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삶에서 그렇듯 여행에서도 늘 환상을 좇는 기분이다. 감각하므로 우리는 실제를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더 몰입하게 되는 걸까.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그랬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당황해하면서 환상 속에, 살아 있는, 나를 겪는 기분이었다.

 

 

 

드니 코테 <유령 마을> 놓친 건 정말 아쉬웠다. 그 때문에 이후 차례차례 꼬이기 시작했다.

<유령 마을> 예매를 못해 비슷한 시간대 <로호>를 예매했다가 떠나게 직전 <유령 마을> 예매에 성공! 3일 2회차 영화인 에두아르도 윌리엄스 단편까지 예매했으나 꾸무적대다 눈앞에서 시외버스를 떠나보냈다. 기사가 안타깝다는 듯이 비웃듯이 정말 눈앞에서 문을 닫았... 전날 김영하 『여행의 이유』를 읽지 않았다면, 밤새 리뷰를 쓰지 않았다면 이리 되지도 않았을 거라고 후회한 들 소용없었다. 전주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에두아르도와 <유령 마을>을 차 속에서 차례차례 취소했다.  예매 취소 안 하고 조율하는 스킬이 부족;해서 취소했던 <로호>를 다시 예매하고 하나라도 제대로 보겠구나 했는데..... 임박하게 도착해 택시를 탔고 내리자마자 휴대폰이 안 보여 순간 앞이 캄캄했다. 추격자로 분신하여 택시를 달리기 선수처럼 따라잡았더니 정작 가방에서 휴대폰을 발견했다. 안도와 함께 허탈이 어떤 영화를 본 뒤처럼 밀려왔다.

각종 번잡을 자초한 끝에 드디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벤자민 나이스타트 <로호>(2018) ★★★☆

197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를 무대로 하는데 한국의 독재 정권일 때랑 비슷한 정치 사회 상황이다. 무력하고 정신적인 피폐 상태에 있는 이들, 기회를 포착해 부를 누리거나 약자를 제압하는 두 부류로 크게 나뉜다. 그 사이의 중개자가 되기도 하고 악행의 동조자이자 주도자가 되기도 하는 변호사 클라우디오를 통해 흔들리는 인간의 면면을 보여준다.

어느 저녁 레스토랑에서 한 사내가 큰 모욕을 주며 자리를 뺏자 클라우디오는 민망할 정도로 모욕을 되돌려준다. 사내는 레스토랑 전체에 행패를 부리고 쫓겨나다시피 했는데 클라우디오와 그의 부인이 레스토랑을 나오길 기다렸다가 습격을 가한다. 그 사내가 총격 자살을 시도해 사경에 처하게 되자 클라우디오는 도와주려다가 결국 죽게 내버려 둔다. 이 지점이 정말 섬뜩하다. 그 사건이 나중에 자신의 발목을 잡을지 클라우디오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막에 시체를 버렸는데 누가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걸 찾는 사람이 있어야 영화가 되지! 그 사내의 실종을 수사하던 알파치노 닮은 탐정 역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인간이 무조건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결말에서 클라우디오가 가발을 쓰는데, 우리에게 그 모습은 새 출발이 아니라 죄의식을 가리는 가면이다. 우리의 현실 속 모습도 그런 덧칠로 가득한 것은 아닐지 반문하며.

 

 

 

 

 

 

마이클 윈텀바텀 <웨딩 게스트>(2018) ★★

이 시간대 보고픈 영화가 없었지만 한 편만 보고 전주영화제 첫날을 마무리하기 아까워서 봤다.

스토리는 예상대로 진부했지만 파키스탄과 인도를 종횡무진하는 여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예전에 갔던 여행지도 회상하면서.

인도 남부는 한 달 이상 머물고 싶은 곳!

 

 

 

 

 

오자마자 영화 보느라 밥도 10시...

여기 와서 한 잔 안 하고 그냥 자긴 아쉬웠므로 길맥을 했다.

전주에서는 Hite 병맥!

