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지구 나이 46억 년에서 세포의 역사는 37억 년이다. 인류의 문명은 5천~6천 년밖에 되지 않았고, 산업 문명은 고작 250년의 역사이다. 저자는 기술 진보의 속도가 생물학적 속도를 뛰어넘는 놀라움을 보여 주고 있지만 인간의 발명품이 세균이나 단세포 생물도 가지고 있는 ‘자가 복제와 자가 수정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며 동식물의 ‘유전자 조절 시스템’에 비할 게 못된다고 말한다. 내 예상으로는 그 단계를 넘는 날도 멀지 않았다 싶다. 이 방면의 진척은 인간 윤리와 심리적 방어 기제로 더뎌져 왔다고 생각한다. 줄기세포 연구 등등 활발한 발전 상황으로 볼 때 각종 대체 장기, 노화와 질병 정복 등이 실현되면 인간은 그야말로 불로불사의 능력을 갖게 될 텐데.
서른여 개의 주요 동물 집단 중 갑각류와 곤충류를 포함하는 절지동물과 인간이 속한 척추동물만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약 5억 년에서 4억 5천 만년 전 척추동물의 시조인 무악어류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얼굴의 특성을 유지하는 건 무엇을 뜻할까. 얼굴을 가지는 포유동물의 중요한 네 가지 특징은 “턱과 치아와 털, 모유 수유, 얼굴 근육”이다. “얼굴 근육 덕분에 포유동물은 얼굴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p207) 다윈은 인간의 문화와 민족 집단 전반에 걸쳐서 공통되는 여섯 가지 기본적인 표현ㅡ“분노, 행복, 슬픔, 호기심, 공포, 혐오”(p62)ㅡ이 존재한다고 했고, 이후 다른 학자들이 확인했다. 생존을 비롯 감정 표현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두뇌와 얼굴은 공진화(생명체가 가진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개의 특성이 함께 진화하는 현상)했다. "전뇌가 없으면 얼굴 발달은 물론이고 심지어 형태를 갖추지도 못한다."(p93) 얼굴은 팔다리와도 연결된다. "지느러미나 사지는 얼굴과 사지가 공유하는 핵심적인 모듈이 되는 기존의 유전자 네트워크의 주요 부분이 얼굴의 발달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배치되었기 때문에 진화할 수 있었다."(p147)
인간의 얼굴은 전형적인 포유류보다 더 납작하고 수직적인 형태다. 형태상의 이런 변화는 '주둥이의 흔적을 없애는 돌출된 턱의 축소와 인간이 가진 큰 뇌에 의해 형성된 이마' 때문이다. 인간의 큰 두뇌는 6층으로 구성된 대뇌피질의 발달로 더 많은 신경 전구 세포를 가지게 된 영향이다. 인간에게 주둥이가 사라지고 이마가 생겨나고 두뇌가 확장되어가며 언어와 말하기 능력이란 새로운 속성까지 얻게 되는 변모는 점진적 변화가 질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창발 현상’이다.
이쯤까지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저자는 철저한 진화론자다. '지적설계론'에 대한 다음의 지적은 명쾌하다.
현대에 와서는 "더 이상 단순화할 수 없는 복잡성"을 고도로 복잡하게 제작되는 제품에 빗대어 지적설계론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성하는 몇 백 개의 부품들 중에서 어떤 한 가지만 제거되어도 그 자동차는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거나 심하게 약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심각한 결점이 있다. 생명체는 미리 제작된 부분들에서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요소들과 이런 요소들로 구성된 하부 구조들이 관련된, 길고 연속적인 자가 조립의 과정을 거치면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가변성을 인정하고 수용한다. 사실상 발달 과정에서 일련의 자체 검사와 타고난 유연성이 발휘되고, 이것이 변화를 허용한다. 그저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가축들의 집중 육종 과정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생존력과 완전히 양립 가능한 변화다.(160~161)
유전자와 대립유전자의 구분도 생소했지만 유익한 정보였다.
우리는 별종으로 여겨지는 사람에게 유전자가 다르다고 쉽게 얘기하지만 정상 인간이라면 모두 유전자의 내용은 같다. "사람들이 가진 차이점들은 개인마다 전체 유전자 세트의 구성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 아니라 개별 유전자에 있는 뉴클리오티드 서열의 차이, 다시 말해 대립유전자의 차이에 의해서 발생한다."(p174)
흔히 '이기적 유전자'라고 하는 것도 정확하게는 이기적 대립유전자라고 해야 맞다. 더 자세한 내용은 p174~175에서 확인하시길.
성 선택의 일환으로 인간의 털은 퇴화되었으리라 추측되는데 그러므로 얼굴을 매개로 하는 사회적 상호작용은 더욱 향상되었을 거라고 진단한다. 유인원 줄기 집단을 특징짓는 세 개의 기본적인 유인원 특성ㅡ“(1) 정밀한 시각이 발달한, 얼굴의 전면에 자리를 잡은 눈, (2) 얼굴 표정을 더 잘 드러나게 하는 털이 사라진 얼굴, (3) 음식을 먹고, 소리를 내고, 얼굴 표정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으며, 치아와 입술에 변화를 가져온 축소된 주둥이”(p286)ㅡ은 인간의 특성과 매우 부합한다. “진화가 전적으로 미세한 가시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이들이 개체군 내에서 축적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p294)고 한 다윈의 주장은 60년이 지나서 ‘집단유전학’을 통해 입증받았다.
저자의 논지는 점점 모인다. 결국 더 나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생존에 유리한 사회 선택으로서 얼굴은 진화되어 왔다는 논지다. 특히 눈의 예를 봐도 그렇다. “인간은 흰자위라고 하는 공막이 겉으로 드러나고, 이 공막에 둘러싸인 다양한 색깔의 홍채(눈동자)를 가진 유일한 포유동물이다. 이것은 자신이 응시하는 방향을 타인이 알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사회적 특성이고, 이번에도 역시 사회적 상호작용을 지원하는 특면에서만 설명이 가능한 선택적 이점이다.”(p325) 우리는 안색이 어두운 사람을 보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거나 웃으라고 강요 같은 권유를 하기도 한다. 반려동물만 해도 집사들이 표정이 안 좋으면 동요하며 같이 슬퍼해주지 않는가. 그런데 저자와 같이 이렇게 긴긴 진화의 면면을 살피며 추적하고 진단하려는 사람은 왠지 극소수인 거 같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도 무심하고, 불행을 봐도 극악스러운 인간 사회를 생각하니 내 얼굴은 그리 밝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