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몰락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가
리사 두건 지음, 한우리.홍보람 옮김 / 현실문화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진보 좌파 정치로 통칭되는 세력이 현재 파편화되어 있는 현상에 대한 고찰이다. “진보 좌파들이 경제 대 문화, 보편성 대 정체성 기반, 분배 대 인정 지향, 지역·국가 대 세계 분파로 분할된 것으로서 스스로를 제시하거나 재생산하는 한 늘 스스로 패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적수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940~50년대에 시작하여 성립에 수십 년이 걸리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는 1980~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미국 재무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이 모두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것에서 유래한 말, 미국과 유럽에 기반을 둔 금융·경영·정치 엘리트들의 일종의 비밀 거래 회의장)’라 불리는 국제 통치와 경영 활동을 위한 정책들과 관련되는데, 신자유주의 정책 실행의 효과는 각종 불평등과 국가 정부의 주권 감소에서 기인한 정치적 취약성을 비롯해 많은 종류의 불안정성을 낳았다. 신자유주의는 지구적 문제와 국내적 문제 양자에서 경제정책을 주로 중립적이며 기술적인 전문지식의 문제로 정의하면서 인종, 젠더, 성적 불평등이 단순히 문화적이고 사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묵살당하는 문화를 조성했고, 물질적 불평등에 대한 항의는 계급전쟁이라는비난을 받았다. 단적으로 한국의 귀족 노조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발전적 분석들은 어떻게 그 많은 지역 연합, 문화 프로젝트, 민족주의 의제, 경제 정책이 불균등하고 종종 예측 불가능하게 갈등과 모순으로 가득 차서 세계 자원의 위를 향한 재분배를 위해 함께 작동했는지를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이러한 자원은 돈·안전·건강보험·이동성, 지식·커뮤니케이션 기술에 대한 접근권, 여가·오락·유흥, 출산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성적 표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자유, 그리고 정치적 권력, 즉 민주적인 공적 삶에 대한 참여적 접근…… 요컨대 모든 종류의 자원을 의미한다.

 

“1980년대 이래 진보 좌파 정치의 아킬레스건은 경제·정치·문화의 관련성과 상호관계를 대부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1960~1970년대 진보 좌파 사회운동은 아래로의 재분배 문화를 기치로 평등을 외쳤으나 위를 향한 ()분배 문화를 건설하려는 친기업적 반대운동과 부딪혀야 했다. 진보 좌파 정치는 혼성적·잡종적이어서사회운동의 범위(반인종주의자, 반제국주의자, 여성주의자, 레즈비언과 게이, 급진 노동자, 환경주의자)가 경제를 강조한 진영 또는 문화를 강조한 진영 중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속하거나 한쪽으로 쉽게 분류되지 않고, 에이즈 활동가들이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종교, 국적의 충격과 효과를 일괄적으로 다룰 수 없었듯이기업과 금융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에 비해 기업과 금융은 권력, , 문화적 지위의 불평등을 지지하거나 수립하는 메커니즘을 증진시키기 위해 언어와 개념, 실천과 정책을 만들어 새로운 제도를 수립해 나갔다

 

각양각색의 급진적 조합운동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뉴딜 협조주의에 대대적으로 포섭되면서 붕괴했듯이, 사회운동은 자유주의 개혁 분파를 남겨놓은 채 와해되었다. 지금은 법적 체계·선거제도에 압력을 넣으려고 조직하고 권리-주장에 집중하는 정체성정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경제, 국가, 시민사회, 가족에 대한 자유주의적 분리는 진보 좌파 정치를 형성했지만, 계급정치(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정체성정치(시민권과 시민적 참여에 대한 배제와 가정생활에서의 위계에 대한 저항)을 분리함으로써 진보 좌파 정치를 궁극적으로는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흔히 이러한 분리는 1968년 이후의 급진/진보/좌파 정치로부터 기원했다고 여겨지는데 한국에서도 이런 노선화가 과연 생산적이었나 생각해 볼 지점이다. 한때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나 좌파라고 정의했던 새로운 신보수주의자들’(네오콘)1980년대에 이르러 그들이 도망쳐 나온 민권 운동, 흑인 급진주의, 복지 국가의 성장, 1960년대의 반문화운동, 1968년 이후의 새로운 페미니즘과 게이 해방 운동, 신좌파, 미국의 민주당을 공격했다.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1980년대 동안 네오콘은 미국의 보수주의적인 정치적·지적 움직임들에 통합되었고, 이것은 미국 정치에서 중도라고 인식되는 지점을 더 오른쪽으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이 흐름은 마치 한국이 복사판 같다.

