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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론 - 인간과 종교, 제사, 축제, 전쟁에 대한 성찰
조르주 바타유 지음, 조한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1월
평점 :
매우 인상적인 발제문.
《헤겔강독 서설》이 《종교이론》 서설로 등장한 게 좀 기묘하다.
군더더기 없는 2 페이지의 짧은 분량, 바로 뒤에 이어지는 바타유 발문도 같은 분량인데 매우 어울린다!
명료한 절박성, 내가 바타유 문체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독자의 눈에 지금 보이는 책은 사실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이전의 것들에 새로운 것이 얹어진 총체이다.
책은 단순히 파편들 더미가 아니라 건축물로서의 자아의식이다.
ㅡ 조르주 바타유
바타유 이 문장은 저자가 그럴 만한 책을 썼을 때 동의 가능하다. 예전 사람의 벽돌들 마구 가져와 쓰는 부실 건축들이 요즘 워낙 많아서 말이다. 거울에 나를 비춰보고 가져와야 하는 것일까, 벽돌을 비춰보고 가져와야 하는 것일까. 거울조차 깨고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자력으로 가져와야 하는 것일까. 완벽한 거울은 이미 없었다. 무슨 수를 쓰든 모든 것의 운명은 무너짐일 거 같은데(나 요즘 이 표현 너무 자주 쓰는 거 같다...각성)... 반증 가능성을 못 찾으면 그것은 무결성의 사실이 아니라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나 어쩔 수 없는 신비로 빠지지 않던가.
가능의 정점을 정하는 것은 바로 불가능이다.
또는 말을 바꾸면 불가능에 대한 의식으로 하여금 적어도 어떤 성찰이 가능한 성찰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경계를 기웃거릴 뿐 폭력이 난무하는 집단에 머문 채, 일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성찰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이 차지할 자리가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ㅡ 조르주 바타유
그런데 바타유 씨, 이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서는 '외딴 생각'을 가진 자들의 자리가 더 협소한 거 같은데요. 대단할 것도 없는 나조차도 갈 곳이 없습니다. 불교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욕망을 비우면 된다 그리해야 할까요. 내 욕망은 그렇게 한다 쳐도 타인은? 신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각자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기에 더욱 필요하지 않았겠냐 말이죠. 모두에게 욕망을 허락하는 자본이 신급이 된 게 그래서죠. 대안은 사랑이라고 누구나 만병통치약처럼 말하긴 쉽지만 욕망 속에 이토록 어렵게 되었습니다. 현실적으론 법을 만들었습니다만 법조차 관습과 오류로 가득하고 더 중요한 건 모두가 지키는 건 아니죠. 인간은 각자 위치에서 제 욕망을 결국 채우려 드니까요. 부모든 자식이든 연인이든 노사 관계든 어디에서든.
사르트르는 타인을 지옥의 관문이라고 했죠. 자아 성찰이든 이용이든 타인은 필요 관문인 셈인데, 종착지를 모른다는 게 공허하게 하는지 행복하게 하는지 알 수 없군요. 지식도, 시간도 그건 해결해 줄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