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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평점 :
§ 피케티는 왜 마르크스와 비교되는가 - 마르크스의 ‘분배 동학(動學)’
(* 動學: 자본의 증가율, 인구의 점증적 경향 따위와 같은 연속적인 변동 현상을 분석하는 경제이론)
피케티 또한 언급했듯이, 불행한 예언들의 실패를 비웃기는 쉽지만 그들(여기서는 정치경제학자들)의 연구가 모래 위에 쓴 기록이지만은 않았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중에 마르크스를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내가 그를 맨 처음으로 언급하는 것은 그 유명세 때문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를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여섯 권의 책을 계획했다. '자본, 임금노동, 토지재산, 국가, 대외거래, 세계경제'가 그것인데, 자본, 임금노동, 토지재산에 대한 부분만 제시되고 나머지 부분은 완성이 되지 못했다.
제1권 ‘자본의 생산과정’(1867)에서는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관계 속에서 자본이 어떻게 축적되어 가는가를 생산영역에서 고찰했고,
마르크스 사망 후 엥겔스에 의해 편집‧출판된,
제2권 ‘자본의 유통과정’(1885)에서는 자본가가 투자한 화폐가 증식되어가는 과정을 ‘재생산표식’을 바탕으로 연구했고,
제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1894)에서는 자본가계급(산업자본가 ‧ 상업자본가 ‧ 금융자본가 ‧ 토지소유자)이 노동자계급에게서 착취한 잉여가치를 각각 기업이윤 ‧ 상업이유 ‧ 이자 ‧ 지대의 형태로 분배하는 역학을 설명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제1권에서 제일 먼저 부의 축적을 살펴보았듯이 피케티도 부와 소득의 관계를 첫 번째로 살피고 있고, 마르크스가 끝맺지 못한 제3권 '계급'과 '분배' 지점에서 140년 뒤 피케티 또한 부의 분배 문제에 집중해 말하고 있다. 피케티의 의도이든 아니든 그의 경제 연구 기조는 마르크스를 이어 받은 셈이다. 다르게 말하면 마르크스의 이론과정과 '무한 축적의 원리'는 정석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 피케티의 고난 - 쿠즈네츠의 '분포 동학(動學)'
피케티의 연구 방법론은 그도 밝혔듯이 쿠즈네츠에게서 왔다.
쿠즈네츠는 ‘소득분배 시계열 자료’로 사회적 불평등을 최초로 시도(p21)한 경제학자였다. 쿠츠네츠 곡선은 '역U자곡선'으로, 노동자가 가난한 농업부문에서 부유한 산업분야로 이탈시 처음에는 소수만이 그 산업부문의 부의 혜택을 받아 불평등이 증가하지만 결국엔 모두 혜택을 받고 불평등이 감소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쿠즈네츠 곡선은 복잡한 상황 속에서 왜곡되었다. 쿠즈네츠의 통계는 1913년~1948년 동안의 미국 소득 통계 자료였는데, 이 시기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경제적, 정치적 여파를 계산할 수 없는 오류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쿠즈네츠는 “저개발국이 자유세계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도록”(p25) 냉전시대 미국 경제학자로서 소득불평등은 감소한다고 낙관적으로 제시하는 정치적인 행위를 했다.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무솔리니 정권에 협력한 '파레토 법칙'의 파레토(p439)나 1881년의 프랑스의 폴 르루아볼리외의 사례(P602) 마찬가지였고, 찾자고 들면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의 정치성'이란 논문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숨 한번 쉬어 줘야 되지 않겠음?) 책을 통해 확인되는 대부분 조사에서 피케티가 제시하는 소득 불균형 곡선은 U자 곡선이다.
피케티는 쿠즈네츠의 연구를 “공간적/시간적으로 더 광범위하게 확장해”(p27) 각 나라별/19세기 후반부터 21세기 현재를 통해 소득불평등의 역사적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세계 최상위 소득 계층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데 전 세계 학자 30여명의 공동 연구가 그 바탕이 되었다. 세계대전 이후 안정된 자료 수집과 컴퓨터 등의 기술 발전도 이 연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피케티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모두의 협업을 유도하고 있다.
http://piketty.pse.ens.fr/capital21
§§§ 피케티의 사회과학적 시선
과연 경제의 파국이 물질성만의 문제겠는가. 그는 우리 내면의 구조화 문제도 지적한다.
피케티의 이러한 시선만으로도 그의 논의는 얼마나 신뢰를 주는가.