낮엔 이선균 배우가, 한밤엔 이장호 감독이 눈앞에 지나가는데 아는 척하기 참 머쓱> 내가 뭐라고, 난 유명인 사인받는 것도 안 좋아하는데;

 

 

 

 

 

첫 밤 이후 아침. 알라딘 굿즈 천국...

 

 

 

 

 

 

 

 

 

 

 

 

 

 

 

기욤 브락 <보물섬>(2018) ★★★★

홍상수 영화 음악을 자주 맡았던 정용진 음악 감독 참여도 있고 해서 홍상수 영화랑 비교도 하는데 홍상수 영화보다 더 좋아서 비교하는 것도 맞지 않는 거 같다. 다큐와 픽션의 절묘한 조화.

감독은 도시 외곽을 슬럼가로 보는 시각과 편견에 대해 반대하며 파리 근교의 한 수영장을 세상의 복사판으로 보여 준다.

가족 모임으로 보이는 현장에서 바베큐를 굽는 한 남자가 자신이 납치되었다가 살아난 얘기를 담담히 한다거나,  자기 나라에서 고위 간부의 행동을 지적해 곤혹에 처해 망명한 남자가 수영장의 경비 일을 하게 된 고백 등, 이 영화가 잔잔히 보여주는 풍경과 이야기의 충돌은 시종일관 생각과 마음을 뒤흔든다.

전주 와서 본 영화 중 내겐 최고였다👍

 

 

 

 

 

 

 

<나무라듸오>에서 잠시 휴식. 한적하고 친절하며 분위기는 좋은데 커피 맛은 아쉬웠다.

 

 

 

 

 

 

 

 

 

 

기요르기 폴피 <아버지의 목소리>(2018) ★★★☆

스타니스와프 렘 <아버지의 목소리>를 원작으로 한 영화.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 번역이 국내 별로 없는 가운데 타르코프스키가 영화화한 <솔라리스> 원작도 구하기 좀 어렵다. 원작과 많이 달라 감독과 작가가 사이가 좋지 않았다지만 명작이 된 <솔라리스>를 좋아해서 폴피의 영화도 꼭 보고 싶었다.

GV를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창작자의 의도보다 더 훌륭하게 작품이 완성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가 그런 것 같다. 음모론, 외계인 얘기는 진부했지만 전위적인 미장센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제 특수를 놓치지 않고 영화제 관람자 10% 할인ㅎ 전주 시민만 좋을 듯.

짐도 많은데 책 짐이 생길까 봐 아예 들어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짐 커밍스 <썬더 로드>(2018)  ★★★☆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아내, 직장, 집, 정신까지 잃게 된 남자 역을 맡았던 브래들리 쿠퍼 같은 캐릭터가 나온다.

어머니 장례식에서 춤 퍼포먼스를 준비한 남자 지미 아르노. 거기엔 타당한 이유가 있는데 스포가 되므로 여기선 밝히지 않겠다. 아무튼 그 영상이 아내와의 양육권 소송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돼 딸까지 뺏긴다. 사람 사이의 질서와 윤리를 대리하는 역할인 경찰이지만 오히려 그 일에 몰두하느라 정작 자기 가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이혼에 해고에 딸과의 이별에 신경쇠약 상태로 몰린 그가 관객을 얼마나 울리고 웃기는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영화를 좋아했다면 이 영화도 좋아하고야 만다고 장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짐 커밍스 기억해둬야겠다. 운이 잘 따라준다면 벤 스틸러급이 될 수도 있겠음ㅎ

웃기면서 눈물 핑 돌게 하는 멋진 영화. 개봉하면 입소문으로 인기 끌 영화다.

 

 

 

 

 

 

 

 

 

 

 

 

 

 

 

 

와하하하하... 하루 종일 성공률 좋다가 미드나잇 시네마에서 빅엿을💦💦💦

세 편 중 건질 게 하나도 없었다.

