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괜찮으십니까 - 울리히 벡의
울리히 벡 지음, 전이주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

2015년 한국, 무슨 조사만 하려면 다 의문의 자살이다-_-...
나라가 너무 웃겨서 내 삶 열중하기 참 어렵다.

울리히 벡 선생의 명언 `느낌상 평화`, 이 관용구 참 자주 쓸 거 같다. 
논리상 멀리 떨어져 숨겨져 있어야 할 전쟁이 자꾸 노출되니 `느낌상 평화`나 `국가적 정체성`도 흔들리기 십상이다. 

한국의 정치하는 사람들이여, 서사 공부 좀 해라.
심리 정치 여전히 효과 있지만, 서사 정치 무시하면 큰코다쳐요. 대중도 넘어갈 만하면 넘어가지. 피곤하니까.
그런데 기승전번개탄이라니! 그래 가지고 사람들이 (조작) 작품의 진정성을 받아들이겠나? 하는 짓마다 어설픈 사기꾼. 주례사 언론 믿고 그러나 VIP 백 믿고 그러나? 둘 다겠지. 모르는 척하기가 더 어렵네... 셋 다, 넷 다 하다 옜다 해주기 싫거든! 
사람 목숨 왔다 갔다 하는데 마냥 비웃을 수도 없고 끙... 



ㅡAgalma







이것이 바로 세계내부정치의 한 모습이다. ‘아웃소싱’이라는 개념에 함축되어 있는 표면적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주 극단적인 예로 이른바 ‘환경’ 문제를 들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산업이나 정치적 결정으로 인해 초래되는 이 ‘잠재적 부작용’을 공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국경 너머의 ‘타자(他者)’나 ‘외국인’에게 ‘아웃소싱’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우리는 대안 없는 신(新)-신(新)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제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p28)

20세기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가지 상반되고 상호배탁적인 체제로 대변할 수 있다. 지구 전체가 이 두 가지 체제를 실험하며 살았다. 하나는 중앙 집중적이고 계획된 국가경제 모델을 도입하려고 했고, 다른 하나는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자본주의 경제를 따르려고 했다.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는 사회주의의 몰락을 나타낸다. 지금 ‘순수’ 자본주의가 바로 우리 눈앞에서 붕괴되고 있다. 비록 자본주의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지는 않지만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이래 수년 동안 세계와 세계 정부들에 사로잡힌 그와 비슷한 신자유주의적 근본 자본주의의 종말을 목격하고 있을 거라고 가정해보는 것도 그럴 법하다. 국가사회주의 또한 규제 없는 시장자본주의라는 대안이 존재하기 때문에 몰락했다. 결과적으로 엘리트 한 명을 다른 엘리트로 대체할 수 있었다. 이제 시장 자본주의라는 순수 원칙이 똑같이 몰락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생존 가능한 대안이 없다.(p29~30)
- 2009년 7월 <자본주의의 버섯과 다른 꽃들>

충격적인 사실은 세계위험사회 내의 여러 갈등이 문화적 갈등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위험이 평범한 과학적 계산 방법을 벗어나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영역이 될수록 특정 글로벌 위험에 대한 문화적 인식, 즉 위험의 현실성과 비현실성에 대한 믿음이 중요해진다. 원자력의 경우에 우리는 위험 문화risk culture 간의 충돌을 목격하고 있다. 그로 인해 체르노빌 사례가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에서와 우크라이나, 러시아에서 서로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다. 많은 유럽인들에게는 현재 기후 변화로 인한 위협이 원자력이나 테러보다 실현가능성이 훨씬 더 커 보인다. (p38~39)
- 2009년 8월 <원자력 초음속 제트기 전원 승선!>

그것이 바로 개인의 행복과 약속된 평등의 중심, 즉 가정에서 거시적이자 미시적 수준으로 동등하게 펼쳐지고 있는 일종의 세계내부정치이다. 양성평등에 대한 염원이 담긴 맞벌이 가정의 타협적 해방은 암묵적으로 이 ‘조직화된 불법 행위’와 상 파피에(프랑스, ‘등록되지 않은 사람’ -불법체류자 뜻)와 미등록 노동자들, 세계 빈곤지역에서 온 클란데스티니(이탈리아 ‘밀입국자’뜻)와 불법 이민자들의 소리 없는 지원을 바탕으로 한다. 그들을 성(姓) 대결의 ‘평화유지군’이라고 부를 수 있다. 모두가 이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정확하게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거듭 말하지만 그 체계는 불법이고, 그 덕분에 돌아가기 때문이다. (p73)
- 2009년 11월 <불법 세계시민>

