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작가의 옮김 1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자화상이란 제목처럼 자서전에 가까운 이 소설에는 특별한 줄거리라고 할 게 없다. 에두아르 르베의 짧은 프로필이 더 소설 같다.


 

 

 

이 소설은 사건 중심으로 진행되는 외부적 소설이 아니라 오로지 르베의 생각과 감정 선을 따라 흐르는 내부적 소설이다 1965년 생으로 겪은 시대상과 자칫 흩어졌을지도 모를 일상과 풍경과 생각들을 잘 포착하고 있. ‘의식의 흐름 소설과는 다르다. 르베는 플롯, 인물, 배경, 사건 같은 구체적인 소설 장치를 전혀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가상의 '지면(紙面)' 공간만 있다고 봐야 할 텐데 그래서 더 독특하다.  소설 속에 그의 의향이 드러나 있다.

 

 

나는 단편소설을 쓰지 않는다. 나는 희곡을 쓰지 않는다.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 나는 추리소설을 쓰지 않는다. 나는 공상과학소설을 쓰지 않는다. 나는 단편적인 글을 쓴다. 나는 내가 읽은 이야기 또는 내가 본 영화를 이야기하지 않고, 인상들을 묘사하고 의견들을 표명한다. (p117)


 위 태도는 이 소설이 일기나 수필이 아닌지 의심스럽게 한다. 문장 구조 또한 그렇다. 불필요할 정도로 강조된 라는 주어와 함께 ‘-했다, -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문장들은 잎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나뭇잎 점처럼 하나둘 떨어져내린다. 어떤 격정도 없이.

다음 문장은 또 어떤가.



 거울을 보면서 얼굴을 돌릴 때면 더 이상 나 자신을 볼 수 없는 순간이 온다(p22)


에두아르 르베는 지면에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지만 그도 우리도 그를 완벽히 볼 수 없다. 비추고 있지만 비친 그것은 의문스럽다. 이게 진짜 그 일까? 이 거울상은, 이 자화상은 유일무이한 무엇이 아니라 그때 혹은 이 순간에 남은 어떤 결과 중 하나이진 않은지?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존재하는 양상이 된다.



 

소설의 정의가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라면 에두아르 르베의 소설에선 허구가 없다많은 사람들이 유독 소설에서 개연성과 진정성을 요구한다본질이 허구인데 그것을 위해 더 많은 사실이 필요한 것은 소설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건 허구를 즐기기 때문인가, 사실을 찾기 위함인가. 둘 다라고 말하긴 쉽지만  글로 쓴다면 둘 다 성취하긴 어렵다. 그리고 작가의 입장이 우리와 일치하기도 어렵다. 르베는 말한다.



내 생각들이 내 말들보다 더 내 스타일이다. (p42)

   

문체 특성이 르베가 흠모한 조르주 페렉(작가, 비평가, 영화제작자)과 기 드보르(마르크스주의 이론가, 작가, 영화 제작자)와 비슷하기도 한데, 본인이 직접 밝히기도 했지만 그는 이 글을 소설이라는 틀로 써 내려가지 않았다. 독학파인 그의 이력에서 볼 수 있듯 대중 소설을 쓰는 작가보다 예술가로서의 창작 자세가 더 강하게 읽혔다. 사람들의 이해를 바라는 창작이었다면 이보다 정교하고 친절했을 것이다. 인정을 받든 받지 않든 그에겐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왜' 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어떻게'가 더 앞서 있다.

 

 

나는 멀리서 베르사유를 그리기보다는 가까이서 껌을 그리고 싶다. (p25)

 

나는 장르 구분이 차후적이며 부차적이지 선행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품은 공감을 구걸하는 노예가 아니며, 장르 구분도 법이 아니다. 지금껏 수많은 창작물들이 고정관념을 깨면서 더 의미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줬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작품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쓰고 노래하고 만든다. 창작자에겐 만족이나 가능에 방점이 있는 게 아니라 만드는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의미는 그 만듦 속에 있기에.

사람에 대해 말하고 이해하려는 이야기 형식으로 소설을 좀 더 넓게 본다면 이 소설도 분명 소설이다. "에두아르 르베"라는 한 인물이 살다간 유적으로.

르베가 삶 속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스타카토(한 음 한 음씩 또렷하게 끊는 듯한 연주)처럼 담은 문장 흐름 속에는 이야기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묘한 정서가 있다. 나는 이것이 에두아르 르베가 만들어낸 소설적 특징이자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 날 르베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살아 돌아와 "정말 모르겠어? 이건 시도 소설도 아니야. 이름표 따윈 당신들에게나 필요한 거지."라고 말해도 나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나는 내 사물들이 슬플 때면 그들에게 이야기를 한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모른다. 나는 기념물보다는 유적을 더 좋아한다. 나는 동창회에서 조용히 있는다. 나는 망년회에 대해 아무런 반감이 없다. 내가 언제 죽든 열다섯 살은 내 인생의 중간이다. 나는 삶 후의 삶은 있지만 죽음 후의 죽음은 없다고 믿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단 한 번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나는 죽어가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인생 최고의 날은 이미 지나갔을 수도 있다. (p144)

 

 

 

 

 

 * 에두아르 르베 사진작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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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29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머릿속에 시적 상상력이 넘쳐보여요!
산문체여도 시같은 ..구석이 엿보인달까...!^^

AgalmA 2016-08-29 06:38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시면 어떻고 소설이면 어떤가 했다는^^ 한국에서는 뭔소리야! 내가 지불한 책값, 투자한 시간 값을 해라! 요구로 가득하지만.

[그장소] 2016-08-29 22:15   좋아요 0 | URL
그쵸~?? 장르나눔이 애매한것 .그걸 가는것도 힘든일 같은데 ..우리나란 꼭 분리하려고 한단 말이죠 ..( 난 아닌것마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