미드나잇 시네마 1(23:59~06:11)

1. 얀 보니 <독일. 겨울 이야기>(2018) ☆

베키, 토미, 마이크 세 사람이 섹스와 폭력의 극단을 향해가는 이야기인데, 굳이 영화를 만들어 뭘 공유할 게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인종차별을 부추기기 위해 정부가 그들을 이용한다는 설정도 작위로 느껴졌다. 키에슬로브스키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같은 작품이면 좋겠다는 기대로 봤는데 별 1개도 아까웠다.

2. 켈리 코퍼 / 파볼 리스카 <죽은 자의 아이들>(2019) ☆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해서 기대하며 봤는데, 무성 영화 스타일의 카니발리즘 영화는 그 불친절함 만큼 내용이 너무 거칠어서 흥미를 단번에 잃게 만들었다.

3. 다니엘 칼파르소로 <더 워닝>(2018) ★☆

같은 장소에서 계속 일어나는 죽음의 패턴을 평행우주론으로 펼친 작품인데, 이 소재는 너무 식상해져 있는 데다 영화에서 인과 고리가 깨어지는 결말의 개연성도 없었다.

 

 

 

 

 

 

 

 

 

 

 

 

 

 

 

 

 

 

 

 

 

 

 

 

 

미드나잇 시네마가 전위적 작품이 많다는 건 감안하고 보지만 이번엔 정말 피곤하게 날이 새고 말았다. 한숨 쉬며 씻기 위해 이 근처 유일한 한옥 스파 사우나로 gogo~

근방 영업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많이 오셔서 다들 드라이기를 들고 다니시는 게 이색적. 100원 넣고 매일 쓰는 것도 은근히 낭비니까. 호탕하신 아주머니 한 분께 나도 얻어 썼다ㅎ

 

 

 

 

 

 거리 곳곳 멋진 풍경. 비도 안 오고 화창한 날의 연속이었다!

 

 

 

 

전주는 이런 언밸런스 풍경이 늘 매력적!

 

 

말끔히 씻고 오늘 마지막 영화 티켓팅도 성공!

커피를 마시려니 가고 싶은 카페들은 대부분 12시부터 오픈ㅜㅜ

 

 

 

바쁠 땐 1인 분 안 준다는데 객지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셔서 <전주식당>에서 백반 1인분.

아침을 제대로 못 먹으면 하루 종일 힘들더라는.

여기 김치찌개 맛있죠. 사과 샐러드 오랜만에 먹으니 맛있다.

크게 맛집은 아니고 영화관과 가깝고 적당히 먹을 만하다.

 

 

 

 

 

 

 4일까지 내가 본 영화 티켓 기념샷~

 

 

 

 

 

5일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히타 아세베두 고미스 <포르투갈 여인>(2018) ★★★☆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무질의 고전을 번안한 작품이라고 해서 봤는데, 간밤 심야 영화 관람의 여파로 집중을 못 한 게 많이 속상했다. 모든 쇼트가 명화처럼 아름다워서 이 영화의 영상미는 독보적! 인물들의 연극적인 대화, 미장센 등 브레송 감독이 연상되기도 했는데 포르투갈 현대 영화를 이끄는 이 여성 감독의 행보는 앞으로 더 주목된다.

단편 <포르투갈 여인>이 실린 로베르트 무질 『사랑의 완성』 책 갖고 있는데도 못 보고 내려가서 나를 원망했다.

 

 

 

 

 

 

 

 

이 영화를 끝으로 68년 전통의 풍년제과 빵과 센베를 사들고 전주를 떴다~👐 난 그리 맛있다 생각되지 않지만 어버이 날 선물~~

이상하게 영화제는 3일 정도 보면 질린다. 너무 몰아쳐 질리게 봐서 그런가.

 

 

 

 

 

 

 

 

 

 

 

 

 

 

 

 

 

 

 

 

 

 

 

 

 

 

 

예정대로라면 당진을 가야 했으나 전주에서 충남 당진 가는 게 너무 어려웠다. 군산을 가서 하루 두 대 있는 당진행을 타야 했는데 시간이 애매해 서해 바다 보는 건 포기했다.

방향을 틀어 집으로, 바다로.

전주보다 우리 집이 맛집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거하게 차려주신 엄마 밥상을 황송히 즐겁게 받았다.

