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보면 다음 책을 고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통 지금 읽는 책에는 감자줄기(비록 실제로 캐본 일은 없지만...)처럼 다음에 읽을 책들이 줄줄이 달려있는 법이다.

큼지막하고 먹음직한 다음 감자는 볼펜끝으로 잘 캐내어서 수첩이라는 저장고에 저장해 놓는다.

(내 작은 수첩에는 씨알 굵은 감자들이 깨알같이 가득 저장되어 있다.)

저장되어 있는 이 감자들은 보통 1년 안에는 구입을 하게 마련인데.... 때로는 꽤 긴 숙성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커트 보네거트의 '제 5도살장'은 무려 3년 반의 기간동안 수첩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몽타주>인가 <오마주>인가 하는 책을 보다가 적어 놓은 것이 찾아보니 2006년이었다.

오래 묵은 이 책을 보니 박찬욱의 추천은 옳았고, 내가 이 책을 구입(반값)해서 읽은 시점(바로 전에 서경식의 책을 읽음)도 적절했다.

그런데 그 사이(2007년)에 저자 커트 보네거트(1922년생)는 죽었다. 그렇게 가는거지.

 

1969년에 출간된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그중에서도 드레스덴에 가해진 엄청난 폭격과 그로 인한 비극을 다루고 있다.

서경식 선생이 <디아스포라 기행>에서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과 브뤼셀 근처에 있었던 브렌동크 요새를 다루는 비장한 방식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드레스덴에서 135,000명이 죽어간 그 폭격을 겪었음에도 희희낙락이다.

미군으로 참전하여 포로로 잡혀서 오랫만에 쓴 비누가 유대인이나 집시들에게서 나왔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거침없다.

폭격이 끝난 드레스덴을 보면서 달표면 같다며 킥킥거린다. (단, 그곳에서 고생하던 말을 보고는 눈물을 짓는다.)

그런데 그런 정신사나운 말투와 오락가락하는 생각은 묘하게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그는 그런 역설적인 분위기를 그려낼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전쟁에서조차 어릿광대처럼 웃음거리였던 소설 속 빌리 필그램은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단 한시간도 전쟁에 어울리지 않았기에 그는 궁극의 승리자이다. 그래서 그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비웃을 자격이 있다.

이 격조높은 비웃음은 1968년으로 대표되는 세계적인 '혁명'과 '자유'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영화 <12 몽키즈>는 기막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갈 때까지 주인공이 정신병을 앓는 것인지, 세상이 정신병을 앓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으면서 긴장을 놓지 않는다.

그런데 그 원형은 제5도살장에 있었다. 빌리 필그램은 시간을 여행한다. 그는 초록색 외계인을 만난다.

그는 검안사로 많은 돈을 벌고, 딸에게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그는 세상의 진실을 털어 놓으려 뉴욕의 방송국에 간다.

그는 우연히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그러다 쫓겨난다. 그는 참새와 대화한다.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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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2-2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쨱짹. 저도 이책 좋아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