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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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는다는 사람치고 자기 책을 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당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낸다면 당신은 어떤 콘셉트로 꾸릴 것인가. 요즘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각광받는 직종으로 뜨고 있고, 인공지능의 위협 속에서도 인간의 크리에이터 능력이 강점으로 떠오를 거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책의 저자나 편집자의 장점도 편집 디렉터에 있다고 본다. 이 책은 1부(게으르게)-2부(불편하게)-3부(엉뚱하게)-4부(자유롭게)-5부(광대하게)-6부(행복하게)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이야기 흐름으로 맞춰져 있다. 또한 골방에서 자기 세계를 고심하는 창작자에서 출발해 시대를 바꾼 스티브 잡스의 인식 전환의 메시지로 끝나는 구성이라 수미쌍관도 잘 맞는다. 편집자의 노고에 저자가 매우 감사했을 거 같다. 

늦게 꽃 핀 대가들의 일화, 게으른 성격 한탄, 커피 같은 기호식품의 소비에 폼도 곁들이는 우리 심리,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 등 공감대를 형성하는 카페 수다처럼 진행되어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꽃핀다"의 의미는 유명해지는 것보다도 자기 분야에서 스스로 인정할 만큼 독창적이거나, 새로운 결지의 뭔가를 이뤄서 극소수보다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거나 생각을 전환시키고, 장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ㅡ 「늦게 꽃핀 대가들」

 

 

저자만의 시각이 곳곳에 초코칩처럼 박혀 있다. 영화 「패터슨」에서는 패터슨이 건장한 백인 남성이었기에 누릴 수 있었던 삶의 여유에 대해서 생산적인 프로 불편러로서 말한다. 사회의 다양한 문제 지적도 여러 챕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피해자’를 ‘패배자’로 경멸하는 강자숭배적 사고 &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인정의 거부 &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합리화해서 공정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으려는 경향(「피해자를 비난하는 심리」), 폭력을 탐닉하는 세계(「타인의 고통에 대한 잔혹한 호기심」), 희생양으로 유지되는 사회(「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어머니의 심장 이야기’가 싫다」, 「고기를 좋아했건만」), 사회안전망 없는 국가에서 가족주의 폐해(「차마 두고 갈 수 없어서?」), 예술계의 성폭력(「“틀을 깨라!”가 이상하게 쓰일 때」), 통념을 깨는 영화 감상기(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케빈에 대하여」,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 삶의 의미를 삐뚤게 찾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파레이돌리아, 무의미한 세계에서 의미를 찾고 싶어」, 「먹방의 전통」, 「셀럽, 욕을 먹어서라도 되리라」 등.

주제에 맞춰 소스가 정말 잘 짜였다고 생각하는 에세이가 몇 편 있는데 그중 「사랑을 거절할 권리도 있소이다」는 이렇다. 저자는 극혐하는 3대 속담으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를 거론한다. 일방적인 사랑을 미화하는 사고방식에 대해 신화에서부터 조반니 보카치오 단편 소설집 『데카메론』(1351)까지 엮으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400년 전 세르반테스의 생각보다 케케묵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야지 강요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럴진대, 왜 오로지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 말했다는 이유로 내 뜻을 억지로 굽혀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 겁니까? (…) 나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 고독을 선택했습니다. (…) 나는 그것을 그에게 얘기했습니다. 욕망이 희망으로 지탱된다고 한다면, 나는 그리소스토모(상사병으로 죽은 청년)에게 아무런 희망도 준 적이 없으므로, 나의 잔인함이 아니라 그 자신의 집착이 그를 죽인 것입니다.”

ㅡ 세르반테스 『돈키호테』에서 마르셀라의 말

 

 

한국 사회 비판도 지치지 않고 나온다. 『동국세시기』와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서 반대되는 예시를 가져와 며느리 등골 휘게 만드는 한국의 명절 문화를 비판하는 「왜 우리 명절은 재미없을까」, 조선 시대 「평생도」를 보며 성공한 삶의 기준과 양상이 여전히 획일적이라는 「엄친아와 비교강박의 역사」, 질문 없는 사회를 만드는 문화에 대해서는 「나대면 맞는다? ‘잘난 척’이 욕인 사회」, 결벽증적인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벚꽃 논란과 비틀린 민족주의」, “‘규율사회의 복종적 주체’로서 남 눈치를 보는 동시에 ‘성과 사회의 성과 주체’로서 ‘나 자신이 인정하는 나’가 되어야” 하는 한국 사회의 복합적 문제에 대해서는 「“뭐든지 될 수 있어”의 피로와 뜻밖의 위로」, 세계 주요 박물관에서 한국 섹션의 빈약한 모습을 보며 한국이 “우리 전통의 우수성”에 취한 은둔자는 아닌가 자문하는 「국뽕과 국까 사이에서」, ‘블랙페이스(Blackface)’를 아무렇지 않게 표현하는 한국의 인종차별 의식의 빈약함을 꼬집는 「선택적 세계화의 민낯」,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여성이 ‘하향선택결혼’을 하면 해결될 것처럼 풀었던 한국의 인식 문제를 비판하는 「경제학 농담으로 푸는 저출산 해법」 등등 익숙한 이야기들이 한눈에 보이게 모이니 읽는 내내 한숨도 지치지 않고 쉬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중심을 갖추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바꿔나가는 삶을 살라는 거다. 불교 경전 『열반경』에서 복을 주는 여신(공덕천)과 화를 내리는 여신(흑암천)이 한 쌍으로 다니듯이, 겨울과 봄 / 죽음과 삶 /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가 맞물려 있듯이 우리는 희비와 고락의 굴레에서 내내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살아있는 한 누구도 피할 수 없고,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매일 자신의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삶을 채워나가는데 급급할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부터 우리는 제대로 점검해봐야 한다. 꿈이 광대하든 소박하든 이건 정말 게을러서는 안 될 문제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에서 한 승려는 "행복을 목적이라고 믿는 게 첫째 실수다."라고 답해 준다. 자연스럽게 겪는 좋은 감정의 경험들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영국 행동과학자 폴 돌런은 비슷한 듯 다른 의견을 낸다. 행복은 막연히 추구하거나 파랑새처럼 재발견하는 게 아니라, 즐거움과 목적의식의 경험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는 견해다."

ㅡ 「행복도 경쟁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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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9-08-05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저도 돈키호테 보면서 마르셀라 편 볼 때 진짜 분노했어요. 싫다는데 그 사랑을 안 받아줬다고 비난받다니... 저도 이 책 읽고 있는데 리뷰 고맙습니다 ㅎㅎ 오멜라스 관련 내용 얼른 읽고 싶어요.^^

AgalmA 2019-08-09 07:08   좋아요 0 | URL
일상어로 진행되어서 금방 읽게 되더군요^^ 너무 오래전에 <돈키호테> 읽어서 이 부분이 아주 생소해서 아, <돈키호테> 어서 읽어야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