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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ㅣ 믿음의 글들 9
엔도 슈사쿠 지음, 공문혜 옮김 / 홍성사 / 2003년 1월
평점 :
엔도 슈사쿠의 1966년 소설 <침묵>을 읽었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를 들으면 음식을 떠올리는 것과 같이, 내게 있어 일본 소설은 "일상의 가벼움"을 떠오르게 해왔다.
하지만 소설 <침묵>은 그 조건반사의 연합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대단한 소설이다.
심연과도 같은 인간의 마음과 그 마음 속의 굳은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의 갈등이 <침묵> 속에 있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의 주인공들이 처한 처절한 갈등 상황이 내 현실이 아닌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을 하면서 얻게 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은 소설이 주는 최고의 미덕이다.
(가장 안전한 탈 것을 타고 가장 고약한 볼 것을 보는 느낌이랄까?)
인간은 나약하다. 전지 전능 완벽하게 지혜롭고 완벽하게 강하다면 그것이 바로 신이다.
다른 한편 인간은 강하다. 나약함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포르투갈의 신부가 1600년대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면서 겪게 되는 이 이야기는 인간과 신 사이의 믿음을 주제로 한 묵직한 소설이다.
무엇인가를 믿는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추호도 의심이 없는 단 하나의 상태.
하지만 인간은 나약해서 믿음의 상태를 지속하기가 힘들다. 아주 작은 틈새로도 흘러드는 의심 때문이다.
신부 로드리고는 신을 믿는 인간이 난처한 상황을 겪게 되었을때, 침묵하는 신을 원망한다.
여기서 난처한 상황이란, 고문에 의해 배교를 강요받는다거나,
자신의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일본인 신자들이 죽음을 당하는 극도의 갈등상황이다.
믿음의 대상을 형상화한 그림을 발로 밟고, 침을 뱉고,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침묵하는 신.
그 믿음을 갖게하는 수단이자 그 믿음의 목적인 '사랑'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신부.
엔도 슈사쿠는 이 무지막지한 상황을 설정한 후 에둘러 가거나, 값싼 반전없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난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평화'라는 상황에 감사하고, 내 속에 있는 나약함을 대면하고, 소설 속의 갈등상황에 가슴 조렸다.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내밀하고 섬세한 성찰에서 비롯된
종교적 감성이 갖는 힘은 실로 대단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많은 것을 용서하게 하고, 많은 것을 인정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