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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카가 지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에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이 책은 구글을 위시한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우리의 뇌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바꾸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같은 도구들이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 심지어 뇌의 구조까지 바꾸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데요.

 

시계라는 도구가 발명되면서 시간이라는 관념이 어떻게 인간의 생활영역에 침투하고, 영향을 미치는지도 이야기합니다.

최초의 기계식 시계를 조립한 곳은 수도원이었는데요. 수도사들이 정확한 시간에 맞춰 하루 일곱번 기도하기 위해서 였다네요.

사람들이 하루를 잘 분배해 생활할 수 있도록 시간을 처음으로 알린 것도 교회 종탑이었구요.

이후로 정확한 시간을 위한 욕망이 유럽의 왕가까지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태고로부터 시간은 주어져 있었지만, 시계가 발명되고 나서야 사람들의 생활에 영역을 미치게 되었다면...

시계의 발명은 시간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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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 신뢰할만한 출판사였던 녹색평론사에서 관련 책이 나와서 사 봤었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경제학자 우석훈과의 첫만남이었다. 와~ 멋진 책이었다.

그 후로 우석훈의 책들이 나오는 족족 사서 봤다. 88만원세대는 10만부 이상 팔린 사회과학 서적으로 대한민국에 큰 반향을 이끌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화제작을 써 냈다. 놀라운 속도로...

 

하지만, 우석훈의 블로그를 살펴보면서 그에 대한 나의 평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강퍅한 성미에 우월감과 열등감이 양극으로 치닫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특정인들을 쓰레기 취급하거나 진심어린 덧글을 지우는 따위의 일도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 특정인 : 영화감독 봉준호 / 녹색평론의 김종철

- 진심어린 덧글 : 대한민국 대안경제 시리즈 1,2권에 비해서 점점 성의없어지는 후속작들이 안타깝습니다.

                         1,2권을 같이 쓰셨던 박권일씨와 같이 작업하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의 방향이 그가 전공한 생태경제학과 일치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고,

인성과는 별개로 그의 시각과 정보들을 얻을 수 있어서 그의 블로그를 계속 살폈다.

또한, 엮인글과 같은 이유로 "디버블링"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바로 구매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http://retired.tistory.com/1184

디버블링이라는 책에 오류가 네티즌의 지적으로 밝혀졌다. 우석훈 박사는 '착각'했다면서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착각'이라는 단어보다는 '몰이해'라는 단어가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그의 인생최대의 공력을 실어 만든 저작은.... 그 제목대로 되고 말았다.

디버블링! 다시 말해 우석훈이라는 이름의 거품이 빠진 것이다.

책의 오류는 경제학의 수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 수식에 대한 몰이해가 경제학자로서의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 지 나는 가늠할 수가 없다.

덧글들을 살펴보니, 한 챕터 정도가 통째로 잘못된 것 같은데...(책은 아직 배송중)

물론, 그 공식의 몰이해와 그 몰이해를 바탕으로 쓰인 한 챕터가 '생태경제학'이라는 전체 관점을 흔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석훈에 대해 디버블링이라는 단어를 쓰며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이유는....

우석훈이라는 이름에 낀 (그가 스스로를 B급 경제학자라고 부르고 있음에도) 버블을 꺼뜨리고, 제자리를 찾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블로그에는 그의 팬들이 마치 홍위병처럼 문제를 지적한 사람을 비하하고 있었다.)

우석훈 박사에 대한 폄하나 인신공격 포스팅이 아니다. 합리로 나아가기 위한 제자리 찾아주기 정도로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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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소설집 둘  : 폭소. 꿈꾸는 마리오네뜨.

권지예는 참 괜찮은 작가다. 그녀의 소설은... 뭐랄까....

감춰진 무엇인가가 있다. 그리고, 구애받지 않는 마인드.

지적이고, 때론 열정적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아니면 작가들의 시선?

소설가들은 때때로 세상을 보는 유사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누구나 그렇기는 하겠지만...) 다소 과장된 경험들....

물론 그것이 없다면 그것은 소설이 아니겠으나....

재미와 울림... 동시에 갖는 것은 쉽지 않다. 

확실히 그녀는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여자다.
 

소설들의 분위가 다소 비슷하다는 것만 빼면 흠잡을 데가 별로 없을 정도로.... 


김종은 장편소설 2003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 서울특별시.

서울 특별시는 정말 특별한 도시다.

하지만, 난 이 도시를 해학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그 작가가 나와 동갑이고, 서울 토박이일지라도....

