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군! 도서관에서 빌려만 보기엔 아까운 책이다.






오늘날의 상황은 훨씬 더 어두워졌다. 그 이유는 첫째, 관련된 서류들은 아카이브에 들어가 있고, 서류와 실제 사실 간에, 그리고 계획된 목표와 실제 실행 들 간에 차이가 있는 한, 이것들은 수많은 세월 동안 기밀로 남아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제 기밀서류라는 것 자체가 아예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문자와 작성자들을 배제하는 사실적 데이터 흐름이 해독할 수 이자들의 연쇄로서 네트워크화된 컴퓨터들 사이에서 순환하고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자를 단순히 무력하게 만들 뿐 아니라 소위 인간들과 함께 문자를 흡수하고 획득한 기술들은 그러한 사실적 데이터들의 묘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전에는 책들에서, 그 후에는 레코드판이나 영화 들로부터 흘러나왔던 데이터의 흐름은 점점 더 블랙홀 혹은 블랙박스 속으로 사라진다. 이 박스들은 인공지능으로서 우리와는 이별을 고하며, 이름을 알 수 없는 최고사령부로 향하는 도상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남은 것은 단지 회상들, 말하자면 이야기들뿐이다. 어떻게 여기에 이르게 된 것인지를, 어떤 책에도 더 이상 적혀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이제 책들을 위해 기록하려 한다. 한계영역까지 내몰린 낡은 매체들 또한 이러한 상황의 기호와 단서 들을 기록하기에 이제 충분히 민감해졌다. 따라서 마치 마주보는 두 개의 광학 매체의 단면에서처럼 패턴과 무아레가 나타난다. 신화, 과학 소설, 신탁과 같은.....
이 책은 그 이야기들 중 하나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기술적 매체들의 새로움에 대해 예전 종이책이 기록하고 있는 구절과 텍스트 들을 모으고, 논평을 달고, 그것들을 서로 연결시킨다. 종이들중 많은 것들은 오래되거나 벌써 잊히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적 매체들의 태동기에 그것이 야기한 충격은 너무도 굉장했기 때문에,
문학은 그것을 오늘날의 그럴듯한 매체 다원주의에서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다. 오늘날의 매체다원주의란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 같지만, 실상 세계 지배를 상속하는 과정에서 실리콘 밸리의 집적회로를 방해하지 않는 경우에 한에서만 그렇다. 그에 반해 이제야 그 독점적 지배가 끝나가고 있는 정보기술 중 하나는 이러한 정보를 정확하게 기록한다. 경악의 미학. 1880년에서 1920년사이에 축음기, 영화, 타자기라는 최초의 기술 매체들에 대하여 경악했던 작가들이 썼던 것들은, 그렇기 때문에 미래로서의 우리들의 현재를 보여주는 유령 사진들로서 기능한다. 소리, 시각, 문자를 저장하고 분리할 수 있었던, 처음에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던장치Gerit들과 더불어 정보의 기술화가 시작되었는데, 앞서 언급했던 이야기들에서 회고해보자면 그것은 오늘닐의 자기회귀적인 숫자들의 흐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기술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분 명한 사실이다. 이 이야기들은 셀 수 없이 많을지리도eahllus, 정작숫자는 빠져 있기zahlenlos 때문이다. 여기에는 모든 혁신이 기반하고 있는 실재적인 것이 결여되어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수의 연쇄, 설계도, 회로도로부터는 절대 다시 문자가 생겨날 수 없으며,
생겨 나올 수 있는 것은 기계뿐이다. 기술 자체가 기술의 본질에대한 경험을 방해한다는 하이데거의 멋진 문장은 바로 이런 사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와 경험에 대한 하이데거의교과서적 혼동은 불필요한 것이다. 철학적인 본질에 대한 질문 대신 단순한 지식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서는 매체에 대해 서술한 작가들의 텍스트가 기반하고 인는 기술적, 역사적 데이터들이 함께 제시될 것이다. 그래야 낡은 건과 새로운 것이, 책과 그 책을 대신한 기술적 매체들이 실제 그들의모습인 정보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매체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라는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책 제목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때마다의 지배적인정보기술이 모든 이해를 원격 조종하면서 자신에 대한 환상을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계도와 회로도에서는, 그것들이지금 인쇄기술을 통제하고 있는 아니면 전자계산기를 통제하고 있든 간에, 인간의 몸이라는 저 미지의 것에 대한 역사적 형상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남아 있는 것은 매체가 저장하고유통시킬 수 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메시지나 내용이 아니다. 어떤 기술의 시대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정보기술이 소위 영혼들을 메시지와 내용으로 장식했을 뿐이며, 정작중요한 것은 (매클루언을 엄격하게 따르자면) 단지 회로들과 그 지각 가능성의 도식뿐이다.
(중략)
(헤라클레이토스를 자유롭게 인용하자면) 대부분의 기술적 고안물들을 만들어낸 것은 전쟁이다. 그리고 늦어도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의 『중력의 무지개Gravity‘sRainbow가 출간된 1973년 이래로, 진짜 전쟁은 사람이나 조국을둘러싸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매체들, 정보기술, 데이터흐름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우리 인간들을 생략해버린, 상황의 패턴과 무아레…..

