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 클래식 고전문학 시리즈의 장점은 양질의 서문을 읽고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5시간 반 정도에 1권의 반 읽었다. 한 권 읽는데 12시간 걸리니 완독은 5~6일 정도 걸리겠다. 3권짜리 장편은 늘 이 정도 걸리는 듯.『전쟁과 평화』보다 읽기 쉬워서 다행.
1부 18단락 안나와 브론스키 첫 만남까지 정말 지루했다. 남들이 극찬해도 톨스토이의 세세한 서술은 정말 내 취향 아님-_-








1.
타인과의 다툼에서 우리는 수사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우리 자신과의 다툼에서는 시를 빚어낸다.
(W. B. 예이츠)
ㅡ 리처드 피비어 (서문)「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2.
『안나 카레니나』 강의록에서 나보코프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아이를 둔 기혼부부는 신성한 계율로 영원히 결합된다고 톨스토이는 본다." 그의 소설은 의도에 따른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러시아 니힐리스트들의 사상에 대한 예술적, 사상적 도전으로 계획되었던 것이다.
ㅡ 리처드 피비어 (서문)「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3.
톨스토이의 소설에는 중립지대가 없다. 그의 글쓰기는 미하일 바흐친의 표현을 빌자면 ‘날카로운 내적 대화주의로 특징짓는다.’ 그 뜻은 톨스토이가 자신이 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자기 태도를 둘러싸고 인물들 간에, 또 독자들이 취할 만한 태도까지도 매 순간 의식한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이 묘사하는 세계, 그리고 묘사를 읽을 독자와 계속해서 내적 논쟁을 벌인다. 바흐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두 가지 (거의 대부분 논쟁적 어조를 띠는) 대화화를 글 양식 안에 단단하게 짜 넣는다. 가장 ‘시적’인 표현에서도, 또 가장 ‘서사적’인 묘사에서도 그렇다." 그처럼 서로 다른 태도가 은연중에 충돌함으로써 우리는 톨스토이의 글에 즉각적으로 주목하게 된다. 그저 무관심하게 물러나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ㅡ 리처드 피비어 (서문)「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4.
톨스토이는 작품을 완성하기 직전까지도 남편이 이혼을 해주고 그래서 아내가 애인과 결혼하게 할 구상이었다. 결국 이단아들은 사회에서 거부되고 오로지 니힐리스트 사이에서만 환영을 받게 될 것이었다. 소설의 완전히 다른 측면, 다시 말해 레빈과 키티 이야기는 초기 원고에는 없었다. 셰르바츠키 가족도 없고 오블론스키 가족도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오르딘체프라 불렸다가 레닌이라고도 불린 레빈은 부차적 인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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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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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빈은 당신이군요, 료바. 재능만 없을 뿐이지." 소피야 안드레예브나가 『안나 카레니나』 1부를 읽고 남편에게 한 말이다.(그리고 그녀는 "레빈은 불가능한 남자예요!"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톨스토이가 자신의 개성을 주인공들에게 많이 부여하기는 했지만 그중 레빈이 톨스토이에 가장 가깝다.
ㅡ 리처드 피비어 (서문)「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5.
톨스토이의 친구 중에는 라친스키라는 편집자이자 교육자가 있었는데 그는 톨스토이에게 『안나 카레니나』에 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두 가지의 ‘테마’가 참으로 근사하게 나란히 전개되지만 그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비판에 톨스토이는 1878년 1월 27일자 편지를 통해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당신의 판단은 내가 보기에 틀렸소. 반대로 나는 내 소설의 구성이 몹시 자랑스럽다오. 그러나 아치 천장은 쐐기돌이 안 보이게 짜 맞춰져 있지요. 내 노력의 대부분은 거기에 들어갔소. 구성의 응집력은 플롯이나 인물들 관계(만남)에 있지 않소. 그건 내적 응집력이라오······. 잘 보시오. 그러면 찾을 수 있을 거요."

그로부터 이 년여 전 스트라호프에게 쓴 편지에서 톨스토이는 이미 그 은닉된 응집력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내가 쓴 모든 것, 혹은 거의 모든 것은 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생각들을 묶어내려는 필요성에 따라 움직인 결과다. 그러나 말로 표현된 각각의 생각은 그 주위의 연결망에서 떼어내면 심하게 피폐해지고 의미를 상실한다. 그 망 자체는 생각이 아니라(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망의 본질을 말로 표현하기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건 간접적으로만, 즉 말을 이용해 인물이나 행동, 상황을 묘사하는 정도로만 가능하다."

이게 아마도 톨스토이가 자신의 예술관을 가장 완벽하게 정의한 말일 것이다.
ㅡ 리처드 피비어 (서문)「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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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19-12-10 1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펭귄 클래식 서문들 정말 좋죠. 위대한 개츠비 펭귄판 서문도 정말 명 평론입니다.

AgalmA 2019-12-11 21:38   좋아요 0 | URL
예, 다 좋죠, 펭귄클래식 전집을 ebook으로 다 가지고 있어서 자주 보는데 <공산당 선언>, <감정교육> 다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