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개정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원제는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believing is seeing'이다. 언어학자 쉬르는 기표와 기의 간의 연결 관계가 자의적이며, 기호의 의미도 그 자체의 고유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규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즉 언어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 글을 읽어도 뭘 말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물론 내 부족한 글을 탓할 수도....;). 보다-믿다의 근본적인 상관성을 잘 따져보지 않은 채 많은 이들이 보는 욕심만 채워왔고 채워가고 있다.

역자가 말하는 역사적 맥락은 이렇다.

 

 

르네상스 이전, 중세에서는 청각이 가장 중요한 감각이었다고 한다. 시각과 청각의 위상 교체는 15세기에 활판 인쇄가 등장하고 원근법이 확립된 이후, 현미경과 망원경 같은 광학 장치가 등장하고 난 16세기에야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역전은 사진, 영화, 텔레비전 등 영상매체가 계속해서 등장한 19, 20세기까지 이어지며, 비로소 세계는 문자 이후의 시각의 시대로서 완전히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근대의 서구 문화는 시각의 패러다임으로 이끌어졌으며 시각의 보편성과 필연성은 모더니티의 주요 의제였다. 모더니티 프로젝트는 시각을 우위에 놓음으로써 효과적으로 성취되었으며, 인간의 시각의 정확성에 대한 모더니티의 신념은 종교와 신성함에 대한 근대 이전의 신념을 대체했다. 외부의 자연과 내부의 마음을 연결하는 감각들 중에서도 특히 강조되었던 시각은 그 자체로 자율적이며 순수한 것으로 인식되었고,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생산이 육체적 노동에서 보는 작업으로 전환된 최근에는 신체에서 의 분리가 더욱 확고하게 된 것 같다.”

 


 

미술은 자연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과정의 산물이다. 100년 전의 미국인들은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듯이 100년 전 미술 개념과 지금 미술은 다르다. 과거의 문화와 문명이 남긴 것들인 고대 제례용품에서부터 절대권력을 상징화한 베르사유 궁전의 인테리어, 창작자 개인이 명명한 소변기(뒤샹 )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미술이라는 개념과 이데올로기를 계속 만들어왔다.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예술ART'이라는 용어는 18세기부터천재적인 개인의 독창적 산물이라는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창작물은 아름다움을 지닌 물체였지, “정치 선전물도 아니며, 종교적이거나 신성한 대상도 아니며, 미술이나 공예도 아닌, 이렇게 예술이라 불린 것은 근대에 이르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의 미술은 미술가의 절대적인 소유물이었지만, 현대의 미술은 전시되고 교환됨으로써 그 의미와 가치를 얻는다.”

미국을 주로 다루는 이 책에는 나와 있지 않는데 영국 출신의 미술가 겸 그래피티 아티스트(graffiti artist)이자 영화감독인 크시의 일화는 미술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가는 미술의 소유화, 권력화를 잘 보여준다. 뱅크시가 거리에 그린 그래피티는 소유자 분쟁이 자주 일어나고 경매에 고가로 팔리는 씁쓸한 풍경으로 자주 회자되었다. 뱅크시여러 매체 인터뷰에서 남긴 말은 현대 미술의 위치를 잘 말해주고 있다.

 

앞으로 사치 갤러리에는 어떠한 작품도 내놓지 않겠다. 나의 책은 55천 권이나 팔렸고 다큐 영화도 흥행에 성공했다. 나는 찰스 사치에게 예술가로서 인정해달라고 구걸할 필요가 없다.”

나는 갤러리가 돌아가는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날 예술작품의 가치는 백만장자가 그것을 좋아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마틴 불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그래피티로 세상에 저항하다중에서 발췌)

 

 

뱅크시의 말은 에르 부르디외구별짓기: 취미의 판단에 대한 사회학적 비판(1979)에서 취미는 계층을 구분하고, 구분한 자를 구분시킨다라고 한 말과도 맥락이 닿는다. “부르디외는 미술과 문화의 소비가 사회적 차이를 정당화하는 양상을 관찰했고,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순수미술을 감상할 줄 아는 것은 자신을 부각시키는 수단이며, 감상자가 어떤 사회적 계급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술은 계급적 특권일 뿐만 아니라 성적 특권이기도 했다. 이 책은 창작자에서도 수용자에서도 오랫동안 배제된 여성의 이야기도 담고 있다.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심심찮게 접하지만 19세기까지도 교육계에서는 여성 미술가들이 누드모델을 그리는 것을 금지했다. 나는 19세기 전까지는 남성 권력층이 아카데미 교육 환경을 만들어 엘리트주의를 만든 문제가 매우 크다고 본다. 알렉산드라 엑스터와 류포프 포포바, 바바라 스테파노바 같은 여성 미술가들의 업적은 당시의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알렉산드로 로드첸코, 블라디미르 타틀린 같은 남성 작가들보다 평가 절하되었다. “최근에 와서야 프리다 칼로와 메레 오펜하임, 스테파노바, 루이즈 부르주아, 에바 헤세, 한네 다보벤 같은 여성 미술가들이 남성 작가들의 지위나 대우와 균형 잡힌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사진쪽에서는 바바라 크루거, 신디 셔먼 등이 여성 창작자의 주체의식을 보여주는데 두각을 나타냈다.

