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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성 탐욕
프랭크 파트노이 지음, 이명재 외 옮김 / 필맥 / 2004년 1월
평점 :
669.
"기만과 위험의 금융활극과 시장의 부패"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전염성 탐욕이라는 책의 페이지 수이다. 이 숫자는 두가지 측면에서 놀랍다. 첫번째는 금융이나 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내가 이 책을 기어이 다 읽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월가의 불과 10여년 동안 있었던 탐욕의 역사를 기술한 책이 이렇게 두껍다는 것이다.
첫번째 놀라움은 그만큼 이 책이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이고, 두번째 놀라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최고 인재의 아이콘인 월가의 금융인들이 아주 탐욕적이고 기만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의 다른 말이다.
탐욕은 전염된다. 기발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내는 정말 똑똑한 사람들에서 부터 아주 단순하게 회계장부를 조작하는 사람들까지 말이다. 600여 페이지에 걸쳐 생생하게 그려진 이 탐욕의 전염과정은 그 과정에 대한 경계심을 목적으로 하는 저자의 집필 의도를 넘어 독자들에게까지 탐욕을 살짝 부추기는 부작용(이렇게 하면 돈 버는 건가? 싶은....)이 있음을 먼저 알려 둔다.
이 책의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6가지 제안이 637페이지부터 진행되는 에필로그에 나온다. 이 여섯가지 제안은 아주 명쾌한 것이어서 금융권의 탐욕을 들춰내고,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해 복잡하게 계산되어 일반인들에게 전가되는 리스크를 모르고 짊어지지 않는 방법인 듯 하다. 하나 하나 살펴보자.
1. 파생상품을 다른 금융수단들과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
파생 금융 상품들은 경제적으로는 다른 금융상품들과 다르지 않지만, 당국의 규제를 피해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스톡옵션, 선불스왑, 부외거래, 장외파생상품 들은 다른 거래들에 적용되는 법규의 적용에서 면제되었고 이러한 차별적 취급의 결과는 재무 제표상 인식되는 비용과 경제적 사실 사이의 괴리로 나타났으며, 공시의 의무도 지지 않는다. 비슷한 금융수단들이 서로 다르게 규제되면 시장의 거래 당사자들이 약한 쪽의 규제를 이용해 위험을 숨기거나 재무적 공시 내용을 조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친기업적인 정부들은 <모든 규제 = 나쁜 것> 이라는 등식을 고정시키고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려고 한다. 사람들 중에서도 좋은 사람들이 있고 나쁜 사람들이 있듯이, 중복적이고 탁상행정으로 만드는 규제가 아니라면 그 규제조항이 왜 만들어졌는지 누구의 전횡을 막으려 한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2. 법규에서 기준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장참여자들은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위한 규정을 피해가는 것으로 대응했다. 다들 룰을 지키면서 경기를 해야 하지만 탐욕은 그 룰을 교묘히 피해가는 것으로 룰을 지키는 혹은 룰을 모르는 다수에게 위험을 전가시키고, 이익을 챙겼다. 구체적인 법규는 오히려 그 법규를 피해가는 파생상품 등으로 인해 안전한 도피처 기능을 해 주었다. 엔론과 글로벌 크로싱이라는 회사를 수사한 검사들은 구체적인 법규 때문에 오히려 어려움을 겪었다. 또 구체적인 법규는 빠르게 변해가는 시장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이런 문제점에서 시장 참여자들이 능숙하게 회피하거나 악용해온 협애하고 명시적인 법규대신 '정직의 문화'를 조장할 수 있는 좀더 폭넓은 기준(Standard)를 마련해야 한다.(642페이지)
3. 감시자들, 특히 신용평가 회사들의 과점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
회계법인, 법률회사, 은행, 신용평가회사 등 금융시장의 감시기구 들에게 부여된 과도한 권한이 문제가 된다. 위험을 평가하고 공표하는 역할을 그동안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의 권한이 너무 크다. (645페이지) 지난 15년 간 감시기구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명예롭지 못한 행태를 보였지만, 그들의 평판은 훼손되지 않았고 그들의 이익도 타격을 받지 않았다. (646) 진입장벽이 높아서 감시기구들이 기업경영진을 감시해야 겠다는 동기가 없다.
우리가 IMF 시절에 무디스, 피치, 스탠다드 앤 푸어스 같은 신용등급회사의 국가 신용등급에 울고 웃었던 시절을 생각해 보자. 당시에는 이들 회사는 아주 신적인 존재였다. (제길). 이 회사들은 엔론이 망하기 며칠전까지 그들에게 투자 가능 등급을 매겼다고 한다. 다가오는 위험에 대해서는 채권시장이 가장 빨리 반응하고, 정보가 적은 사람들 (등쳐먹힐 사람들)이 많은 증시가 그 다음에 알고, 회사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신용등급 회사가 반응한다고 한다. 이 회사들은 월가 최고 인재들이 가는 회사도 아니고, 이들의 수입은 너무도 안전하게 국가에서 보증하기에 워렌 버핏은 이런 회사들의 주식을 많이 사들였다고 한다.
4. 복잡한 금융부정도 처벌해야 한다.
금융시장은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그른지는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이익이 먼저이고, 평판은 행동을 제약하는 데 두 번째로 고려될 뿐이다. (649) 처벌 가능성이나 처벌의 정도가 이익보다 낮은 수준이라면 언제든 부정을 저지를 만한 곳이다. 그러나 미국 월가에서는 복잡한 금융부정을 처벌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메시지가 계속하여 전달되었고, 실제로 고객의 돈 몇억불을 잃은 사람들도 처벌을 받지 않거나, 솜방방이 처벌에 그쳤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복잡하게 고안된 금융부정을 잡던 검사들은 변호사가 되어 금융회사를 위해 일하는 판이라고 한다.
5. 공매도를 장려해야 한다.
주가 하락에 베팅할 이유가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고 장려하는 조처를 규제당국이 취해야 한다. 금융위기를 낳는 투기의 거품을 방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거품이 생기려고 할 때 명석한 사람들이 금융자산 가치 하락에 베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공매도는 법규상으로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는 거래방식인데 이러한 제약은 1990년대 주가가 비이성적인 상승 편향을 계속 유지하는데 한몫하기도 했다. (651) 주가가 더 정확해지도록 하는 방법은 공매도를 쉽게 할 수있도록 하는 것이다.
투자자들로 하여금 주가하락에 베팅하도록 하는 또 다른 방법은 기업 내부자가 자기 회사에 관한 부정적인 정보를 외부자에게 알려주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흔히 부정적인 정보는 기업 내부에 밀봉된 채로 남아 있다가 한꺼번에 터져서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친다.
6.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를 스스로 통제하고 감시하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주식투자를 고려하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가지다. 그것은 편입종목 변경횟수가 적은 인덱스 펀드를 사는 방법, 주식에 대한 투자를 아예 회피하는 방법, 또는 직접 철저한 조사를 해본 뒤에 업종이 다른 수십 종목의 주식들을 동시에 사는 방법이다. 이 세가지 방법 가운데 궁극적으로 기업들에게 좀더 정직해 지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마지막 방법 뿐이다.(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