(p500) 현대소설가들은 발자크, 오스틴, 헨리 제임스처럼 3000만 유로 가치의 재산으로 소설의 줄거리를 채우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으로 기존 수치의 의미가 모호해진 이후, 문학에서 돈에 관한 노골적인 언급이 사라졌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자본소득자들 자체도 문학에서 사라졌고 그 결과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인 표현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현대 소설에서 사회집단 간의 불평등은 거의 배타적으로 일, 임금, 기술과 관련된 격차의 형태로만 나타난다. 부의 계층에 따라 구조가 짜였던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인적자본의 계층에 따라 구조화된 사회로 대체되었다. 예를 들어 최근의 많은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에 학위와 높은 수준의 기술로 무장한 남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중략)…그런 드라마들은 능력, 교육, 엘리트층의 사회적 유용성에 근거한 공정한 불평등에 바치는 찬가라고 해석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더 최근의 특정 작품들은 막대한 부에 더 명확하게 기초한, 더욱 걱정스러운 불평등에 관해 묘사한다.
(Agalma - 피케티가 우리나라 재벌 드라마 홍수들 보면 기절초풍할 듯-_-;)
(p502) 이 상속받은 6분의 1의 인구가 학위를 따거나 노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고, 또한 소득 분포의 하위 50퍼센트보다 노동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것은 꽤 우려할 만한 형태의 불평등이며, 이러한 불평등이 역사적으로 전례 없이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는 중이다. 또한 이러한 불평등은 예술로 표현하거나 정치적으로 바로잡기가 더욱 어렵다. 사회의 나머지와 맞서는 소수의 엘리트층과 싸운다기보다는 전체 인구의 광대한 부분과 겨루게 되는 아주 흔한 불평등이다.
(p503) 우리의 민주사회는 능력 중심의 세계관, 혹은 적어도 능력주의에 대한 희망에 의지하고 있다. 혈연과 임대료보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불평등이 나타나는 사회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믿음과 희망은 현대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가 있다고 공언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현실의 생활 상태는 매우 불평등한데,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의적인 우연성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적어도 담론의 영역에서 그리고 현실에서도 가능한 한 불평등은 모두에게 공정하고 유익해야 한다.(1789년에 선포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에 따르면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p506) 경제적, 기술적 합리성은 계몽주의에서 유래했고, 사람들은 흔히 민주주의적 합리성이 경제적, 기술적 합리성에서 마치 마술처럼 저절로 파생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와 사회적 정의를 이루려면 시장의 제도, 단지 의회나 그 외의 형식적인 민주주의적 제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스스로의 특정한 제도들이 필요하다.
§§§§ 지금은 퀴즈 시간! 알라딩동!
이 책에 대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요약해 전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이 연구의 노고와 역사적이면서 미래적인 함의를 직접 따라가 살펴 볼 필요가 있음을 밝히며,
나는 몇 가지 흥밋거리를 제시한다. 전문용어로는 낚시?
(p398)
실제로 ‘순수하고 완전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애덤 스미스)도 존재하지 않는다.
ㅡAgalma : 어떤 것에 대해 피케티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p452) 만약 21세기가 인구감소와 경제의 저성장 및 자본의 저성장 및 자본에 대한 국제적 경쟁의 격화를 배경으로 한 높은 자본수익률의 시대가 된다면 혹은 어쨌든 이러한 조건들이 성립되는 국가들에서는, 아마도 ( )이 19세기만큼이나 다시 중요해질 것이다.
ㅡAgalma : ( )괄로 안의 답은?
힌트: 발자크 『고리오 영감』 中 보트랭이 노린 것. 책 속에서 하도 언급이 많이 돼 읽고싶다.
부의 축적 방법으로 노동과 ( )이 있는데, 마르크스가 놓친 점이기도 함.
피케티는 국가 내부의 불평등이 국제적 격차 확대보다 더 우려스럽다고 했는데, 그 우려 중 하나 (p552) ( )는 부유한 국가들이 자국의 억만장자에 의해 소유되는 과정, 혹은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중국과 석유수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가 점점 더 지구촌 부호들의 소유가 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ㅡAgalma : ( )괄로 안의 답은? <객관식> ① 삼성공화국 ② 과두적 형태의 격차 확대
§§§§§ 전쟁과 평화 - 민주주의 속에서
역사적으로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었던 시기는 세계대전 직후였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듯 혁명이든, 전쟁이든 우리는 치러야 할까? 그 선택이 효과적으로만 작동하지 않는 것을 우린 역사 속에서 목격했다. 혁명은 산업사회가 아닌 가난한 농업사회 러시아에서 일어났고 극심한 실패 속에 자본주의로 전향하지 않았던가. 자본주의가 안정화된 국가 중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을 한 예도 전무하다. 프랑스 68혁명도 학생과 노동자 계급의 연대였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겨냥했다기 보다 욕망을 억누르는 권위주의 시스템에 대한 항거였다.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최근 영국령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국민 투표 결과(독립 반대)만 봐도 시사되는 점이 있지 않은가.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착취계급으로만 봤지 노동자가 욕망으로 생산에 참여한다는 점은 간과했다.
전후 자본주의 또한 본질상 이행국면이었고 자본/소득 비율의 재상승과 부의 재증가(p475)로 구조적 전환을 하지 못했다.