화창한 날씨의 울산 바다도 보러 갔다.

대왕암 미역 장사 아주머니 성격 겨울 칼바람 같으셨다ㅎ

어느 관광객이 생미역 한 봉지 만 원이 비싸서 안 산다고 돌아서자마자 미역을 패대기를.

부산 태종대나 영도처럼 아래 해변엔 해녀(?) 간이 횟집이 있는데 아마도 비싸서 얼씬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천 진주 냉면 육전을 올린 특이한 냉면인데 왜 서울엔 이게 없지? 돈가스랑 냉면 먹는 느낌이다.

 

 

 

 

더 있다 가고 싶으나 부고를 들어 조문을 위해 급히 올라가기로 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 장례를 치르는 심정을 나는 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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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본성상의 차이들이 더 이상 나타날 수 없는 관점, 아니 오히려 사물들의 상태가 존재한다. 진리의 퇴행 운동은 진리에 대한 환상일 뿐만 아니라 진리 그 자체에 속하기도 한다. "종교"라는 복합물을 정적 종교와 동적 종교라는 두 방향으로 나누면서, 베르그송은 덧붙인다 : 어떤 특정한 관점에 자리하면서, "사람들은 일련의 추이와 정도상의 차이들을 감지하지만, 실제로 거기에는 근본적인 본성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환상은 우리 본성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주하는 세계에도, 우리에게 우선 나타나는 존재의 측면에도 기인한다. 베르그송은 그의 처음 작품에서 마지막 작품까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진화해갔다. 그의 진화의 두 주요한 요점은 다음과 같다: 베르그송에게 지속은, 사물들의 가변적인 본질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복합 존재론 ontologie complexe 이란 테마를 제시하기 위해서, 심리적 경험에로 점점 덜 환원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공간은 그에게는 이 심리학적 실재성과 우리를 떼어놓는 픽션에로 점점 더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공간 그 자체 역시도 존재에 근거할 수 있도록 그리고 존재의 두 비탈 중의 하나를, 그 두 방향 중의 하나를 설명할 수 있도록 말이다. 베르그송은 말했다, 절대는 두 측면을 갖는데, 형이상학에 의해 간파된 pénétré 정신이 그 하나요, 과학에 의해 인식된 connue 물질이 다른 하나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과학은 상대적 인식 즉 그 성공이나 효율성에 의해서만 보증받는 상징적 분과가 아니다 ; 과학은 존재론의 일종이며, 존재론의 두 절반 중의 하나이다. 절대는 차이이지만, 차이는 정도상의 차이와 본성상의 차이라는 두 표정을 갖는다. 따라서, 우리가 사물들 사이에서 단순한 정도상의 차이들을 파악할 때, 과학 그 자체가 세계를 이 측면에서 보게끔 우리를 초대할 때, 우리는 여전히 절대 안에 있다( "현대 물리학은 우리에게 질에 대한 우리의 구분 뒤에 있는 수적 차이들을 점점 더 분명히 보여주고......")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첫번 비탈의 실제 풍경을 다른 비탈 위에 투사하는 한에서만, 그것은 환상인 것이다. 만약 환상이 억제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다른 비탈 즉 지속이라는 비탈 덕인데, 이 비탈은 마지막 심의에서는 공간 속에서 그리고 이미 물질과 연장 속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비율상의 차이들에 상응하는 본성상의 차이들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 * *

따라서 직관은 이 세(또는 다섯) 가지 규칙들을 갖고서 하나의 훌륭한 방법을 이룬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문제화하고(거짓 문제의 비판과 참된 문제의 창조), 분화하고(재단[자르기] découpage과 마주침[음미] recoupage), 시간화하는(지속의 견지에서 생각하기) 방법이다. 그러나 어떻게 직관이 지속을 상정하는지, 그리고 반면에 존재와 인식의 관점에서 어떻게 직관이 지속에 새로운 확장을 부여하는지, 이것은 결정해야 할 것으로 남겨져 있다."

