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불가역성을 낳는다. 파괴는 다음 파괴와 끊임없이 손잡는다. 무엇인지 누구인지 상관없는 단계까지.
공존의 메시지를 사랑한다. 생각해보면 그림은 늘 품는 것이었다. 같이 바라보고 느끼고 싶은 마음.
모든 창작이 그렇듯 그릴 땐 고독하다. 그러나 혼자 생각하고 그리고 끝나지 않는 대화의 영역이다.
오래 생각하며 말하듯 그리고, 도착하는 대답에 대해서도 오래 기다린다.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는 잘 표현할 수 없다. 그린다는 건 나 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생각해보는 노력. 어쩌면 그게 다인 것. 그래서 모든 그림은 사랑스럽고 감동적이다.
아무도 내게 그림을 그려 보라고 권한 적 없다. 오히려 혼이 났지.
나는 이끌리듯 그리로 갔다.
그림들은 보여 주기만 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너는 어떠니? 이 세계가 …'
나는... 나도... 마음속으로.
최종적 결과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될 수도 계속될 수도 없는 세계.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던 네로.... 울면서 그 장면을 지켜본 어린 내가 떠오른다. 어울려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을 말해준 만화였고, 어린 나도 그걸 매우 공감했던 것 같다. 그림들은, 만화들은 여전히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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