뭔가 비릿하고, 어두운 구석이 있는 좀더 잔인해 보이는...

그런...

사실 내게 도시의 냄새가 가장 짙게 나는 소설은 최인훈의 소설이다.


박민규 장편소설.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작 : 지구영웅전설.

발랄하다. 정치적인 구석이 많이 있다.

재미나다. 쉽게 읽힌다.

안암역 가는 지하철 왕복과 몇시간을 더해서 다 읽었으니..

이젠 이렇게 가벼운 소설에도 상을 준다.

늙다리 씨들도 세상의 가벼움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거 같다.

비록 그들에게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었냐고 질책했음에도.

이 책을 촘스키와 진, 사이드 등의 책 사이에 꽂는 것도 생각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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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인가? 가을인가? 일주일에 네권의 소설을 읽었는데....

그때 끄적거렸던 메모를 찾았다. 넷중에 하나만 읽으라면 단연 <폭소>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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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10-03-2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누가 저한테 권지예의 4월의 물고기 라는 책에 관해 얘기했는데...
음... 폭소! 읽어봐야겠군요 ㅎㅎ

동녘새벽 2010-03-22 08:14   좋아요 0 | URL
제목과 달리 슬픈 내용들이예요.ㅋ
 

꿈 과 현 실 과 금 지 와 저 항 과…….

허기(虛飢)나 몰아내려 아무렇게나 비빈 점심 밥그릇에 콩이 설걱인다. 유달리 매끈거리는 한 개의 콩을 집어내다 실패하기를 서너차례….. 얼굴까지 벌개지며 기어코 문제의 콩을 집어낸다. 젓가락 사이의 콩을 바라보니 입가에는 피식 웃음이 배어 나왔다.
이렇게 문득 스틸 사진과 같은 삶의 단면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때면, ‘현실’이란 두 글자가 실체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현실’ 뒤에는 그림자처럼 늘어붙은 ‘꿈’이 숨쉬고 있다. 현실과 꿈은 이렇게 단짝 마냥 언제나 붙어 다니다가 일상(日常) 속에 환상(幻想)적으로 문득문득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것이다.
그렇다. 현실과 꿈은 서로 뗄 수 없는 단짝이다. 꿈과 현실은 서로 다르지 않은 이형동체(異形同體)의 존재인 것이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도 있지만, 극과 극을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다른 것으로 확대해석하면 안된다. 양극단이라는 것은 동일한 컨티넘(continuum)을 가정한 말이기 때문이다. 본래 극과 극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에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정말 다른 것은….. 음….. 예를 들자면….. 음…….
지쳐서 더 이상 뛰지 못하는 어린 누(gnu)와 조밀하게 지어진 아파트에서 사생활을 보호하는 버티컬 블라인드(vertical blind). 이런 것들이 정말 다른 것일게다.

에로스와 문명 – Marcuse ; 꿈과 현실.

니체에게 디오니소스는 꿈이고, 아폴론은 현실이다.
프로이트에게 이드(id)는 꿈이고, 에고(ego)는 현실이다.
마르쿠제에게 에로스(eros)는 꿈이고, 문명(civilization)은 현실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는 사람들을 명료하게 해준다. 그래서 때로는 이분법이 갖는 엉성함과 전체주의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둘로 구분하기’는 유용하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둘이 아니라던 꿈과 현실을 거친 기준으로 이간질 시켜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꿈은 폭발적인 생산성의 원천이고, 근원적 에너지다. 이것은 자유롭기가 기체와 같아서 잡으려해도 좀처럼 잡을 수 없고,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장난스레 유랑한다. 굳이 나누자면, 철학과 문학, 신화와 문화가 꿈의 영역이다. 본질적으로 자유로워야 하는 속성을 지닌 것들.
현실은 딱딱한 속성을 지닌다. 정적이고, 정제되어 있으며, 세밀한 짜임새를 자랑한다. 내맘같지 않게 엄격하기도 하고, 일의 성격이 강하다. 법과 도덕, 정치와 경제가 현실의 영역이다. 본질적으로 위험한 것을 금지하고 안정을 원하는 속성을 지닌 것들.
어느 영역이 좋고, 어느 영역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꿈은 현실을 만드는 원동력이고, 현실은 새로운 꿈의 자료를 제공한다. 이 두가지는 적절한 긴장과 균형 속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마르쿠제는 꿈을 억압하는 것에서 현실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네오-프로이디안이라고 할만하다. 기본적인 억압은 고삐 풀린 말의 힘을 유용한 노동력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 날아다니기만 하는 것을 모아 결정(結晶)을 이루는 것이다.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것에 대한 문화적 변용. 이것이 바로 문명의 발생이다. 이것이 계통발생이다. 그리고 개체발생은 이미 프로이트가 이야기 했다. id에 대한 억압이 만들어낸, 현실원칙을 따르는 ego . 다르지 않다.

