짐작할 수 있기에 그가 물리쳐 온 타협과 안주에 대한 저항은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힘을 바탕으로 한 자유시장경제의 상징이 무너졌다. 이 충격은 유일 강대국의 자존심 회복에 있어서 노골적으로 눈에 보이는 방식의 힘의 사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가시적으로 보인 동계올림픽에서의 본 힘의 행사방식과 북한에 대한 악의 축 발언은 평등과 억압에 대한 반골정신을 숨쉬듯 달고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초유의 반미감정을 불러왔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사사로운 "관계"에 대한 감정적 대응 방식일 뿐이다. 분노의 감정이 사라질 즈음 같이 사그라드는 감정의 일시적 분출. 만약 객관적으로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고 싶다면, 자의적으로 불량과 양호의 기준을 나누는 오만한 힘에 대해 잠재적 배신자가 되어보려면, Chomsky의 이 대단한 책을 봐야 할 것이다. 이 작다면 작은 사각형에는 중남미에 대해 미국이 행사하는 부당한 힘과 동티모르에 대한 진실, 이러한 체제가 유지, 확대되기 위한 구조적인 방식들에 대한 그의 통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