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지 않은 하루키 소설은 아껴 먹으려고 따로 빼둔 과자와 같다. 읽기 시작하면 며칠만에 뚝딱 먹어치우니까 아깝다. 『1Q84』 이후 질리기도 해서 나머지 소설은 정말 심심할 때 읽어야지 하고 놔두고 있었다. 『1Q84』에서 편집자 고마쓰 씨는 읽을 책이 바닥났을 때는 ˝그리스 철학을 읽어. 싫증나는 일이 없어. 항상 뭔가 배우는 게 있지.˝라고 했지만.

최근 『기사단장 죽이기』, 『1Q84』를 읽으니 묘사, 서술, 소재, 인물 설정 등 영향받은 작가가 계속 오버랩되어 재밌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하고.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이 결정적이다. 하루키가 변별점을 만드는 지점을 읽어내는 게 또 재밌고. 특히 가상 세계.
다시 읽어도『1Q84』는 여전히 실망스러웠지만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회복세가 보여 최근 소설을 계속 읽어나가기로ㅎ;;
소스의 비밀을 안다고 다 맛집이 아니듯 하루키가 펼쳐놓는 세계에 공감하기 시작하면 무엇도 문제되지 않는다. 재독해도 재밌으니 이 정도로도 된 거 아닌가ㅎ








운전기사의 말투에는 뭔가 은근히 걸리는 게 있었다. 늘 중요한 것 하나는 말하지 않고 남겨두는 듯한 말투다. 예를 들면(어디까지나 예로서) 도요타 자동차는 차음에 관해서라면 아무 불만이 없지만 그밖의 다른 뭔가에 관해서는 문제가 있다, 라는 듯한. 그리고 말을 마친 뒤에는 함축적인 작은 침묵 덩어리가 남았다. 차 안의 좁은 공간에 그것은 가공의 미니어처 구름처럼 덜렁 떠 있었다. 그 때문에 아오마메는 어쩐지 불안했다.

(중략)

"현실은 언제든 단 하나밖에 없어요." 책의 중요한 한 구절에 밑줄을 긋듯이 운전기사는 천천히 반복했다.

"물론이죠." 아오마메는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나의 사물은 하나의 시간에 하나의 장소에만 존재한다. 아인슈타인이 증명했다. 현실이란 한없이 냉철하고 한없이 고독한 것이다.

- 「제1장 아오마메 Q,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이런 말이 있지." 고마쓰는 말했다. "다양한 예술, 다양한 희구, 그리고 또한 다양한 행동과 탐색은 선을 지향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이 지향하는 바를 통해 선이라는 것을 올바르게 규정할 수 있다."

"그게 뭐죠?"

"아리스토텔레스야.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지. 아리스토텔레스는 읽어본 적 있나?"

(중략)

고마쓰는 담배를 끼운 손을 쳐들었다. "덴고, 이렇게 생각해봐. 독자들은 달이 하나 떠 있는 하늘은 지금까지 수없이 봤어. 그렇지? 하지만 하늘에 달 두 개가 나란히 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적은 없을 거라고. 대부분의 독자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을 소설 속에 끌어들일 때는 되도록 상세하고 적확한 묘사가 필요해. 생략해도 괜찮은 것, 혹은 반드시 생략해야 하는 것은 대부분의 독자가 이미 목격한 적이 있는 것에 대한 묘사야."