문화가 갖는 금기적인 속성은 여기서 드러난다. 그러나 마르쿠제가 말하는 억압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최소한의 억압을 ‘기본억압’ 이라 불렀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억압의 강도가 지나치다. 그것은 딱딱해 지기 쉬운 속성을 지닌 현실에 대한 자살 행위다. 지나치게 딱딱한 것은 죽은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현실은 너무 딱딱한 것 같다.

공산당 선언 – Marx & Engels ; 꿈꾸는 것은 금지된다.

1848년 1월. 30세와 28세의 두 젊은이가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의 결과가 ‘공산당 선언’이다. 이들의 꿈은 그 후 펼쳐질 현실에 막대한 동력을 제공했다. 그들의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었으며, 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그들의 꿈은 여전히 중요한 듯 보인다.

1994년 20세의 젊은이가 그들의 꿈을 4500원에 엿보려 했을 때, 서점 직원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그것은 금서(禁書)라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 또 다른 대형서점에서 20세 젊은이는 아무런 제지없이 ‘공산당 선언’을 구입할 수 있었다. 엉성하기 그지없는 과잉이라기 힘든 과잉억압이다.
꿈은 본질적으로 현실의 지배자들에게는 위험한 일이다. 공고한 그들의 업적을 부정할 지도 모를 그런 자유로운 것. 하라는 영어공부나 열심히 하고, 군말 없이 현실세계의 듬직한 일꾼이 되어주면 참 좋겠는데,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꿈이라니…. 영 마땅치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주요 경계 대상은 야한 꿈이다. 단지 꿈인데 그것이 그렇게 위험할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어쨌든 장정일과 마광수 등 꿈꾸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꿈으로 인해 사법처리까지 받아야 했다. 현실의 가치로 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실의 입장에서 보면 생산성 없고, 미숙해 보이는 Wet dream(夢精)일지라도….. 현실의 속성이 안정과 생존이듯 꿈의 속성이 자유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조금 과하다 싶어도 말이다.

형성된 현실이 자기 방어를 위한 노력을 이해한다. 그리고 나쁘지 않다. 문명은 본래 이런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정도이다. 지금 꿈은 현실에 비해서 터무니 없이 평가 절하되고 있고,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다.

권력과 지성인 – Said ; 금지된 것을 꿈꾼다.

사이드에게 지성인은 꿈꾸는 사람들이고, 권력은 현실이다.
지성인은 좀더 독창적이고 세련된 꿈을 꾸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이드는 이런 사람들에게 권력의 금지와 회유에도 꿋꿋하게 꿈꿀 것을 촉구한다. 꿈꾸는 자의 역할은 현실에 활력을 주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독특한 꿈을 생산해 내는 것이지 현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지성인들은 현실을 위해 권력에 흡수 고용되어 현실을 공고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구애됨은 꿈의 본질을 망각한 것으로 이것들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꿈은 근본적으로 기존의 것에 대한 의심, 빈정거림, 저항의 속성을 가져야 한다. 바타이유가 “철학은 철학을 부정할 때, 또는 철학에 조소를 보낼 수 있을 때에 가능하다.”고 <에로티즘>에서 말했던 것 처럼……
꿈은 끊임없이 자기 부정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꿈은 언제나 자기 파멸적이다. 꿈은 늘 새로워야 하고, 저항적이어야 한다.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심한 억압으로부터 꿈의 가치를 되돌리기 위해서, 이간질된 꿈과 현실을 다시 화해시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꿈과 현실은 둘이 아니다. 꿈이 위축되면 곧바로 현실은 저열해지고 만다. 활기없고, 딱딱해서 썩어가는 환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현실을 위해 꿈을 꾸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꿈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기능을 한다. 꿈과 현실은 둘이 아니기에 그 가치는 동등하다.

