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의 삶, 사랑의 말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양효실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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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세상을 보는 태도에 대해서 나는 다음 글에서 얘기했다. http://blog.aladin.co.kr/durepos/9337037

 

 

이 책 제목 한 대목인 불구의 삶은 저자의 이 말에서 나왔다.

 

건강한 사람, 미래가 확고한 사람, 정상적인 사람은 자기와 사회, 감성과 이성 사이의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불구의 상태에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지 않은 것 사이에서 고통을 겪을 때, 긍정적인 사회화를 거부하는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을 때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란 계속 충격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받아들임에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에 계속 놀라는 과정이라고 할 때, 누군가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며 안주하고 있다면 사회화에 세뇌되어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행복은 개인의 욕망과 삶을 사회적 가치로 환산하려는 움직임 안에서 일어나는 환영이며, 자명한 질서에 유익한 도구이다. 우리는 행복할 때 자기를 잃는다. 행복은 사회적 인정, 즉 바깥으로부터 내게 오는 수동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삶을, 이성이 사회를, 주체가 역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근대적 확신은 전지구적 패러다임으로 확장되면서 지속되고 있다.” 자신이 합리적으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주체라는 근대의 선언도 여전하다. 지성으로 세계를 환원할 수 있다고 보는 욕망은 특정한 인간만을 주체로 제한했다. 삶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덮어씌우려는 관념도덕이라는 판단 체계로 타자를 무수히 판단하며 주체는 인종, 계급, 젠더, 세대를 나누고 서열화했다.” 우리는 끝없이 타자를 만들고 우리와 다른 것, 우리보다 약한 것, 혐오스러운 것, 죽여도 되는 것으로 만든다. 현재 한국 사회를 생각해 보라. 진보와 극우, 마초와 페미니스트, 기득권과 노동자,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강요하는 어른과 체제에 갇힌 아이들 어디를 둘러봐도 자신을 주체로 한 대상화가 만연하다. “대상화란 우월한 존재들의 타고난 능력인 지성의 판단 아래 여러 다른 삶을 단순화, 객관화, 일반화하는 것이다.” 주체란 허위다. 모두가 모두에게 대상화될 수 있는 이 가능성의 세계에서 비정상인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앎은 모름을 뺀 나머지에 불과하며, “이름은 존재를, 삶을, 사물을 덮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근대의 인간주의가 영속적으로 계속되고 있기에 예술가들은 그 사이를 횡단하며 불가능을 인식했고, ‘익숙해지지 않는 놀이로 긍정할 방법을 찾았다.

 

김소연 시인은 바로 그때입니다시에서 비와 잎이 만나는 순간의 폭력을 세계의 폭력의 실상으로 예리하게 포착했다. “여성을 여성성이나 모성애와 같은 개념을 동원해 본질화함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하려는 여성주의는 남성성으로서의 근대성을 여성의 자리에서 한번 더 반복할 뿐이다. 이것은 결국 이름 붙일 수 없는 여성, 무한한 차이와 다양성으로서의 여성을 억압하고 길들이려는 근대화의 일환이다.” 집안의 천사(Angel in the House, 1854년 영국 시인 코벤트리 팻모어가 지은 시에서 처음 등장한 현모양처의 영어 이름)가 되기를 거부한 실비아 플라스김언희는 여성에게 사회적 굴레를 씌우고 문명의 중심을 차지한 모든 아버지--폭력을 시적 화자의 글쓰기를 통해 단죄한다. 최승자 시인은 상호주관성의 환상 속에서 서로를 대상화하고 지우는 세속의 사랑을 시로 보여주며 각자 단독자로서 자기 긍정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니체삶을 의미로 ()구성하길 거부하면서 삶의 무의미와 허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할 것을 주창한 근대 안의 타자였다. 황병승사회적 삶을 사는 자들이 의미를 도출하기 위해 받아들이는 관계, 행위, 이미지에 대한 철저한 거부. 인간주의적 삶에 대한 경멸. 오독과 오해를 자처하는 대범함. 도처에서 감지하는 고독의 위엄. 그럼에도 이 도시, 이 지옥, 이 악몽을 떠나지 않는, 이 폐허의 증인이 되기로 선택한 이의 결단……. 계속 말하기 위해, 계속 거부하기 위해, 근대의 한가운데에 머무르는 혐오스런 말이자 로서 표현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소설인간 실격》에서 요조를 통해 인간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으며 처세술의 사회를 익살로 횡단하는인간상을 보여줬다. 저자는 시를 똥으로 비유한 박연준와 소설과 영화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을 통해 상징적 언어에 대한 예술가들의혐오를 억압하지 않는비체적 저항에 주목한다.