(중략)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거치며 그는 수학의 세계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 명쾌함과 절대적인 자유가 다른 무엇보다 매력적이었고, 또한 살아가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부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수학의 세계를 방문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진행된다.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 현실세계로 돌아오면(돌아오지 않을 수는 없다), 그가 있는 곳은 이전과 다름없는 비참한 감옥이었다. 상황은 무엇 하나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족쇄가 더욱 무거워진 느낌마저 든다. 그렇다면 수학이 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건 그저 일시적인 도피수단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오히려 현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만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점점 커지면서 덴고는 수학의 세계와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와 함께 이야기의 숲이 그의 마음을 더욱 강하게 끌어들였다. 물론 소설을 읽는 행위 또한 일종의 도피였다. 책장을 덮으면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소설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는 수학의 세계에서 돌아왔을 때만큼 삼엄한 좌절감을 맛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덴고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어째서일까. 그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윽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야기의 숲에서는 사물 간의 관련성이 제아무리 명백하게 묘사되어 있어도 명쾌한 해답이 주어지는 일은 없다. 그것이 수학과의 차이다. 이야기의 역할을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문제를 다른 형태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동의 질이나 방향성을 통해, 해답의 방식을 이야기 형식으로 암시해준다. 덴고는 그 암시를 손에 들고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그 암시는 이해할 수 없는 주문呪文이 적힌 종이쪽지 같은 것이다. 때로 그것은 모순을 지니고 있어서 곧바로 실제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언젠가 나는 이 주문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이 그의 마음을,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덥혀준다.

- 「제14장 덴고 Q, 대부분의 독자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것」

준결승이나 결승까지는 올라가도, 막상 가장 중요한 승부에서 어이없이 져버릴 때가 많았다. 유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서 덴고는 그런 경향이 있었다. 점잖다고 할까, 지푸라기에라도 매달려보는 자세가 없었다. 소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장도 나쁘지 않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도 만들어낼 줄 안다. 하지만 읽는 사람의 마음에 온몸을 던져 호소하는 강력함이 없다. 다 읽고 난 뒤에는 뭔가 약간 아쉽다는 불만이 남는다. 그래서 항상 최종 후보까지 올라가면서도 신인상은 타지 못한다. 고마쓰가 지적한 대로였다.

하지만 덴고는 「공기 번데기」의 리라이팅 작업 이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떤 억울함을 느꼈다. 작품을 고치고 있을 때는 작업에만 정신없이 몰두했다.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작업을 마치고 고마쓰에게 건네주고 나자, 깊은 무력감이 그를 덮쳤다. 그 무력감이 일단락되자 이번에는 분노 같은 것이 뱃속 깊은 곳에서 치밀었다. 그것은 그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나는 남의 이야기를 빌려다 고쳐 쓰는 사기나 다름없는 짓을 한 것이다. 그것도 내 작품을 쓸 때보다 훨씬 몰두해서. 그렇게 생각하니 덴고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자기 자신 속에 잠재한 이야기를 찾아내 올바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작가 아닌가. 한심하지 않은가.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너도 마음만 먹는다면 충분히 써낼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제16장 덴고 Q, 마음에 든다니 정말 기뻐」


댓글(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 2020-11-04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1Q84』 이후 질리기도 해서 나머지 소설은 정말 심심할 때 읽어야지 하고 놔두고 있었다.˝ ㅋㅋㅋ 공감합니당! 근데 모 읽지 모 읽지 방황하다 하루키로 돌아가면 아.. 이래서 좋아했어! 매번 이래요. 저 최근에 <상실의 시대> 다시 읽었는데 충격적인 경험이었어요. 저는 십대 때 읽고, 이십대 초중반에 읽었었는데, 서술자의 나이가 되어 읽으니까 소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소주 한 잔씩 마시는 느낌이었고요~

AgalmA 2020-11-04 15:19   좋아요 2 | URL
밑줄긋기 추가했어요. 읽어보시면 이 책이 더 읽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은데요. 처음 읽었을 때는 덴고의 글쓰기 과정이 익숙하게 느껴져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왜 내 글쓰기가 잘 풀리지 않는지 하루키의 작법 조언으로 확실히 전달되더군요^^;

저는 상실의 시대를 네 번 읽었는데, 갈수록 더 와닿더군요. 하루키니까 위스키 커티삭 맛이라고 할게요ㅎㅎ;;

하나 2020-11-04 15:57   좋아요 2 | URL
1Q84는 출간 당시에 읽었는데, 아오마메의 고립 상황을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기회로 만들던 게 기억에 남네요. 갇혀야 읽을 수 있는 것인가 ㅋㅋ 저는 6권쯤에 멈춰있고요. 두 개의 달을 묘사하는 방법 좋네요! “그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같은 묵직한 조언이 있었네요. 저도 다시 읽어야겠어요. <기사단장 죽이기>부터 읽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