꿈꾸는 망아지들이 고삐를 풀고 자유롭게 더욱 자유롭게 뛰어다니다가 행복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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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문명, 마르쿠제, 김인환 역 ;
프로이트 이론을 철학적, 사회적으로 연구한 책. 프로이트를 20여년 꾸준히 읽으셨다는 김인환 선생의 번역이 매우 훌륭하여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 엥겔스 ;
마르크스의 저작 중 가장 널리 알려지고 읽혀진 고전으로 길지않은 분량과 친절한 해석, 원문이 같이 들어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 권력과 지성인, 에드워드 사이드 ;
에드워드 사이드가 1993년 영구 BBC의 리스 강좌에서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지성인의 구속되지 않는 역할과 태도를 강조한 이책은 올바른 지성인의 표상을 보여주는 저작이다. 2003년에 돌아가신 이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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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10-03-1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서재브리핑 눌렀을 때 깜짝 놀랐다는 거
땡스투를 향한 욕망? ㅋㅋ
네이버에서 미처 못본 글도 많네요
다시 시간내서 읽으러 와야겠어요
특히 왠지 이 글 탐나는... 뭐랄까 이 밤에 강의 듣고 가는 기분 ㅎㅎ

동녘새벽 2010-03-15 08:50   좋아요 0 | URL
네이버에 있는 글이예요. 모두. 꼭 땡스투 아니더라도 카테고리 하나는 알라딘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영 진도가 안나가네요. ㅋ
 


요즈음은 소설이 잘 팔리지 않는단다. 직장인들이 사지만 읽지는 않는 경영/경제 서적만 팔리는 눈치다. 그런데 김영하라는 작가는 꽤나 팔리는 것 같다. 경영학을 전공한 이 68년생 작가는 뭔가 셀링포인트를 아는가 보다 싶었다. 후회 없을 거라고 추천한 후배에 말에 따라 한꺼번에 세권의 책을 샀다. 남들에게 신중한 모습으로 비치는 내게 있어서 한번도 접하지 않는 작가의 책을 한꺼번에 세권이나 산다는 것은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랄랄라하우스, 오빠가 돌아왔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렇게 세권. 차례로 잡문집, 소설집, 장편소설이다.

사실 요즈음 많이 바쁜데...
바쁠수록 짬짬이 소설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은 익히 아는터라...
일요일을 맞이하야 틈틈이 랄랄라 하우스와 오빠가 돌아왔다의 소설 세편을 읽었다.

랄랄라 하우스는 자신의 미니홈피를 책으로 꾸민 것이다. 즐거운 미니홈피라는 뜻이겠지.
일본 출판계에서는 이런 방식이 꽤나 인기가 있다고 하던데...
김영하의 경우는 소설에서 얻은 인지도를 통해서 잡문집을 내서 경제적 안정을 꾀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은 이 사람이 가진 작가로서의 대중적 매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살아가는 방식은 사실 좀 부러웠다.
원하는 취미를 누릴 수 있고, 가고 싶은데 여행다닐 만한 시간과 돈이 있는 것 같아서...
이 잡문집에서 번돈도 그의 취미와 여행경비로 쓰일 법하다.
문학에 대한 챕터를 빼놓고는 그다지 재미난 지 몰랐다.

그나마 재미난 이야기는 미국의 한 여류예술가가 자신이 사진에 찍히는 모습이 언제나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쉬워서 (사진찍히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자신이 찍기에는 어렵고... 등등의 이유를 공감할 것이다.) 낸 계략이다.

그 계략인 즉, 흥신소에 자신의 일상을 조사해서 사진으로 찍어 오라는 의뢰를 했다는 것. 물론 자신임을 밝히지 않았고, 여인은 일정 기간후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일상속에서 자연스레 찍힌 사진을 받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과장된 표정과 몸짓이 없는... 그녀는 그중 잘나온 사진으로 전시회를 열었단다.

그리고 오늘 읽은 오빠가 돌아왔다 의 소설 세편은 꽤나 괜찮았다. 
 

그의 소설 세편은 속도감 있게 읽히고, 유머러스 하다는데서 이시대가 갖추어야 할 소설의 덕목을 두루 지녔음에도 이제 고전이 된 한국소설들의 느낌도 간직하고 있다.  극단적인 소재를 취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지만, 사실 그 극단적인 소재는 우리의 일상이다. 가족과 性, 권력 등에 대한 일상적인 가치관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방식이랄까?  
 

긴박함을 잃지 않는 구성이나 말하는 이의 시선과 생각이 거침없이 자유롭다는 것도 대단하다.
그래서 그에게 영화판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이은주의 유작인 주홍글씨도 그의 소설 두개가 묶인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소설들도 기대가 된다.

아울러 책읽는 즐거움을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게 기분좋은 습관이 돌아온것 같아 흐믓하다.
위 문장을 김영하의 책으로 표현하면 "랄랄라 하우스로 오빠가 돌아왔다."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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