오늘날의 상태는 부분적으로만 매체연합 체계이며, 모두 아직 매클루언으로 소급된다. 그가 기술했듯이, 하나의 매체의 내용은 언제나 다른 매체이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연합 안에는 영화와 라디오가 있고, 라디오라는 매체연합에는 레코드판과 테이프레코더가 있다. 영화에는 무성영화와 자기 녹음Magnetton이 있으며, 텍스트, 전화, 전보는 우편이라는 매체의 절반을 독점한다. 새로운 세기의 초반, 독일의 폰 리벤Robert von Lieben과 캘리포니아의 디 포리스트Lee De Forest가 제어 가능한 진공관을 발전시킨 후, 시그널을 증폭하고 전송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1930년대 이후 존재하는거대한 매체연합 체계는 이제 문자, 영화, 녹음기라는 세 저장 매체 모두를 장악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그널을 연결하고 전송할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 체계들 사이에는 호환되지 않는 데이터채널과 상이한 데이터 포맷이 존재한다. 전기Elektrik는 아직 전자Elektronik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데이터 흐름의 스펙트럼 안에서 텔레비전과 라디오, 영화와 우편은 사람들의 감각에 다가 가기 위해 각각 제한된 개별 창문을 형성한다. 접근해 오는 미사일을 감지하는 적외선이나 레이더 음향은ㅡ미래의 광섬유와는 달리ㅡ아직 서로 다른 채널을 사용한다. 우리의 매체연합 체계들이유통시키는 것은 사람들이 전송하고 수신할 수 있는 단어와 소음,
이미지 들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 데이터들을 산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컴퓨터를 조정하여 임의의 알고리듬을 임의의 인터페이스 효과로 바꾸는, 그것도 사람들에게서 감각이 사라져버릴 때까지 그렇게 바꾸어버리는 아웃풋을 생산하지 않는다. 계산되는 것은단지 연합 체계 안에서 내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저장 매체가 가진 송신의 질質뿐이다. 텔레비전의 음질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극장 화면이 얼마나 자주 깜빡거리는지, 혹은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사랑스런 목소리가 어떤 주파수 대역에서 줄어드는지는, 기술자와 판매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각각의 타협에 의해 규제된다. 우리의 감각은 이러한 규제들에 좌우되는 종속변수들이다.

 축음기 Phonograph와 영상기록기Kinematograph – 그 이름이 문자에서 기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에 이르러 비로소 저장할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시간은 청각적인 것에서는 소음의 주파수 혼합체로, 광학적인 것에서는 연속되는 단일 이미지들의 운동으로 저장되었다. 모든 예술은 시간에서 그 한계를 갖는다. 일상의 데이터 흐름이 이미지나 기호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예술이 그 흐름을 정지시켜야 한다. 예술에서 스타일이라 불리는 것은 이러한 탐색과 선택의 접속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문자를 사용하 여 연속적인, 즉 시간적으로 배열한 데이터 흐름을 운영하는 예술들도 이러한 접속 작업의 지배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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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0-16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AgalmA님의 글을 북플에서 못봐서 바쁘신가 했는데, 제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네요. 과거보다 기술이 발전해 매체들의 음질과 화질이 개선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보다 분명한 화질과 음질이 우리의 감각을 더 자극하면서 실재계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상징계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상징계의 암호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이들 우 힘이 모두 작동하게 되는 것인지 물음을 던져 봅니다.^^:)

AgalmA 2019-10-16 01:06   좋아요 2 | URL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나꼼수 등을 필두로 팟캐스트가 한참 붐이다가 요즘은 유튜브가 압도적이 되었잖아요? 예전 팟캐스트가 페이스북 같은 문자 체계 서브 수단을 짝으로 했다면 요즘은 영상 체계의 유튜브로 아예 다 넘어가려고 하죠. 이건 단순히 유튜브라는 매체의 성질 때문만은 아니죠. 우리는 되도록이면 좀더 쉬우면서 즉각적인 매체를 더 선호하는 거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더 강력한 ‘통합매체‘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도 매체의 분화라기보다 통합의 성질이라 봐야겠죠.
아마 우리는 상징계와 실재계의 통합을 바라는 게 아닐까요.
이 세계를 신이 만든 아름다운 세계로 본 것처럼, 내가 사는 이 세계를 그리 만들고 싶은 지도요. 지상에서 (나의) 천국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