 

 

어버이날, 내 부모를 두고 타인의 부모, 나와 아무 연관 없는 죽음을 기리기 위해 안산을 향했다. 비용과 시간과 내 바람과 휴식을 포기하고 하는 모든 행위는 나를 짓누른다. 우리는 매 순간 이렇지. 이 과민한 선택의 연속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삶은 사실 예사롭지 않다.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거절하고 싶었고, 하고 싶지 않으면서 행했던 많은 말과 일. 진심은 정도의 차이인가 결과인가. 뭔가 안다고 말하려는 내 입을 제때 틀어막고 싶다. 며칠 어머니가 틀어놓은 tv를 통해 비틀린 인간 군상의 이모저모를 반복, 또 반복해 들으며 나는 계속 거르려 했다. 어머니와 나는 같은 방송을 보면서도 다른 상대를 향해 분노했다. 진위는 다 파악되지 않은ㅡ계부와 생모가 살해해 유기한 12살 소녀, 교통사고 이후 조현병 증상으로 흉기로 난동을 부린 한 남자, 러시아 항공기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기장의 잘못과 일부 승객의 이기적 행동으로 더 큰 피해),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로 현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하는 종편 방송ㅡ 소식들도 나와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내 생각과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매 순간 조정된(한)다. 식물의 주광성(走光性)처럼. 바깥을 통해서는 사건을, 머릿속에서는 베르그송과 들뢰즈의 단어들을 따라가며 '지속', '차이', '존재론' 같은 개념들을 정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실재로서 작동시켜야 할 이유는? 어떤 이에게는 깨어 있음과 깨어 있음 사이, (내게는) 잠과 잠 사이, 하루는 많은 임의의 경계로 작동하지만 내 생에서 이것들은 차이로 인식되지 않는다. 정리되지 않은 채 읽고 보고 듣고 걷고 방황하다 다시 돌아왔다. 이것도 잠의 연장이라 해야 하지 않을지. 다른 관점으로는 삶의 지속?

 

 

 

 

 

 

 

 

 

전주영화제에서 내가 애타게 유령처럼 좇기만 했던 영화, 드니 코테 <유령 마을>을 서울 아트시네마 특별 상영으로 서울에서 보았다.

정리할 시간이 없어서 리뷰는 내 마음속에 두었다.

이 영화가 빚어내는 공간감은 기대대로 내 취향이었다.

유령에 이민자 은유를 섞게 된 배경도 그렇고, 초자연적 영화가 흔히 그러듯 신을 끼워 넣지도 않은 지극히 인간적인 영화. 잔인함 1도 없는 마감을 보며 나라(캐나다) - 문화라는 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구나 재차 실감했다. 할리우드 스타일 호러 영화가 아니라 맘에 들었다.

여행에서 읽지 못했던 사무엘 베케트 책이랑 잘 어울리기도 했다.

 

 

 

 

📎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이제 놓아달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동사를 사용했다. 그는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그를 떠나기를 바라며 그런 말을 한 건지 아니면 그냥 나와 잠시 떨어져 있기를 바란 건지는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그걸 물어본 적은 없다. 나는 그가 지닌 질문들만을 궁금해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벗어나자 나는그의 삶에서 벗어났다. 어쩌면 이게 그가 원하던 것이었을지도모른다. 자문해보지 않고도 알게 되는 질문들이 있다."어느 날 그가 나에게 이제 놓아달라고 말한다. 그는 그런 동사를 사용했다. 그는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그를떠나기를 바라며 그런 말을 한 건지 아니면 그냥 나와 잠시 떨어져 있기를 바란 건지는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그걸 물어본 적은 없다. 나는 그가 지닌 질문들만을 궁금해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벗어나자 나는그의 삶에서 벗어났다. 어쩌면 이게 그가 원하던 것이었을지도모른다. 자문해보지 않고도 알게 되는 질문들이 있다. 

 

 

 

 

 

 

 

 

 

이 여행의 기록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하며 많은 시일이 지났다. 현재의 내 마음을 가장 잘 말해준 것은 권여선 작가의 단편들이었다.

