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실용성을 좋아하죠. 그래서 어떤 분야, 특히 문학은 현실 생활에 아무짝에도 소용없다고 비아냥대기도 합니다. 여긴 그런 분이 안 계신 걸로……. (두리번, 두리번)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침 "난 문학을 미치도록 사랑해"
(킥킥 거리는 소리, 뒤돌아보며 의자 끄는 소리, 환호하는 소리)
네, 네. 잘 알겠고요. 진정하시고요.
오늘은 문학과는 안드로메다만큼의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는 과학 얘기 좀 해 보죠.
실용성? 있으면 좋죠. 있으면 좋은 정도가 아니라고요? 네, 네. 잘 알겠고요. 그래서 "중력파"의 눈물 많은 사연은 뒤로 미루고, 노른자라 할 수 있는 '중력파의 가능성'부터 말해 보겠습니다.
한국 중력파 연구협력단 연구원(그런 게 있었어? 네,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물겨운 사연도 생략하니 책에서 보시고요.)인 김정리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박사후연구원의 말을 들으면 단번에 감이 잡힐 겁니다. 안 잡히면 어떡하지;
김정리 : 상대론이 나오기 전 사람들은 시간은 시간이고 공간은 공간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아인슈타인이 이 두 개를 같이 생각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늘었다 줄었다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중력파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더 천천히 늙어가거나, 빨리 늙을 수도 있었던 거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변화가 무시할 만큼 작기 때문에 블랙홀이 우주 저편에서 충돌한다고 해서 우리 나이가 늘었다 줄어들거나 하진 않지만요.(p80)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는 문제보다 당장 한여름 누진세가 더 중요한 대다수 한국인에게 역시 안드로메다 같은 소리겠지만, 저 말은 '중력파라는 것을 빛처럼 다룰 수 있다면 시공간 자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이야기'(p80,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왈)입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그런 이야기가 또 나올 수 있단 말이죠. 참고로 작가는 글을 잘 다뤄 시공간과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지요. 그런 작가도 독자도 아주 소수지만.
시공간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건 '시간 여행'이란 개념이 '시간 생활'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도 보여 줍니다. 그게 당장 무슨 소용인가 매정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또 보이네요. 그럼 중력파 검출을 위해 탄생한 발명들을 볼까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레이저, 빛이 4km를 왕복해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광학 시스템, 그리고 레이저 간섭계를 다른 진동으로부터 완벽하게 고립시킬 수 있는 차폐 시스템' (p81)이 있습니다. 중력파가 발견되었으니 연구는 더 활발해질 테고, 앞으로 또 어떤 기술 발전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만날지 알 수 없는 일이죠. 인터넷 세계가 열린 이후의 질적 변화를 뛰어넘을 지도요. 자동차 운전에서 "뉴턴 역학"이, 항공과 천문학에서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고 있는 걸 모른 채, "실용성" 운운은 결과만 보려는 태도죠.
다음은 중력파가 무엇인지 더 궁금한 분들을 위한 장이니, 대강 아는 분들이나 흥미를 잃어버린 분들은 이쯤에서 퇴장하시거나 아래에 다른 칼럼을 보시면 됩니다. (드륵 드르륵 어수선한 분위기)
남은 분들을 보니 마음이 무겁군요. 과학자도 아닌 내가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심장이 죄어 오네요. 악플러도 아닌데 이거 좀 말해 보겠다고 이러니 약골이 따로 없군요. 약이, 약이, 약이 없네요. 그냥 할게요.
지금으로부터 약 110년 전 드라큘라 아니 아인슈타인이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을, 1915년에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특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이 없는 경우에 상대적 운동에 의해 달라지는 시간과 공간을 기술한 반면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장이 포함된 경우의 시공간 구조를 설명하는 이론(p39)"입니다.
"뉴턴 역학에서는 중력파가 나오지 않는 반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필연적인 현상"입니다. "뉴턴 역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지만 상대론에서는 관측자에 따라 달라"집니다. "빛의 속도는 관측자에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상대성 원리와, 중력과 관성은 구별할 수 없다는 등가 원리를 만족시켜주는 일반 상대론은 불가피하게 시공간의 구조와 물질의 분포를 연결(p39) 시켜 줍니다.
거기, 도망 가려는 거 아니죠. 흠흠.
"물체가 급속한 가속을 겪으면서 만들어내는 시공간의 요동은 빛의 속도로 전달"(p41)되고 이를 "중력파"라고 합니다. "시공간의 미세한 변화"를 의미하죠.
우리는 나열된 단어조차 이해하기 어려운데, 아인슈타인은 상황을 설정하고 오로지 생각만으로 추론하는 '사고실험'으로 이런 이론들을 발견했다니 놀랍죠. 그러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실험적 증거가 1950년대까지도 그다지 많지 않아 1921년 아인슈타인 노벨상 수상 이유에는 들어가지 못 했습니다.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나온 이번 중력파 검출 사례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검증이 이뤄진 사건이기도 합니다. 검증이 잘 되지 않아 아인슈타인은 중력파가 없을 거라고 의견 철회까지 하기도 했는데 말이죠. 중력파 검출하는 일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데 <인터스텔라의 과학>을 쓴 킵손의 역할이 매우 컸더군요. 나머지 자세한 이야기는 KOREA 《SKEPTIC》 vol. 5에서 만나 보세요.
잠깐, "중력파"만 끝났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KOREA 《SKEPTIC》 vol. 5 나머지 소개도 마저 해야죠.