 

2장에서는 문화 전쟁이 제시되는데, 1997년 뉴욕주립대학 뉴팔츠 캠퍼스의 여성학 콘퍼런스는 '성적 변태의 축제를 위한 세금을 빨아먹는 지적으로 파산한 여성학 프로그램이라는 비난과 함께 섹스와 교육이 엮이며 많은 도덕 담론을 양산했고 뉴욕 주 자치 기관에 대한 지원 감세 의제와 연결되었다. 공공지원이 가장 약한 지점인 진보적 기관 외부의 취약한 변두리를 공격하는 문화전쟁 사례이자 공공대학 체계의 기업화를 위한 공략 과정이었다. 1978년 캘리포니아의 주민발의안 13호는 많은 이들을 위한 공공기관과 시설을 지지하는 시민으로서보다는, 세금을 지불한 가격에 대한 최고의 대가를 기대하는 소비자 시민권이 낳는 경제적·인종적 차별 문제를 보여줬다.

 

우리는 소수자들이 진보 좌파 정치를 추구할 거라고 긍정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을까.

1950~60년대 호모필 운동, 1970년대 레즈비언 페미니즘과 게이 해방 운동, 1980년대 자유주의적 게이 권리 옹호 운동에 이르는 조직된 게이운동은 민주주의와 평등의 목적을 공유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로 독립게이포럼 작가들이 형성한 영향력 있는 게이 정치는 중도 자유/진보주의부터 급진적 좌파까지 이르는 연속체, 즉 일반적으로 게이운동이라는 표현으로 호소됐던 그 운동으로부터 결정적 단절을 나타냈다.” 미국의 지난 10년 간 전국의 레즈비언 게이 시민권 로비·소송 조직들은 지지층 결집 및 공동체 기반의 협의에서 거의 완전히 분리되어왔다. 권리에 대한 국가적인 정치 문화를 따르고 생존을 위한 자금 조달의 시급함에 압박당하면서, 게이 시민권 단체들은 신자유주의적 수사와 기업적 의사 결정 모델을 채택해왔다. 전국의 주요한 레즈비언 게이 시민권 조직 중 상당수는 더 이상 광범위한 진보운동의 대표가 아니다. 이 조직들은 점점 더 특정한 게이와 부유한 엘리트를 위한 로비, 법률, 홍보 회사가 되었다. 그 결과 동성결혼과 군복무[의 기회가 게이, 레즈비언에게도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전국의 운동단체들이 수십 년 전 진보적 사회운동의 맥락 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추진했던 정치·문화경제적 쟁점들을 대체했다.” 한국의 성 소수자 운동도 규모가 커진다면 그리 먼 얘기는 아니다.

 

저자는 진보정치를 위한 공간 생산이 명료하고 실질적인 정치적 분석과 함께 결합한 집단적 돌봄, 사랑과 돈의 평등한 순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 속성과 마찬가지로 소비에 물들고 자본주의 기업 체계를 더 넓게 모방해 나가는 속성 또한 인간에게서 온 것이기에 내 맘은 참 어둡다.

이 책의 원제는 《평등의 황혼? : 신자유주의, 문화정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다. 역자의 말처럼 "황혼의 시간에 어떤 이들은 경제와 문화, 정체성과 계급이라는 상상적 분리의 프레임 속에 들어가 맞서 싸워야 하는 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저자의 강한 당부이기도 한)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탐색해가는 여정 없이 삶이 만족스럽기를 바라는 건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전반적인 복지 ‘개혁’의 추진이나 소위 복지 ‘재정 지원 혜택’의 제거는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는 기능을 공적 기구로부터 저임금 고용으로 유지되는 사적 가정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노동자나 그들이 부양하는 가족의 요구와 불안정한 직장이 제공하는 불충분한 임금 및 복지(혹은 아예 제공되지도 않는 복지) 사이의 간극으로 인해, 가족이 감당해야 할 영역은 지나치게 늘어나고 자선사업에는 지나친 부담이 지워졌다. 이런 방식으로 적절한 국가 기능이 축소되고, 세금을 덜 걷고 임금이 삭감되며,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시민사회와 가족에게 흡수되면서, 사회 서비스 기능들은 개인적 책임을 통해 사사화(민영화)된다. 게다가 비용과 이익의 재분배는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의 위계에 따라 완전히 달랐다.