 

결론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웃음이다.

말과 사물을 쓴 미셸 푸코중국 백과사전의 분류법이 자신의 사유의 전 지평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웃음을 불러왔다"라고 말했다. “굳건한 기반의 우연성에 무지한 채 그 사유의 내용에 포획당하는진지한 삶과 사유의 허위를 보았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남긴 성철 스님도 존재하지 않는 전제, 우리를 속이는 전제를 알아본 사람이다. 성철 스님은 유언에서 속세의 인연인 딸을 찾으며 다시 세속의 인간으로 돌아가고, 기독교인의 어휘인 죄, 구원과 지옥을 거론하며 불교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적 아이러니를 보여줬다. 모든 프레임을 거론하며 모든 것의 무의미를 농담처럼 남기고 성철 스님은 자기 무화를 실현했다. “꽃의 연약하고 섬세한 성질은 죄수의 거칠고 무감각한 성질과 본질적으로 똑같다"라고 말한 장 주네는 모순을 합으로 만들지 않고 모순을 대등하게 만든다. 악의 한가운데에서 사랑을 느끼는 주네는 세속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내적 명령을 자기 행위의 준칙으로 삼고 스스로 윤리의 주체가 된다. 그래서 무가치함을 알면서도 삶을 미적으로 일관되게 실천하려는 그는 기성 사회의 도덕적 선을 따르지 않는다.

 

 

 

주네도 미소를 말한다. 그 미소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이어주고 동등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텅 비어 있다. 우리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닐 때, 그러므로 우리가 사물과 동등해질 때, 더 이상 인간도 비인간도 구별되지 않을 때, 모두 빛나는 꽃이 될 때 남는 것은 미소뿐이다. 미소는 비천한 주네가 찾아낸 보편적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스한 긍정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별이고 우주다. 있는 그대로의 나와 화해하는 게 모든 이들을 위한 생존법은 아니다. 우리는 모국어를 소재로 자신의 삶과 존재를 위한 옷을, 집을,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설사 그곳이 모국어가 옷, , 장소라고 부르지 않는 곳이라 해도 우리가 경멸과 분노, 폭력을 가르치는 세상에서 사랑하고 웃고 울 곳을 만들어야 한다. 헤테로피아, , 혹은 비장소non-site로 불리는 그곳을 말이다. 성장은 어른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고, 그들을 딛고 가는 것이다. 즉 성장은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이다. 당신이 겪고 있는 시련은 삶의 포기가 아닌 당신을 위한 언어를 요구한다. 당신은 당장 시작해야 한다.”

 

 

 

생존을 위한 가치 판단이 아닌 나와 세계와 화해하기 위한 미소, 당신은 지금 짓고 있습니까.

  

 

 

 


 

ps)

책에 눈에 띄는 오류가 있다. 고흐가 생전에 그림을 한 점도 못 팔았다고 서술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붉은 포도밭 Red Vineyard at Arles」, 1888

고흐 친구였던 외젠 보슈의 여동생 안나 보슈에게 판 그림. 1500점이 넘는 그림 중에 한 점 판 것이라 미미하지만 그렇기에 더 의미가 있어 사실 관계를 짚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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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05-16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른이 되지 않고 늙어 갈 것 같아요. 저절로...
왜냐하면 끝까지 철없는 어른일 것 같거든요. ㅋ

AgalmA 2017-05-16 22:55   좋아요 1 | URL
같이 그렇게 늙어가시죠ㅎㅎ
재능 폭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