캐럴 태브리스는 <익명의 악플러에게 던지는 경고> 칼럼에서 '카타르시스 가설(분노 표출이 정신과 신체 건강에 이롭다는 이론, p7)과 프로이트 이론이 인터넷 공간에 트롤(악플러)의 번성 이유를 말해준다고 합니다. 모든 배출이 좋은 게 아니죠. 악플러가 심장질환 발병이 높다지만 당장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에겐 위안이 안 됩니다. 악플러가 심장질환 무서워서 안 할 리도 만무하니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없겠고요.
해리엇 홀 <"우리 이모가 좋대요": 우리는 왜 증거보다 체험담을 믿는가>에서는 '우리의 비논리적 행동이 진화를 통해 우리에게 심어진 사고 과정'(p18)이라 말하며 과학적 방법론을 깔끔하게 보여 줍니다.
버나드 레이킨드 <휴대폰은 암을 유발할 수 있을까?>에서는 휴대폰을 직접 먹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다고 합니다.
이덕환 <주기율표는 멈추지 않는다>는 짧은 분량 속에 주기율의 역사부터 현재까지 꽉꽉 채운 칼럼이었습니다. 저는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를 아직 읽지 않았는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흐뭇해하며 봤습니다.
<당신도 하루 만에 영매가 될 수 있다>는 마 이클 셔머가 영매로 가장해 상담을 하는 내용인데, 초능력, 텔레파시, 예지력, 투청력, 초자연적 현상 다 필요 없고 상담자의 심리만 잘 읽어내면 어려울 게 없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그것도 쉬운 건 아니지만 말이죠.
[Focus 2025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다]에서는 캐럴 태브리스, 재러미 다이아몬드, 그레고리 벤포드의 강연이 실려 있습니다.
캐럴 태브리스는 <유전자의 끈을 늘리자>라는 제목으로 '젠더와 인종의 미래'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말합니다. "하나는 발달된 기술이 인간 본성을 변화시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이 인간 본성에 맞춰 변화한다는 것"(p146)
젠더 문제에서 그 원인으로 늘 논란인 '유전자인가, 아니면 문화나 경험인가'에 대해 서술됩니다.
강연 제목은 에드워드 윌슨이《인간 본성에 대하여》에서 "문화는 유전자의 끈에 붙들려 있다"라고 말한 데에 착안해 지은 것 같더군요.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말에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늘 그렇듯 위트 있게 반박했는데, 책에서 확인해 보세요 :)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전통사회로부터 배우는 미래의 지혜> 제목 그대로 뉴기니 전통 사회의 육아, 건강 식이, 알츠하이머 예방법, 불화를 해결하는 지혜를 소개합니다.
그레고리 벤포드 <우주 여행과 우주 개발 사업의 미래>란 거창한 제목에서 기대했던 거와 달리 폐위성 재활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총알보다 큰 인공위성 잔해 6백만 개가 위성 궤도를 돌고 있(p165)"다고 하니 구름 너머 쓰레기장인지 재활용센터인지 헷갈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아래에서 그걸 별이라고 보고 있을 테고;
3D 프린터를 이용해 그것들을 현장에서 새 제품으로 만들자고 제안하는데, 돈 들여가며 태평양에 추락시키는 방식보다 100배 낫죠.
연재물로 <김범준 교수의 복잡계 강의>도 진행되네요. 김범준 교수는 《세상 물정의 물리학》 으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분이죠.
카오스 이론, 비선형동역학 등 어려운 용어들이 별똥별처럼 마구 쏟아집니다. 정신 차려야 즐길 수 있다!
"과학 자체가 복잡한 것이 아니라 과학의 대상이 복잡한 거다"(p171)로 시작해
"어려움과 복잡함은 다른 얘기다. 어려운 것은 알고 나면 쉬워 보이지만, 복잡한 것은 알았다고 해서 복잡함이 없어지지 않는다. 어려움이 인식론의 영역이라면 복잡함은 존재론의 영역이다"(p172)란 문장들을 보며,
이 분은 과학자이면서 철학자이시군! 했습니다.
<Theme 회의주의란 무엇인가>에서 필 몰레는 "오컴의 면도날의 이용과 오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컴의 면도날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가장 단순한 가설이 가장 옳을 가능성이 높다"(p189)란 의미로 쓰지만, 단순한 게 '언제나 더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순성'은 여러 인자 중 하나일 뿐입니다. 가설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시험 가능성, 결실성, 적용 범위, 보수성(잘 정립된 지식)'(p196~197)이 다른 인자로 설명되고 있으니 참고합시다.
'양날의 검'이란 표현도 있듯이 "오컴의 면도날"도 잘 쓰면 우리가 저지를 오류를 최소한으로 줄여줄 겁니다.
《SKEPTIC》 vol. 5에서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건 '음모론'입니다. 911 테러를 미국 정부가 사전 계획해 '제어 폭파'했다는 주장에 대해 반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음모론의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황당함'이죠! 주장이 엉터리인 게 안타깝지만 미국 정부를 당당히 공격하는 미국 시민 모임이라니 한국에서는 별나라 얘기 같아 씁쓸하죠.
자, 중력파부터 폭파까지 이번 《SKEPTIC》 vol. 5도 종횡무진 재미난 과학여행이었습니다.
어, 아직도 계셨어요? 당신도 《SKEPTIC》의 매력에 빠지셨군요. 훗.
이대로 끝내기 어쩐지 머쓱;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에 나오는 BGM이라도 나와야 할 거 같은데...
여름이니까 납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