"전 세계적 자본 분배의 동학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p546)". 자본 분배에서 약자인 우리는 이 세계에서 우리의 유일한 자본이자 무기인 민주주의 제도로 올곧이 타개해 나갈 수밖에 없다.
(p529) 세계적으로 대규모 재산에 대해 매년 부과하는 누진(적 소득)세 필요 …(중략)…조세적 접근은 또한 부의 도덕적 위계에 대한 헛된 논쟁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모든 재산은 정당하지만 잠재적으로는 과도하다. 그 부가 완전히 도둑질의 결과인 경우는 드물며 절대적으로 능력에 의한 경우도 마찬가지로 드물다. 자본에 대한 누진세의 이점은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고 일관되며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방법인 동시에 대규모 재산을 민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이런 경우가 이미 꽤 많이 있다. (p561) 이는 은행 시스템과 국제자본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p530) 글로벌 자본세 - 현실에서 흔히 서구의 민족중심주의를 발휘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부의 도덕적 위계를 구성하는 데 관심을 쏟기보다는 부의 동학을 지배하는 일반적인 법칙을 이해하려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즉 개인은 차치하고 대신 규제방식, 특히 국적과 관계없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세제에 관해 생각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완성하지 못한 '국가, 대외거래, 세계경제'에 대해서 힐퍼딩(Rudolf Hilferding) 『Finance Capital』(금융자본), 레닌(V. Lenin) 『Imperialism』(제국주의)에서 다루고 있다고는 하는데(김수행『자본론의 현대적 해석』p16), 피케티가 제시하는 '글로벌 누진세', '글로벌 자본세'만큼 - 유토피아 이상론이라고 욕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매력적이고 전세계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못 다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고 본다. 김수행 교수가 『자본론 공부』에서 말했을라나. 아, 또 확인해봐야 할 일거리가 생겼구나.
§§§§§ 경제 대안에 대한 시민 Agalma씨의 1표 - 한국에 필요한 경제 시스템은 "공동 결정 시스템"과 "기본소득제"다
대외적으로는 토마 피케티『21세기 자본』에서 제기된 '글로벌 누진세', '글로벌 자본세'가 확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대내적으로는 (계급적이든 소득적이든) 불평등의 핵심요체이자 가장 강력한 경제 의사 결정권자인 최상위층의 패악을 견제해야 된다는 점에서, 노동 조합과 정부가 기업의 주주 자격이 되어 참여하는 "공동 결정 시스템"(독일, 스웨덴 등)이 한국에 정착되었으면 한다.
부자 나라 입맛대로 구조조정되어야 했던 IMF로 인한 되돌릴 수 없는 사태들(민영화!), 삼성의 무노조 정책으로 인한 여러 사례들, 단기 이윤 즉 배당금을 노리는 주주 중심주의가 낳는 노동자의 희생과 경제 투자 하락(이 부분은 『장하준 경제학강의』p296, 301) 등등을 생각해보면 정말 절실하지 않은가. 물론 한국에선 정부도 매우 견제해야 하는데, 미국 정치 평론가 짐 하이타워 "기업은 더 이상 정부에 로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이 바로 정부이다."(『장하준 경제학강의』p190)라고 말했듯이 한국 경제는 대단히 미국식이며 기업 로비, 회전문 인사, 연고주의, 공직자 부패, 독재 or 권력주의 정치가 등 부정요소들이 다 피할 수도 없이 너무 많고 뿌리깊다!
요즘 우리나라에 붐을 이루고 있는 대안 협동조합도 바람직하지만 이미 견고히 구축된 한국 시장 경제를 지정학적으로 변화시키기엔 기반이 너무 약하다. 협동조합에 관해서 참고할 저서로 신승철『욕망자본론』에서 언급된 몇몇 책을 소개한다.
국내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해보이지만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생산적인 대안인 "기본소득제"는, 신승철『욕망자본론』(2014)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신승철씨도 밝힌 바대로, 기본소득과 수혜적복지(노령연금, 기초생활수급)는 다른 복지의 성질이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본 소득은 자립의 기초이며 생산적 성격이지만, 수혜적복지는 노년에 빈민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책이다.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논의를 폭넓게 하고 사회기반에 확립시켜야 한다.
대안경제에 대해서는, 칼 폴라니가 '영국 국빈법과 관련된 스피넘랜드법에 대한 탐구'를 한 『거대한 변환』도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에필로그)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책의 막대한 분량에 비해 유머 함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그나마 있는 유머조차 심각해!).
피케티 때문에 내 글 또한 매우 재미없게 작성된 경향이 있는데ㅡㅜ
그러나 우리는 웃기 위해 잠을 자는 것이 아님을 상기하자.
이 책은 책 속에서 웃음을 주기보다 우리 현실에서 웃음을 찾아주려는 책이다.
토마 피케티와 장하준을 비교분석한 것도 꼭 봐 주길 바란다:
http://blog.aladin.co.kr/durepos/7337428
ㅡ 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