정치학과 교수인 로렌스 미드는 복지 ‘개혁‘의 ‘근로연계복지‘의 기반이 되는 의제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그 누구보다도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마치 징병이 때때로 군대를 충원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것처럼, 저임금 노동은 명백히 의무화해야 한다. 적어도 전체 사회의 관점에서 본다면, 당국은 혜택을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순응을 달성할 것이다. 정부가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역자 주: ‘근로연계복지‘는 사회적 복지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특정한 활동(교육 수강 등)과 노동을 하도록 요구하는 복치 체계를 말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시행한 ‘생산적 복지‘와 유사한 개념이다.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복지와 관련한 비판적인 논의로는 송제숙, 《복지의 배신》(추선영 옮김, 이후, 2016)을 참고하라.

복지 개혁의 옹호자들은 육아 비용(그리고 여성이 가정에서 무급이나 저임금으로 돌보는 환자와 노인에 대한 비용)을 국고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로 전가하는 것을 조용히 자행했다. ‘온정적 보수주의자들’은 가장 부유한 미국인의 부동산과 기업에 대한 세금 감액 목표와 [복지에 대한] 비용 삭감을 연결시키지 않는다. 결혼 이전의 금욕에 대한 가치 부여는 전통적인 도덕주의자로부터 성실한 공동체주의적 진보주의자까지 신자유주의적 정치 스펙트럼에 속하는 범위 전반에서 수용되지만, 사회적 비용을 사사화하는 억압적 도구로서 결혼의 중요한 역할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크리스천 패런티, 앤절라 데이비스를 비롯한 미국의 "교도소-산업 복합체"에 대한 비판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투옥률을 자랑하는 미국에서의 대규모 구금 증가가 두 가지 흐름을 통해서 진행되었다고 지적해왔다. 첫째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 통치하에서 광범위한 정치적 저항이 일어나고 사회적·인종적·경제적 질서가 불안정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서 시작됐다. 둘째로 로널드 레이건 통치 하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 재구조화를 통해 만들어진 가난과 혼란에 대한 대응으로서 계획되었다. 가난한 인구의 분노와 소외를 통합하고 완화하려는 주요 양식으로 사회적 민주주의 정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대신, 신자유주의 정책 입안자들은 규제적이고 훈육적인 핵심제도로서 치안 유지 활동과 구금으로 방향을 돌렸다. 1930~60년대 동안 사회계급과 인종적 집단 사이에서의 오랫동안 지속된 투쟁들이 만들어냈던 협상된 사회민주주의적 사회안전망은 축적된 부와 권력의 일부를 아래와 외곽으로 재분배해왔다. 1960년대 기업 이윤이 감소하기 시작하자, 사회적 통제를 위해 선호되는 방식과 정치적 수사는 더 가혹하고 비열해졌다.

주디스 버틀러는 경제/문화 구분을 ‘단지 해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구분이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담론의 일종의 계략임을, 즉 자본주의 근대성의 제도에서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계급 관계의 복잡한 중첩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인 문제로서 지위와 계급은 자본주의에 의해 분리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그 역사 발전의 모든 단계에서 지위 범주를 통해서 작동한다. 백인 남성에게만 한정된 제한적이고 전적으로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에서 자본주의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지위와 계급은 수사적으로 분절된다(미국에서 이것은 19세기 초 몇십 년 동안에 발생했다). 낸시 프레이저는 이것이 진짜 분리가 아닌 형식적 구분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변화시키기보다는, 거기에 빠져버려서 이 구분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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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8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7-19 00:52   좋아요 1 | URL
재분배 문제가 사실 미묘하죠. 내가 상대에 맞추자는 건가 상대를 끌어 내리자는 건가 관점에 따라 매우 다르게 볼 수 있죠. 복지 문제만 해도 국가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겠다는 것과 국가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양면성이 있잖아요.
톨스토이 유명한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을 떠올리며 최상의 행복 추구보다 누구든 보다 덜 불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21세기컴맹 2017-07-19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릉의 모든 소리와 소음이 여기 다 모여있는듯합니다. 뭐가 진정 옳은 방향성을 지니고 하다못해 대안적이고 가치있는지
늘 흔들리며 읽습니다. 돗보기도 크고 굵은 것으로 다시 맞춰야겠다고 읽으며 집중도 못했어요 ^^

AgalmA 2017-07-20 07:16   좋아요 0 | URL
저도 늘 흔들리고 정신없고 바쁘고 그렇죠^^; 더운데 건강 잘 챙기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