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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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보 속 리듬을 듣듯이 따라가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시냇가의 디딤돌을 건너듯  단상을 거치는 소설이 있고,  돌이 쌓여 성벽이 만들어지는 걸 목격하는 소설도 있다. 백과사전은 소설이 될 수 없지만 소설은 백과사전이 될 수 있다. 이 말의 핵심은 제대로 된 백과사전 같은 소설쓰기란 백과사전이 소설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 백과사전이 소설보다 재밌는 사람에겐 다 난센스 같은 말이다.  더욱 절망적인  술주정,  동냥짓,  나쁜 습관이 몸에 밴 소매치기 같은 소설들에 대해서는 차라리 눈을 감는다.

 

그런가 하면 거울을 보듯 문장을 보는 독자가 있고, 총구를 마주한 듯 느끼는 독자도 있으며, 잃어버린 일기장을 대하듯 하는 독자, 책을 집 삼아 파묻혀사는 중독자도 있다.

 

독자라 할 수 없는 부류도 있다. 독자로 가장하고 정복엔 필연적으로 약탈이 뒤따른다고 행하는 도둑, 독서를 비타민이나 음료수 정도의 소비재로 여기는 상인,  자신의 내·외적 가난함을 가리기에 적합한 저렴한 값의 악세사리로 책을 필요로 하는 속물, 생경한 이국요리나 해외여행처럼 기대심리로 다가가는 관광객, 꿈같은 소리라며 외면으로 대결하는 외골수, 장르국한주의자, 문학사절주의자 등이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걸 겪고난 뒤에야 우리는 어른 독자가 되는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소설의 독자란 사랑에 빠지는 존재다. 몇 시간 혹은 평생. 소설의 효용이나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숲속에 도착한 이후처럼 그저 읽을 뿐.

 

다소 장황한 이 이야기를 왜 했나면, 이 소설이 이런 이야기를 하게끔 만드는 백과사전 같은 소설이라서다.

 

 

 

 

 ㅡ Agalma

 

 

 

 


 

 

 

 

p 104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토마스와 사비나가 중절모의 모티프를 서로 나눠가졌듯),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료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게 마련이다.

  내가 사비나와 프란츠 사이의 모든 오솔길을 되짚어본다면, 그들이 작성한 몰이해의 목록은 두터운 사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조그만 어휘록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p10

  영원한 회귀라는 사상은, 세상사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보지 않게 해주는 시점을 일컫는 것이라고 해두자. 다시 말해 세상사는 그것이 지닌 순간성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실 이 정상참작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심판도 내릴 수 없었다. 순간적인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 지는 해를 받아 오렌짓빛으로 변한 구름은 모든 것을 향수의 매력으로 빛나게 한다. 단두대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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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6-09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강렬하네요. 책에 담긴 작가의 사유만큼..^^

AgalmA 2015-06-09 16:25   좋아요 0 | URL
님 덕분에 조금 고쳤어요. 고마워요ㅜㅜ 종종 체크하는데 오늘도 영락없이....
위의 생각과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는데, 문제는 엉성한 문장들.... 🐧
언제나 지금의 한계를 느껴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