 

 

• 권여선 <모르는 영역>(대상 수상작)

📎

"어디선가 새가 날아와 나뭇가지에 내려앉았다. 날갯짓의 급격한 감속, 날개를 접고 사뿐히 가지에 착지하는 모습, 가지의 흔들림과 정지……. 그런 정물적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새는 돌연 가지를 박차고 날아갔고 그 바람에 연한 잎을 소복하게 매단 나뭇가지는 다시 흔들리다 멈추었다. 멍하니 서서 새가 몰고 온 작은 파문과 고요의 회복을 지켜보던 그는 지금 무언가 자신의 내부에서 엄청난 것이 살짝 벌어졌다 다물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새가 날아와 앉는 순간부터 나뭇가지가 느꼈을 흥분과 불길한 예감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새여, 너의 작은 고리 같은 두 발이 나를 움켜잡는 착지로 이만큼 흔들렸으니 네가 나를 놓고 떠나는 순간 나는 또 그만큼 흔들려야 하리. 그 찰나의 감정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생생해 그는 거의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한참 만에 주위를 돌아보니 그저 저수지였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에게 왔던 것은 이미 사라져버렸고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고 영영 지울 수도 없으리라고 그는 침울하게 생각했다. 단 한 번이라니…… 단 한 번이었다니…… 다영도 이곳에서 이런 무섭도록 강렬한 한 번을 경험한 것일까. 그래서 그에게 은밀한 보물이 묻힌 곳을 알려주듯 이곳으로의 산책을 권유했던 것일까. 순간 다영의 굳은 얼굴이 떠올랐고, 그게 그러니까…… 한 번은…… 한 번은 해도 됩니까 묻던 다영의 말이 식당 여자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해도 됩니까, 한 번은?"

• 권여선  <전갱이의 맛>(대상 수상작가 자선작)

📎

“그러니까 사람은, 사람이란 존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고, 그렇게 감각하는 자체만으로는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더라고. 내가 지금 이걸 느낀다, 하는 걸 나에게 알려주지 못하면 못 견디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내 느낌과 생각을 내게 전달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까 감각이나 사고 자체도 그 자리에서 질식해버리고 마는 것 같았어.”

나는 잠깐 멍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말이란 게, 하고 그가 말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 위한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나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그동안 난 쉴 새 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해왔는데, 그 말을 사실 나도 듣고 있었던 거지. 그런 의미에서 말은 순수히 타인만 향한 게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기도 했던 거야. 그런데 말을 못하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말은 그럭저럭 포기가 됐는데 나를 향한 말은, 그건 절대 포기가 안 되더라고.”

.

.

.

나만의 말은, 그는 힘주어 말했다.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억되거나 발견되는 거야. 내가 어떤 언어를 간절히 원했던 순간을 기억하거나, 그 간절함이 생겨나는 그 순간을 발견해서 내 말로 삼는 거지. 그러니까 내 말들은 어원을 잃는 법이 없어. 최초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그 위에 다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말 속에 삶이 깃드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때로는 뜻을 알 수 없는, 그저 표현으로 먼저 생겨난 말도 있고, 가끔 아주 외설적인 말도 튀어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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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5-21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 전주, 5년만에 다녀왔습니다. 출장이긴 했지만, 전주는 갈때마다 묘한 설레임이 있습니다. ^^

AgalmA 2019-05-23 02:07   좋아요 1 | URL
중부 지역이 대체로 그런 느낌을 주는데 전주도 안온한 분위기 같은 게 있는데다 한옥 풍경이 많아 정감도 가죠. 예전 인사동 느낌나서 좋은데 지금의 인사동이나 그 일대 같이 안 변했으면 좋겠어요. 서울 외 중소도시에서 이런 분위기의 도시도 드물죠. 게다가 수많은 맛집까지 있으니 매력 만점!

북다이제스터 2019-05-23 20:11   좋아요 0 | URL
어찌 아셨습니다. 그때 가서 1인당 3만원 막걸리집 갔는데, 반찬 60 가지 나와서 엄청 놀랐습니다. ^^