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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의 일기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도솔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소로가 일기에서 ˝오성이 싹을 틔워 나무를 자라게 한다면 이성은 나무를 숙성시켜 열매를 맺게 한다˝고 한 말처럼 그의 글도 읽는 이에게 그런 역할을 한다. 그가 말하는 침묵, 소리, 자연 그것들은 나도 이미 경험했다. 경험과 상상의 공동체로서 순간 우리는 하나의 인간이 된다. 178년 전의 그인데도 여기서 시간은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 인간은 정말 신기하기도 하지.
없는 그가 문장 마디마다 내게 묻는다.
너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너는 무엇인가.
왜.
나는 누구에게도 기억되고 싶지 않다. 필요는 구속된 자에게 있는 것. 그래서 모두에게 일기가 필요하다.
https://youtu.be/YDiFphUcPWw
‘Maurizio Pollini: Schubert - Piano Sonata in A major, ‘Andantino‘ D. 959‘
하나의 불꽃 속에 지옥 전체가 들어 있을 수 있다. ㅡ1837년 12월 19일
포도주 한 방울이 술잔 전체를 물들이는 것처럼 한 방울의 진실이 우리 전 생애의 빛깔을 결정할 수 있다. 진실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 또 창고에 재물을 쌓듯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들을 잊고 다시 새롭게 배워야만 전진할 수 있다. ㅡ1837년 12월 31일 *A 첨언: 어떤 경지에 이르면 깨달음은 비슷했다. 소로의 이 말은 마치 불교에서 깨달음을 찾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심우(尋牛)와 비슷하다.
갈라진 틈이나 옹이 구멍을 통해 보더라도 세계의 아름다움에는 변함이 없다. ㅡ1838년 1월 16일
소리란 침묵에 가깝다. 소리는 일자마자 곧 꺼지는 거품과도 같다. 그 거품은 내면적인 풍성함과 강함을 상징한다. 이처럼 소리란 침묵과 대비될 때만 청각신경에 잡히는 침묵의 희미한 발화(發話)이다. 침묵의 발화자이자 침묵의 강조자로 나타날 때만 소리는 조화롭고 순수한 멜로디가 될 수 있다. ㅡ1838년 10월(날짜 미상)
단 한 사람만으로도 방 하나를 충분히 침묵시킬 수 있다. ㅡ1839년 1월 9일
약자가 평평하다는 말은 맞다. 약자는 강한 모서리 부분에 서기보다는 편리한 표면을 선호한다. 그는 무난히 인생을 보낸다. 물체는 대부분 강한 부분이 있다. 짚은 세로 방향이, 널빤지는 모서리 방향이, 나뭇결은 횡축이 강하다. 하지만 용자(勇者)는 한쪽으로 누울 수 없는 완전한 구(球)와 같아서 어느 한 곳이라도 약한 곳이 없다. 비겁한 사람은 잘해야 타원체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을 너무 많이 받은 것도 약점일 수 있다. 비겁한 사람은 한쪽이 늘어나면 반드시 또 다른 한쪽은 눌려 있다. 속이 빈 구일 수도 있다. 부피를 크게 할 의도라면 그것이 최선이다. ㅡ1839년 5월 17일
상식은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천재의 기이한 빛만이 진실을 재현할 수 있다. 선각자의 눈길이 닿기만 한다면 아무리 진부하고 하찮은 사실도 하늘의 새로운 별이라는 믿음을 낳을 수 있다.
과거란 지금 시도되고 있는 현재에 지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과거는 과거 자체로 증명하게 하라. ㅡ1839년 11월 5일
운명이 용감한 자를 버릴지라도 용감한 자는 운명을 버리지 않는다. 가난으로 인해 밤거리를 헤매야 하는 처지에서도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기로 굳게 결의한 새뮤얼 존슨과 그의 벗 사비지처럼 말이다.
여러 가지 소리가 우리의 귀에 들려온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팔 소리와 북소리는 침묵의 소리이다. 아주 미미하게 들리는 ‘삐걱‘하는 소리마저도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모든 사물들을 향해 북방의 오로라와 같은 거대한 빛을 발산한다. 윤이 대리석의 정맥을, 낟알이 숲의 정맥을 표현한다면 음악은 어디엔가 숨어 있을 영웅적인 그 무엇을 나타낸다.
나는 나의 벗의 인품이 나보다는 훨씬 더 훌륭하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열망이 나의 실천을 능가하듯이 말이다. ㅡ1839년 12월(날짜 미상)
시인은 초원을 땅이나 풀이나 물이 아닌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위대한 시인은 다만 초원이 이러저러하다는 것을 말할 따름이다. 평범한 농부라 하더라도 감자꽃이 제비꽃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한다. 위대한 시인은 감자꽃이 왜 좋은가만 말할 따름이다. ㅡ1840년 1월 26일
태양이 내리쬐는 월든 호숫가에서 따뜻한 온기를 받으며 물결 살랑이는 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과거의 모든 의무로부터 해방된다. 국가평의회 따위에서는 유권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 반짝이는 조약돌이 그런 기관들을 모두 무효로 만들고 있다. ㅡ1840년 3월 22일 *A 첨언: <시민 불복종>을 썼고 인두세 내기를 거부해 감옥에 하룻밤 갇히기도 했던 소로. 월든 호숫가에서 자급자족을 했던 그. 세상의 의무, 세상의 인정을 자발적으로 거부하는 용기를 실천하는 사람에게서는 늘 이런 성찰을 발견한다. 알렉산더 왕이 소원을 물었을 때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한 디오게네스처럼.
나는 전쟁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 전쟁은 영혼의 걸음걸이와 자세가 몹시 닮았다. ㅡ1840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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