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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ㅣ 문학동네 시인선 43
리산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5월
평점 :
성기완 시인은 평을 위한 평을 하고 있다. 침묵하는 혁명가라...정말 그런가. 시인은 너무 많은 것을, 자기를 말하고 있었다. 시든 소설이든 첫째로 두는 게 단순미라는 걸, 쓰는 자는 종종 잊는다. 내가 말하는 단순미는 간결함이 아니다. 내용과 의미가 겉돌지 않는 일체성을 뜻한다. 이해와 공감의 여부를 떠나 사람들이 글을 읽고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건 이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파편적이라 말하는 초현실주의 시의 자동기술법은 가장 강렬한 일체성을 꿈꾼 노력이었다. 무의미 시도 사실 그랬다. 언어를 거부할 때마저도 잊지 않는 언어를 향한 주문(呪文)이자 기원(祈願)이었다.
나는 늘 시의 혁명이라 할 '일체를 향한 독창성'을 읽으려 애썼다. 성기완 시인이 혁명을 가져와 붙이는 바람에 시의 감상이 도드라져 보이는 역효과만 낳았다. 그 뒤에 혁명을 숨겼다고 말하지 마시라.
언어에서 혁명은, 시는 제 불행을 심지로만 남겨두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겨우 끌어 모아 세계를 폭발시키는 침묵이다. 성기완 시인도 이 뜻은 같이 하면서 왜 평은 그런가. 평을 위해 혁명을 그릇되게 사용하지 마시라.
현실처럼 언어에서도 혁명은 앞장서는 것이지 따르는 것도, 뒤에 남는 것도 아니다.
진두 지휘하지도 못하고 노래가 되어 산화하지도 못한 채 패배를 당연시 받아들이는 모습에 씁쓸했다. 결기를 잃은 혁명은 이미 실패다. 시집 제목이 "쓸모없는 노력의 혁명"이 아니라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이 된 이유겠지. 본인이 원한 시집 제목이라면 시인은 최소한 정직했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참 밉겠지만 다음 혁명을 고심하는 데 참고가 되길....
ㅡAgalma
레이먼드 카버 氏의 장점은 땅, 권총소리가 날 것 같은 장면에서 그런데, 라고 말하는 것, 아슬아슬 경계를 피해 가는 것 그걸 미니멀리즘이라고 한다지만
당신과 함께 우연히 보게 된 어떤 드라마에서도 선(線)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지, 마음을 끄는 한 여자의 발밑에 선을 죽 긋던 남자
詩 수용미학(발췌)
숫자 1은 0을 불문에 붙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했다 다만 부재하는 모든 것으로 밤은 시작된다고 나는 말할 수 있을까
목소리가 그리운 날에는 혼잣말을 한다
詩 서쪽의 국경수비대(발췌)
그런 강은 아니지만 강물이 얼어붙는 걸 지켜보고 있었지
詩 호탄의 도적이여, 강은 얼어붙고 말은 지쳤으니(발췌)
한 생이 끝나고 또다른 생을 시작하려는 죽은 새의 뜬 눈
詩 폭풍추적 전문가(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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