세계내부정치란 피부색이나 국적, 출신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친근하게 다가오든 낯설게 다가오든 상관없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몰락과 고통과 착취의 세상에 사는 이들 ‘외국의 이방인들’과 공존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가지 결론은 여러분이 소속되어 있지 않고 아웃사이더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정치적 순수성’의 모든 가치를 묻어버리라는 것이다. 또 다른 결론은 글로벌 위험에 대한 높은 인식이 미래에 대한 대안적 구상, 진정한 대안적 근대성을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글로벌 위험은 자멸적 은행시스템과 기후가 변화하는 산업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새로운 제도를 설립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걸음이자 전 세계의 정치 활동에 대한 즉각적인 요청으로 보일 수 있다. 게다가 불가피한 위험과 직면한 우리는 ‘세계주의적 관점’ 개발이라는 과제와 마주한다. 글로벌 위험을 세계주의적 관점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존재나 부재는 역사적 경험에 따라 급격히 상반되는 형태를 추정할 수 있는 문화적 인식과 평가에 따라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여주는 예로 생체의학, 특히 인간 복제를 포함해 재생 의학과 태아 검진, 줄기 세포 연구 분야의 극적인 영향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이 문화적 평가와 판단의 두 세계적 양극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국가로 이스라엘과 독일을 꼽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생체의학 분야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앞서가고 있다. 목표는 높은 출생률을 통해 국가의 생존을 확보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고 심지어 금지하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에서는 받아들여지고 행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법의 상담을 받아야만 하는 위원회의 찬성 하에 대리모업을 허용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난자 공여자가 유대인이어야 한다. 이것은 정통파 유대교 당국이 엄격하게 감시하는 필수 요건이다.
...(중략)...이식 전에 시험관에서 유전적 결함이 있는 배아를 검사하여 하나라도 이상이 있으면 제거하는 착상 전 유전자 진단(PID)은 이스라엘에서 일상적인 절차이다. (p74~75)
- 2009년 11월 <불법 세계시민>

‘느낌상 평화’와 ‘벌어진 전쟁’은 동시에 존재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배치도는 느낌상 평화와 실제 전쟁이 공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고 특정 패턴 의 단계 및 정당화, 즉 전쟁의 선택적 가상성의 개요에 따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에 한해 상대적으로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그건 그렇고 보드리야르의 과장된 말은 상대 피해자들을 보지 못하는 서구의 관점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분리된 가상성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모두 분명히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병사들이 이국땅에서 매일 무슨 일을 수행하고 성취하고 참아내고 겪어야 하는지 내부에서 보지 못하게 한다. 내부 소비를 위한 가상성을 만들어내는 한편 해외의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는 사실은 모든 국방장관을 자위대적 국방장관으로 바꾸는 전반적인 일련의 모순들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전쟁이 ‘저기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전사자는 ‘아군’이 아니며 독일군이 민간인을 한 명도 죽이지 않을 경우에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작된 전쟁의 비현실성은 극단적인 분류 체계를 필요로 한다. 즉 ‘부작용’이나 ‘부수적 피해’가 발생한 나라에서 결정한 곳을 분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느낌상 평화와 벌어진 전쟁 사이의 구분선은 군대와 정부를 갖춘 서구 사회가 세우고 유지해야 하는 가상과 현실 사이의 구분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p95~96)
전쟁의 종극(終極)은 거의 항상 감춰져 있어야 한다.(p98)

의사(擬似) 의식과 무지(無知)에의 인식을 고려할 때 세계적 유행병의 위험은 두 가지 (잘못된) 결정만 허용한다. 예방조치를 받아들이고 히스테리라고 비난을 받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서 보는 곳마다 무책임하다는 불평을 한다! 그것이 증상이 있는 것이다. 계산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의 세계는 놀라움의 요소나 (특히 그러한 위험에 통달할 수 있다는 주장의 승리라는 면에서 보면), 더 정확하게는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 처음에 생기는 불안정과 불확실의 다른 말인 조작된 불확실성의 요소를 표출한다.(p101)

`불확실한` 지식이라는 것은... 내가 단지 확실하게 아는 것과 개연성이 있는 것을 구분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룰렛 게임은 이런 면에서 불확실성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이 용어를 유럽 전쟁의 전망이 불확실하다든지, 그로 인해 20년 후 구리 가격과 이자율이 불확실하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계산할 수 있는 확률 형태로 나타낼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 그저 알지 못하는 것이다.
ㅡ존 메이너드 케인스, 1937년(p102)

- 2010년 1월 <평화의 시대에 벌어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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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7-20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의 뇌가 심히 퇴화하지 않았다면 <불확실성의 시대>에 나온 글 아닌가요. 좋은 책이란 읽을 땐 잘 모르는데 시간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이 생각 나는 책인 것 같아요... 이 책이 바로 그런 듯 해요... 근데 찍은 그 책이 이 책 만약 아니라면 ... ㅠㅠ

AgalmA 2015-07-21 06:56   좋아요 0 | URL
울리히 벡이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인용을 해서 그 책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케인스 여기 저기서 발췌된 것만 보고 저도 정작 원작들을 읽어보진 못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