 

공간의 변화도 커졌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박물관의 기초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확립되었다. “실용적인 연구나 상쾌한 기분전환을 하는 곳이 아니라 고급미술을 보존하기위한 박물관의 최초는 1822~30년에 지어진 베를린의 구박물관(알테스 박물관)이다. 1980년대 포스트모던 미술관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미술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같은 박물관들은 전시장의 중요성만큼이나 기념품 가게와 서점과 식당과 카페로 구성된 사교활동 장으로서도 중요해졌다.

 

 

미술관과 화랑, 미학, 예술이란 용어와 마찬가지로 미술사Art history 역시 근대 발명품이다.” 1764고대미술사를 쓴 요한 빙켈만은 미술을 처음으로 '양식style'으로 다루었다.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을 태동, 발전, 쇠퇴, 즉 고대 그리스 양식과 초기 고전 양식, 후기 고전 양식, 로마의 모방과 쇠퇴라는 시기의 연속으로 연대기화해 분류했다.” 아직까지 이 양식으로 미술을 해석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우리는 믿기 때문에 보고 해석하니까양식에 포섭되지 않고 양식을 만들려고 가장 노력했으가장 많이 뒤흔든 작업은 아방가르드, 다다-초현실주의, 팝아트였다고 생각한다 미술이 늘 강조하는 독창성새로움이라는 기준으로 바라보게 했다. 세제 Brillo 상자를 잔뜩 세워두고 당신이 보는 게 뭔 거 같아라고 묻는 듯 시선을 관람객에게 돌려주는 앤디 워홀의 통쾌함.

 

개인으로 가장 다양한 양식 파괴를 실행한 미술가는 카소였을 것이다.

 

피카소는 남은 생애 동안 환상적이리만치 다양한 양식의 작업을 보여 주었다. 그는 한 시기에 서로 다른 양식의 작업을 하는 한편, 회귀해 이전에 창조했던 양식을 재평가하기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 60년 동안의 작업은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라고 볼 수 있다. 일생에 걸친 피카소의 양식에 대한 분석은 현대에 주체성에 대한 연구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개인이 정체성과 창조성의 원천이며 본질적으로 비역사적인 특성을 가졌다고 믿는, ‘주체라고 하는 자유주의적 인간주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훌륭히 비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의 천재 미술가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거대한 작업을 통해 천재라는 신화를 해체하고 있음은 정말로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정리해보자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들은 "특정한 역사와 문화에 의해 형성될 뿐만 아니라 재현하는 것과 소통하는 방식조차 특정한 목소리에 묶여있으며, 그 목소리는 성gender과 인종, 국적, 성 정체성, 매우 개인적인 기억, 집단적인 기억, 그리고 역사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당신은 여기서 자유로운가.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세계를 새롭게 보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기수많은 인류가 그래왔듯 창조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 볼 것. 그것이 꼭 미술이 아니더라도.

 

 

김대중 전대통령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림도 늘 함께 해왔다.

 

 BANKSY 作

 

  BANKSY 作 (팔레스타인 장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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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6-03 2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과 사회가 맺는 관계에 따라, 개인도 사회도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한 것 같습니다. 매 순간 어느 지향점을 가지고 있겠지만, 영향을 미치는 과정 속에서 그 변화되는 양상은 불규칙적으로 바뀌는 것 같네요... 그 변화가 자주 그리고 크게 발생하기에 ‘자기 부정‘이나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이러한 변화가 여러 면에서 단절을 불러오는 것 같구요.. AgalmA님 글 읽고 두서 없는 여러 생각이 들었네요.

AgalmA 2017-06-05 04:03   좋아요 1 | URL
동감입니다.
인간은 진화적인 특성상 쓸모와 경제성을 따지는 성향이 많죠. 그래서 더 멀리 더 넓게 내다보지 못하는 경향도 많아요. 한 번 옳다 싶으면 그 방향으로 가려고 하니 서로 충돌하는 일도 잦고요. 기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만큼 혼란도 많이 줬죠. 월드와이드웹이 소통뿐만 아니라 단절, 소외, 도태도 동시에 주잖습니까.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하나요^^;; 말로만 사람, 사람 하지 않고 내 주변 사람을 챙기는 것만 되어도 세상이 이렇게까지 비인간적으로 치닫진 않을 텐데 안타깝죠...

2017-06-04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6-08 18:14   좋아요 0 | URL
부모 자식간은 전생에 원수라고 하듯이ㅎ; 세상사 다 그렇게 맞물려 아웅다웅할 수밖에 없는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